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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시거나 부적절한 인상을 제쳐놓고 지워버리고 당장이라도 마음의 완전한 평정을 회복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천병희 옮김), 『명상록』,( 한국: 도서출판 숲, 2005),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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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도 안 돌아 보고 들어가버린 사령관을 보며 라비아타는 비탄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같이 있었던 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근처에서 그를 기다리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비참했다. 처음이었다. 화를 낼지언정 그 분노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가 자신들을 보자마자 화를 냈다. 단순하게 화를 낸 것이 아니었다. 적의를 내보였다. 그 모습에 몇몇 메이드들과 컴페니언들은 그대로 주저 앉았다. 


거부 당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들은 멸망전 인간들이 이야기 했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갔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게 되었다. 결코 겪고 싶지 않은 기분을 새롭게 느낀 그녀들은 울기 시작했다.


갈 곳 없는 비참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었기에, 어떤 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결국 비명을 지르며 콧물과 침이 뒤범벅 거리며 꼴 사납게 울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입술을 꾹 닫으며 자신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냐는 듯 부들부들 속으로 자신에게 욕을 하며 눈을 감았다. 어떤 이들은 자신을 학대했다. 자신의 얼굴을 멍이 들정도로 때렸다. 머리를 땅에 박았다. 자신의 무기를 이용해서 상해를 입었다. 


마음이든 몸이든 갈 곳 없는 후회는 서서히 그녀들을 마비시켰고 큰 상처를 입혔다. 누군가 옆에서 이 장면을 봤다면 필히 지옥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으리라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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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었다. 정문은 이미 진치고 있는 애들 때문에 개구멍으로 빠져나갔다. 물론 자기가 어디로 나갈지는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녀들을 만나기는 직접적으로 만나기는 싫었다. 그냥 자신이 피하면 그만이었다.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었다. 굳이 만나서 얼굴 붉히는 것보다는 그저 피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작은 랜턴을 켰고 익숙한 뒷길을 걸어서 해변가로 갔다. 해변가 작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였던 것을  통발을 2일 전에 넣었는데 그녀들이 오면서 통발 회수를 못했다. 잡아둔 수확물들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뒤섞인 해변가에서 통발을 건져 올렸더니 나온 것은 박하지(돌게)와 도루묵이 가득 들었다. 이 도루묵으로 바로 가져다가 손질해서 한끼는 박하지와 함께 요리 해서 먹고 나머지는 냉동고에 넣어두고 시간 날때마다 먹을 생각에 기분이 즐거웠다. 조미료는 해안도시에서 최대한 가져와서 몇 년은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역시 맛있는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즐거운 마음으로 도루묵 알이 달린 통발에서 도루묵과 박하지(돌게)를 아이스박스에 옮기고 벙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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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근처에서 통발을 건져 올리는 것을 목격한 팬텀과 드론으로 다각도로 보는 탈론페더는 통발에 담고 돌아가는 사령관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지휘관들에게 보고를 올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가 통발에 올린 물고기들은 자신들의 지식으론 맛있는 음식의 재료는 아니었다. 저 해산물이 뭔지 시각적으로 정보를 통해 알아본 결과, 도루묵은 다른 바다 생선과 달리 맛이 밋밋하다고 나왔다. 살에 기름기가 별로 없고 푸석하기까지 하다고 알려진 것을 좋다고 가져 간 모습에 당혹했다. 오르카호에선 저것보다 맛있는 해산물들을 즐길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소완에게 가서 맛는 해산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면 즉석에서 가져다가 요리해서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야심한 밤에 위험한 해안가를 지나 몇 십분을 걸어서 돌 사이에 숨겨진 통발을 꺼내 해산물을 수확했다.

