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1507448


 

 -오늘도 미국 디트로이트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바이오로이드 반대시위를 벌였습니다오늘로 벌써 17번째로 경찰은 약 4천명이 모였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디트로이트뿐만이 아닙니다프랑스영국 등 다른나라에서도 바이오로이드 도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바이오로이드의 대당 가격은 수천만엔이나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죠인간에 비해 월등히 높은 효율임에도 인건비는 전혀 나가지 않으니까요이건 바야흐로 5차 산업혁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전문가들은 10년내에 바이오로이드가 가정내에도 보급이 될 정도로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현재 바이오로이드

생산량은 연간 1만대 내외지만 10년 뒤에는 연간 100만대 이상이 될 것이라는 거죠.


 -이미 우리는 로봇들에게 일자리를 내주었습니다이제는 남은 일자리를 우리와 닮은 바이오로이드에게 내줄 차례가 된 거죠.


 라디오에서는 지겹게 들었던 뉴스들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바이오로이드에 대한 뉴스는 항상 같았다하긴시대가 바뀌고 있었지만 시대란 매초마다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조금씩천천히 바뀌어가는 것이었고 뉴스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몇 달간 하다가 어느 순간 바뀌고 하는 것이었다.


 타테이시는 다른 채널로 바꾸고 싶었지만 이곳에서 잡히는 다른 채널이라고는 지겨운 뉴스 채널과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채널뿐이었다그 음악을 듣느니 차라리 이제는 따라말할 정도로 들은 뉴스라도 듣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라디오를 끈다는 선택지도 있었다하지만 그러기에는 날씨가 좋지 않았던 것이었다검은 하늘에서는 비가 추적이며 내리고 있었다빗소리는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오히려 짜증날 정도로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


 비에는 여러가지 비가 있었다소나기호우폭우스콜 등등이 비로 말할 것 같다면 진눈깨비의 비 버전이었다우박이 내리는 대신에 우박이 녹은 물이 쏟아지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비가 적게 내리는 것 치고는 빗줄기는 너무 굵었다.


 어쩌면 눈구름이 되다만 불쌍한 비구름이 쏟아내는 비였을까날씨가 맛이 간 탓인가 비같지 않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전면유리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 안쓰러울 정도였다.


 더욱이 그 비를 씻어내릴 와이퍼마저 반쯤 고장나서 삐걱이는 소리마저 내고 있었다몇 달전부터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비가 그친 뒤에는 잊고 말았던 것이었다타테이시는 와이퍼를 보며 내일이야말로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다음날이면 까맣게 잊을 지도 모른다.


 타테이시는 비가 오는 날이 싫었다타는 손님들마다 비에 젖어 있어 시트가 젖는 일이 많았으니 말이다그리고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비가 오는 날에는 이상한 손님을 만나는 확률도 높았다그런 것이 누적된 덕분일까어째 비가 오는 날이면 택시를 타기 전부터 피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뒷좌석에 앉은 손님도 마찬가지일지도 몰랐다이런 한밤중에 카시마 공업단지로 가자고 하다니지난날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된 공업단지였다그 일로 공업단지로 성장했던 카시마카미스 양 도시는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말았다이제 카미스시에 남은 것은 유령도시와 그 유령도시에 기생하는 노숙자들뿐이었다.


 타테이시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완곡하게 거절했다아무리 그래도 택시비로 1만엔이나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버블 시대도 아니고 말이다하지만 뒷좌석의 손님은 약간의 망설임끝에 그에게 1만엔 지폐를 내밀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해 조금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2만엔을 불러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지만 이제와서 하기에는 늦은 후회였을지도 몰랐다.


 타테이시는 슬쩍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의 손님을 바라보았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손님은 투명한 비닐 재질의 우의를 입고 있었다노란색으로 빛나는 우의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타테이시는 언젠가 홈쇼핑에서 본 적이 있었다우의에 열선을 달아서 비가 오는 날에도 추위에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당시에 그 방송을 보면서 말도 안되는 상품을 파는 놈들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실제로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물론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시점에 일반 우의를 입었다가는 감기신세를 면치 못할 테니 저런 옷을 입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지도 몰랐다.


