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와 더치걸그리고 샬럿이 방에서 나온 사령관을 맞이한다아직 인간성의 감촉을 잊지 못한 듯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그를키르케는 C구역으로 안내했다.

 

이쪽이에요그리고 우리 아가씨는...”

 

괜찮아들어갈게.”

 

 마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더치걸을 바라본다. C구역은 인류의 악의가 집결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평생 성장하지 못한 정신을 가진 그녀가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고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키르케가 그녀를 막으려던 순간기사는 다시 더치걸을 안았다고개를 돌리고 싶다면 언제든지 돌릴 수 있도록괴롭다면 언제나 그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몸이 떨린다면 언제나 따듯한 불길로 소녀를 녹일 수 있도록 끌어안은 채 C구역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간다.

 

 C구역의 외향은 의외로 A구역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놀이기구만 없다뿐이지 할로윈 분위기로 꾸며진 상가와 비슷하게 느껴졌다차이점이 있다면길거리 곳곳에 금속질의 뼈로 만들어진 산더미가 있다는 것이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속들을 보며샬럿은 자기도 모르게 검을 꽉 움켜쥐었다.

 

폐하볼만한 것도 이제 없는 것 같은데이만 나가심이 어떠신지요?”

 

 이만 돌아가려던 사령관의 품에 안겨있던 더치걸이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한 듯 뛰쳐나간다그리고 말릴 틈도 없이사령관 역시 소녀를 쫓아 달려간다순식간에 남겨지게 된 키르케는 당황했지만 샬럿은 익숙하다는 듯 가볍게 한숨만 쉰다바싹 마른 입을 위스키로 적신 키르케가 샬럿에게 묻는다.

 

저분은 평소에도 저러시나요?”

 

그래도 저정도면 약과라고 할 수 있어요.”

 

저게 약과면 평소에는 어떤 수준인지 말씀해주실수 있으세요?”

 

그게 좀 긴데일단은 수심 1000m 지점에서 갑자기 지상으로 순간이동 하시는 점이랑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괴상한 외모로 돌아다니시는 거랑... 아 맞다자꾸 이상한 액체를 드시는데그게 저희가 맛보면 두 달 정도는 요양이 필요하거든요.”

 

이야...”

 

 모시게 될 주인의 기행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키르케였다.

 

 한편 더치걸과 사령관은 어느새 꽤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더치걸은 중간중간 멈줘 땅에 떨어진 유골들과 옷가지를 주워 조그마한 품에 한 아름 안아들고는 계속 달렸다그리고 사령관은 묵묵히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아아...”

 

 C구역의 중심에 선 구조물을 보고 더치걸이 풀석 쓰러진다뒤이어 도착한 사령관도 구조물의 실체를 보자 오르카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아연실색한다.

 

 그것은 뼈의 예술이었다누가 봐도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의 집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각자의 해골에 방부 처리한 얼굴 가죽을 덮어씌운 그 구조물은 용캐 멸망 후에도 스러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거대한 탑을 이룬 바이오로이들은 서로를 애무하고물어 뜯고눈을 후벼 파고친구를 먹어치우고몸을 섞는데 전념하고 있었다그 기괴한 풍경은 멸망 전 인류가 추구하던 에덴동산의 완벽한 재현이라 해도 무리가 없었다.

 

..흑흑..”

 

 더치걸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사령관은 조용히 뒤에서 다가가 등을 토닥여주었다한참을 울었을까더치걸이 이제 괜찮다며 그를 밀어낸다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보자 사령관의 등에 매여있는 이글거리는 검이 눈에 띈다.

 

전부 태워줘이 흉물을테마파크를 모조리 불태워줘마지막이라도 아름답고 자유롭게 빛날수 있도록.”

 

 고개를 끄덕인 사령관은 흉갑에 손을 쑤셔 넣더니 불꽃을 한 움큼 집어냈다그러고서는 천천히 조각상의 꼭대기에 올라가 가장 높이 위치한 한 더치걸의 손에 그 불꽃을 쥐어주었다어두운 밤이었으나태초의 불꽃은 마치 밝은 아침처럼 놀이동산을 불태웠다.

 



 테마파크에서 돌아온 뒤키르케와 펜리르는 정식으로 오르카 호에 합류했다원래는 더치걸을 비롯해 C구역에서 희생되었던 어떤 바이오로이드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옥죄여오는 키르케였지만테마파크를 집어삼킨 불꽃을 보고 난 뒤로는 가슴 속의 답답함이 전부 사라졌다.

 

사령관님오늘 유미씨하고 한잔 하려는데음주 허가 좀 내주실 수 있으세요?~”

 

 사령관실을 박차고 들어가자 사령관이 손에 검은색의 무언가를 들고 있다 황급히 움켜쥐어 터트려버렸다분명히 어디선가 느낀 적이 있는 것 같은 물건이었는데궁금해진 키르케는 실례를 범하더라도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혹시방금 그거 테마파크에서 가져온 물건-”

 

 금속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키르케의 볼 옆에 무언가 날아와 꽂힌다사령관의 업무용 펜이었다키르케는 그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령관의 역린을 건드렸다는 사실에 전율했다그토록 친절한 사령관이 부하를 공격할 정도라면 엄청난 비밀일 것이다.

 

 마른 침을 삼키며 사령관실을 나가려던 순간사령관이 손을 들어 펜이 꽂힌 자리를 가리킨다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돌려보자 펜촉과 벽 사이에 종이 한장이 끼워져 있었다.

 

주류 무제한 반출 허가서진짜요?!”

 

 파격적인 허가에 놀란 키르케가 돌아보자 사령관은 씩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 입에 가져다댈 뿐이었다.




 인간성은 가루가 되었어도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을 나가 바람과 흙에 부딪히며 더욱 쪼개진 그것은. 어느새 육안으로 볼 수 없을만큼 작은 조각이 되어 지하수에 스며들었고, 그 후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 최후에는 저 깊은 심해에 도달했다.

 



 사령관이 테마파크를 불태우고 나오는 도중, 한 인간의 시체에서 검은 덩어리를 들고 나온 사실은 서류처리를 담당하는 몇몇 바이오로이드들 밖에 알지 못했다. 정체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한 그녀들이었지만 밀려드는 종이의 급류에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원래 5편하고 6편은 묶으려고 했는데 잘 안써져서 5편 먼저 올렸음


1 2편 3편 4편 4.5편 

5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