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끄루 대마왕의 역습

 

"재밌는 친구네아탈란테 같은 조치를 받은 모양이야."

매지컬 모모가 데리고 온 백토라는 바이오로이드는 본인이 정말로 마법 소녀라고 믿고 있었다뽀끄루 마왕을 처단해야 한다는 그 눈빛은 불굴의 마리를 떠올리게 했다힘을 빌려달라고 자기를 '매직 젠틀맨'이라고 부르는 백토의 장단에 맞추느라 연기를 한 사령관은 내심 즐거웠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의외로 그런 걸 좋아하시는군요마법이라면 저도 할 줄 아는데."

"어떤 마법?"

"일종의 경화 마법이랄까요."

살포시 웃으며 알렉산드라는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그녀의 의향을 눈치챈 사령관도 같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머리 뒤로 가져가 깍지를 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사령관!"

"지우개가 여기에 있었네요."

즐거운 시간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온 트리아이나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다알렉산드라는 어느새 지우개까지 준비해서 능숙하게 책상 밑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해피 타임을 두 번이나 방해받은 사령관은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감추기 위해 싱긋 미소지었다밤이 있으니까트리아이나의 뒤에는 매지컬 레아와 처음 보는 바이오로이드가 서 있었다레아에게 껌딱지처럼 딱 붙어있는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상앗빛 피부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검은색의 옷차림은 그녀의 머리에 장식된 뿔과 매우 잘 어울렸다어디서 본듯한데..!

"뽀끄루 대마왕?"

"사령관도 아는구나?! 마법 소녀 매지컬 모모의 숙적이자 사악한 밤의 여왕악의 대마왕 뽀끄루 대마왕이야!”

"트리아이나씨 그런 수식어는 창피해요.."

귀까지 빨갛게 된 뽀끄루는 손을 휘저으며 트리아이나에게로 다가갔다전혀 마왕 같지 않은 그 모습에 사령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뽀끄루 대마왕은 자신이 연기자라는 자각을 하고 있는 건가?"

갑작스레 자신에게 날아온 질문에 신나있는 트리아이나의 팔을 붙잡고 있던 뽀끄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D 엔터 빌런 소속 뽀끄루라고 합니다백토씨에게 쫒겨다니다 여기 레아씨와 트라아이나 씨를 만나서 오르카 호에 오게 되었어요."

"백토라면 조금 전에 만난 그 백토과몰입되어 있는?"

".."

"그동안 어떻게 지내온 거야?"

그동안 당했던 고난과 역경이 떠올랐는지 뽀끄루는 붉어진 눈시울로 말을 이었다소녀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의 떨림이 점차 강해졌다.

"저는 만월의 야상곡 인트로를 위해 단독 촬영 도중에 철충의 습격을 받았어요.. 저 말만 대마왕이지 싸움 같은 거 잘하지도 못하고 매일 대사 치고 정해진 곳에 불 뿌리고 도망치는 연기만 해서 싸우는 방법도 몰랐거든요그 이후로 철충들을 피해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 살았어요철충이 습격할까 매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배는 매일매일 고프고 그러다가 드디어 예전 직장동료였던 백토씨를 만났는데.."

감정이 격해졌는지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렸다양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내는 그녀의 모습은 동정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사무실에 있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측은한 눈빛을 뽀끄루에게 보냈다.

"그 친절하고 상냥하던 백토씨가 절 보자마자 이제야 만났구나 하며 저..전기톱에 시동을 거는데.. 히익.."

그동안 겪어왔던 공포가 떠올랐는지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건 연기였다고.. 우리 배우라고말해도 자신을 세뇌하지 말라면서 몇 날 며칠.. 한 달을 그렇게 쫓아다니는 데에.. 하루의 절반 이상을.. 그 무기 보셨어요?! .. 그 전기톱전기톱에 시달리며 쫓기다 보니 전..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으으..호에..호에에에에!”

사령관의 따뜻한 한마디에 긴장이 풀렸는지 풀썩 주저앉은 뽀끄루는 이제 서럽게 엉엉 울기 시작했다성숙한 몸의 여성이 어린아이처럼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사령관은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알렉산드라가 그런 그의 허벅지를 정신봉으로 지그시 누르며 눈짓했다눈짓을 따라 바지춤을 주섬주섬 추스른 사령관은 울고 있는 뽀끄루에게 다가가 등을 토닥였다.

이제 괜찮아오르카 호에 온 이상 그런 괴로웠던 나날들은 안녕이 될 테니까."

"..그치만 백토씨도 오르카 호에 있잖아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훌쩍이던 뽀끄루는 사령관을 올려다보며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그녀의 해바라기색 눈동자에는 아직도 공포가 어려있었다.

"되도록 안 마주치게 스케줄을 짜보면.."

"평생 그럴 순 없지 않겠습니까그렇게 된다면 백토는 뽀끄루 대마왕을 찾는다고 오르카 호를 떠날 텐데요."

알렉산드라의 날카로운 지적에 사령관은 말문이 막혔다뽀끄루를 백토와 마주치지 않게 평생을 숨어 살게 하는 것도 매우 가혹한 처사일뿐더러 그렇게 된다면 그녀를 찾기 위해 백토는 오르카 호를 떠날 게 분명했다이 둘이 성격엔 문제가 있더라도 매지컬 모모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오르카 호의 전력 상승엔 큰 도움이 될 것이다습관적으로 등을 토닥이던 손을 머리에 가져가던 사령관은 자신의 손길을 가로막은 뽈을 만지작거렸다살짝 차가운 느낌이 도는 뿔은 상아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럼 신 매지컬 마법 소녀는 결성하자마자 끝인 거야?"

"아쉽지만.. 뽀끄루씨는 정말 마왕이 아니니까요"

트리아이나와 레아의 시무룩한 대화가 사령관의 귀에 들려왔다오드리를 닦달해 새 코스튬을 얻은 그 둘도 어두운 표정이었다특히 레아는 정말 실망해서인지 흘러내린 옷차림을 바로 할 기운도 없어 보였다연분홍빛.. 그 순간 사령관의 뇌리에 한가지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LRL이 보여주었던 만화책에 비슷한 내용이 있었지!

"뽀끄루이 뿔은 신체와 연결되어 있는 거야?"

"아뇨이거 탈착식이에요제 신경 전기랑 반응해서 머리에 쓰는 일종의 바이저인데요?"

"좋은 생각이 났어아군이 된 적 클리셰를 사용하자!"

레아와 트리아이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알렉산드라는 감을 잡았는지 옅은 미소를 지었다사령관에게 뿔을 잡힌 채 있던 뽀끄루는 전직 배우여서인지 금방 알아차리고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사령관을 올려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령관?"

