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가 합류했다.


비스마르크 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모두 끝난 후, 메리는 본래 만들어진 목적대로 인간들의 상상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허나 인류는 커녕 인간들도 아니고 단 하나 뿐인 최후의 인간만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로맨틱하지만, 한편으론 넘쳐나는 바다를 고작 조그마한 컵에 들이 붓는 낭비였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한 오르카 호에선 전력 낭비기도 하다.


메리는 손재주엔 자신이 있다.


굵고 얇음을 넘나드는 섬세한 붓터치. 어떨땐 강렬하고 어떨땐 섬뜩하면서 어떨땐 평온한 감정을 대변하는 색감. 아무 것도 없는 공백에 찬란한 인류 문명의 요람을 표현하는가 하면, 아무것도 얹을 수 없는 가슴을 그녀의 마음만큼이나 파멸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욕망 덩어리로 표현…. 어…….


넘어가도록 하자.


이런 그림은 오직 메리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손재주가 좋단 말에 취사 지원에 투입됐다가 소완에게 한바탕 갈굼먹곤 울며 쫓겨났다.


하지만 그녀는 뭔가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손재주가 좋단 말에 제작 지원에 투입됐다가 기어코 공작기계 하나를 부셔먹어 포츈을 졸도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싸울 줄 모른다. 지금까지 해본거라곤 비스마르크 본사에서 디자인 컨셉이나 인간들의 망상을 그림으로 그린게 전부였다. 게다가 가상현실에선 요원들에게서 도망치기만 했다.


그녀는 전투원 틈 사이에 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사령관과 상담하면서까지 또 고민했다.


과연 무엇이 가능한가.


과연 자신은 무엇이 가능한가.


어떻게 하면 오라버니에게 보답할 수 있을까.


“응? 커미션 받습니다?”


거주구역에 붙여진 한 장의 포스터.


총천연색 풀컬러 그림 한 장이 지나던 사람들의 눈을 붙잡았다.


타원형으로 된 옛날 팔레트와 물감 뭍은 붓을 들고 윙크하는 메리의 데포르메 그림과 함께 무엇이든 그려드려요라는 문구가 있었다.


좁디좁은 오르카 호에서 수수께끼의 화가에 관한 소문이 퍼지는건 시간 문제였다.


첫 의뢰인이 탈론허브 운영자라면 더욱 시간문제고, 그녀가 의뢰한 내용이 적나라한 사령관과 모 비서실장의 정사장면이라면 더더욱 시간문제고, 그 그림을 업로드해 탈론허브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먹었다면 더더더욱.


사령관이 머리를 쥐어뜯고, 옆에선 안경쓴 비서실장이 멋쩍게 얼굴을 붉히거나 말거나.


하루에도 수십건씩 커미션 요청이 들어오고,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그림을 그려냈다.


그 모습을 본 몇몇 바이오로이드는 호기심에 그림을 그렸다. 하나둘 씩, 인트라넷인 유미넷에 그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설픈 그림이 올라오자 메리는 신나서 도움되라고 그림 강좌까지 올렸다.


그림 업로드가 점점 늘어나고, 마침내 터져버린 서버를 본 커넥터 유미의 절규 속에 탈론허브와 스틸라인 온라인 갤러리의 뒤를 이은 전문 사이트, Marrixiv가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메리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그릴 때, 가장 행복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거나, 누군가를 위해 물건을 만들거나, 누군가를 위해 싸울때가 아니라.


그런데 자신의 이름을 딴 그림 전용 공간이 생긴다?


3D는 탈론허브로 보내고 2D는 메릭시브로 보내라.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녀의 기분은 하늘을 뚫다 못해 우주까지 갔다.


“시발.”


메리는 메릭시브에 올라온 그림과 만화를 보며 짧게 말했다.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메리같은 금손이 아닌지라, 메릭시브에 올라오는 그림은 선이 삐뚤빼뚤하고, 인체비율은 안맞고, 만화 컷씬은 엉망인데다가 색감도 이상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메리는 그런 그림들이 마음에 들었다.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과 열정만으로 그린 그림들이 좋았다. 그 그림들은 오르카 호에 막 왔을때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골방 폐인처럼 어두컴컴한 방을 오직 모니터와 액정타블렛이 밝히는 가운데, 메리는 모니터 옆에 붙인 메모를 봤다.


