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은 착잡한 마음으로 함장실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그 대신 ‘그 작자’가 이 배의 함장이자 저항군의 사령관이 되어 자신을 버리기로 한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을 이끌리라.

 

한달여 전 탐색작업 중이던 스틸라인에게 회수된 ‘그 자’는 사령관보다 월등한 외모와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 더 나은 지휘능력, 호탕한 성격이 합쳐지자 그가 정성을 쏟아줬던 대원들 중 과반수가 새로운 인간에게로 충성을 돌리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배은망덕..하다기엔 내가 부족했던 건가.’

 

사령관이 대원들을 원망하려다 씁쓸하게 자조했다. 그는 자신이 오만 정성을 다해 보살핀 대원 일동을 믿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가 일방적으로 보낸 신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했다.

 

‘걔가 올라가면 애들이 잘못하면 피를 크게 볼 텐데, 괜찮을까..’

 

솔직히 말해서 그가 보기에 새 사령관은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 호탕해 보이는 성격의 뒤에는 음흉한 음모력과 조절이 불가능한 충동성이 잠재되어 있었으며, 더 나은 지휘능력은 그 대가로 더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 만일 잠재된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때는 그 둘이 합쳐져 빚어내는 파멸적인 시너지가 오르카 저항군을 손쉽게 멸망의 손아귀로 인도할 확률이 높았다. 

 

사령관은 잠시 그 이야기를 해서 지휘관들을 설득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하고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반대파들에게 신뢰를 거의 잃어버리던 중인 자신이 아무리 말해 봐야 반대파 지휘관들이 크게 듣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그에게는 여전히 신뢰를 보내는 지휘관들이 있었지만, 그녀들은 큰 목소리를 내는 축출파에 밀려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가 충성파들에게 이 이야기를 상담했더라도 크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쯧, 라비아타가 생각보다 너무 사람 보는 눈이 없었어.’

 

그가 탄식했다. 멸망 전 개체라고 해서 판단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만, 라비아타와 마리는 그를 배신하고 축출파에 서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녀들의 입장에서 희생을 과도할 정도로 삼가는 사령관의 지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씁쓸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때 사령관실 바깥에서 경비를 서던 페로가 사령관에게 통신을 보냈다.

 

“사령관님, 사령관님을 뵙고 싶어하는 대원 다수가 와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사령관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은 컴패니언에게 사령관은 잠시 마음속으로 진실된 감사를 표했다. 곧 그가 말했다.

 

“고마워, 페로. 그녀들을 들여보내 주겠어?”

 

“네, 그리고 좀 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응?”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경호상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문 앞에는 하치코를 남겨 놓겠습니다.”

 

“응, 그렇게 해.”

 

위이이잉.

 

곧 문이 열리고 일련의 대원들이 사령관실로 들어왔다. 그녀들이 각각 사령관에게 인사를 표했다.

 

“왓슨, 잘 있었어?”

 

리엔이 먼저 미소지으며 인사했다.

 

“소관이 사령관께 드릴 말씀이 있어 왔소.”

 

무적의 용이 잠시 주저하다가 결의를 띈 얼굴로 말했다.

 

“사령관, 평소라면 지금부터 신나게 께임을 하고 싶지만..오늘은 나도 할 말이 있다.”

 

아스널은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었다.

 

”권속이여, 정말 떠나는 것이라면 나도 같이 가겠다!”

 

LRL이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정말로 같이 갈 생각인지 아예 등에 짐을 한가득 지고 있었다.

 

“사령관, 바깥은 위험한데 말야, 아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지 않겠어?”

 

하르페이아가 웃으며 말했다.

 

“컴패니언 전원은 주인님과 함께하겠습니다. 남은 멍청이들끼리 새로 저희를 만들든 말든 맘대로 하라죠. 그리고 주인님, 아내를 버리고 가시진 않으실 거죠?”

 

“햇츙, 역시 뇌가 썩지는 않았던 모양이야. 주인님,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데려가 주실 거죠?”