"뽀끄루가 사실 최초의 마법 소녀였던 걸로 가자고마법 소녀 매지컬 뽀끄루였는데 최종 보스인 철충에게 세뇌당해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드디어 대마왕이 되고 철충을 소환했던 걸로 가는 거지그러다가 매직 젠틀맨인 나를 만나서 세뇌 도구인 뿔을 벗고 다시 마법 소녀로 돌아오게 되는 거야."

"그렇게 설명만 한다고 백 토씨가 믿을까요?"

"믿게 해야지."

여전히 불안해하는 뽀끄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령관은 자신만만한 어투로 말했다.

"마법 소녀 매지컬 백토 시즌 9. 만월의 야상곡을 제작한다오디션 준비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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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토를 완전히 속이려면 이 방법이 최고야."

며칠 동안 마법 소녀 매지컬 시리즈와 관련된 미디어 콘텐츠를 시청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령관은 꾀죄죄한 몰골로 외쳤다어디서 구했는지 사령관의 책상에 늘어서 있는 마법 소녀의 피규어를 힐끗 쳐다보며 살럿은 말했다.

"그러니까함 내의 인원을 이용해서 뽀끄루 씨의 부하 역할을 시키게 하고 침공하는 척하자 이거죠?"

"그렇지대치하던 와중에 매직 젠틀맨의 설득에 뽀끄루가 세뇌에서 풀려서 아군으로 돌아오게 되는 거지"

"조금 임팩트가 약한데요.."

샬럿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모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자신으로부터 시작된 마법 소녀이니만큼 스토리와 설정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모모였기에 연출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다.얌전히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던 뽀끄루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직 젠틀맨이 비록 마법 소녀를 지휘하는 사령관이긴 하지만 현장 지휘관 같은 직책이고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인물이라는 설정도 있어요말 한마디로 뽀끄루의 세뇌를 풀 수 있다면 대마왕이 될 때까지 놔두고 있던 것도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마법 소녀 매지컬 백토는 날카로운 추리력을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이미지도 가지고 있어서 그런 논리적인 부분에 매우 강해요제가 정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온갖 주의를 다 기울여도 기어코 절 찾아내서.. ..전기톱을..히익.."

트라우마가 발동됐는지 뽀끄루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모모는 그런 뽀끄루의 등을 쓸어주며 다독이기 시작했고 사령관은 고민에 빠졌다둘의 지적이 옳았다마법 소녀 매지컬 백토 시즌 8에서 백토는 날카로운 추리력과 초인적인 기억력을 발휘하여 지적인 면모를 많이 어필했었다백토가 실제로도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어설픈 연출로는 절대 그녀를 속여 넘기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럼 매직 젠틀맨보다 더 상위의 존재가 필요할 거 같은데요 폐하제가 연기했던 총사대도 직속 상관인 추기경 위에 왕이 있어서 큰 이벤트 때 가끔 모습을 드러내곤 했답니다."

"모모그런 존재가 마법 소녀 시리즈에 있어?"

"..시즌 퍼플레이 디스크 특전으로 만들어진 설정 집에 매지컬 여신님이 나와 있기는 해요악의 대마왕인 뽀끄루를 막기 위해 마법 소녀를 창조해서 지구로 보낸 존재로 짤막하게 나와요."

"근데 백토는 설정상 달에서 온 존재고넌 지구 출신이지 않아세계가 다른데 창조주 같은 개념인가?"

"설정 원안을 보면 태양계를 다스리는 여신이긴 해요뽀끄루 대마왕은 외계에서 온 침략자이고요."

"스케일이 엄청나게 크네.."

"시즌 1이 생각보다 대흥행해서 돈을 엄청나게 벌어들이다 보니 시리즈의 존속을 위해 점점 스케일이 커지게 되었어요.

시즌 24까지 염두에 두고 은하계 대결전이 피날레인 시놉시스를 짜놨다고.."

"에반데."

"은하계가 뭔가요?"

"나중에 설명해줄게그럼 누군가가 여신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누가 좋을까.." 

프랑스라는 나라 안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역할이었던 샬럿은 안드로메다로 가는 스토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모모는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반짝이며 손을 번쩍 들었다.

"여신이라면 아자젤 씨가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아자젤이라면 그 아자젤이요그분도 오르카 호에 있어요?!"

"아자젤 씨 아시는구나혹시 샬럿 씨는 모를 수도 있으니 설명해드립니다우리 덴세츠 사이언스가 만들어낸 천사형 바이오로이드인데 진.........맞아요뽀끄루씨 얼마 전에 오르카 호에 합류하셨답니다."

"아니저도 아는데.."

".."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모모와 살짝 질린 표정의 샬럿그리고 입을 헤 벌리며 감탄하는 뽀끄루사령관은 손가락을 튕겼다말 그대로 여신 같은 외모와 장엄한 분위기거기에 후광이 비치는 날개까지매지컬 여신에 딱 어울리는 인물이었다다만 그 고귀한 아자젤이 그런 역할을 선뜻 맡아줄지가 미지수였다하지만 딱 맞는 배우를 캐스팅에 하는 것도 명감독이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아자젤에게 부탁해 봐야겠어그러면 일단 모모는 백토의 곁에서 돌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부탁할게.샬럿은 레오나에게 부탁해서 뽀끄루 대마왕의 부하역을 해줄 바이오로이드들을 수배해주겠어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소속 아이들이 차가운 느낌의 미녀들이 많으니까 잘 어울릴 거 같아마법 소녀 쪽은 스틸라인 위주로 인원을 구성해야겠다.

그리고 뽀끄루는.."

일반 숙소에 두기엔 백토에 발견될지도 모를 일이었다나갈 때 오르카 호에 악의 씨앗이 침투해있지 않은 지 살펴보겠다고 나선 거 보면 백토가 온 사방을 들쑤시고 다닐 것은 자명했다만약 백토가 뽀끄루를 발견하게 된다면 뽀끄/루 가 될 테니 꼭꼭 숨겨놔야 했다.

"뽀끄루는 일단 내 방에서 지내도록 하자이벤트가 무사히 끝나면 원하는 곳으로 배정해줄게."

"감사해요사장님저 하나 때문에 이런 큰일을.."

감격한 듯 뽀끄루는 떨리는 목소리로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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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아자젤 부탁이야."

흰색으로 도배된 아자젤의 방은 조명을 반사하여 안 그래도 새하얀 아자젤의 피부를 눈처럼 희게 만들었다간소하다 못해 가구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 공간에서 아자젤은 정좌하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살랑살랑 흔들리는 그녀의 날개만이 그녀가 조각상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다사령관의 부탁에 아자젤은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그녀의 눈빛에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

"사이비를 연기하라니실망입니다반려천사로써 제가 어찌 진정한 신을 두고 거짓된 신을 연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제 믿음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주님은 단 한 분 뿐입니다절대 할 수 없습니다."

