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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팀 내에서 나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하곤 했다. "사사건건 잔소리하고 챙겨주는 게 꼭 엄마 같다."고 말하는 드라코의 말을 듣고 바이오로이드가 가족을 가진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며 그녀를 나무랐다. 그래도 내심 그녀들의 '엄마' 소리가 기분이 좋았다


그녀들은 그 이후에도 나를 계속해서 엄마라고 불렀다. 몇 번 주의를 시켰는데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엄마란 소리에 나는 포기 반 긍정 반의 태도를 보이며 어물쩍 그녀들이 나에게 붙인 이 명칭을 긍정했다


한번, 두 번. 그들이 나를 엄마로 대할 때마다 나와 그녀들의 사이는 가까워졌다. 은근히 나를 꺼리던 핀토도 곧잘 나와 가까워졌다. 나 또한 그녀들을 '우리 애들'이라고 불렀다. 그들과 나의 모습이 자식과 부모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며 놀리는 사령관님의 말에 조금 얼굴을 붉히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내 모습을 보곤 킥킥거리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 실없이 나도 웃고 말았다


그대로였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행복은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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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흑 속에 있다. 더없이 검고 깊은 암흑. 그 속에서 나는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누구를 보고 싶지 않은 것인지, 얼굴을 무릎에 처박고 오들오들 떨고만 있다


이윽고 손 하나가 내 어깨를 잡는다. 작고 부드러웠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웠다.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깨는 빠질 듯 아프다. 그렇지만 그 손의 주인을 난 두려워했다. 얼굴을 최대한 숙이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이제는 또 다른 손이 허리를 감싼다. 아까와 같은 포근하고도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온 감각이 허리를 타고 척추를 거쳐 머리에 닿는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이번에는 손이 목을 두른다. 다음에는 팔, 다음에는 다리, 다음에는, 다음에, 다음, , .


"엄마 나 추워."


공간이 밝아지고 어둠이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전과는 다른 분위기에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올린 고개의 바로 앞에는 미호가, 핀토가, 드라코가, 불가사리가 앉아 있었다. 춥다고 말하며 오들오들 떠는 그들을 보며 왈칵 눈물이 나왔다. "우리 애들, 추워서 어떡하니"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애들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었다. 손이 그들에게 닿고 그들은 뒤돌았다. 그들은, 그들은.


"엄마아파"


"엄마."


""


""


"씨발년, 지랄도 정도껏 해라. 네 새끼 다 뒤졌다. 씨발년아."


괴상하게 뒤틀린 아이들의 얼굴과 그것을 보고 놀라는 나, 그리고 그것을 마치 유흥거리라도 되는 양 조롱하는 그의 목소리가 한곳에 뒤섞였다


공간이 뒤섞이고 무너지고, 바스러지고, 최후에는 작은 한 줌만이 남았을 때, 그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히 들렸다


"네가 엄마냐? 멍청한 년들 사지로 몰아넣은 네가?"


이윽고 그의 얼굴과 내 얼굴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다가서고 그의 말이 귓전을 때린다


나는 절규했다.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이윽고 정신이 다시 든 것은 분명히 어제 잠자리에 들었던 내 방이 아닌, 수복실이었다.

 

**

침대에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앎은 소리를 내고 있는 다양한 바이오로이드였다. 각각의 이유와 상처로 누워 있는 그녀들이 안쓰러웠지만, 그럼에도 아직 그들이 살아있음이 부럽게 느껴졌다


"정신이 들어 언니?"


수심에 찬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목을 돌렸다. 시선은 한곳으로 자그마하게 집중되었다. 닥터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한숨만 푹 내쉬었다


"언니 솔직하게 말해. 처방해 준 수면제 몇 알 털어 넣었어?"


나를 올려다보는 닥터에게 나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것이 무언의 신호라도 되었는지 닥터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언니가 계속 그러면, 나는 더는 수면제를 줄 수 없어." 닥터의 그 말에 나는 서둘러 이실직고했다. 닥터는 경악하며 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언니 미쳤어? 그건 일반적인 수면제가 아니야 '바이오로이드에게 최적화된 수면제'라고! 일반적인 수면제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수면제인데, 그걸 10알이나 털어 넣어? 언니, 당장 그만둬!"