 

“바깥에 나가시면 맛좋은 요리가 고프시지 않겠습니까? 소녀의 칼은 당신께 바치기로 한 지 오래이니, 부디 저를 데려가시옵소서.”

 

리리스 뒤에서 페로와 포이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렸고, 리제와 소완도 한마디씩 했다. 

 

“저희 자매들은 두 주인을 섬긴 적이 없습니다, 사령관님. 뭐라 하셔도 저는 당신을 따라갈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터니티까지 잔잔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아, 이 상황에서도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남아 있었구나. 사령관은 그녀들에게 깊은 감사를 느꼈다. 하지만 주요 전력의 상당수인 그녀들이 사령관과 함께 이탈한다면 저항군의 전력에는 심각한 전력 누수가 발생할 것이 뻔했다. 따라서 그는 조용히 말을 골랐다. 되도록이면 저쪽에 밉보이는 일 없이 부대 단위의 이탈은 피해서 전력공백을 피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본심이었다. 그때 용이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고 있소. 우리들 개인 단위의 이탈도 우려되나, 부대 단위의 이탈을 더욱 우려하고 계신 것이 아니오?”

 

“..맞아.”

 

사령관이 씁쓸하게 말했다.

 

“모두 정말 고마워. 끝까지 나를 믿어 줘서. 하지만 오르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대 다수가 나와 함께 사라지면 저항군의 중요 전력 상당수가 이탈하게 될 거야. 그러면 공세종말점은 더 빨리 찾아오게 될 거고, 희생은 더욱 커지겠지.”

 

“거기에 잘못하면 부대간 갈등까지 심각하게 발생해서 우리끼리 싸우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 난 그런 불필요한 희생은 정말 피하고 싶어.”

 

“그러니 얘들아, 정말 미안하지만 부대 단위의 이탈은 하지 말아 줘. 새 사령관이 충동적인 끼가 있긴 하지만, 그 충동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도록 지휘관들이 도와주길 바래. 그러면 내가 지휘했을 때보다 더 빨리 문명의 수복이 빨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방 안의 대원들은 아무런 말없이 사령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르페이아, 리리스. 나도 그렇게 아내를 버리는 무책임한 남자는 아니야. 힘든 길이 되겠지만 같이 가 줄래?”

 

두 여자가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걸 본 무적의 용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역시 내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군. 사령관, 당신이 뭐라고 해도 소관은 당신을 따라가겠소.”

 

옆에서 아스널도 동조했다.

 

“난 단순한 여자라 복잡한 건 모르지만, 사령관이 우리를 아낀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인간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더군. 나와 AA캐노니어도 당신을 따르겠다.”

 

그리고 뒤에 서 있던 대원들도 한마디씩 했다. 당신을 따라가겠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버리지 않으니 당신도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주인님 역시 주인님밖에 없어요..

 

사령관은 잠시 당황하며 그녀들을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멸망 전 수많은 막장인간들을 경험한 무적의 용을 필두로 한 대원들은 사령관의 말에 따박따박 반박했다.

 

“보시오. 당신은 저 ‘차기 후보자’가 당신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소관이 보기에는 가당치도 않은 말이오. 소관은 저 자가 사령관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며 부대를 잠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소. 그런 졸렬한 인성으로 대체 당신을 어떻게 대신하겠소?”

 

“그 말이 맞다, 사령관. 솔직히 나 같았으면 옛날 역사 교과서에 나와 있던 ‘구국의 결단’이라는 걸 생각했을 거다. 내 지론에 따르면 졸렬함은 심볼의 크기와 반비례하기 마련인데, 아마 그 작자의 심볼 크기는 전투모드라도 3.5cm 이하일 게 분명하다.”

 

“소녀가 빠진다고 하여 급양에 문제는 생길 리가 없사옵니다. 정 불편하면 저들이 또 다른 소녀를 제조하면 그만이겠지요.”