딱 잘라 거절한 아자젤은 다시 눈을 감았다설득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자젤은 요지부동이었다믿음이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이 정도라니멸망 전에 만들어진 아자젤들은 그럼 얼마나 신앙심이 강했던 거지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사령관은 교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약자를 구원하고선을 행하는 일은 모든 이가 해야 할 일이며 이를 행하는 자에게 천국은 이미 그의 집이니라(:2-8)"

"거짓된 행동으로는 진실된 결실을 맺을 수 없으며한때의 눈속임으로는 사람은 속여도 하늘을 가릴 수는 없으리니.

언제나 진실된 삶을 추구하여 거짓을 멀리하라(:6-8) 라는 말씀은 잊으셨나요반려?"

"주님께서 이르시되 곤궁한 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야 하며 그것이 곧 선의 실천이라이를 방치하는 것은곧 나를 버리는 것이니의로운 일을 행하라 (:5-8)라 하셨어아자젤."

"그건.."

"의로운 일을 행하기 위해서 거짓을 연기한다고 하더라도 주님께는 아자젤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으실 거야주님은 만물을 굽어살피시는 목자시니감히 그분이 못 보시는 것은 없으리라 (:2-4) 하셨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너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 양이 있어이를 위해 나와 함께 피를 흘려 주겠어이번 일이 잘만 된다면 아자젤과 안식일을 함께 보낼게."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의로운 일을 행하는 데 힘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아자젤은 고개를 끄덕였다마법 소녀 시리즈의 이어 아자젤의 교리를 공부하기 위해 밤을 새웠던 사령관은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비틀거리며 일어나 아자젤에게 안겼다아자젤은 그런 사령관을 품에 꼬옥 안고 날개로 감싸 안았다아자젤의 한없이 부드러운 육체와 볼을 간질이는 깃털을 느끼며 사령관은 눈을 감았다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온 퀭한 얼굴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던 아자젤은 사령관의 이마에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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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원 차출은 완료됐어?"

"네 폐하님프그렘린샌드걸들을 지원받아 교육 중이랍니다."

"발키리는?"

"임무.."

"그랬지 참그럼 스틸라인 쪽은?"

"브라우니들은 분위기에 휩쓸려서 위험한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까 주로 노움과 레프리콘들로 구성했습니다노움씨들이 의외로 열정적으로 참여해주고 있어요."

샬럿의 보고를 받으며 사령관은 스크립트에 있는 대사를 천천히 읽어보았다상당히 유치한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탄탄히 짜인 구성이었다결정타를 날려 뽀끄루의 뿔을 머리에서 떼는 역할을 모모가 맡았기에 뽀끄루와 모모는 대본을 손에 들고 동선을 체크하며 대사의 합을 맞췄다.

"맞아.. 난 매지컬 뽀끄루내가 왜 이런 모습을..크윽....머리가.."

"뽀끄루 씨뽀끄루 씨의 머리에 있는 뿔이 세뇌 장치였군요제가구해드리겠어요매지컬 모모 찬바라!!"

"여기서 뿔을 자르기 쉽게 고개를 좀 더 숙일까요?"

".. 그게 좋을 거 같아요고통스러운 연기를 하면서 고개를 숙이시면 제가 잘라내기 더 편할 테니까요."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네요."

"샬럿위험한 역할인데 선뜻 맡아줘서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랍니다폐하를 위해선 불구덩이 속을 들어가는 것도 마다치 않을 거라는 거 아시잖아요."

다른 이들은 다 연기겠지만 백토만큼은 진심으로 덤벼들 테니 매지컬 여신 아자젤이 나타날 때까지 백토를 상대할 악의 여간 부가 필요했다개인 전투력이 높은 바이오로이드는 샬럿 말고도 리리스나 마리도 있었지만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여차하면 주위에 피해를 줄 수도 있기에 검을 사용하는 샬럿이 제격이었다.

"소품도 거의 다 준비가 끝났다고 해요오드리씨 얼굴이 많이 상했던데요."

"수영복 디자인하느라 철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고생시키는 거 같아마음이 무거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했을걸요후훗"

"좋은 아이들이야 모두."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며 대본을 펼쳤다자신에게도 매직 젠틀맨이란 배역이 있는 만큼 연습을 해둬야 했다이렇게 모두가 고생해주고 있는데 자신의 발연기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가 돼서는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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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매직 젠틀맨?

"뽀끄루 대마왕의 흔적을 찾았다."

"마참내!"

주먹을 불끈 쥔 백토는 당장이라도 매지컬 핑크 문 라이트(전기톱)를 들고 뛰쳐나갈 기세였다평소와 달리 동그란 갈색 안경을 쓴 사령관은 책상에 앉아 두 손을 깍지껴 얼굴 앞에 모으고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오르카 호는 지금 부상해서 뽀끄루 대마왕이 숨어들었을 섬에 대한 관측 활동을 개시했다.

함께 함교로 나가 살펴보는 게 어떻겠나."

"마다할 이유는 없지당장 가도록 하겠어!"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모모의 목소리가 함 내에 울려 퍼졌다.

"나타났어요뽀끄루 대마왕과 그의 부하들 4시 방향에서 출현!"

"선수를 뺏겼군이번에야말로 끝을 내주겠어!!"

백토는 몸을 돌려 엄청난 속도로 함장실을 빠져나갔다몸만 한 매지컬 핑크 문라이트(전기톱)를 들고도 날쌘 그 몸놀림에 사령관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부디 다치는 이가 없어야 할 텐데옷깃에 달린 마이크를 붙잡으며 사령관은 말했다.

"시작하자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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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소리와 붉은 비상등으로 가득 찬 통로를 달려가던 백토는 후미 엘리베이터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의외의 인물들을 발견했다.

"노움씨들레프리콘씨들.. 그 모습은.."

레프리콘들은 매지컬 레아처럼 바니걸 복장을 하고 있었다기존의 하계 전투복을 약간 수선한 남색의 코르셋과 망사스타킹은 누가 봐도 정석적인 바니걸의 모습이었다레프리콘들 중 몇몇은 바이저 대신에 쓰게 된 토끼 머리띠가 어색한지 머리를 만지작거렸다그리고 노움들은 매지컬 모모와 같은 교복 복장인데 워낙 육감적인 몸매다 보니 블라우스의 단추가 제대로 잠기지 않아 뽀얀 앙가슴이 반절은 드러나 있었고 치마 역시 큰 엉덩이 때문에 매우 짧아져 있었다그녀들은 모두 흰색 막대에 망치 머리가 빨간 해머를 들고 있었는데 백토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우리들도 마법 소녀가 되어 백토씨와 함께 하기로 했어요!