최우선!! >_< 오라버니 의뢰!!! 연말 파티 포스터!!!

ColNA - 초절정음란폭유 전신샷 의뢰

MM♥LOVE - 마법소녀 모모 시즌 2 변신씬

ColNA - 가슴 과시하는 거유 슬랜더 여자 상반신

Am_Not_Peng - 남극에서 수영하는 펭귄

StoneAge - 사령관이랑 찐한 정사씬


이건 지금까지 메리에게 들어온 의뢰 중 극히 일부다.


반대편 모니터 가장자리를 보니, 이와 동일한 크기의 메모가 네 개는 더 붙어있다.


뒷벽엔 참고용으로 쓸 각종 사진과 참고자료들이 걸려있고, 모니터에는 실시간으로 물어보는 채팅창과 모니터 양옆에 적어둔 메모 수십개를 합친 분량의 커미션 목록이 있었다.


“하아…….”


기분 좋다고 막 커미션을 받은게 실수였다.


평범한 사람은 헉소리 날 정도의 물량에 밤을 꼬박 지새는 건 기본이고, 해 뜨는 거 보면서 자고 해가 수평선을 넘어갈때 일어나는건 일상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니 그림이 무슨 웬수처럼 보였다.


다 때려치고 며칠 자고 싶어도, 그림쟁이인 메리의 자존심이 이를 용납치 않았다. 한 번 받은 커미션은 무조껀 완수한다.


그것이 그림쟁이인 메리의 자존심이며 금손인 메리의 명예였으며 화가라 자부하는 메리의 의무였으니깐!


내일 쓸 체력을 오늘 쓴다.


내일 쓸 체력이 없으면 모래 쓸 체력을 오늘 쓴다.


메리는 두려움에 떠는 눈으로 오르카 마트 한쪽에 놓인 단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음료캔을 보았다.


푸른 색에 붉은 불꽃이 그려진 전설의 명약. 멸망 전 인간을 타락시켜 끝내 파멸에 이르게 한다던 그 명약….


지금 이 순간 만큼은 흑마법을 처음 접한 앳된 처녀의 기분을 알듯 했다.


그녀는 숨을 크게 쉬고 천천히 음료캔을 향해 팔을 뻗었다.


저것만 있으면.


저것만 있으면 모든 일을 끝내고 쉴 수 있어!


가자! 메리! 잡는거야! 설령 나는 내일 죽어도 오늘의 그림을 그리는거야!!!


“아.”

“아.”


낯선 이의 온기가 느껴졌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 정도 작은 안경 쓴 꼬맹이가 있었다.


밧줄처럼 묶은 머리카락이라니, 머리를 묶은 공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등뒤에 붙은 저건…. 기계팔? 와우, 다크서클봐.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짙은 다크서클이라니, 거울 앞에 선건가 싶었다. 개기름 흐르는 머리카락에 푸석푸석한 피부까지. 관리를 좀 해야될 듯 했다. 근데 왜 타블렛 펜을 가슴에 끼고있지.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가져가야겠어. 오늘 중으로 끝내야될 프로젝트가 있어서 말이야.”


“응? 잠깐,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거죠? 저도 이게 필요해요!”


“흥. 아무래도 오르카 호에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 음료는 닥터의 전용 음료란 말이야. 나는 오늘까지 끝내야 될 일이 있어서 꼭 이걸 마셔야겠어.”


“전용이라니…. 그런거 적혀있지도 않잖아요!”


메리는 닥터를 막아섰다.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닥터는 짜증이 몰려왔다.


반드시 오늘 중으로 미확인 철충의 연구 데이터를 뽑아서 오빠가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내일은 성장약의 지속시간을 테스트하고, 그 다음 날은 인간의 인지저하 약물을 테스트하고. 그 다음날은…. 그 다음날은…….