 타테이시는 그보다도 그녀가 입은 우의에 묻은 빗물이 신경쓰였다보통 손님이라면 아무리 비를 맞았다 하더라도 시트가 젖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비닐로 된 우의라면우의는 뽀송뽀송해지는대신 시트가 축축해질수밖에 없는 것이었다아무래도 날이 개면 받은 돈으로 와이퍼도 교체할 겸 시트건조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타테이시는 시선을 룸미러에서 정면으로 옮겼다옛날에는 시가지였을 그곳은 가로등 불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도로는 제대로 정비도 하지 않는지 여기저기 갈라져 노면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 비까지 오는 상황이니 운전하기 좋다고는 빈말로도 하기 힘들었다돈이 아니었다면그가 장난식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이런 곳까지 올 이유는 없을 것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미래입니다이게 우리를 먹고 살게 해줄 5차 산업이죠.


 타테이시가 라디오를 끄지 않은 것은 차안을 가득 메운 고요를 내쫓기 위함이었다타테이시가 역앞 광장에서 출발한 것은 한시간 전이었다그간 뒷좌석의 손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 손님은 드물지 않았다오히려 아무 대화도 없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손님이 탈 때손님이 내릴 때 한두마디 하는 것이 그의 일상의 대부분이었을지도 몰랐다오히려 이것저것 말 걸어주는 손님이 있으면 고마울 정도였으니개인주의의 장점이란 필요한 것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쓸쓸할 때가 있다는 단점 역시 따라왔다어쩌면 많은 직장들이 기계나 바이오로이드에게 대체되는 것 역시 개인주의의 영향이 있을지도 몰랐다더 이상 서비스직에 사람을 보고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요즘 바이오로이드인가 뭔가 때문에 말이 많더라고요.”


 그래서였을까라디오를 끄고 두 사람 사이의 정적을 깬 것은 타테이시였다.


 저도 걱정입니다회사에서 기사들을 전부 해고하고 이 자리에 바이오로이드를 앉히면 저는 가족과 같이 길거리에 던져질 처지니까요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테이시는 대답을 바라지 않고 물었다손님에게 실없는 질문을 하고 무시당한 적은 한두번이 아니었다무시당한다 하더라도 그저 그런 손님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글쎄요그런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네요.”


 손님의 반응은 타테이시의 예상과는 달랐다손님은 창밖을 바라보며 관심없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제 직업은 바이오로이드로 쉽게 대체될 만한 것은 아니라서요만일 대체된다 하더라도 그때가서 생각할 일이겠죠.”


 손님은 무관심하다는 말투였다하긴 비극이란 타자의 관점에서는 그저 유흥거리에 불과한 법이었다먼 미국의 시위를 무덤덤하게 보도하는 국내언론처럼 말이다.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냐 묻지만 다들 마찬가지에요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현실이지만 그 현실을 미리 준비하기에는 모두들 여유가 없던 거죠모두가 자기 혼자 먹고 살기에도 힘든 세상이니까요.”


 그렇죠저만 해도 시위는커녕 이렇게 운전하면서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니요파업하기에는 다들 당장 오늘 일당이 급한 사람들이에요.”


 타테이시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며칠전 조시시 택시노조 조합원이 파업을 하자는 권유를 물리친 그였다파업그런 것은 이뤄지지 않았다노조원 둘셋이 파업을 한다 한들 그저 둘셋이 휴가나갔다 치고 직원들을 굴리면 되는 일이었다.


 세상이 힘들어질수록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아둥바둥 살기 위해 현 세상에 매달리는 사람만 많아질 뿐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번 제가 손님의 직업을 맞춰봐도 될까요?”