믿음만 있으면 마법 소녀가 될 수 있다는 거 저희는 믿으니까요!"

레프리콘 1058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브라우니 2056이 속한 분대의 분대장인 그녀는 저번 여름휴가 때 나이트앤젤 대령을 속여 넘기려다가 실패한 브라우니와 함께 목만 남긴 채 모래찜질을 당해 목 위로만 까무잡잡하게 타 다른 레프리콘들과 쉽게 구분이 되었다고지식한 성격의 레프리콘답게 대본이 닳을 정도로 달달 외운 그녀의 입에서 유창하게 다음 대사가 흘러나왔다.

"매직 젠틀맨이 찾아낸 고대의 유물인 '뿅망치'로 당신과 함께 뽀끄루 대마왕에 맞서겠어요"

"고대유물이라니.. 얼마나 강한 무기인 거죠?"

신기한 눈빛으로 당장이라도 뿅망치를 만질 듯 한 걸음 내딛는 백토에 레프리콘이 당황해 물러서자 노움2019가 나섰다.

그녀의 중저음의 목소리는 요란하게 울리는 사이렌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목표 대상을 10번 타격하면 상대방을 정화해버리는 정화의 망치랍니다매지컬 여신님의 힘이 깃든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들었어요.

선한 이에게는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뽀끄루 대마왕은 힘들겠지만그의 부하들은 이 무기로 충분히 정화할 수 있을 거예요."

"매지컬 여신님이.."

백토가 무슨 말을 더하려던 찰나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이 위를 올라가면 뽀끄루 마왕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 낭비였다백토를 따라 같이 엘리베이터를 마법 소녀들의 표정은 다양했다진지한 표정이 대부분이었지만 몇 명은 울상이었다겁이 나는 거겠지

그런 모습에 백토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이들이 피를 흘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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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밝은 보름달 덕분에 갑판은 별다른 조명 없이도 바다에 반사되는 달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최소한의 연출 장치만을 설치한 그렘린들은 갑판 곳곳에 설치된 은폐호로 몸을 숨겼다.

"목표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승중앞으로 1분 후 도착."

"조명스탠바이."

"음향 시스템 정상작동 확인."

갑판에는 뽀끄루 대마왕과 그의 수하들을 맡은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인원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자력으로 날 수 있는 샌드걸들 외에는 먼저 나와 있던 레아의 힘으로 떠 있는 거라 자세가 살짝 어색했지만 뽀끄루 대마왕만큼은 정말 공중부양을 한 듯 의연한 모습이었다심약한 눈빛으로 벌벌 떨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그녀는 어제와는 다른 바이오로이드 같았다천하를 내려 다 보는듯한 눈빛과 사악한 미소는 그야말로 대마왕 그 자체였다.

"자 올라옵니다. 5.4.3.2.1. !"

"후후쥐새끼들이 여기 숨어있었군."

엘리베이터에서 올라온 백토에 맞춰서 뽀끄루가 말했다소녀 같은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차가운 목소리였다레아는 타이밍에 맞춰 떠 있는 뽀끄루 일행을 천천히 갑판으로 착륙시켰다기존의 복장 대신 어둡게 톤 다운된 복장과 뽀끄루와 비슷한 디자인의 뿔그리고 얼굴 전체를 다 가리는 ㅃ라는 마크가 새겨진 강시가 붙이는 부적 같은 디자인의 복면을 쓴 배우들은 망치 머리가 검은 뿅망치를 들고 있었다.

"매번 도망 다니다가 직접 찾아오다니이번에야말로 끝을 내주겠다 뽀끄루 대마왕!"

빠득빠득 이를 갈며 전투태세를 취하는 백토마법 소녀들도 저마다 뿅망치를 들고 진용을 갖췄다비웃는 표정으로 조명의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걸어 나온 뽀끄루는 들고 있던 채찍으로 바닥을 쳤다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너 같은 조무래기 하나 때문에 본좌가 도망 다녔겠느냐너를 미끼로 삼아 마법 소녀들의 본거지를 찾기 위해서였을 뿐이다너희들도 정화의 뿅망치를 손에 넣은 거 같지만.. 가소롭군타락의 뿅망치로 모두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트려 주도록 하지그리고 백토감히 주제도 모르고 본좌와 손속을 나누려 들다니우선 나의 부하부터 꺾어야 할 것이다."

뽀끄루의 뒤에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샬럿이 걸어 나왔다찬란한 금발을 한 가닥으로 묶어 말아 올린 샬럿은 레이피어로 어깨를 톡톡 치면서 여유로운 자세를 취했다

"마침 마법 소녀가 가장 강해지는 만월의 밤이군최대한 발버둥 쳐봐라그 어떤 반항도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그리고 받아들여라이 칠흑 같은 어둠을 말이다!!"

뽀끄루는 두 손을 하늘로 치켜올리고 크게 소리쳤다음향 장치의 도움을 받은 그녀의 목소리는 갑판 전체를 뒤흔들었다신들린듯한 그 연기에 모두 뽀끄루를 주목했다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으로 감탄하는 인원들도 있었다.

"멸망하는 것은 너희 마왕군이다!"

지지 않을 정도의 큰소리로 외치며 백토는 전기톱에 시동을 걸었다전기톱 소리에 트라우마가 생긴 뽀끄루였지만 연기할 때만큼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건지 정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오만한 눈빛으로 백토를 쳐다볼 뿐이었다그런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지 백토는 전기톱을 들고 돌진했다그와 동시에 마법 소녀와 마왕군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곧이어 전기톱과 레이피어가 부딪히는 소리그리고 뾱뾱 소리가 갑판을 가득 채웠다.

--

샬럿은 백토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도록 무자비한 공격을 시작부터 쏟아냈다군용 바이오로이드는 아니었지만전설적인 검호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그녀의 검술은 철충을 상대로 한 수많은 실전을 통해 궁극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백토가 기를 쓰고 전기톱을 휘둘러 보아도 샬럿의 낭창낭창한 레이피어는 그녀의 공격을 흘리고 부드럽게 공수전환하여 백토를 압박했다그야말로 유능제강의 극치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말을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었다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백토는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었다이 강함은 무엇이지예전에 싸워봤던 사천왕보다도 강한 이 압도적인 무력은 뭐란 말이야!