나는 그렇게 소리치는 닥터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꿀 먹은 벙어리마냥, 고개를 숙이고 대꾸도 하지 않으며,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언니는 죽어도 괜찮은 거야?" 닥터는 나에게 물었다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닥터는 그런 내 생각마저 읽은 모양인지 나에게 말했다. "몽구스 팀의 와해는 언니 책임이 아니야." 순간 표독스럽게 솟구쳐 오르는 그날의 기억이, 감정이 떠올라버렸다. "네가 뭘 알아!" 나를 보는 닥터에게 소리쳤다.


울 자격이 없음에도 꼴사납게 울면서, 나는 소리쳤다.

 

**

작전관. 한 팀을 이끄는 위치에 있었지만 소위 '지휘관'이라는 자들과 동등한 힘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들과 비교해서 나는 항상 한 발짝 뒤에 있었고, 그 때문에 은근히 무시당하는 경우도, 나의 의견이 무시되는 경우도 다분했다


새로운 인간을 사령관으로 추대한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나는 무기력했고 무가치했으며, 무능력했다


나의 무능과 무력의 대가를 확인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그 괴물의 본색을 드러내자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애들이었다


철충도 아닌 같은 바이오로이드를, 그것도 아무런 죄도 없는 바이오로이드를 제압해야만 했다. 포승줄에 엮이며 "살려주세요! 난 죽기 싫어! 그 지옥 같은 곳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라고 울부짖음을 나는 애써 무시하며 나는 괴물의 아가리로 그들을 밀어 넣었다. 새어나오는 비명과 울음소리가 자신의 아이들이 아님에 안도했고 어딘가 망가진 채로 실려 나오는 그들을 보며 저 모습이 우리 애들이 아니라는 것에 시름을 놓았다. 정작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는 것은 외면이 아닌, 내면이라는 것을 나는 멍청하게도 알지 못했다


그날은 사령관이 켈베로스의 부관을 임명한 날이었다. 덜덜 떠는 그녀를 사령관에게 밀어 넣는 것은 어김 없이 우리의 몫이었다. 우리는 무장을 했다


사령관은 자신에게 부관을 '제압'해서 데리고 오기를 바랐다. 이번에도 다름이 없었다. 우리는 그녀를 반항하는 그녀를 몰아넣고 미호가 팔과 다리를 저격하여 마무리한다. 늘 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의 저격이 머리를 향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흔들리는 것은 총소리였던 것일까, 쓰러지며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며 눈빛이 흔들리는 미호였던 것일까, 아님 이 모든 것을 보고 있던 나의 정신이었던 것일까.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털썩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주위가 피 웅덩이가 되었다. 곳곳에서 비명이 나왔다


미호는 그저 주저앉을 뿐이었다.

 

**

"쌍년아. 네 망할 년 때문에 내 소중한 애를 못 쓰게 되어버렸잖아. 어떻게 할 꺼야?" 


그렇게 이야기하는 말과는 다르게 입은 아주 즐거운 것을 찾았다는 듯 히죽거리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괴물의 모습이었다


", 상관없어. 그딴 년 다시 만들면 그만이야."


싱겁게 앉아버리는 모습에 안심하는 찰나 그는 내 멱살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내가 조금 빡쳐서 말이야. 머리통에 총 쏴 갈긴 그년이 팔다리 멀쩡한 꼴로 다니는 건 내가 용납을 못 하겠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는 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를 데리고 오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나는 두려워졌다. 미호가 그와 같은 방에서 어떤 짓을 당할지 몰랐다. 찢어지도록 웃고 있는 그의 입과, 반대로 미친 듯이 살기를 내뿜고 있는 그의 눈을 보며 나는 곧 다가올 미호의 끝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서움에 떨면서도 나는 그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머리를 처박고 그에게 간청했다. "사령관님, 제발 그녀만은 처벌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는 나의 간청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발길을 돌려 직접 찾아간다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작전관으로서 작전의 안전 여부를 판단하고 실행한 것은 자신이니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느니, '그 상황에서 버둥거리는 상대의 팔을 저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느니 하는 변명으로 입을 놀렸지만, 그를 멈추기에는 부족했다


귀찮다며 걷어차인 나는 벽에 부딪히며 널브러졌다. 등을 타고 고통이 올라왔다. 내가 신음하는 사이 그는 이미 방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령관님 뭐든지 하겠습니다! 뭐든지할 테니까제발"


최후의 발악으로 뱉어낸 그 말에 그의 발이 멈추었다. 그는 뒤돌며 나에게 말했다


"뭐든지?"


