출격 전의 포트는 언제나 긴장감이 넘치고, 또한 분주하다.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고 전장을 파악하는 것 만으로도 시간이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게 느껴질 정도니까, 

미호는 자신의 애총, SK-14를 꼼꼼히 손질하며 중얼거렸다.


“..오늘은 실수하면 안돼.”


몽구스 팀이 아닌 팀과 출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리더라니, 뭐 경험은 있으니까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미호는 다시 한번 스코프의 영점을 조절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방패를 점검하는 켈베로스, 가방에 무기를 쑤셔넣는 토모, 무표정한 얼굴로 총탄을 챙기는 바닐라가 보인다. 

그녀들은 얼마전 발견된 인간 사령관의 지휘 실력이 어떨지 모르기에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그럼 출발..”


점검을 마치고 출격 포트를 나가기 직전, 닥터가 무언가를 가득 들고 포트 안으로 들어왔다.


“자, 언니들! 모두 이거 하나씩 받아! 오빠가 직접 준거야!”


순식간에 모두의 손에 주사기가 줘여진다, 노랗고, 또 다른 각도로 보면 파랗게도 보이는 액체가 유리 실린더 안에서 찰랑거린다. 


미호는 손에 들린 작은 주사기를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수상하게 생긴 주사기이지만, 그래도 사령관이 준 것이니까 위험한 건 아니겠지,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주사바늘을 팔에 찔러넣었다. 기분 나쁜 따끔함 뒤에 뜨거운 약물이 팔을 타고 퍼져나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뭐야….별로 바뀐 것도 없는거 같은데?”


뜨거운 느낌은 잠깐이었다. 약 기운이 사라진 것을 느낀 미호는 인상을 펴고 팔을 휘휘 저어보았다. 

보통 이런 약물을 주사하면 힘이 무지막지하게 강해지거나 엄청 빨라져야 하는거 아냐? 


“자, 어서 출발 해요!” 


“흥, 내 Pawor 가 증가한게 느껴지는걸? 어서 가자고!”


“뭐 전투약물이라, 주인님의 지능에 어울리지 않는 좋은 생각이군요.”


다른 부대원들도 모두 주사를 놓았는지 출격을 서둘렀다. 

포트가 열리고 사출되는 느낌과 함께 출격, 사납게 불어오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눈이 감긴다.

그리고 눈을 뜨자 이끼 낀 낡은 건물들이 가득한, 익숙한 모습의 전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이오로이드들의 기척을 느낀 나이트 칙들이 섬뜩한 기계음을 내며 건물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적당히 시선만 끌어 줘, 무리하진 말고.”



힐끗 뒤를 돌아보자 총을 꺼내들고 사방을 경계하는 토모와 바닐라, 그리고 그녀들을 엄호하는 켈베로스가 보인다.

저 정도면 불가사리의 방패보단 못하겠지만…. 뭐, 내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은 벌어주겠지.

미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탐색중 보아둔 저격 포인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


미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포인트가 이렇게 가까웠었나? 

평소보다 몸이 가볍고 숨도 덜 찬다. 역시 아까 사령관이 준 약물이 효과가 있던 것일까?


“읏..”


미호는 머리 위로 날아가는 총알을 슬쩍 피했다. 더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적당한 높이의 폐건물에 엎드려 전장을 바라보자 십자선에 철충이 들어온다. 그리고 


“빵!”


순식간에 발사된 총알이 철충의 미간을 뚫는다. 심호흡을 하고 방아쇠를 한번 더 당기자 철충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진다. 


“두발은 신기록인데?”


더 이상 철충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미호는 다음 목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응?” 


이쯤 되면 철충 한 둘쯤은 남아있어야 했는데, 어쩐지 전장이 깨끗하다. 

위화감을 느낀 미호가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사납게 달려든 켈베로스의 손에 들린 스턴 롯드에서 전기가 튀긴다. 전기가 철에 지져지는 기묘한 소리와 함께 공격당한 나이트칙이 몸을 비틀어 기관총을 쏘아댔다.


몸의 감각이 확장되는 느낌과 함께 아드레날린이 올라오고, 간발의 차로 총알비를 피한 켈베로스는 다시 스턴 롯드를 높이 들었다.

켈베로스의 눈에서 기묘한 광기가 흘러나왔다.


“헥..헥..”