백토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상황이 달랐다무기가 아닌 뿅망치를 든 바이오로이드들은 숙소에서 가끔 하는 베개 싸움처럼 즐겁게 망치를 휘둘렀다백토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입으로는 매지컬먹어랏정화돼랏타락해랏등의 대사를 외치고 있었지만 대부분 싱글벙글 웃으며 상대방을 뾱뾱 때렸다물론 그 와중에도 게임을 하다 스스로 열이 받아서 씩씩거리는 사람이 있는 거처럼 죽자고 달려드는 인원들도 있었다뾱대신 빡하는 소리도 가끔 들렸고망치 머리가 아니라 손잡이에 머리를 맞고 쭈그려 머리 쓰다듬거나그런 상대방에 당황해서 안아주는 등 전투는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모모도 카타나 대신 레아와 같이 뿅망치를 휘두르면서 사령관이 걸어 나올 엘리베이터 쪽을 쳐다보았다조금 있으면 사령관이 걸어 나오고 뽀끄루 마왕의 연출로 소강상태가 될 것이다전용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니터로 상황을 체크하던 사령관은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눌렀다그다지 웃긴 상황은 아니었지만갑판 가득히 퍼지는 뾱소리에 씰룩이는 입꼬리를 애써 참으며 사령관은 신호를 보냈다뽀끄루는 사인을 놓치지 않고 몸 주위에 헬인페르노를 두르며 외쳤다!

"이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냐 마법 소녀!"

뽀끄루의 대사에 맞춰 배우들은 서로의 진영으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샬럿도 왼쪽 옆구리로 찔러오는 전기톱을 몸을 한 바퀴 회전 시켜 피하고는 회전력을 그대로 실어 돌려차기를 뽀끄루의 왼쪽 팔뚝에 날렸다묵직한 타격에 백토가 밀려 나가자 뽀끄루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헬 인페르노를 길게 뿌려 마법 소녀 진영과 마왕군 진영을 분단시켰다.

"이게 최선이냐정말 애처로울 뿐이군."

".."

"오랜만이군뽀끄루."

"매직 젠틀맨?!"

안경을 치켜올리며 사령관은 천천히 걸어 나왔다갑작스러운 매직 젠틀맨의 등장에 백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이곳은 위험해매직 젠틀맨!"

"네놈이 바로 매직 젠틀맨이군본좌에게 목을 바치러 스스로 나타난 것이냐 후후."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나 뽀끄루아니매지컬 뽀끄루."

사령관은 천천히 안경을 벗고 뽀끄루를 쳐다봤다생각보다 몰입이 되었는지 그는 슬픔이 섞인 표정을 잘 연기해내고 있었다그의 말에 어이가 없는 듯 콧방귀를 끼며 뽀끄루는 칼날 같은 눈빛으로 사령관을 노려보았다.

"그 비루한 목숨이라도 보전하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지껄이나 본데.."

"마법 소녀 매지컬 뽀끄루이걸 보고도 정말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냐!"

품속에서 태블릿을 꺼낸 사령관은 사진 하나를 화면을 띄웠다그 화면 속에는 모모와 같은 복장을 한 뽀끄루의 모습이 있었다사진 속의 뽀끄루는 환한 얼굴로 화면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물론 며칠 전에 찍은 사진이었다그런걸 알 턱이 없는 백토는 완전히 혼란에 휩싸인 얼굴로 화면과 뽀끄루를 번갈아 쳐다보았다얼마나 고개를 돌려대는지 목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뽀끄루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쳐다보다 버럭 성을 냈다.

"그딴 조작된 사진으로 감히 본좌를 능멸하려 들어!! 가만두지 않겠다헬 인페르노!!!"

검붉은 화염 덩어리가 백토를 스쳐 날아갔다아차 싶은 백토가 막으려 등을 돌렸지만 불덩이는 빠른 속도로 사령관을 향해 쇄도했다백토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안돼!!!!!!!!!!!"

좋아완벽한 연출이다이제 여기서 숨어있던 아자젤이 보호막으로 이 공격을 막아주고 나타나면 거의 성공이나 다름없다사령관은 날아오는 불덩이를 보며 미소지었다.

--

몇 분 전.

"바이오로이드무슨 근심이라도 있습니까?"

아자젤과 함께 걷는 팬텀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한 친구 하나 없는 팬텀은 작전 내용을 전해 들은 후부터 며칠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퀭한 얼굴로 아자젤의 질문에 답했다다행히 말은 나왔다.

"..그런것은 없다작전이 잘 될지 걱정이 될 뿐이다."

아 너무 차갑게 말한 거 아닐까될 뿐이에요로 할걸 그랬나 아니면 조금 과감하게 될뿐이야로왜 나는 자꾸 말이 다로 끝나는 거지팬텀을 조금 전 대화를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망토를 만지작거렸다평소보다 길게 늘어진 망토는 꽤 무거웠다아자젤이 여신처럼 등장하기 위해선 마치 하늘에서 나타난 듯 보여야 했기에 사령관은 오르카호 앞부분에 위치한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그녀의 등장 계획을 세웠다그리고 만전을 기하기 위해 팬텀의 스텔스 망토를 이용팬텀의 임무는 아자젤을 자신의 망토 안으로 들여 보자기처럼 감싸 백토가 모르게 오르카 호의 등지느러미 부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그곳에 그녀가 어느 정도 하늘로 떠오르면 자신만 싹 빠져서 물러나면 되는 간단한 임무였지만 팬텀은 초흥분 상태였다아자젤과 함께 망토 안에 꼭 붙어있어야 한다니친구를 사귈 절호의 찬스 아닐까몸을 비비면 없던 정도 생긴다고 하던데나도 드디어 처음으로 친구를..

"이상하네요.."

"?"

아자젤은 엘리베이터의 콘솔을 가르켰다. 4층에 있어야 할 엘리베이터는 누가 이용하는지 상승 중이었다화들짝 놀라 시간을 확인한 팬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대로는 시간에 맞출 수 없다!아자젤의 보호막이 없으면 사령관은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자젤의 손을 잡아끌고 팬텀을 미친 듯이 달렸다기대하던 첫 스킨쉽이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

불꽃은 보호막이 펼쳐져야 할 위치를 지나 사령관에게 계속 날아갔다화들짝 놀란 사령관은 몸을 왼쪽으로 던져 간신히 불꽃을 피했다사령관을 살짝 스친 불꽃은 폭발과 함께 불씨를 사방에 날렸다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전부 당황해서 얼어붙었지만백토는 아니었다얼빠진 표정으로 불꽃을 바라보던 뽀끄루는 고개를 휙 돌리는 백토의 모습에 황급히 표정을 고쳤다금세 냉엄한 표정을 지은 뽀끄루는 채찍을 다시 휘둘렀다.

"그딴 속임수에 본좌가 넘어갈 것 같으냐!"

"감히 매직 젠틀맨을!"

마침 진영을 갈라놨던 불꽃이 사그라들었다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오른 백토는 다시 달려들었다.샬럿이 황급히 나와서 백토와 손속을 겨루기 시작했다아까보다 더욱더 험악한 기세에 샬럿은 눈살을 찌푸렸다그 모습에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눈치를 보며 다시 뿅망치를 들어 올렸다갑판은 다시 뾱뾱소리가 울려 퍼졌다.