어째 사령관이 알면 제발 연구 데이터만 달라고 애원할 스케줄이다.


닥터에겐 이 음료가 꼭 필요했다. 항상 시간에 치이는 닥터에겐 잘 시간에 깨 있으면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고, 그럴 수록 오르카 호의 전력이 강화됐으니 말이다.


이 음료에 손을 덴 자. 힘을 얻으리라.


이 음료에 손을 덴 자. 나락에 빠지지라.


그러나 이 음료에 손을 덴 자, 시간을 얻으리라!


“이 무슨…!”


메리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피곤함에 찌든 닥터는 메리의 눈에 흑마법에 더럽혀진 처녀, 나락 깊숙한 곳으로 떨어져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타락했지만 그 만큼 무지막지한 힘을 손에 넣은 소녀로 보였다.


이것이 흑마법…!


꿀꺽.하고, 절로 침이 삼켜졌다.


저걸 마시면 자신도 되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그린 포스터를 보며 기뻐하는 사령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슴에 걸치곤 기쁜 듯 함내를 돌아다니는 모 대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행복을 얻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메리는 물러설 수 없었다. 설령….


“타락하더라도! 저는 교환권 5장이나 있거든요? 저는 꼭 이걸 가져가야겠어요!”


메리의 손이 음료를 향한다. 웃돈을 줘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는 건 치사하긴 해도 확실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닥터가 막아섰다.


“잠깐! 이제 언니 누군지 알겠어. 얼마전에 비스마르크 본사에 있었던 언니구나?”


“그래서요?”


“정식으로 소개할게. 나는 오르카 호의 연구팀을 맡고 있는 닥터라고 해.”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닥터라고 하면 오르카 호의 천재소녀! 일개 대원에 지나지 않은 메리와 달리 사령관의 총애와 신임을 듬뿍 받은 바로 그 닥터!


그리고 깨달았다.


눈 앞의 천재소녀는 이른바 「짬」으로 금단의 음료를 빼앗으려 한다. 직급과 위치로 메리를 찍어눌러 더 이상의 실랑이를 피하려 했다.


이 어쩜 무섭고도 영악한 행동이란 말인가! 현찰이 통하지 않는 권력이라니!


그러나 메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깟 짬이 뭐라고. 메리에겐 자신의 그림을 기다리는 수 많은 구독자와 자신이 그린 포스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오라버니가 있었으니깐!


닥터의 일이 뭐가 중요한건진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도 그녀 만큼이나 짊어진 것이 있어 물러설 수 없었다.


아니.


물러나선 안됐다!


두 소녀의 시야가 서로 엇갈리며 불꽃이 튀었다. 스파크가 사방을 불태울 정도로 휘날렸다.


그리고 계산대에선 바닐라 A1이, 조용히 서로 노려볼 뿐인 두 소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 보았다.


“죄송하지만 빨리 계산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조금 있으면 오르카 마트를 닫아야되서요.”


“닥터에겐 미안하지만 제게는 오라버니께서 직접! 맡긴 일이 있으니깐요! 최대한 빨리 끝내야하는 긴급한 사안이라…. 이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메리가 음료를 가져갔다.


“아! 아아!!!!! 가져갔어! 나도 오빠에게 꼭 필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니깐!!! 그리고 언니. 전투와 거리가 먼 대원으로 알고 있는데, 언니가 하는 일은 오르카 호에 도움이 되는 일이야? 내가 하는 일은 도움이 되는 일이거든!!!”


닥터가 음료를 낚아챘다.


“저기 죄송하지만 15분 남았으니 빠르게 계산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도움되죠!!! 제가 그린 그림이 모두에게 얼마나 많은 기쁨을 주는지 알고 있나요? AGS 속에 파뭍힌 공순이는 모르겠죠!!! 이건 제가 가져가겠어요! 제 손에는 모두의 꿈과 희망이 담겨있으니깐요!”


메리가 음료를 낚아챘다.