", 뭐든지!" 나의 말에 그는 더욱 찢어지게 웃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악마와 같아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씨발 새끼. 지금 보니 존나 꼴리게 생겼네. 좋아, 그럼 내기하자."


악마는 나에게 거부할 수 없는 내기를 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

그 뒤로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당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 악마의 말에 따라야 했다.


더욱 악질이었던 것은 그가 나를 이용해 육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바이오로이드를 잡아오게 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우리 애들을 제외한 다른 팀의 팀원들을 잡아오라고 시켰고 내가 죄책감에 머뭇거리고 있을 때면 그는 항상 나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 네가 그러니까, 네 애도 무시당하는 거야. 애초에 걔들 대장이 너 은근히 무시하던데, 열 받지 않아?"


마음속 깊이 막아놓았던 작은 소리가 슬금슬금 머리를 들어낸다


"그리고, 계속 이렇게만 하면 너희 애들은 안전할 거라니까?"


그리고 그 악마는 그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악마의 속삭임은 감언이설이 되어 계속, 계속 마음의 소리를 키웠다


결국 그 소리가 마음 속 대부분을 자리 잡고 불만을 토로할 즘에 나는 악마의 말을 실행에 옮겼다. 첫 번째는 스카이 나이츠의 린트불룸이었다


처음 영문도 모른 채 비밀의 방에 납치된 린트블룸은 만연의 미소를 띠며 나를 보았지만, 곧이어 등장한 그의 모습에 사색이 된 채 떨고만 있었다


그는 그녀의 입을 막고 머리를 가렸다. 그녀는 버둥거렸지만, 그가 새로 제조한 켈베로스를 시켜 몽둥이로 세차게 몇 번 내려치자 체념한 듯 움직임이 멎었다.


", 마지막은 네가 선택해."


그는 쇠뇌 하나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원래의 내가 쓰던 바로 그것이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를 쳐다보자 그는 "죽일지 살릴지 네가 선택하는 거야." 라며 웃기만 했다


쇠뇌를 내려 그녀를 풀어주려는 찰나 그가 작게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풀어주면 다음은 드라코야." 작은 목소리였지만,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이었다.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품고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던 린트블룸을 향해 장전했다


쇠뇌가 발사되고 얼음 화살이 그녀의 머리에 한 발, 가슴에 한 발, 배에 한 발 적중했다. 그녀는 짐짓 부르르 떨더니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그는 정말 즐겁다는 듯 웃고만 있었다. 시체를 치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스카이 나이츠의 린트블룸이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오르카호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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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실종될수록, 그들에게 죽음을 줄 때도 이제는 처음과 달리 익숙해졌다. 양심이 따가운 것은 없지는 않았으나, 나는 '저 망할 사령관이 내리는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던 거야.' 라던지, '쟤들 대신에 우리 애들이 살 수 있어, 이건 불가항력이야.' 라던지 여러 가지 변명거리를 내세우며 모른 채 했다


나는 선택하고 죽인다. 그런 모습을 사령관을 지켜본다. 이런 짓을 한 달 동안만 하면 미호를 비롯한 우리 애들의 안전을 약속받는다. 그것뿐이었다


점점 오르카호의 인원들이 낌새를 눈치챈 것 같았다. 많은 인원이 사라진 탓이리라. 실종된 각 인원의 대장들은 그에게 달려가 불같이 화를 냈으나, '정신적 피로에 따른 고통호소로 무기를 반납하고 요양을 보냈다.'고 일축했다. 그걸 믿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어느덧 약속했던 마지막 날이었다. 늘 나에게 납치를 요구했던 그가 이번은 아무런 요구도 없었다. 단지 그가 데려온 새로운 켈베로스가 새파랗게 질린 채 부들거리며 내 앞에 버둥거리는 자루 하나를 던졌을 뿐이었다. 자루는 꽤 크기가 컸다. 몸집이 작다면 여러 명이 들어갈 수 있을만한 수준이었다


", 이번이 마지막이야. 여기 자루 보이지? 여기 안에 쌍년들이 여럿 들었지. 존나 씨발년들이지. 쟤들을 죽이든 살리든 해. 알지?"


