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 콜라."

소파에 옆으로 퍼질러 누워 리모컨을 띡띡거리던 바닐라가 치킨을 삼키며 말했다.

"......"

팡팡!

"콜라!"

어이가 없어 가만히 보고만 있자, 소파 옆면을 탕탕 치며 째려보는 바닐라.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냉장고를 열고 먹다 남은 콜라를 컵에 따르고 테이블에 놨다.

콜라를 한모금 마신 바닐라는 무슨 와인 시음하는거 처럼 입안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공기를 씁! 하고 빨아들였다.

"캑! 캐캑!"

그러다 기도로 넘어갔는지 숨이 넘어가도록 기침하는 바닐라.

나는 그런 바닐라를 팔짱을 끼고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봤다.

얘 진짜 왜 온걸까.

쾅!

"아니 콜라를 달랬더니 뚜껑 딴지 한참 지난 쓰레기를 내와요?!"

"너 돌아가!!!"

입가를 닦으며 테이블을 내리치고선 적반하장으로 대드는 바닐라에게 인내심이 끊어지며 소리를 빽 질렀다.

"주인한테 심부름 시키는 메이드가 어디있냐!"

"흥. 저 오늘 쉬는날입니다."

"그럼 집에 있던가! 여길 왜 와!"

그러자 바닐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홱 돌렸다.

"....여기가 제 집인데요, 뭐."

얼굴을 소파에 푹 파묻었지만, 이미 목덜미를 지나 귀까지 뻘겋게 물들어 그 끝이 맥박을 따라 파르르 떨고있었다.

"아니 니가 말해놓고 부끄러워.... 컥!"

"시끄러우니까 가서 일이나 해요!"

내가 뭐라고 한마디 하자 벌떡 일어나서 씩씩 거리며 허리에 깔고있던 쿠션을 집어 날렸다.

그리고 정확하게 내 목에 꽂혀 잠시 숨이 안 쉬어졌다.

자세를 보니까 한 개 더 집어 던지려고 뽀시락 거리길래 얼른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아니 쉬는 날이면 곱게 퍼질러 잠이나 자던가, 왜 굳이 찾아와서 괴롭히는걸까. 평소에 나한테 쌓인게 많았나?

그동안 바닐라한테 잘못했던 부분을 곰곰히 생각하던 와중에 또 거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니이이이임."

아주 그냥 지가 주인이고 내가 하인이지. 그치.

"또 왜왜왜. 뭐."

거실로 나가보니 아예 소파와 한 몸이 된 바닐라는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었다. 처음보는 그녀의 풀어진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커튼."

바닐라는 그 상태에서 손가락만 까딱해 베란다 창문을 가리켰다.

테이블에 걸친 다리를 넘어가 커튼을 쫙 펴주자 그제서야 만족한 듯 바닐라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다시 내방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바닐라의 다리가 쫙 펴지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또 왜."

".....스타킹. 벗겨줘요."

바닐라는 볼이 살짝 빨개지며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되게 귀여우면서도 어딘가 요염해서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내가 어쩔줄 모르고 가만히 있자, 바닐라는 내 배를 툭툭 차더니 다리로 팔을 휘감았다.

"아, 알겠어."

팔에 감긴 바닐라의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허벅지에 있는 가터벨트 끈의 조임쇠를 풀었다. 그러자 틱! 소리를 내며 끈은 치마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빨려들어갔다.

그 틈으로 보인 바닐라의 팬티는 까만색에 큼직한 나비가 한마리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며 스타킹을 잡고 천천히 위로 잡아당겼다.

매끈한 다리에 손가락이 스칠때마다 내 몸이 떨리는건지 바닐라가 움찔하는건지 모를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발목을 지나 드디어 스타킹을 벗기자 바닐라의 맨 발이 내 얼굴 바로 앞에 드러났다.

순간 공기가 달라지며 바닐라의 향기가 듬뿍 느껴졌다.

더럽거나 뭐 그런 냄새가 아니라, 정말 향긋하고 뭔가 간질거리는 느낌이랄까. 묘하게 계속 맡고싶어지는 느낌이었다.

"하읏!"

바닐라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나도 모르게 발바닥을 쓸어내리던 손가락을 얼른 뗐다.

어떻게든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반대쪽 스타킹도 마저 벗겼다.

"자. 됐지? 난 다시 들어간다."

빨래 바구니에 스타킹을 대충 던지고 몸을 돌리려고 했는데, 허리를 뭔가가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바닐라의 다리가 나를 감고 단단히 조이고 있었다.

"......"

"......"

그렇게 한참을 빨개진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허리를 숙여 바닐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으흡!"

그러자 바닐라는 터질듯이 빨개진 얼굴에 눈을 꽉 감으며 숨을 참았다.

왼쪽 목 뒤를 가볍게 손으로 감싸자, 바닐라의 몸이 크게 한번 꿈틀했다.

그리고.....
































짜악!







"아야!"

"장난치지마!"

남은 왼손으로 허리를 감고있는 바닐라의 허벅지를 크게 때렸다.

"무슨 짓입니까! 이 바보! 병신!"

"이게 주인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나 바쁜데 귀찮게 할꺼면 얼른 가! 아님 그냥 퍼질러있던가!"

바닐라의 다리를 잡고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은 나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등으로 문을 쓸어내리며 주저앉았다. 심장이 이렇게 미친듯이 뛰는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순간이지만 바닐라가 전혀 새롭게 보였다. 마치 이 세상에서 제일.....

"왜 온거야 도대체...."

이마를 무릎에 대며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정말 쉽지 않았다. 정말로.

* * *

소파에 우두커니 누워있는 바닐라는 밖에서 들어오는 두부장수 아저씨의 방송소리가 귀에 안 들릴 정도로 심장이 쿵쿵거렸다.

내 딴에는 정말로. 정말로 최고의 수를 쓴건데. 진짜 큰 맘 먹고 저지른건데. 오늘을 위해서 일부러 가지고 있는 속옷중에 가장 이쁜걸 입고온건데.

저 띨띨한 주인은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안 넘어왔다.

"이 바보. 병신.."

소파에 뜨거워진 얼굴을 푹 박으며 바닐라는 계속 병신, 병신이라고 중얼거렸다.

병신이라는 단어는 어느센가 당신으로 바껴 소파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