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시간이 지났다. 아마미야는 밀린 사무를 보고 있었다. 시간이 7시가 지나고 해는 지평선 너머로 저버렸지만 아직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였다. 모든 일이 그녀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권력은 컸지만 그 책임또한 막중했다.

 단순히 문서에 서명을 한다는 것만으로는 그녀는 만족할 수 없었다. 보고서나 기획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보고 조사를 하고 생각을 한 다음에야 최종 결재란에 사인을 했다. 만일 그녀가 잘못된 기획이나 보고서를 승인하여 문제가 생긴다면 결국은 그녀의 책임으로 넘어올 테니까.

 다른 인력을 확충해서 그녀의 부담을 더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녀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었다. 오늘 회의처럼 직원이란 믿을 수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고 조마조마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녀가 맡는 것이 더 편했다.

 그 때 전화가 울렸다. 밖에 있는 그녀의 비서인 이름 없는 바이로오이드였다.

 “무슨 일이지?”

 -의원님이 다시 전화하셨습니다. 연결해드릴까요?

 아마미야는 잠시 생각하더니,

 “연결해줘.”

 라 대답했다.

 “아마미야 휴우가입니다.”

 휴우가. 히나타와 같은 한자를 쓰는 이름이었지만 다른 이름이었다. 회사 바깥으로 나가는 모든 일은 아마미야 히나타를 통해 이루어졌다. 동시에 회사에서 뒷세계로 나가는 모든 일은 아마미야 휴우가를 통해 이루어졌다.

 “저에요.”

 아마미야는 굳이 이름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목소리로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츠즈라누키 이치카. 일본 국회의 중의원이었다.

 “의원님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소문이 들리고 있어요. 얼마전 도쿄에서 있었던 총격 사건 기억하시나요.

 “어느 총격사건 말이시죠? 최근 도쿄는 흉흉하더군요.”

 아마미야는 어느 사건인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츠즈라누키가 대답해주길 바라며 물었다.

 -제 보좌관이었던 세토 토오노가 죽은 사건이죠.

 “그 사건 말씀이십니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음같아서는 장례식에 가고 싶었지만 대외적으로 의원님과 저는 아무 관계도 아니니요."

 -상관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것이 아닙니다. 장례식에서 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토오노군을 죽인 총격사건이 덴세츠 사이언스가 엮인 일이라고요.

 그 이야기에 아마미야는 흠짓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전화상이었기에 전화너머의 상대는 알아챌 수 없는 작은 반응이었다.

 “그건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저희가 의원님의 보좌관을 암살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저도 여기저기 알아보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공표는 되지 않았지만 덴세츠 사이언스와 연결되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리더군요. 저도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는 막고 있지만 점점 진실을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제게 저희 덴세츠 사이언스가 의원님의 보좌관을 암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으신 겁니까?”

 아마미야의 목소리에는 느끼기 힘들 정도의 분노가 담겨있었다. 이래서 인간들은. 제대로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은 회사 안뿐이 아니라 바깥 역시 없었다. 고작 소문에 휘둘리는 국회의원이라니. 대충 둘러대면 알아듣고 그쪽으로는 관심을 끊겠지. 아니면 적당한 범인이라도 만들어야 할까.

 -…

 전화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의원님, 5년전 국회의사당 테러사건 기억하십니까?

 -기억하고 있죠. 저도 당시 그 곳에 있었으니까요.

 5년전 국회의사당 테러사건. 정확히는 암살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것이었다. 바이오로이드들이 국회의사당을 나서던 참의원을 암살한 것이었다. 아직도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미제 사건이었다.

 “당시 테러에 사용되었던 바이오로이드는 블랙리버에서 제작된 고블린이었습니다. 당시에 정부는 블랙리버가 배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고 있던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매일같이 뉴스에 대서특필하던 뉴스였으니까. 덴세츠 사이언스를 견제하려던 블랙리버의 공작이다, 원래 블랙리버의 뒷돈을 받던 의원이었는데 의견차이로 인해 암살한 것이었다. 등등 수많은 소문 역시 돌았다.

 “블랙리버는 공식적으로 이렇게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자신들은 바이오로이드 제조사기 때문에 바이오로이드를 어떻게 활용하건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다. 라고요. 판매된 상품으로 일어난 사건은 그 상품을 산 구매자에게 있다는 논리였죠.”

