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지 때 접었다가 슬슬 복귀할까 해서.

일단 하나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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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뭐냐. 시야가 깜깜해. 몸이 무언가에 매달린 듯 안 움직여.


긴 잠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인데, 개운치 않다는 수준이 아니다. 어떻게 된 거지.


내 몸을 구속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텐데. 젠장, 이 의체를 위해 얼마나 꼴아 박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숨은 쉬는데? 살아 있는 것 같아! 이미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조금만 늦었으면 정말로 큰일 날 뻔 했겠어?"

"그리폰, 조금 더 정중하게 말하렴. 드디어 찾은 인간님인데...우리 주인이 되실 분이잖아."


어디서 들려오는 암컷의 목소리냐. 인간님, 주인......바이오로이드인가?

이 썩을 고깃덩이들이......빨리 날 깨우지 않고 뭐하는 거야.


"그나저나......뭔가, 굉장히 길다?"
"그러게......2m가 넘으려나?"

"칫, 난 완전히 난쟁이 취급이겠네."


당연하지. 2m 43cm. 오리진 더스트를 잔뜩 꼴아 박아도, 운동능력을 유지하면서 체격을 키울 수 있는 거의 최대 사이즈라고.


"......어쨌든 그 주사부터 놔. 슬슬 숨소리가 간당간당해지고 있으니까."


숨소리가 간당간당? 그럴리가. 이론상 내 폐활량과 지구력은......젠장, 그 새끼들, 주문한 대로 일처리를 하지 않은 건가!

나중에 제대로 따져주겠어!


그때 목에 따끔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어이, 특수한 기구를 사용한 주사겠지? 일반적인 주사로는 내 근육에 구멍 하나 뚫을 수 없다고.

......주문한 대로 만들어진 의체라면 말이지.


그보다 이상한데, 아까부터 어디서 똥개의 헐떡거림 같은 게 들리지 않나?


껌뻑껌뻑 거리며 깜깜한 시야가 뿌옇게 색을 통과시키더니, 점차 선명해졌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건 헥헥 거리며 혀를 내밀고 있는 누런 똥개.

그리고 못마땅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금발의 바이오로이드.

마지막으로 안경 낀 메이드형 바이오로이드......삼안 놈들이 만든 건가.


"살아났나? 눈을 껌뻑 거리는데? 숨도 제대로 쉬는 것 같아.

"휴, 다행이야. 이분이 명령만 내려 주시면 우리도 이젠 제대로 싸울 수 있을 테니......"

"괜찮긴 한 거야? 그러니까 명령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분명히 기억이 없을 거라고 했잖아. 이상한 명령이라도 내리면 어쩌지?"

"그럴 리야 있겠니? 그리고 기억이 없어도 괜찮아. 적어도 파괴 명령만 내려 주셔도...싸움이 훨씬 수월해 질 테니까."


이것들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일단 이 건방져 보이는 금발 바이오로이드부터 손봐주지 않으면......


"어이, 네년. 건방지게, 바이오로이드 따위가 이 몸 앞에서 그딴 소리를 지껄이다니, 죽고 싶은 거냐."
"?!"


벌떡 일어나 그 뺨을 한 대 후려칠까 생각하다가......곧 깨닫는다.


"뭐야, 이거."


내 팔......왜 이리 가늘어? 잠깐, 이 바이오로이드가 아까 뭐라고 했지? 길다? 크다가 아니라 길다?

언어나 지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서둘러 내 몸 여기저기 살펴 보았다.

없다. 갑옷처럼 탄탄한, 불끈불끈 해야 할 근육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있는 거라곤 키만 큰, 빈약한 몸 뿐.


"뭐야 이게에에에에에!!"

"이, 인간님. 고정하세요.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뭐!? 지금 이게 중요하지 않으면 뭐가 중요하다는 거야!!"


옆에서 참견하는 바이오로이드를 손등으로 후려쳤으나, 바이오로이드는 고개만 살짝 돌아갔을 뿐.


"끄으으으으읍......!"


때린 내가 더 아프다. 이건, 의체 이식 수술을 받기 전보다 더 약해진 거 아닌가?