“공순이라니! 꿈과 희망인 무슨!!! 꿈과 희망도 살아있어야 꿀 수 있는거야!!! 철충에 대항할 수 있어야 언니같은 그림쟁이도 그림도 그리고 할 수 있는거 아니겠어? 오르카 호의 미래를 위해서 이건 내가 가져가겠어!!!!!”


닥터가 음료를 낚아챘다.


“그…. 그림쟁이…?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기계쟁이가!!! 버튼이나 눌러!!!!!”


메리가 음료를 낚아채고.


“하? 나는 박사학위만 수십개라고!!! 그깟 선 긋는거가지고!!!!!”


“그깟 선이라니…! 이…. 이이…!”


서로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용서못해!!!”

“용서못해!!!”


“하아……….”


두 쌍의 눈동자가 번득이고,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까진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보세요? 시티가드죠? 네. 25번 바닐라 A1입니다.”


메리의 눈에 닥터의 기계팔이 보였다. 우선 저것부터 무력화시켜야 했다.


메리는 가슴에 꼳아둔 타블렛 펜을 칼처럼 쥐어 그대로 기계팔의 관절부에 꽂아넣었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메릭시브 명물, 10초 밑그림으로 단련된 메리의 실력이다!


“네. 오르카 마트입니다. 네. 네. 문제가 생겼습니다.”


뛰어난 두뇌는 메리의 행동을 읽어냈지만, 신장차와 그림으로 단련된 메리의 재빠른 행동을 막아내진 못했다. 기계팔을 메, 몸이 둔해진 탓도 있었다.


닥터는 거리를 벌리며 무력화된 기계팔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묶은 두 플라이어를 각각 양손에 쥐었다. 하나는 역수로 한채.


“이걸 손에 쥐는 날이 올줄이야. 언니 정말 비전투원 맞아?”


닥터가 말했다. 메리는 품 속에서 비상용으로 챙겨둔 타블렛 펜 여러개를 꺼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었다.


“그쪽이야말로. 연구만 하는 사람으론 보이지 않는걸요.”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두 소녀가 격돌한다. 닥터는 플라이어를 단검처럼 휘둘렀고, 메리는 타블렛 펜을 비수처럼 꽂아 넣었다.


“빨리 와주시겠나요? 네. 네. 아, 오시겠다구요? 서둘러주셨으면 합니다. 벌써 진열대 하나가 파손—아니, 두 개가 파손됐습니다. 서둘러주시길 바랍니다. 후…. 여보세요? 아, 콘스탄챠 언니. 네. 그것보다 혹시 사령관님 계신가요?”


타블렛 펜과 플라이어. 양쪽 모두 오리진더스트로 강화된 바이오로이드의 피부를 뚫을 순 없었지만, 타격을 주는 건 가능했다.


“네. 사령관님. 곤란합니다. 어떻게 관리하신건지 지금 그 두 분이 싸우고 계십니다. 네. 네? 아뇨. 닥터 님이랑 메리 님이요. 네.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겁니까. 네? 하….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십니까.”


닥터와 메리, 서로가 서로를 찌르고 가구를 던지며 난투극을 벌였다. 소란이 계속 이어지자 마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기로 오시겠다고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네. 언니? 네. 그러니깐.”


그러나 워낙 치열하고 격렬한 나머지 그 누구도 끼어들 생각을 못했다. 


“제가 말릴 수준은 넘은 듯 합니다. 총기 사용을 허가해주시겠나요? 역시 그렇군요. 네. 네. 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여보세요? 네. 아뇨…. 감사해요. 언니. 사령관 님께도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메리와 닥터는 잠시 거리를 떨어뜨린채 가쁜 숨을 연신 내쉬었다.


잠깐의 휴식.


기나긴 투쟁 끝에 간신히 찾아온 꿀맛같은 휴식.


그러나 소녀들은 알고 있다.


찰나의 휴식이 끝나면 둘 중 하나가 쓰러질 것임을.


둘 중 하나가 승리를 쟁취할 것임을!


“하아…. 하아…. 제법인데? 언니…. 이렇게 불타오른거…. 리앤 언니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아…!”


