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습니다! 진짜로, 해냈어요!"

"누나, 굉장히 힘냈거든?"


해가 완전히 떨어져, 보랏빛 밤하늘이 펼쳐졌을 무렵. 공순이와 2가 펍 헤드라는 AGS를 데리고 왔다.


"전투에도 도움이 될 거고, 철충과는 계속 싸워 왔으니 아는 정보도 많을 거에요."


메이드 년과 금발 년도 자신들이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내밀며 당차게 말한다.


"......"

"만나서 반갑다고 해야 할까, 시민 분. 뭐어, 여긴 도시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경찰 로봇인 내게 모든 인간들은 시민 분들이라네. 아니면, 사령관님이라고 불러드릴까?"


메이드 년이 거느리고 있는 똥개보다 작은 AGS. 이게 정말 도움이 되긴 할까. 이런 녀석에게 바이오로이드의 생체회로를 이식한 건 좀 아깝지 않나. 막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공순이와 2를 돌아보았다. 눈을 빛내며 기대하고 있다.

......앞서 했던 약속도 있고, 바이오로이드 상대로 이제와서 없던 걸로 무르는 것도 쪽팔린 일.


"바라는 포상은 있나? 포츈, 그렘린."

"!!"

"펍 헤드의 요청을 들어주세요!"


설마 바로 이름으로 불러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는 듯, 포츈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렘린은 척수반사적으로 대답했다.


"포상은 한 번 뿐이다. 이제와서 무를 수 없어. 향후로도 AGS를 기용케 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정답 아닌가?"

"인간님이 다른 AGS들을 구하고자 나서, 직접 보신다면 제가 건의드리지 않아도 그렇게 하실 거라고 확신하니까요!"


일말의 망설임도, 의심도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그렘린.

이쯤 가면 없던 설득력도 생길 지경이다.


"뭐, 좋다. 그러도록 하지."

"──결정에 재고를 부탁드립니다, 인간님!"


그때 세이프티가 목소리 높여 외친다.


"세, 세이프티 씨?"

"처음 구조 요청이 왔을 때부터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습니다. 이미 모두 철충으로 전락했을 겁니다."


세이프티의 말에 사정을 모르는 바이오로이드들은 당혹스러워 한다.


"세이프티 씨, 언행에 주의하세요! 그걸 결정하는 건 인간님이세요!"

"세이프티. 자네도 나와 같은 경찰 쪽일 텐데.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거부할 셈인가?"


AGS조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묻자, 세이프티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난......지금 여기 있는 다른 자매들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벅차니까."

"세이프티 씨──."

"그만."


메이드 년과 그렘린마저 언성을 높이려던 그때, 내가 손을 들어 막았다.


"세이프티."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AGS 회수조가 경악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부탁을 들어주면, 나는 한 번 했던 말을 무르게 돼.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 누워서 침 뱉는 꼴이 된단 말이야. 내가, 내 스스로, 내 체면에 먹칠을 하는 거라고."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하자, 나의 망나니, 요안나가 스윽 나선다.


세이프티는 요안나를 힐끗 돌아보고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린다.


"날 설득해 봐라. 앞서, 일부 바이오로이드를 임무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때처럼. 목숨을 건 기개라는 걸 다시 보여봐."

"......저희가 맞닥뜨린 건, 수색대입니다. 철충의 본대가 아니라. 놈들은 수도 많고, 강한 개체도 여럿 포진해 있습니다. 거기에 자매들을 갈아넣어, 인간님께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정보가 있네. 자네들과 따로 싸우는, 우리들 AGS만이 쥐고 있는 정보가──."

"연결체에 관한 거겠죠. 그런 건 저희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이프티는 한쪽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인간님. 저희는 오늘 스카우터 분대와 팔랑스 분대를 만났습니다. 항상 집단으로 행동하며 군기가 바짝 든 그 철충들의 존재는 인근에 그들의 지도자격 철충......연결체가 있다는 증명입니다. 지금 필요한 건 그들과의 정면충돌이 아닌,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하여, 주기적으로 정찰을 하며 가능한 많은 자원을 끌어모은 뒤 대피하는 겁니다."


