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대로라면 잠이 들었어야 할 LRL은 오늘따라 잠에 들지 못했다. 


곰인형을 꼬옥 끌어안고 숙소를 나서니 비상등만이 오르카호 복도를 밝혀주고 있는 지금은 새벽 1시, 몇몇 이들을 제외하곤 모두들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었다.


"어라?, LRL아니십니까? 주무시지않고 어딜가십니까?"


불침번 근무중이던 브라우니가 복도를 돌아다니던 LRL를 발견하자 말을 걸어왔다.


"잠이 안오시지 말입니다?, 오늘 드신것중에 무언가 특별한것이라도 있으셨지말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던 LRL은 점심을 같이 먹은 사령관이 먹던 영양농축액을 호기심에 조금 마셨던것이 생각났다. 아주 맛없는것이었다. 


"숙소까지 안내해드립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신 가고싶은 곳이 있다며 길을 물었다.


브라우니는 길을 알려주며 조심해서 가라며 그녀를 배웅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소완은 할일이 있어 아직 취사장에 남아있었다. 곧 다가올 연말을 대비해 사령관에게 대접할 특식을 준비하느라 제법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던 그녀는 홀로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취사장에서 영문모를 시선을 느껴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여나 수상한 짓을 하는게 아닌가 소완을 수상하게 여긴 리리스가 그녀를 감시하고 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은 주방 테이블뒤에서 까치발을 들고 그녀를 바라보던 LRL을 보고는 모조리 사라졌다.


"입맛에 맞으신지요"


  혹여나 배가고픈것인가 하여 얼마 남은 식재료를 사용하여 간단한 야식을 준비해 대접하자 LRL은 아무말 하지 않고 음식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동안 소완은 LRL의 헝클어진 머리를 빗질하여 깔끔하게 다듬어주었다.


"행차하실 곳이 있으시옵니까?"


  길을 알려주자 LRL은 깔끔하게 비운 접시를 소완에게 내밀곤 곰인형을 끌어안고 종종걸음으로 취사장을 나갔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두컴컴한 오르카호는 무섭다. 그래서 조명을 약간 밝혀 오르카 호 내부를 밝혔다.


과거 등대에서 근무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밤을 밝히고있으면 누군가가 데리러 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명탄 총을 쏜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데리러 올것이었다.


하지만 지난번에 그런짓을 했다가 리리스와 콘스탄챠에게 혼쭐이 난뒤 반성문을 썼었다. 그래서 하고싶지 않다.


브라우니와 소완이 가르쳐준대로 가고있는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은것 같기도 하다.


알비스가 지난번에 안드바리 몰래 훔친 초코바를 나눠줬던게 기억나 초코바를 야금야금 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료함을 달랠 거리가 없을까 하는 생각에 발키리는 한가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직 사령관 레오나는 사령관과의 동침일정표와 씨름하고 있었으니 있었으니 건드리지 않는것이 상책이다. 보아하니 콘스탄챠가 오늘도 사령관과 동침한다는게 못마땅한듯 하다. 어차피 콘스탄챠 앞에선 찍소리도 못할거면서


  탈론허브에 새로 올라온 영상, '육식녀 로얄 아스널! 밤새도록 초식남 사령관에게 순애 야스로 마구 가버리다?!'영상을 다 보고 난 후 시계를 살피니 새벽 2시가 다 되어갔다.


  습관적으로 불침번 브라우니들에게서 전송된 보고를 확인하자 이상한것이 시선을 끌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알비스에게 받은 초코바도 다 떨어졌다.


오르카호 복도는 평소의 활기를 찾아볼수 없을정도로 적적했고 차가웠다.


예전처럼 아무도 없는 등대를 홀로 돌아다니는 것 같다 무서웠다.


조명등을 키고 아무도 없는 오르카호를 비춰봐도 돌아오는것은 적막뿐이었다.


이렇게 기다려봐야 아무도 오지 않을것이란 익숙했던 과거가 떠올라 무력감이 밀려왔다.


누군가 찾으러 와줄것이란 희망은 아무도없는 등대에서의 100년이란 고독한 시간이 무참하게 짓밟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수없는 자신이 싫어 주저않아 울었다.


낡아 솜털이 삐져나오는 곰인형에 얼굴을 묻고, 등대에 있을때 처럼 홀로 울었다.


"LRL? 여기서 뭐하나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렇게 된겁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사령관에게 보고하죠"


리리스는 아직 잠들지 않은 사령관과 콘스탄챠의 침소에 들어가 소식을 전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사령관에게 봉사하고 있던 콘스탄챠와 그녀를 잡아먹을듯이 움찔거리는 그의 거근이 눈에 들어왔다.


 울다 지쳐 복도에서 잠든 LRL을 업어온 발키리는 가까이 있던 사령실로 그녀를 옮겼다. 사령관은 LRL을 그의 침소에서 재우기로 했다. 콘스탄챠도 군소리 않고 능숙하게 더러워진 시트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에 뉘었다.


"인형이 망가져서 주인님에게 고쳐달라고 하려 했나봐요"

"아침에 오면 되었을텐데..."


  사령관은 점심때에 그녀가 마신 영양제를 떠올리며 다음부턴 절때 마시지 못하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따뜻하다. 몸을 감싸는 온기가 기분이 좋아 무심코 숨을 내쉬며 뒤척였다.


천천히 눈을 뜨자 자신을 끼고 자고있는 사령관과 콘스탄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이불이 세사람을 감싸고 있었고 품안에는 말끔한 곰인형이 안겨있었다.


사령관의 침실이었다.


시계는 이미 아침을 향해 가고있었지만 사령관과 콘스탄챠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LRL도 사령관의 품에 파고들어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