“저 역시 마찬가지에요…. 하아…. 하아…. 하지만…! 여기서 쓰러질 순 없어요…!”


“내가 할 말이야!!!”


소녀와 소녀.


플라이어와 타블렛펜.


구경꾼들은 모두 두 소녀의 싸움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승자는 모든걸 갖고, 패자는 모든걸 잃을는다.


허나 방관자들의 찬사는 두 소녀에게 향할 것이다. 그녀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은 고귀한 것일 터니!


이제와선 흑마법의 영약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두 소녀는 묘한 우정을 느끼며 각자 쥔 무기를 바로잡았다.


서로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내.


침넘어가는 소리가 방아쇠가 되어 두 소녀는 격돌했다!!!


마침내 결판의 순간이 눈앞에————————————————








“CITY GUARD라네!!! OPEN UP이라네!!!!!!!”


펍헤드에서 사출된 테이저건이 두 소녀의 몸을 찌르고 고압 전류가 케이블을 통해 흘러나왔다!


“끼아아아악!!!”

“꺄아아아아!!!”


“사령관 듣고있어? 여기는 사디어스. 두 용의자의 무력화에 성공했다. 각 대원 용의자를 체포하도록. 심문시간이 기대되는걸.”


“안 돼. 그냥 두 사람 다 수복실로 보내”


“사령관? 언제온거야? 하지만 보낼 순 없어. 우선 심문이 먼저야.”


”명령이야. 그리고 일어나면 내 방으로 오라고 해.”


“칫. 명령이면 어쩔 수 없지. 착해빠져서는. 하지만 사령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수갑 정도 채우는건 괜찮겠지? 켈베로스!”


“네~네~. 준비 됐어요! 용의자 여러분 가만히 있으라구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구, 여러분이 하는 말은………”


켈베로스들에게 포박당하며, 바닥에 쓰러진 메리와 닥터는 흐릿한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우리…. 뭣때문에 싸웠던거죠…?”


“뭐였더라….”


“두 사람다 왜 싸운거야…. 아 진짜…. 바쁜데 도와주진 못할 망정—————”


두 소녀 사이로 푸른 캔이 데굴데굴 굴렀다. 


”오, 핫식스 남아있었네?”


사령관은 딱 하나 남은 흑마법의 영약, 활력을 주는 에너지 드링크를 집었다.


“캬. 역시 탄산이지.”


“아…. 저거….”

“아…. 저거….”


그리곤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이 정신차린 곳은 수복실이었다.


다행이도 서로 들고있던 무기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었기에 두 사람의 상처는 타박상에 그쳤고, 치료는 혹시 모를 2차 감염에 대비해 반창고와 붕대를 감는 수준에 그쳤다.


“정말! 그렇게 싸워서 어쩌자겠다는거야! 타박상으로 끝나서 다행이지, 어디 부러지거나 잘못됐으면 어쩔려고 그랬어?”


1시간 동안 이어진 사령관의 야단.


“반창고는 잘 붙어있어? 어디 부러지거나 하진 않고? 아프진 않아? 닥터, 그 상처 봐봐. 괜찮아? 메리는? 이마 찍힌건 괜찮아?”


1시간 동안 이어진 걱정.


정신차린 두 사람은 곧장 사령실로 불려와 2시간에 걸친 잔소리를 들었다. 온 힘을 다해 걱정섞어 성낸 사령관은 제풀에 지쳐 의자에 털썩 앉아 버렸다.


“…해.”


닥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눈망울은 이리저리 일렁이며 굵은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쏟아 보냈다.


“미안해 오빠. 걱정끼치게 해서 미안해.”


“내가 아니라 메리한테 해야지! 메리, 너도!”


닥터는 메리의 손을 꼭 잡았다. 미안한건지, 아니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건지, 닥터는 물에 빠진 강아지처럼 떨었다.


“…미안해. 언니.”


“아니…. 저도 미안해요. 그렇게 화내선 안됐는데.”


