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키 아는 라붕이 많은 것 같아 기쁘다.
2차 창작 채널에서도 연재 중이니 자주 보러 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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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메이드 년이 생글생글 웃으며 돌아왔다. 똥개 새끼도 함께.
"웃지마. 지금 기분 더러우니까."
"아, 죄송해요......그래도 인간님의 명령대로 철충들을 무찌르고 왔어요. 후후, 그동안 소극적으로 저항만 하며 도망다녔는데, 제 손으로 철충을 쓰러뜨리다니. 정말로 기......아, 죄송합니다."
홱 노려보자 메이드 년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년이 들고 있는 소총에 시선을 돌렸다.
길이는 1m를 넘어간다.
"그거 줘봐."
"인간님?"
"내가 세 번 이상 같은 말 하게 만들면 죽인다."
"여, 여기요!"
나는 소총을 한 손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소총을 쥐자마자 내 팔은 아래로 축 내려가, 소총의 개머리판이 바닥을 찍었다.
"하......시발. 진짜 웃음 밖에 안 나오네."
"아, 안 돼요, 인간님! 그건 바이오로이드용으로 개조된 윈체스터 1887이라 원본처럼 가볍지 않아요!"
"시끄러워. 이 꼴로 전락하기 전의 나였다면 이깟 총, 악력만으로 뭉개버리는 것도 가능했어."
옛날 같으면 간지나게 메이드 년의 안면에 던졌을 텐데, 계속 들고 있는 것도 버겁다.
쓰레기 같은 몸뚱아리. 그래서 메이드 년이 줍도록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러면 총구에 흙이......"
"......"
"...죄송해요..."
나는 근처의 벽에 기대고 앉았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멸망해버린 인류, 바이오로이드는 철충이란 놈들에게 털리기만 하는 형국이라니.
내가 그동안 해온 건......전부 쓸모 없어진 것 아닌가. 가슴 속에 응어리 진 감정이 배출구를 찾지 못한 채 맴돌고만 있다.
"인간님, 혼란스러우신 건 알아요. 아마 그리폰도 전부 말씀드리진 못했을 거에요. 그럴 권한이 없으니까요."
"......뭐?"
"모든 걸 숨김없이 제대로 알려 드리기 위해선 사령관 이름 등록이 필요해요. 혹시 성함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하......내가 사령관이라."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는 전혀 연관 없을 이름이었는데.
"재크(Zach)다. 잭(Jack)처럼 흔해빠진 이름이 아니라."
"알겠습니다, 재크 사령관님. 바이오로이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을 완료했어요."
메이드 년의 안경에 UHD 화면이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좌르륵 내려가다, 사라졌다.
"그딴 호칭으로 부르지마. 이전처럼 인간님으로 불러. 어차피 이 세계에 인간은 나 하나 뿐이잖아?"
"......알겠습니다. 여하튼, 지금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싶지만......여긴 많이 위험한 곳이라서 일단 본부로 가서 설명해 드릴게요. 여기에 온 것도 철충들을 따돌리고 온 거라, 들키기 전에 빨리 빠져 나가야......"
하, 본부라. 꼴에 그런 건 제대로 갖추고 있는 모양이지?
.......뭐, 됐어. 일단 이런 약해빠진 몸에서 탈출하는 것부터 하자.
우선 살을 불린 다음, 근육으로 바꿔나가야겠지.
앙상한 뼈가 훤히 보이는 몸 따위, 혐오스럽기 짝이 없으니까.
"어이, 메이드 년. 너, 철충 하나 잡는데 총알 몇 발을 소모하지?"
"그......죄송하지만, 제가 멸망 후 제조된 개체라, 기존의 콘스탄챠는 전투형 바이오로이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 조준보조 장비인 스마트글래스를 끼고 있는데......"
"네년이 무능한 건 척 봐도 알겠으니까 묻는 말에나 제대로 대답해. 다음에도 그딴 식으로 말을 빙빙 돌리면 바로 자살하라고 명령내린다?"
"네, 넷. 4~5발 정도 사용해요."
소모가 많군. 그만큼 성능이 나쁘다는 거겠지. 그야말로 쓰고 버리는 말로서 제조한 건가.
"철충이란 놈들은 대부분 2족 보행인가?"
"아, 네. 이 근처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그래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철충도 있지만, 아마 지면에서 걸어다니진 못할 거에요."
"앞으로는 다리만 부수고 나머지는 무시한 채 지나간다. 총알에 맞아도 거뜬히 튕겨내거나, 근육을 움직여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최대한 몸 사리고 탄약 아끼는 방향으로 가라."
메이드 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생긋 웃으며 대답한다.