 -그 말인즉슨 덴세츠 사이언스가 개발한 바이오로이드지만 그것이 상품인 이상 덴세츠 사이언스와는 무관하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블랙리버의 그런 입장표명에 그들의 무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보기관까지 포함된 수사팀이 꾸려졌지만 결국 블랙리버와의 연결고리는커녕, 바이오로이드를 산 구매자가 누군지도, 어떻게 국내에 반입이 되었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한채 수사는 종결되었죠.”

 여전히 그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다. 정부에 불안함만을 남긴채 말이다.

 “사람들은 칼로 일어난 살인사건에 칼을 만든 회사에 책임을 묻다가 진짜 범인을 놓친 것입니다. 표적수사라 하던가요. 결론을 만들고 그 이유를 찾다보니 잘못된 결론으로 단서를 억지로 끼워맞추다 실패한 것이지요.”

 -당시 국회에 있던 저는 다른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경찰은 처음부터 블랙리버와는 무관한 테러사건으로 조사를 시작했는데 위에서 압박이 들어와서 블랙리버에 대한 표적수사로 전환했다고요.

 아직 츠즈라누키 의원은 아마미야를 의심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녀의 의심을 없앨 쐐기가 필요한 것 같았다.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죠. 저는 최근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죽은 세토 보좌관은 사실 혼자 있던게 아니라 동승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죠. 이런 이야기는 들어보셨나요?”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어쩌면 그 동승자에 대해 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시 현장에 있었고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거짓정보는 아니었다. 오히려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아마미야는 그 동승자가 누군지 알아내고 싶었다. 진실에 대한 추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덴세츠의 목적은 그 동승자였으니까. 세토 보좌관이 죽은 것은 그저 부수적 피해일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의원님 곧 결혼식이었던가요.”

 아마미야는 기억하고 있었다. 청첩장은 날아오지 않았지만 키리시마 건설쪽으로 들은 이야기였다.

 -다음주 토요일이죠. 청첩장을 보내지 못한건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의원님과 우리는 대외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없으니까요. 화환이나 축의금을 못드려서 우리가 더 죄송하죠. 대신 결혼식을 축하드린다는 마음만은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츠즈라누키의 말에서는 감사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아마미야의 말에도 축하는 담겨있지 않은 형식적인 말일 뿐이었다.

 “그럼 무슨 일이 있으면 다시 전화 주시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알겠어요. 그럼 다음에 전화드리죠.

 아마미야는 전화를 내려놓자 이름 없는 바이오로이드가 아마미야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주머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낸 그녀는 아마미야의 담배 파이프에 담배를 하나 끼워주었다.

 “전에 이야기하신 그 담배 브랜드입니다. 지금 피우고 싶어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아마미야에게는 이 바이오로이드 뿐이었다. 역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바이오로이드 뿐이었다.

 “고마워.”

 아마미야가 파이프를 입에 물자 바이오로이드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아마미야는 따듯한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시발.”

 담배 연기를 마신 아마미야는 불쾌하다는 얼굴로 담배를 이름없는 바이오로이드에게 내밀었다. 바이오로이드는 담배를 집어 자신의 입 안에 넣었다.

 “맛이 별로십니까?”

 담배를 삼킨 바이오로이드는 물었다.

 “다시는 이 브랜드 담배는 사지마. 담배의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역하고 쓴 맛만 느껴져. 이게 담배라니. 차라리 종이를 태우는게 더 맛있을 거야. 사놓은 건 전부 버려.”

 “알겠습니다.”

 바이오로이드는 다른 담배 케이스를 꺼내 그 안에 든 담배를 아마미야의 파이프에 꽂아 불을 붙여주었다.

 “다음에는 좀 더 취향에 맞으실 담배를 사오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난 이 담배면 만족하니. 네가 추천해준 담배야. 내 취향에 당연히 맞을 거야.”

 그렇게 말한 아마미야는 담배를 빨아들이며 의자에 기대 잠시 몸을 쉬게 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이름없는 바이오로이드는 사무실을 나섰다.

 “아, 잠깐.”

 아마미야가 부르자 바이오로이드는 나가다 말고 멈추어섰다.

 “다른 일 있으십니까.”

 “조금 전 그 담배. 시장에 풀린건 전부 사들여. 이게 담배라는 걸 나는 인정할 수 없어. 그리고 전부 태워버려. 1년뒤에는 이 담배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말야. 돈이 얼마나 들건 상관없이 전부 사들이고 전부 태워버려.”

 “알겠습니다.”

 이름 없는 바이오로이드가 나가자 아마미야는 담배를 피우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직 할 일은 많았다. 책상위에 놓인 것만 처리하는데도 몇시간은 걸릴 것이었다.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만큼의 일이 늘어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