두 소녀는 서로를 끌어안곤 울음을 터트렸다. 사령관은 둘을 보며 흐믓한듯이 미소지었다. 아까는 그렇게 싸우더니, 역시 애들은 한바탕 치고박고 하면서 크는 것이다.


이제와선 앙금따위 남아있진 않고, 서로를 향해 입힌 상처에 마음 아파했다.


‘잠깐, 메리도 애인가? 아니, 닥터는 애가 맞는데 메리는 애가 아니잖아. 애가 벌인 것치곤 스케일이 컸으니 둘다 애가 아닌가? 어라?’


두 소녀가 벌인 혈전의 진실은 눈물바다 속에 묻혀버리고, 오르카 호엔 두 소녀의 무용담이 전설처럼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부터 한 달 후.


“으으으으으!!! 끝났어!”


오늘도 커미션을 다 끝낸 메리는 기지개를 폈다.


그 많던 커미션이 이제 딱 하나만 남다니. 이제 한동안은 커미션 대신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며 메릭시브 이용자를 위한 강좌를 올릴 생각이었다.


“MM♥LOVE 이분 한테 전송만 하면…. 어라?”


갑자기 연결이 끊겼단 메세지와 함께 데이터 업로드가 중단됬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눌러보며 유미넷에 연결하려 애썼지만, 어째 유미넷이 연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후, 긴급 서버 점검이라는 단체 메세지가 날아왔다.


“그럼 일단 전송은 냅두고…. SkyTogether? 우왓! 마감이 오늘까지였잖아! 어디보자…. 6명 전신? 으아아. 서둘러야겠어!”


작업에 돌입하기 전, 메리의 손이 자연스럽게 옆을 향했다.


그곳엔 이미 다 따버린 캔더미만 있을 뿐이다.


“다 마셨잖아!”


메리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만에 의자에서 일어나는건지, 온 몸의 관절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오늘 중으로 전송하려면 쉬지도 않고 달려야했다. 메리는 없는 힘을 모두 끌어모아 오르카 마트로 향했다.


“어라. 오랜만이네. 언니.”


“하아…. 하아…. 닥터! 잘 지냈나요?”


그 사건 이후로 처음 만나는 닥터였다. 왠지모를 반가움에 메리는 베시시 웃었고, 닥터 역시 미소로 답했다.


“언니 엄청 인기인 됐더라? 나도 나중에 한번 커미션이란걸 할까봐. 나랑 오빠가 데이트 하는 모습으로 말이야.”


“후훗. 이제 커미션은 안받지만, 닥터라면 특별히 해드릴게요. 그런데 마트엔 어쩐일인가요?”


“하아…. 말도 마. 최근에 장갑이 단단한 철충이 나타나서 신형 탄자를 연구하고 있어. 오늘 중으로 샘플을 보내줘야 내일 결과값을 받아볼 수 있어서….”


“아.”

“아.”


딱 하나 남은 에너지 드링크.


“언니는 그림 그리니깐 양보해줬으면 해. 그리고 이제 커미션 안 받잖아? 내가 하는 일은 오르카 호의 안전과 관련돼 있는 일이니깐.”


“아니, 그럴 수 없지. 나도 오르카 호의 사기와 관련돼 있는 일이니깐. 그리고 신용이 걸린 일을 미룰 순 없잖아?”


넘길 수 없다.


두 사람 사이에 번개가 치는 가운데, 그 긴장감을 뚫고 누군가가 에너지 드링크를 잡았다.


“휴, 다행이다. 딱 하나 남았구나! 어라. 메리 씨랑…. 닥터 씨 아닌가요? 두 분 뭐 사러 오신건가요?”


이번엔 머리에 헤어롤을 감은 피곤한 관리자까지 해서 세 명이다.


“하?”

“하?”


“저기…. 왜, 왜 노려보세요?”


25번 바닐라 A1은 전화기를 들었다.


“오르카 마트입니다. 시티 가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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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도 좋지만 라오 일상물도 좋다

개인적으론 닥터는 몬스터

메리는 핫식스 마실듯

근데 어제도 정산챈이더만 왜 오늘도 정산챈인거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