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월요일 07시 00분, 둠 브링어 소속 멸망의 메이의 모듈에 장착된 체내시계가 기상시간을 알렸다. 초대형 잠수함인 오르카 호는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로 내려가 항행하는 일이 잦았지만, 모듈에 첨부된 이 체내시계 덕분에 닥터와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한 바이오로이드들의 생활 패턴이 흐트러지는 일은 드물었다. 


메이는 다시금 시간을 확인한 후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 때문에 품을 넉넉하게 맞춘 어린이용 파자마를 갈아입고 아침을 먹으러 방 밖으로 나왔다. 간단한 부식을 먹을 수 있는 붙박이식 테이블과 소파가 설치된 둠 브링어용 휴게실 구획에는 그녀의 평탄한 부관 B-11 나이트 앤젤이 뭔가를 찾고 있었다.


"오늘은 웬일로 일찍 왔네? 소완이 아침 굶으라고 했어?" 당직을 서고 평소보다 일찍 들어온 그녀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던져 봤지만 그녀는 대답을 하기는커녕 이제는 숫제 그 평평한 가슴을 바닥에 처박은 채 테이블 밑을 뒤지고 있다. 메이는 나앤의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없는 가슴에 저러다간 갈비뼈 상할 텐데...


"대...대장, 여기 테이블 위에 있던 쌀국수 다 어디 갔어요?"


"쌀국수?"


그러고 보니 어제 나이트 앤젤이 당직실로 상번하기 직전에 부식 나올 날짜도 아닌데 16개들이 쌀국수 한 상자가 보급된 것이 기억났다. 둠 브링어 대원들은 먹보인 지니야를 제외하고 딱히 쌀국수를 즐기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부대장인 메이는 의아해하면서도 여느 때처럼-


"아, 그거? 여기 모여서 하나씩 먹은 다음 남은 건 지니야한테 다 주으브븝"


-여느 때처럼 다 처리했다는 말은 메이의 입에서 끝까지 나오지 못했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나이트 앤젤이 다짜고짜 달려들어 그녀의 양 볼따구를 꼬집어 당기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미쳤어 진짜, 아니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막 먹어요!? 지니야한테 줬으면 지금쯤 무조건 다 없어졌을 텐데!"


"으, 으, 으그 흐극승으으!"


메이는 꼬집힌 볼이 아파 눈물이 났지만 지휘관의 위엄으로 어떻게든 다시 눈물샘 안으로 집어넣고 나앤을 노려보았다. 뭐지? 평소부터 직속 상관의 굴곡 있는 가슴팍을 몹시 못마땅해했던 나앤의 평평한 바이오 모듈이 드디어 미쳐버린 것인가?


"내가 못살아, 그 쓸데없는 가슴의 반이라도 생각이라는 걸 해 보란 말이에요! 대장이 맨날 이렇게 눈치 없게 구니까 사령관 님이랑 썸도 못타고 우리 부대가 맨날천날다른부대한테아다폭격기(ㅋㅋ)라는소리나듣고앉아있는거잖아요가뜩이나가슴때문에스트레스받는데돌아버리겠네진짜!!"


"으! 으!"


속사포 같은 나앤의 잔소리와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메이의 몸부림은 나앤이 이리저리 발버둥치던 메이의 옆가슴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고 휘청거리며 물러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압도적인 질량에 얼굴을 피격당한 나앤의 코에서는 한 줄기 코피가 흘렀다.


"씨X...존나 크네..."


"머...뭔데!! 당직 하번했으면 얌전히 잘 것이지 왜 갑자기 난리야! 쌀국수 그거 오르카 마트에서 또 사오면 되잖아!"


이번엔 억울함이 반 정도 섞인 눈물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볼따구를 식히며 메이가 따졌다. 확실히 쌀국수 하나 먹은 것 치고 이 드잡이질은 너무한 처사였다.


"아니 하...소리지르면 괜히 배만 고픈데, 그게 아니라요 대장, 그거 저희가 먹어야 될 밥이에요 밥."


"...? 식당은 어디 두고? 소완이랑 포티아가 휴가라도 갔대?"


그제서야 머리를 좀 식힌 나앤이 메이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얼마 전에 바이오로이드 제조 공장에서 대량의 유전자 씨앗을 발견한 사령관이 제조에 혈안을 올리다 어젯밤 영양을 바닥까지 꼬라박았다는 것. 대부분의 식료품이 바이오로이드 체조직 배양을 위한 용액으로 추출되어 지금 함내에는 소량의 보존식밖에 없고,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소완과 포티아는 주방 타일 바닥에서 딱지치기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그래? 그럼 네 것도 챙겨놨어야 하는데 미안하게 됐네. 오늘은 조금만 참아. 사과의 의미로 내일 내가 식당 가서 햄버그 세트 사줄게."


평소에는 고압적이지만 금세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대장을 본 나이트 앤젤의 눈꼬리가 잠깐이나마 부드럽게 풀렸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녀는 아직도 무언가 체념한 것 같은 탁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하하, 대장...고맙긴 한데 그 쌀국수 있잖아요...오늘이 아니라 이번 주 분량이에요. 내일도 식당 안 열어요."


훗날 신인류 역사서에 [제 1차 오르카 고난의 행군] 으로 기록될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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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나앤 웃음벨 듀오 재미있어서 난생 처음으로 소설 써봄. 뉴비라 설정 틀릴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