 그녀들에게 명령하면, 그녀들에게 말 한마디만 했으면 그딴거 몇 백 키로로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얻었다.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옆에 있을 것이라고. 지켜 보고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무시했다. 너희들과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너희들의 잘못 된 선택에 대하여 나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팬덤과 탈론페더는 조그맣게 콧노래를 부르며 해변가를 가로지르는 그의 모습에 자괴감 들고 괴로워 했다. 단 하나의 무기도 없는 허름한 모습으로 달만이 살짝 비춰진 위험한 해변가를 가로지르는 그가 한방이면 몸이 산산조각 날 중무장 무기를 소지하며 온갖 레이더로 360도로 검색하며 스텔스로 무장한 자신들보다 더 당당하고 즐겁게 돌아가는 모습은 자신들은 그 보다 약하고 무기력한지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는 과연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해변가를 지난 그의 발자국을 파도가 지우듯 답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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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로 돌아오고 나서 그대로 도루묵을 손질했다. 가위로 지느러미와 꼬리를 자르고 소분했다. 소분한 다음 바로 냉동고에 집어넣고 남은 도루묵을 박하지랑 같이 구워먹었다. 비록 푸석했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기껏 맛소금으로 간만 친 소박한 한 상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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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웨어 부대 중 주방을 담당하는 소완, 포티아, 아우로아는 사령관이 어둠 속에서 가져가는 해산물을 보며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그 해산물을 버리고 더 좋은 재료를 주고 싶었다. 아니 자신들이 더 맛있는 재료를 손질해서 요리를 해드리면서 대접해 주고 싶었다. 물론 진짜 그런 일을 하면 어떻게 나올지는 잘 알기에 그저 그 모습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저히 다가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것. 진미를 맛 보게 해드리는 것. 인간이나 바이오로이드나 맛있는 것을 찾는 것은 당연했다. 애니웨어 시리즈에서 소완, 포티아, 아우로아는 그런 진미를 맛보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력이 있으면 뭐하나? 자격이 없는데, 실력이 있어도 그것을 구현할 수 있어도 그것을 허락할 자격이 없는데 실력이 무슨 소용인가.


 그녀들은 최고의 미식을 그에게 주지 않았다. 죽어버린 사령관에게 자신들이 가진 최상의 실력으로 요리를 대접했다. 그 후 남은 재료나 일부러 먹지 않은 요리의 재료를 이용해서 지금의 사령관에게 줬다. 물론 아예 못 먹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들의 음식 솜씨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고를 자랑하는 그녀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 죄였다. 교만이었다. 거만한 마음이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그는 몰랐을까? 아니었다. 그녀들의 미식을 맛본 그는 죽어버린 사령관이 오고 난 뒤의 변화를 모를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먹었다. 행복을 느끼지 못한 그저 생존의 한 종류였다. 살기 위해서. 그저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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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 속에서 올라오는 한 가지 사실은 죽어버린 사령관 이후 그녀들 사이에서 올라왔다. 사령관이 죽은 후 다시 찾을때 사령관이 좋아하는 음식 레시피를 정리할 때 나왔다. 그것은 알레르기 반응에 대한 메모. 자신들이 남은 재료나 일부러 먹지 않은 요리의 재료를 이용할 때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것을 간과했다. 그가 알레르기가 있었던 걸 무시했다.


 그것을 보자 그녀들의 얼굴은 독극물을 한주먹씩 집어 삼킨 것마냥 새파랗게 질렸다. 자신들은 새로왔던 사령관에게만 신경 썼지 전 사령관이 어떤 것을 먹으면 안되는지 신경쓰지 못했다.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여러번 요리를 대접했던 이로선, 최고의 미식을 대접하는 이로선 자격이 박탈되고 쫓겨낼 정도의 큰 죄였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자신들은 주방이란 전쟁터에서 패망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처참하게 패배했다. 전멸 그 자체.


 그 결과는 어떨까? 도저히 지금의 사령관에게 요리를 대접할 자격조차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음식의 재료나 주방장에 필요한 식기만도 못한 존재. 지금 그녀들은 저참한 심정을 그저 묵묵히 그리고 소리 없이 울 면서 표현 할 수 밖에 없었다. 콧소리만 울리는 동영상에 나오는 소리와 함께 주방안으로 훌쩍거림만 겹쳤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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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응이 좋아서 바로 한 편 더 써왔어. 물론 이후론 일때문에 바빠서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

2. 역시 퇴고와 맞춤법은 못 했어. 하면 좋겠는데 그 이상은 못 하겠더라. 다음 편은 생각해 둔 것이 있는데 4000자 정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 

3. 후회파트를 많이 쓸 것 같아. 부대들이 많아서 그 부대들 하나하나 쓰려니 길어질 것 같아. 그럼 다음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