시야가 넓어지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느리게 재생된다.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감각에 켈베로스는 전율했다. 손에 붙은 무기였지만 그것을 다루는 것이 평소보다 쉬웠다.

위기감을 느낀 나이트 칙이 바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전기가 오른 스턴 롯드는 자비없이 철충의 붉은 눈을 정확히 꿰뚫었다. 


“기이이….”


코어가 파괴된 나이트칙이 힘없이 고개를 꺾었다. 다음 사냥감은 어디지? 켈베로스는 사냥꾼의 눈빛으로 전장을 흝었다. 

철충의 코어에 유탄을 쑤셔넣는 바닐라가 눈에 들어온다. 

켈베로스는 힘차게 달려들어 이미 부숴진 철충의 코어에 연달아 전기를 갈겼다.


“죽어! 죽어주세요! 


항상 최소한의 진압만을 강조하던 켈베로스답지 않게 과한 행동이었다. 

냉정하리만치 침착한 바닐라도 켈베로스를 말리지 않고, 묵묵히 유탄을 날려 철충들의 머리를 부술 뿐이였다.

철충의 코어에서 흘러나온 붉은 액이 흘러넘쳐 켈베로스의 무기를 붉게 적셨다. 


평소와 다른 동료들의 모습에 미호는 자연스럽게 아까 맞았던 주사를 떠올렸다. 


“뭐,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거지.”


철충을 한 놈밖에 잡지못해 아쉽긴 했지만. 전투가 효율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총을 어깨에 맨 미호는 능숙한 솜씨로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건물의 부서진 부분을 밟으며 내려오자 순식간에 맨 땅이 밟힌다.


“응?”


순간 밟힌 땅이 이질적으로 일렁이는 것을 발견한 미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뭐야! 안빠지잖아!”


마치 가상으로 이루어진 바닥처럼, 땅바닥이 지지직거리며 늪처럼 가라앉는다. 

어처구니 없게도 늪처럼 변한 풀밭에 발이 빠져버린 미호는 당황하며 버둥거렸다.


하지만 한번 빠진 발은 쉽게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미호는 총을 지팡이 삼아 몸이 가라앉는 것을 막고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어?”


미호는 순간 얼빠진 소리를 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맹렬하게 싸우던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짧은 사이에 없어지진 않았을텐데..?

침착을 잃자 몸이 점점 더 가라앉는다. 당황한 미호는 뒤로 누워 발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한없이 부드러워진 흙바닥은 천천히 미호의 몸을 안으로 끌어당겼고, 

곧 풀과 흙으로 이루어진 유사가 완전히 미호의 몸을 삼켜버렸다.



.

.

.

.

오르카호의 수복실, 그 중에서도 가장 쾌적한 병상에서 사령관은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 미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호야…”

전투 경험을 늘릴 수 있게하는 영양제라는 한마디에 제대로 된 검증도 거치지 않은 약물을 함부로 투여 하다니..사령관 실격이다.

입술을 꾹 깨문 사령관은 잠든 것처럼 누워있는 미호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내려다 보았다.


“아...미안해 사령관, 이번 신작은 실패인가봐….정말 미안해..”


옆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안절부절해하며 어쩔줄 몰라하는 파티마가 눈에 들어온다.


“..아냐...파티마도 예상하진 못했을거야.”


사령관은 쓰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파티마도 부스터가 특정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했겠지, 

쾌속 수복 캡슐을 열개나 사용했음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호의 손을 맞잡자 냉기가 느껴진다. 

언제까지고 옆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책임져야 하는 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있었다.


“잘자렴 미호.”


사령관은 부드럽게 속삭이며,헝클어진 미호의 머리를 정리해 주고 천천히 수복실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파티마도 그 뒤를 따랐다.


‘사령관? 사령관!, 나 여기 있어, 나 여기있다니까??”


미호는 문자 그대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소리를 지르고, 몸을 마구 버둥거려도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정신만은 또렷하게 살아있어서 미호는 사령관의 말을 모두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끝내 사령관에게 자신의 말이 닿지 않고, 사령관이 나가자 또다시 어둠과 정적이 찾아온다.


“그만!!그만!!꺄아아악!!”


미호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리는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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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매운맛 글이 재미있어서 쓰는거지

미호를 딱히 싫어하는건 아냐...

재미있게 봐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