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인간님의 명령엔 따를 수 없겠어요."

딸깍.

바닐라가 가져온 차를 한 입 마신 사령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세레스티아를 쳐다봤다.

어째서지.

사령관의 눈빛에 세레스티아는 후훗.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로버트님만 믿고 따르니까요."

드디어 본 모습을 드러내는 세레스티아.

그 큰 귀에 걸린 귀걸이가 다 저물어가는 노을빛을 받아 반짝였다.

"여기 까지 와서 더 이상 숨길 필요는 없겠죠? 인간님도 바보가 아닌이상 어느정도 눈치는 채셨잖아요?"

귀여우셔라. 후훗.

세레스티아는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향을 한번 즐기고 들이켰다.

반쯤 식은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령관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수 없는건가.

"네에~ 물론이죠. 하지만 제 마음을 돌릴수는 없을꺼에요."

잠시 둘이서 걷자는 사령관의 제안에 세레스티아는 생긋 웃으며 흔쾌히 허락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나서는 세레스티아의 뒤를 조용히 블랙웜이 따라갔다.


* * *


"로버트님은 인간이 아니에요. AI죠."

사령관 옆에서 바짝 붙어 걸으며, 세레스티아는 손으로 허리춤까지 자란 수풀을 어루만졌다. 그러자 줄기가 자라며 세레스티아의 손가락을 타고 팔꿈치까지 감싸안았다.

"하지만 그분의 열정은 제가 봐왔던 다른 인간들보다 더 엄청났어요."

생존과 힘에 대한 욕망.

나아가 더 강한 개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

그를 떠올리며 처음 볼때 느꼈던 그때의 전율이 생각이라도 났는지 세레스티아는 몸을 살짝 털었다.

사령관은 그런 세레스티아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입을 굳게 다물며 박수를 두번 쳤다.

"....어머나? 역시 뭔가 계획이 있으셨네요?"


우거진 나무들과 수풀 사이에서 팬텀과 쉐이드를 비롯한 오르카호 대원들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블랙 웜은 재빨리 세레스티아를 감싸려 했지만, 사령관이 한발짝 더 빠르게 그녀의 유탄발사기를 붙잡았다.

아무리 지배권이 약하더라도, 바이오로이드는 바이오로이드.  인간에게 상처입힐수는 없었다.

짜악!

"천박한 돼지년이 어디 안전이라고 주둥이를 놀리나요?"

대원들 사이에서 걸어나온 알렉산드라는 회초리로 세레스티아의 뺨을 갈기며 머리를 휘어잡았다.

"주인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고상하게 머리를 숙이는 알렉산드라에게 사령관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악! 내가 이런다고 순순히 무릎꿇을줄 아는건가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고있는 알렉산드라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안렉산드라의 가죽장갑은 세레스티아의 머리를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런 대사를 지껄이는 년들이 제일 먼저 앙앙거리던데, 댁은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군요."

알렉산드라는 그녀의 배를 하이힐 굽으로 가차없이 걷어차며 오르카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