 타테이시는 택시기사를 하며 수많은 손님을 만나왔고 그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어느 정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번 해보시죠.”


 손님은 마음대로 해보라며 손바닥을 내미는 제스쳐를 취했다그 말에 타테이시는 뒷좌석의 손님을 룸미러로 바라보며 말했다.


 손님은 조금 전에 자신의 일이 바이오로이드로 대체될 수 없다고 하셨죠그것을 보면 단순 노동직이나 서비스직은 아닌듯합니다또한 폐허가 된 공업단지에 가신다는 것은 그곳에 일이 있다는 것이겠죠정부 관계자 혹은 기업쪽 사람같지만 이 밤중에그것도 혼자 갈 일은 없겠죠그렇다면 폐허를 모티브로 삼으려는 작가목에 걸고 계신 건 카메라 맞죠밤에 해안가에 가서 밤새 기다려 일출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들도 많죠하지만 그 카메라는 전문가용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용에 가까워보여요전문가들이라면 좀 더 큰 카메라를 사용하겠죠.”


 거기까지 말한 타테이시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다시 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큰 건 바닷가에서 자살하려는 무직 아니면 폐허가 된 공업단지를 밤중에 취재할 일이 있는 기자겠죠.”


 타테이시의 말을 들은 손님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타테이시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마지막 말을 했다.


 그리고 자살하려는 사람이 굳이 비오는 날에 우의를 입고 다닐 리가 없죠때문에 저는 손님이 기자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놀랍네요택시기사가 아니라 탐정 하셔도 되겠어요.”


 매일같이 손님들을 본 덕분이죠항상 답이 맞는지 확인할 일은 없었지만요그래서 어떤가요제가 맞았나요?”


 타테이시의 말에 손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노 코멘트로 하겠습니다그 편이 재밌을 거 같으니요.”


 그거 아쉽네요항상 그 질문은 제 안에서 끝나서 이번에는 맞았는지 알고 싶었는데 말이죠.”


 타테이시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자신의 추리가 맞았는지 알아야 다음에 도움이 될텐데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의 망상으로 끝날 뿐인 일이었다.


 그럼 몇가지 코멘트를 할게요먼저 비옷을 입은 걸 보고 자살 희망자가 아니라 생각하셨죠몇 달 전이었죠한창 장마비가 내리던 때였어요도쿄에서 한 남자가 자살했죠비옷을 입고요그때 정신의학자가 말하더라고요사람은 자살하기 직전까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생각한다고요그가 비옷을 입고 죽은 것도 마찬가지였어요비에 홀딱 젖은 시체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거죠.”


 택시에는 빗소리만 울려퍼졌다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손님은 분위기를 뒤늦게 눈치채고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제가 자살하러 간다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뭣하러 자살한다고 한시간 넘게 택시를 타고 가겠어요이쯤에서 세워주시면 돼요.”


 손님이 말한 이쯤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먼 곳에 희미하게 공장의 모습이 밤하늘 사이에 간신히 보일 정도의 장소였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곳인데 괜찮으신가요정말 자살 희망자는 아니죠?”


 타테이시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주변에 건물은 많았지만 그 중 불이 들어온 건물은 한채도 없었다만일 비가 오지 않았다면 하늘에는 은하수가 놓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빛 하나 없는 곳이었다이재민이나 노숙자마저 없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걱정마세요만일 기사님의 추리가 맞아서 제가 기자라면 취재대상 바로 앞까지 데려달라고 하지 않았겠죠잠입취재라는 거죠들키지 않고 사진을 찍어오려면 먼 곳에서 내려서 몰래 걸어가는게 제일입니다.”


 타테이시가 차를 멈추자 손님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며 말했다.


 여기 약속드렸던 1만엔입니다영수증은 월간 치바로 끊어주세요.”


 역시기자분 맞으시군요?”


 눈치 빠르시네요이건 비밀입니다.”


 손님은 미소를 지으며 우의의 후드를 덮어쓰며 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