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 라오 문학의 밤) 좌우좌의 행복한 등대 생활

V(175.196)




좌우좌의 행복한 등대 생활




철충과의 전쟁으로 세계는 전쟁으로 뒤 덮여버렸다.


당연하지만 한낱 등대 따위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좌우좌는 자연스럽게 고립되었다.




날짜를 세느라 등대의 벽면에 해둔 표시는 이미 사방을 가득 메웠다.


주위를 둘러싼 영겁의 세월의 흔적은 마치 무언가를 노려보는 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른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고 대화할 이도 없는 곳에서


오직 먼지 쌓인 책에만 둘러싸인 생활은 정신이 나가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결국 좌우좌는 극심한 피해망상으로 자신이 등대에 갇힌 것은


저 깊은 심연에 사는 리바이어던의 짓이라고 결론은 내리기에 이르렀다.




“저 빌어먹을 미친 파충류가 나에게 오는 배 들을 침몰 시키는게 분명해!”




미친 괴물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창고에 쳐박혀 있던 소방용 도끼를 꺼내들고


온 창문과 문이란 문을 막아두고는 자신을 찾아올 구세주를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구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한 고독과 끝을 알 수 없는 바다가 주는 공포만이 존재한다.


탈출 할 수도 도망칠 곳도 없는 곳에서 작고 나약한 생명이 단지 존재할 뿐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도 외롭다는 마음 같은 것들은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단순히 존재할 뿐.




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에 내려앉고


괴물의 비명 같은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이 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다


이 공허한 공간에는 공포에 떠는 작은 숨소리와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가 내는 소리만이 가득해진다.




바람과 파도는 거칠어지고 달빛이 쏟아진다.


누군가에게는 낭만일 것들이 공포로 뒤바뀐다.


파도소리는 마치 물에 젖은 축축한 발걸음 소리와 같이 사방을 감싸온다.


바람소리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좌우좌는 자신의 몸뚱아리 만한 도끼를 쥐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언가를 두려워할 뿐.




“아아…”


“저 문밖에…”


“저 문밖에…!!”


“미친 파충류가 기어다닌다!!”


“날 옭아매고 심장에 똬리를 튼 채 주둥이를 벌리고 날 기다린다고!!!”




그 순간 작은 창 틈새로 달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린다.


한 때는 길 잃은 배 들에게 빛을 비쳐주던 누군가처럼…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달빛은 찬란한 과거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한 때 모두를 밝혀주던 존재는 사라졌다.


압도적인 공포의 짓눌려 무력감에 허덕이는 작은 미물만이 남았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도끼의 날이 좌우좌의 눈을 시퍼렇게 노려보고 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거칠어진다.


저 멀리서부터 마치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여오는 압박감의 거칠어지는 심장이 뇌를 휘저어 놓는다.


그리고 좌우좌는 생각한다.


‘이것으로 끝이다.’




심장에 느껴지는 차가움 감촉.


생전 처음 느껴보는 비릿하고 불쾌한 향.


등대의 문이 열리고 무언가가 들어오지만 더 이상 좌우좌에게는 의미는 없다.


‘이제 고통은 끝이야. 이젠 쉴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