"앗뜨뜨,,"

불이 붙은 바짓단을 손으로 탁탁 털어내며 사령관은 마이크의 채널을 바꿨다.

"아자젤 어딨어?!"

뾱뾱 소리를 뚫고 팬텀의 목소리가 들어왔다그녀는 몹시 당황한 모양인지 하이톤의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누가 사용하고 있었어요지금 다른 엘리베이터를 찾아서 이동 중이에요!"

"빨리 와!"

도대체 누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거지다른 인원들은 다 숙소에서 지금 이 상황을 시청하고 있을 텐데.. 사령관은 아직도 불타고 있는 뽀끄루의 화염을 쳐다보고 몸을 떨었다피하지 않았으면 숯덩이가 됐을 것이다그는 두 뺨을 소리 나게 짝 때리고 걸음을 옮겼다화물용 엘리베이터에 뭐가 탔는지 확인해봐야겠다계획이 어그러질 수도 있었다그러나 사령관은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큭 감히 이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처소를 소란스럽게 하다니."

오르카 호의 등지느러미 레이더 탑 위에 서 있는 형체를 조명이 비췄다날개를 한껏 펼친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괴조 같은 모습의 로크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그의 어깨 위에는 LRL이 같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LRL!!"

사령관이 손까지 흔들며 그녀를 불러보았지만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LRL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마이크를 들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평범한 필멸자 주제에 감히 주제도 모르고 나의 안식을 방해하다니그 죄는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하다나의 권속인 창공의 날개 로크와 함께 너희들을 벌하겠노라!"

말을 마친 LRL는 안대를 들어 올렸다엄청난 빛의 광선이 오르카 호의 갑판을 휩쓸었다.

 

--

"나타났어요뽀끄루 대마왕과 그의 부하들 4시 방향 출현!"

"뽀끄루 대마왕!"

소완 몰래 주방에 숨어들어 참치캔을 까던 LRL은 함 내에 울린 모모의 경보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무릎 위에 올려놨던 참치캔이 떨어져 살코기가 데구루루 굴러갔지만 그런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얼마 전 백토를 만나 뽀끄루 대마왕의 위험성과 그 사악한 계획에 대해 단단한 주입받은 LRL은 생애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그런데 그런 존재가 공격을 오다니오르카 호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물론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인 자신이 나서면 될 일이긴 하지만 백토의 묘사에 의하면 뽀끄루 대마왕은 너무나도 강력하고 사악했다마법 소녀들을 잡아 이런저런 고문을 행했다던 백토의 말이 생각난 LRL은 목덜미에 돋은 소름을 문질렀다자신도 붙잡히게 된다면.. 불길한 상상을 지워버리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LRL은 용살자의 도끼를 양손에 품었다용살자인 자신이라면 대마왕이라도 참살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첫 번째 권속에게도 이름을 날릴 기회를 줘야 하니까..

엘리베이터를 탄 LRL이 내린 곳은 화물실 옆에 붙어있는 AGS 수복실이었다이곳에는 얼마 전에 자신이 권속으로 삼은 존재가 기거하고 있었다붉은 눈의 사신창공의 지배자!

"무슨 일이십니까 레이디 드레곤슬레이어."

문을 열고 뛰어온 LRL을 맞이하며 로크가 질문했다그는 수복실 베드에 앉아 다리를 꼰 채 검은 날개를 쓰다듬고 있었다얼마 전의 미사일 탈취 작전에서 신체를 잃은 로크는 설계도와 기억을 오르카 호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해놨기에 닥터와 포츈의 작업으로 완전히 새로운 몸을 얻고 다시 태어났다에너지컨버터의 개조를 위해 아직 수복실에 거주하고 있는 상태인 그는 흠집 하나 없는 새로운 몸이 마음에 드는지 포츈의 공구함을 뒤적거려 광택을 내거나 WD-40으로 윤활을 하는 등 지극정성이었다앙헬 공의 무덤에서 벗어난 뒤 워울프에 소개로 만나게 된 LRL은 그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자신을 사이클롭스 프린세스라 칭하는 그녀는 또한 용살자라고 했다그 용이 블랙리버 최고의 역작 '무적의 용'이라고 착각한 그는 자신이 앙헬 공의 무덤을 지키는 동안 바이오로이드 공학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감탄하며 LRL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라고 인정했다자기를 권속으로 여기는 것은 조금 불만이었지만 저 작은 몸으로 무적의 용을 물리쳤다는 것에 경의를 표해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가끔 보이는 어린애 같은 모습도 일종의 유희라고 단단히 착각한 것이다.

숨을 헐떡이던 그녀는 턱밑에 맺힌 땀을 닦으며 허리를 폈다.

"나의 첫 번째 권속이자 창공의 지배자인 로크여뽀끄루 대마왕이 오르카 호에 강림했다나와 함께 짐의 처소를 어지럽히는 자를 벌하지 않겠느냐?"

"그것참 큰일이군요.."

뽀끄루 대마왕은 마법 소녀 매지컬 모모에 나오는 가상의 인물일 텐데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본 로크는 의아했지만 일단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이것도 하나의 여흥이니 즐기시게 놔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갑판으로 함께 가도록 하죠레이디."

--

"로크에게 이번 계획 파일 업로드시켜!"

오퍼레이터 룸에 메시지를 전한 사령관은 더듬더듬 거려 겨우 손에 잡은 마이크의 채널을 미친 듯이 돌렸다눈을 감고 있었지만아직도 눈앞이 밝은 상태였다왜 로크랑 LRL이 이 자리에 나타난 걸까 잠시 생각하던 사령관은 이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로크가 있는 AGS 수복실에는 스피커가 없다는 것이 생각난 것이다로크가 저번 미사일 탈취 작전에서 소멸한 뒤 재생산하는 동안 AGS 수복실에 LRL이 자주 놀러 간다는 건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다2병 말기인 LRL과 로크는 의외로 쿵짝이 잘 맞는지 자주 붙어 있었다아마 LRL이 백토에게 뽀끄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혼자 착각해서 로크를 꼬신 거겠지.

"로크?! 들려??"

로크와의 통신 채널을 찾은 사령관은 속삭이며 외쳤다저 위에서 로크도 한 판 하려는지 LRL을 내려놓고 몸에서 전류를 뿜어내고 있었다로크의 공격을 바이오로이드가 맞는다면 결코 짜릿한 수준으로는 안 끝날 것이 자명했다.

"각하?"

다행히 로크가 응답했다그가 전격을 쏘기 전에 사령관은 마치 랩을 하듯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일종의 연극이야지금 전송한 파일을 읽어봐!"

"역시 그렇군요레이디가 뭔가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몇 초가 지난 뒤 로크가 대답했다다행히 LRL에게서 중2병을 옮아버린 게 아니구나사령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시했다.