"선택 잘하라고."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주저앉듯 앉았다. 버둥거리는 정도가 심한 것으로 봐서 여러 명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나는 저것이 마냥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씨발년아, 선택 잘해.' 그는 나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쇠뇌에 화살을 장전하고 머리라고 생각되는 쪽을 겨눈 뒤 화살을 쐈다.


화살이 박히고 버둥거림이 심해졌다. 장전을 다시 한 뒤 쏘았다. , , . 화살이 자루에 박힐수록 자루의 움직임은 둔해졌고 마침내 마지막 네발째의 화살이 맞는 순간 움직임은 멎었다


긴 한숨을 쉬고 땀을 닦았다. 그는 나를 보며 손뼉을 쳤다.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했다


"좋아. 포기할 줄 알았더니, 근성은 있네. 씨발년… 이제 안 건드릴 테니까 알아서 해."


그는 그 말만을 남기고 나갔다. 뒤의 켈베로스는 나를 경멸하듯 쳐다보며 자루를 질질 끌고 나갔다. “그와 내기를 했어요. 제가 졌네요.” 그녀가 나에게 남기는 말을 나는 흘려들었다


'이제 끝났어. 애들은 안전해.'


그녀가 어떤 내기를 하던 나에게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어떤 짓을 당하던 나와 애들이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실이 나는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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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사라졌다.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엄습하는 불길한 기분에 그에게 찾아가 이야기했지만, 그는 "팀원의 대장이라는 놈이 팀원이 어디 갔는지도 모르느냐며 나의 하소연을 일축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애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전부 생각했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그들의 실종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답답함을 걱정을 불렀고 걱정은 불안을 낳았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불안의 파도 속에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애들의 모습을 봤거나 흔적을 아는 이를 찾아서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될 수 있는 한 거의 모든 이를 찾아갔다. 어떤 이에게는 무릎을 꿇고 빌어도 보고 어떤 이에게는 멱살을 잡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미친 듯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들은 애들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만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 자루를 직접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켈베로스를 찾아갔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심하게 맞은 것인지 구타의 흔적이 몸 곳곳에 보였다. 그녀에게 다가서자 그녀는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 "당신도 그와 다를 게 없어요." 그녀의 말은 마음을 깊숙이 찔렀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제발 아니라고 말해주세요제발." 


나는 무력하게 빌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것이 자신을 이렇게 만든 나에게 보내는 조소인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의 처지에 대한 동정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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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이었다. 오르카호가 바닷속에서 부상하여 정비하는 기간이자, 묵혀왔던 쓰레기를 한 번에 버리는 날이기도 했던 이날에 범고래가 버린 쓰레기 더미를 나는 부리나케 뒤졌다. 그녀가 자루를 버린 곳이 이곳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튀어나오는 오물에 온몸을 더럽히고 때때로 뾰족한 것에 찔려 피가 나오기도 했으나 나는 쓰레기를 미친 듯 뒤지기만 했다


몇 시간이 흐르고 점점 빗줄기가 거세질 무렵, 나는 익숙하게 보았던 커다란 자루를 발견했다. 자루는 내용물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꽉 묶여 있었다. 잠깐의 순간이 한참처럼 흘렀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묶인 자루를 풀었다. 부디, 그녀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자루에서 먼저 튀어나온 것은 누군가의 팔이었다. 그 팔은 마치 미호의 팔처럼 희고 작았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누군가의 발이었다. 드라코가 신었던 신발과 비슷한 신발을 신은 발이었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누군가의 몸통이었다. 핀토가 이런 재킷을 입었었던 것을 기억했다. 머리칼이 나오고, 하반신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뒤져서 나온 것은 은은한 갈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던 누군가의 눈이었다. 마치, 불가사리의 눈동자 색과 닮은 눈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부여잡고, 팔을 부여잡고, 다리를 부여잡고, 눈을, 머리칼을, 우리 아이들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가 목이 쉴 것 같은 울음소리를 묻었다. 그녀는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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