세이프티는 바이오로이드 대부분이 지금 당장 싸울 수 없다고도 말했다.


"인간님. 티에치엔이 쓸 유탄이나 그리폰 등이 쓸 미사일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총알에는 여분이 있지만,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같은 기종의 총기를 쓰는 게 아닌 이상, 각기의 소비량에 따라 빠르게 바닥을 보일 것이 분명한 바. 지금은 회수한 잔해들의 재활용 방법을 찾는 게 급선무입니다."


AGS 수색조와 자원수집조가 나뉘어 대치하는 구도가 되었다.


나는 딱히 녀석들이 지들끼리 싸우든 말든 크게 상관 없지만......그걸 순순히 두고 보지 않는 녀석이 있다.


"그럼 근접전이 가능한 짐이 나서면 되겠군. 뭐어, 짐도 무적초인은 아닌 만큼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지원의 허가를 내려주게. 소수정예로 다녀오지. 그래, 펍 헤드. 자네도 이제 철충의 감염 걱정은 할 필요 없는 몸이 되었잖나? 향후 인간 공을 따르게 될지도 모르니, 지금 여기서 공적을 세워보는 건 어떨까? 그 작은 몸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증명해 보이는 걸세."


내가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에게 하나하나 지시를 내리는 건 귀찮은 일이다.


지휘관급 개체 하나둘 정도는 두는 편이 좋겠지. 지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기종의 구별은 안 한다. 요안나를 따라가고 싶은 녀석들은 따라가. 나머지는 조용히 함에 처박혀서 이번에 수집해 온 자원들의 분류와 재활용 작업이나 도와라. 그럼, 해산."


요안나의 곁으로 여러 바이오로이드들이 몰린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기적인 놈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으니, 내심은 어떠하든 지원하는 의사 정도는 보이는 것이리라.


실제로 요안나도 그걸 꿰뚫어 보았는지, AGS 수색조를 제외하면 근접전이 가능한 바이오로이드의 지원만 받고 있었다.


개중에는 마이티R도 끼어 있었다.


"제 몸이 쇼윈도 바디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려구요. 철충을 때려 눕히는 일에, 굳이 화약이 필요한가요? 이 바벨이 철충을 상대하는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좋을 거에요."


플레이트 하나에 1톤으로 표기되어 있고, 도합 8개. 8톤짜리 바벨을 두드리며 씩 웃는 마이티R.


"그거 실제로는 1톤 아니라며?"

"어, 어쨌든 철충 때려눕히는데 충분하다구요."


마이티R은 엄지를 치켜 세우며 말한다.


"인간님의 재활 훈련은 소홀히 하지 않을 테니, 걱정마십쇼!"

"흥, 입만 산 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나 몰래 꿍쳐둔 프로틴 같은 건 용서해주지."

"앗싸! .......웁스, 죄송."


요안나를 필두로 한 구원부대가 나가고,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등대까지는 배웅한다며 따라 나선다.


함교에는 포츈과 나 그리고 세이프티만 남겨졌다. 세이프티는 씁쓸한 표정을 띄우며 바이오로이드들의 등을 응시했다.


"그래. 혼자 독박 쓰고 악당 노릇한 감상은?"

"......원망받더라도, 꺼려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걸로 제 못다 한 의무를 다할 수 있다면."


애수마저 느껴지는 눈빛으로, 쓴웃음을 짓는 세이프티.


"딱 한 번이다."

"네?"

"딱 한 번. 모두가 네 의견에 반대할 때, 이번처럼 중재안도 없을 때. 네 의견에 내가 찬성해주지."

"인간님......? 어째서 그런 말씀을......"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노력이 보답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건 짜증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