"LRL을 데리고 다시 돌아가 줘뽀끄루에 대한 건 대충 설명해주고."

"알겠습니다각하."

대화를 마친 로크는 전류를 뿜어내며 외쳤다거대한 번개 줄기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이건 경고일 뿐이다더 이상 레이디 드래곤슬레이어의 안식을 방해하지 마라!"

로크의 말이 마침과 동시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옆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던 LRL은 뿜어져 나온 번개와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굳어버렸다넋이 나간 LRL을 다시 어깨 위로 태운 로크는 레이더 탑에서 오르카 호의 앞부분으로 날개를 펼치고 뛰어내렸다.

"?? 뽀끄루 대마왕은~아악!"

LRL의 비명이 멀어져갔다한 건 해결한 사령관은 눈을 거칠게 문지르며 가늘게 떴다조금씩 시야가 회복됐다한껏 눈을 찡그린 사령관의 시선이 백토에게로 향했다.

--

마법 소녀 진영 등 뒤에서 터져 나온 빛은 갑판을 훤히 밝혔다등대 대용으로 쓰이던 LRL이니 만큼 근거리에 꽂힌 광량은 어마어마했다샬럿은 갑작스러운 빛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백토의 맹공격이 시작됐다초인적인 감각으로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그녀는 강하게 공격을 내질러 백토를 물러서게 했다톱날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는지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가장 심하게 다친 건 귓불이었다반쯤 찢어진 귓불에서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호흡을 조절한 샬롯은 다시 자세를 취했다아직 시야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아자젤이 안 나타나는걸 보니 계획의 차질이 생긴 모양이지만 시간을 좀 더 끌면 해결될 것이다.

그때 로크의 외침과 함께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이건 경고일 뿐이다더 이상 레이디 드래곤슬레이어의 안식을 방해하지 마라!"

운이 없게도 로크가 쏜 번갯불은 겨우 회복되어 가는 샬럿의 망막에 거대한 잔상을 남겼다멈칫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은 백토의 공격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레이피어를 잡은 샬럿의 아래팔과 팔꿈치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황급히 왼손으로 피스톨을 꺼내 들어 달려드는 백토의 발 밑에 위협 사격을 날린 샬럿은 겨우 거리를 벌린 후다시 레이피어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갈가리 찢긴 근육은 주인의 명령을 도무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피가 후드득 떨어져 허벅지와 갑판을 적셨다위협 사격에 잠시 주춤했던 백토는 다시 매지컬 핑크 문라이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생각지도 못한 유혈 사태에 당황한 스틸라인 쪽 배우들의 고성과 정통으로 빛을 받은 마왕군 배우들의 비명이 주변을 가득 채웠지만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등 뒤에서 터져 나온 빛 때문에 코 아래로만 보이는 백토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올랐다갑자기 나타난 그 둘이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뽀끄루 마왕을 찢어버린 다음 시시비비를 가리면 되니까역시 정의는 승리하는 거야속으로 그 말을 되뇌며 백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얼굴에 점점이 흩뿌려진 피를 닦을 생각도 안 하고 붉은 눈을 반짝이며 미소짓는 그 표정에서 마법 소녀의 모습은 나이트앤젤의 가슴처럼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끝장을 내주마.."

왼손으로 레이피어를 옮겨 잡은 샬럿은 격통에 인상을 찡그렸다단순한 자상은 꽤 겪어보았지만전기톱에 팔이 갈려 나가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그러나 그 고통보다도 문재인 건 출혈이었다공격을 당한 지 몇 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이대로라면 당장 다음에 닥쳐올 공격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리라슬쩍 고개를 돌려 뽀끄루를 쳐다보았다그녀도 빛을 정통으로 맞았는지 눈을 감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그 와중에도 팔짱을 풀지 않고 꼿꼿이 서 있는 게 대단했다그 심약했던 바이오로이드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전기톱 소리가 가까워졌다왜 뽀끄루가 트라우마에 걸렸는지 알 것 같았다샬롯은 이를 악물고 레이피어를 내질렀지만평소에 쓰지 않던 팔이라는 핸디캡과 막대한 출혈 때문에 곧 수세에 몰렸다백토의 공격을 받아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던 샬럿은 결국 자신이 만든 피 웅덩이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백토가 전기톱을 높게 쳐들었다.

"안돼!!!!!!"

겨우 상황을 파악한 사령관이 소리쳤다아무리 수복기술이 발달했다고 쳐도 두 동강이 나면 절대 회복할 수 없다합류 이후 사망자를 낸 적이 없는 사령관은 이런 식으로 바이오로이드를 잃고 싶지 않았다.

"아악!"

하늘 높이 들어 올린 백토의 전기톱으로 낙뢰가 떨어졌다갑작스런 공격에 백토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전신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경련을 일으키는 근육 때문에 겨우 입을 뗀 백토는 자신과 샬럿 사이를 가로막은 인물을 바라보며 힘겹게 외쳤다.

"세뇌당하고 만 것이냐매지컬 레아!"

백토의 앞에는 멍한 표정을 한 레아가 서 있었다그녀의 공허한 눈빛으로 백토를 바라보았다.

"뽀끄루 대마왕님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자이십니다저와 함께 마의 장막에 들어가도록 해요백토씨심연이 우리를 맞이할 거에요.."

"후후후보았느냐 백토짐의 마력 앞에서는 마법 소녀도 무력할 뿐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읽은 뽀끄루가 타이밍 좋게 치고 나왔다차가운 표정으로 곁에 있는 님프에게 샬럿의 응급처치를 지시한 뽀끄루는 진통제를 맞고 들것에 실려 후방으로 빠지는 샬럿을 쳐다보다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목소리엔 분노가 실려 있었다.

"감히 본좌의 수하를 저 꼴로 만들다니.. 갈기갈기 찢어발겨 주마레아!"

"존명!"

레아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드론을 이용해 낙뢰 공격을 가했다쉬지 않고 몰아치는 공격에 백토는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조차 없었다잘못 공격했다가는 드론이 만들어낸 역장에 그대로 감전당할 것이 뻔했다아군일 때는 든든했지만적으로 상대하려니 너무나 까다로웠다.

"아자젤 올라오면 바로 이벤트 진행해!"