"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님!"
"뭐? 내가 네년 걱정 따윌 할 리 없잖아. 본부라는 곳에 최대한 무사히 갈 방법이 그것 뿐이니까 그런 거야."
최악의 경우, 이 금발년을 미끼로 철충들의 주의를 돌린 뒤 조용히 빠져나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이다.
저 미사일들이 장식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폭격을 쓸 타이밍이 있을 테니까.
***
"역시 제대로 싸우면 별 것 아니잖아."
"그렇네. 처음으로 제대로 싸워본 거지만, 잘한 것 같아. 그래도 자만해선 안돼. 이 철충들은 하급 전투원...고위 철충, '연결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도 잘 알잖니?"
나는 천천히 두 년의 뒤를 따라갔다. 지구력도 걸레짝이 다 되었는지, 몇 분 걸었다고 벌써부터 숨이 찬다.
힐끔힐끔, 메이드 년이 날 돌아본다. 동정하는 건가. 바이오로이드 따위가 건방지게, 누굴 동정해......멀쩡한 몸이었으면 바로 저 년의 눈깔을 뽑았을 텐데.
"그러고보니, 인간님은 전술이나 지휘 등을 배우신 적 있나요? 너무 자연스럽게 해서 놀랐어요."
"머리 좀 굴리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인간은 너희들처럼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만 대가리를 굴릴 수 있는 게 아니거든."
"......"
메이드 년은 잠시 서글픈 표정을 짓더니 금발 년에게 본부로 귀환한다고 통신을 넣으라 했다. 그런데──.
"어라, 이상하다?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통신을 듣지 않아. 무슨 일이지?"
"설마...기지에 무슨 일이 생긴 건..."
"그, 그러기야 하겠어? 그럼, 바로 움직이자. 그러니까......가보면 알겠지."
"......아니야, 일단 피난처로 가자. 등대 아래, 쉘터로 말이야."
"그냥 기지로 가는 편이 낫지 않아?"
"혹시라도 인간님이 공격받을 수 있는 건 피해야 돼. 만약에 기지가 공격을 받고 있다면......"
이년들 봐라? 감히 인간인 내가 있는데 지들 멋대로 다음 행동을 결정해?
인류 멸망 후 제조 되었다더니, 그동안 명령권자 없던 티가 팍 나는군.
"......앗차! 죄송해요. 인간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는 쉘터로 가는 편이......"
"다음부터 그런 말을 하기 전에는 먼저 내게 허락을 구해라, 메이드 년."
"네, 네......명심하겠습니다."
아주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메이드 년은 내 시선을 바로 눈치채고 말을 맞춰왔다.
메이드 년보다 반응이 느린 금발년은 점점 더 쓸모가 없어져 가는군. 나중에 미끼로 쓰다 버리자.
......뭐어, 본부라는 것도 형편 없으면 전투원 하나가 아까운 상황이니, 어떻게든 끌고 가겠지만.
"쉘터로 간다. 이 몸은 파편 하나라도 잘못 맞으면 금방 골로 갈 테니까."
"하...전부터 계속 이 몸은 쓰레기다, 이전 몸이 좋았다 타령. 이전 몸은 얼마나 좋았다고 그래?"
"네년 같은 바이오로이드의 머리통을 악력만으로 부수는 게 충분할 만큼 OD(오리진 더스트)를 때려박은 몸이었지."
메이드 년이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런 몸인데도, 더 강해지려 하신 이유는, 대체 무엇이셨나요?"
"......"
그 말을 듣자 허무함과 허탈감이 밀려왔다. 이제 강해진다 해도 그걸 증명할 대상이 없어졌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조금 감성적인 기분이 든 탓이었을까.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증명이다. 낙오자가 아니라는, 증명."
"인간님은 낙오자가 아니에요."
메이드 년은 건방지게도 내 손을 잡으며 말해왔다. 나는 최대한 힘을 주고 뿌리쳤다.
그래봐야 내 근력으로는 무리라, 메이드 년이 떨어져 나간 척 하는 거겠지만.
"닥쳐. 척수반사적으로 그런 대답을 하도록 만들어진 네년들의 칭찬 따위, 가슴에 울리지도 않아."
"......죄송해요. 그리폰, 정찰을 부탁할게. 쉘터로 가는 안전한 길을 찾자."
"...알았어..."
금발 년이 슈웅 날아오른다. 나는 다시 근처의 벽에 기대 앉았다.
하......시발, 자살 마렵다.
눈 떠보니 삶의 목적도, 그동안 걸어온 삶의 궤적의 증명도 잃어버린 나는, 무력감이 엄습해 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