"그 개새끼들, 돈만 받아 먹고, 이딴 쓰레기 같은 몸을 남겨!? 아아, 젠장. 더럽게 아프네 진짜."
"인간님, 제발 진정해주세요.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에요."

"아까부터 쫑알쫑알 거슬리게──!"

"둘 다 숙여!!"


갑자기 옆에서 금발 년이 덤벼들었다.

바닥을 구르는데 무진장 아파! 방금 돌에 찧지 않았어!?


하지만 그에 대한 항의는 섬광과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은 폭음 그리고 폭압에 날아갔다.


"무, 무슨......?"


지이이잉──하고 귓속에 울리는 이명. 타닥타닥 떨어져 내리는 자갈들을 금발이 쳐낸다.

메이드 년이 옆에서 뭐라뭐라 시끄럽게 떠드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금발 년이 뭐라 소리치고, 똥개가 왈왈 짖는 듯 하다. 메이드는 또다시 뭐라 말하더니 갑자기 날 공주님 안기로 안아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인간님, 인간님! 제 말 들리세요? 제발 대답 좀 해주세요!"
"시끄러......이제 들리니까, 큰 소리로 떠들지 마!"

"아, 다행이다! 급박한 상황이라, 제대로 설명하긴 힘들겠지만! 저희에게 명령을 내려주세요! 철충을 파괴하란 명령을!"
"철충? 그건 또 뭐야?"
"지금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적들이라구! 빨리, 명령해, 인간! 숫자는 여섯 정도야, 흩어져 있기도 하고. 네가 제대로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싸울 수 있어! 어서! 벌써 300m 가까이 들어오고 있어!"


하늘을 스윽 날았다가 급히 내려온 금발 년이 말한다.


"건방진 년......감히 바이오로이드 따위가 인간인 이 몸에게 명령을......!"
"부탁드려요, 인간님! 이러다간 다 죽어요!"


안겨있는 채로, 메이드 년 뒤쪽을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진짜 무슨 전쟁이라도 터진 건가. 짜증나는구만.


"저 새끼들이 뭐하는 새끼들인지부터 대충 말해!"

"나이트 칙 계열! 머신건 계열이 넷, 런쳐 계열이 둘!"

"고유명사 씨부리지 말고!!"
"철충에게 감염된 폴른 형 AGS에요!"


뭐야......그냥 AGS를 해킹당해 탈취당했다, 뭐 그런 거 아니야?

아니지. 무슨 군사작전의 일환 같은 건가. 젠장, 내가 잠든 사이 누가 전쟁 따위를 시작한 거야.


"어이, 금발 년! 손 봐주는 건 뒤로 미룬다. 네년이 날 업어라!"

"뭐어? 네가 명령만 내리면 내가 당장 날아가서 폭격을──."
"등신 새끼! 어차피 저 새끼들 미사일 때문에 들켰지만 아주 보란듯이 폭격 갈기면 어서 와 달라고 도발하는 거 아니야! 여기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낼 일 있냐!"

"......"

"닥치고 내 '명령'에 따라, 바이오로이드!!"


금발 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대신 안아든다.

몸만 멀쩡히 고치고 두고 보자.


"어이, 메이드 년."
"416번 콘스탄챠 S2에요. 콘스탄챠라고 불러주ㅅ──."
"메이드 년, 등에 매고 있는 총은 겉멋이 아니겠지? 그 똥개도 군용견이라고 믿겠다. 그 똥개로 저 새끼들 시선 돌린 다음 저격해서 침묵시켜."
"......네. 그리고, 이 아이의 이름은 보리라고──."
"똥개 새끼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빨리 움직이라고!"


하여간 이래서 바이오로이드는 하나하나 알려줘야 한다니까. 시킨대로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을.


"금발 년. 네년은 나한테 상황 설명해라. 어려운 고유명사 씨부리지 말고."
"......알았어, 요."


그리고 내가 들은 이야기는 굉장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인류가 멸망하고, 내가 유일한 생존자라니......


그럼 내 몸은, 누가 다시 고쳐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