팬텀에 연락한 사령관은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얼마나 세게 쥐고 있었는지 피가 안 통해 하얗게 된 손을 주물럭거리며 사령관은 자신을 책망했다조금 더 변수를 줄였어야 했다. LRL을 페로나 콘스탄차를 시켜 감시해야 했었는데.. 피투성이가 된샬럿을 떠올린 사령관은 레아와 싸우고 있는 백토를 쳐다보았다일부러 한 것은 아니었지만 분노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백토는 이런 사령관의 속도 모르고 레아의 공격을 피하는 데 온 힘을 다 쏟고 있었다로크와는 다른 푸른 번개를 백토에게 뿜어내는 레아로 시선을 옮긴 사령관은 평소와는 다른 멍한 눈빛을 한 레아의 연기에 감탄했다레아가 세뇌당한 척을 해서 샬럿도 구하고 연극도 끝나지 않게 되었다저번 미사일 탈취 사건 때부터 늘 도움만 받는데 제대로 된 보답도 못 해준 것이 떠올랐다손해 보는 성격이라 저번 작전에 대한 포상도 마지막을 자처해서 아직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이번 일이 끝나면 종일 전심전력으로 사랑해줘야겠다고 속으로 결심한 사령관의 귀로 팬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자젤 지정된 위치로 왔습니다시작합니다."

--

"눈을 떠요매지컬 레아!"

"소용없다그녀는 완전히 타락해버렸으니까!"

백토는 미칠 것 같았다겨우 한 명 물리쳤다 싶었는데 이번엔 배신자라니이대로는 절대 뽀끄루에 닿을 수 없었다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수밖에 없다감전당하는 걸 감수하더라도 레아를 도륙 내야 했다훌쩍 뛰어 거리를 벌린 백토는 숨을 고르며 전기톱을 꽉 잡았다.

"싸움을 멈추세요"

갑판 전체에 성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두리번거리며 목소리의 근원을 찾던 백토는 고개를 들었다.

"매지컬..여신님?"

평소 입는 복장이 아닌 하늘하늘한 실크 드레스를 입은 아자젤이 공중에 떠 있었다설정 집에 있는 매지컬 여신의 의상 그대로 맞춰 입고 때맞춰 켜진 조명을 받은 아자젤은 그야말로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여신 그 자체였다순백의 날개를 펄럭이며 아자젤은 말을 이었다.

"매지컬 뽀끄루나의 첫 번째 마법 소녀다크 아이언의 손아귀에 떨어져 버린 어린 양이여."

"그럴 리가 없다본좌는 사악한 밤의 여왕이자 달 없는 밤의 지배자인 대마왕 뽀끄루다!"

"떠올리세요그 순수했던 마법 소녀 시절을다크 아이언의 세뇌에서 벗어나는 겁니다매지컬 홀리라이트!"

아자젤의 손에서 반짝이는 빛의 결정이 뿜어져 나와 뽀끄루의 몸을 감쌌다자신을 감싸는 빛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뽀끄루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듣는 이가 섬뜩할 정도의 비명이었다.

"아냐틀려나는 대마왕..뽀끄루...!"

괴로워하던 뽀끄루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미약한 신음만을 흘리며 망부석처럼 굳어 있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연기하던 차가운 눈빛이 아닌 평소의 순박한 뽀끄루의 눈빛이었다.

"매지컬 여신님?"

"뽀끄루."

"제가..그동안.....무무무무..무슌짓을.. 아악...머리가!! 뿔이..!!"

"뽀끄루 씨뽀끄루 씨의 머리에 달린 뿔이 세뇌 장치였군요제가 구해드리겠어요매지컬 모모!"

빠른 속도로 날아온 모모가 허리춤에 달린 카타나를 발도했다고개를 숙이고 있던 뽀끄루를 스쳐 지나간 모모는 카타나를 납도 하며 조용히 말했다.

"찬바라."

모모의 말과 동시에 뽀끄루의 뿔이 두 동강이 나며 갑판에 떨어졌다철커덩 소리와 맞춰 마왕군을 연기한 배우들과 뽀끄루는 비명을 질렀다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백토는 아직도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백토의 손을 땅에 내려온 아자젤이 감싸 쥐었다흠칫 놀란 백토가 손을 빼내려 했지만아자젤의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해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아자젤은 따뜻한 눈빛으로 백토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으로 백토의 손을 살살 문질러주었다.

"뽀끄루는 매지컬 모모 이전제가 최초로 창조한 마법 소녀였습니다다크 아이언에 맞서 용감히 싸웠지만 결국 사로잡혀 세뇌당하고 말았죠이에 저는 혼자서는 다크 아이언이 세계말로는 철충들에게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마법 소녀들을 창조했답니다."

"그랬군요.. 전혀 몰랐어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백토가 혼란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자 아자젤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끌어당겼다아자젤의 품에 안긴 백토는 그녀의 온기에 굳어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살며시 눈을 감은 백토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아자젤은 속삭였다.

"앞으로 매지컬 뽀끄루와 힘을 합쳐 철충들을 물리치고 세상을 되찾는데 도와주세요."

"목숨을 바쳐서 해내겠습니다!"

"고마워요."

생긋 웃은 아자젤은 백토에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날린 뒤 날개를 펄럭여 공중으로 떠올랐다갑판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아자젤을 향했다.

"다크 아이언의 야욕을 막고 이 땅에 사랑과 평화를 되찾아주세요."

눈이 멀듯한 섬광이 아자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감았던 눈을 뜬 백토는 사라진 아자젤이 있던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홀리라이트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절대 악에 굴복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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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샬럿 씨는 괜찮으신 거죠?"

"곧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거야."

"정말 다행이네요진짜 샬럿 씨에게서 피가 뿜어져 나왔을 때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제가 막았어야 하는데.. 정말 부끄럽네요."

"그동안 시달린 게 있잖아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지 그래도 레아가 타이밍이 좋게 잘 나와줘서 다행이야연기 잘하더라오늘 밤은 그 복장으로.. 알지?"

"아이부끄럽네요..."

마시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레아가 빙긋 웃음 지었다페어리 시리즈들이 담당하는 정원에서 세 명은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정원 천장에 설치된 에어컨에서 바람이 불어와 머릿결을 흐트러트렸다연극은 대성공이었다백토는 아자젤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가 더 이상 뽀끄루를 죽이겠다고 쫓아다니지 않았다자꾸 철충을 물리치러 가자고 그녀를 성가시게 했지만바로 지금처럼.

"매지컬 뽀끄루왜 아직도 그 차림인 거지?!"

차를 마시던 세 명에게 다가온 백토는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따지듯이 말했다덕 테이프로 붙인 뿔을 만지작거리며 뽀끄루는 백토의 질문에 진지한 어투로 대답했다.

"이 옷차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세뇌당해 죄를 저지른 과거의 저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서예요다크 아이언이 모두 사라지고 속죄가 끝나면 벗겠습니다."

"과연..그런건가그건 그렇고 당신 휘하의 사천왕은 어떻게 할 거지?"

"사천왕?"

들었던 거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령관의 귓가에 입을 가져간 뽀끄루가 속삭였다.

"제 부하역을 하던 배우들인데.. 그중 3명이 백토씨처럼 과몰입 상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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