 

“주인님? 아까는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저만 혼자 자매들을 두고 갈 수는 없어요. 가면 컴패니언 모두 같이 가는 거에요.”

 

“헤헤..사령관, 사실은 스카이나이츠도 사령관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전대장이 사령관이 나가는 즉시 탈주를 선언할 거라고 하더라.”

 

그러던 중 칸도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르카에 머리가 붙어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내가 저항군 생활을 헛되이 한 건 아닌 모양이군.”

 

사령관이 칸을 보고 말했다.

 

“칸, 설마 너도?”

 

그러자 칸이 웃으며 대답했다.

 

“전장의 육감이란 것이다, 사령관. 졸장들은 멸망 전에 정말로 질리도록 봤거든.”

 

 

결국 그날 사령관은 원래 아내들과 같이 철충도 별참피도 없는 외딴 곳에 집을 짓고 오순도순 살려던 은퇴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그는 오르카 호에서 내려 무적의 용의 기함인 원자력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에 오르는 것으로 퇴임을 대신했다. 신임 사령관이 그런 사령관을 보고 말했다. 필사적으로 호탕함을 연기하고 있지만 힘겨운 모습이었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혼자 은퇴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전력 대부분을 끌고 가겠다니 양심이 있는 거냐, 너?”

 

그런 그에게 사령관 대신 항공모함 부교에 선 무적의 용이 말했다.

 

“그가 우리를 설득한 것이 아니외다. 우리가 그를 설득했소. 누구를 모실지 정할 권리 정도는 모든 대원들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소?”

 

신임 사령관이 무적의 용을 보고 입술을 씹었다. 상황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자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의 옆에서 컴패니언들이 엔터프라이즈 호의 함상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입을 헤 벌린 신임 사령관에게 리리스가 컴패니언들을 대표해서 웃으며 말했다.

 

“신임 사령관님? 착한 리리스는 남편님을 버리지 않아요. 저희는 새로 ‘만드시면’되니까, 그 동안 고생 좀 하세요?”

 

그 옆에서는 상륙함 인천함에 AA캐노니어와 앵거 오브 호드 전원이 오르고 있었다. 라비아타가 그런 그녀들에게 소리쳤다.

 

“신속의 칸! 로열 아스널! 지금은 우리가 이렇게 분열될 때가 아니라 힘을 합쳐서 문명을 재건해야 할 때입니다! 제발 결정을 번복해 주면 안되나요?”

 

그러자 둘이 각각 대답했다.

 

“통령, 난 지휘관이라는 입장이다. 알겠지만, 지휘관은 수많은 부대원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지. 난 분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기 쉬운 쪽을 골랐을 뿐이다.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믿는 전우에게 뒤통수를 날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라비아타 통령, 난 멸망 후 개체지만 가끔 그 정치란 게 참 싫더군.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나와 부대원들은 그저 더 따르고 싶은 사람을 따를 뿐이다. 아, 동침표는 이제 내가 작성할 테니 걱정 말도록, 콘스탄챠.”

 

그때 오르카 호의 해치가 개방되더니 스카이나이츠까지 휭 하고 날아올라서 갑판에 착지했다. 슬레이프니르가 앞에서 우쭐거리며 말했다.

 

“스카이나이츠는 언제나 함께 움직여. 그런데 하르페이아가 사령관 부인이잖아? 그럼 우린 하르페이아 따라갈 거야!”

 

마지막으로 LRL을 필두로 마법소녀조, 소완, 리제, 리엔, 이터니티, 아자즈, 알파에 닥터까지 적지 않은 대원들이 오르카를 떠나 엔터프라이즈 호로 향했다. 하나같이 레퍼토리들이 똑같았다.

 

“저희는 저희 의지로 있을 곳을 정할 겁니다.”

 

신임 사령관은 이제 울그락불그락한 얼굴이었다. 얼굴이 빨개진 것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화산과도 같아 보였다. 그때 열려 있던 해치에서 둠브링어와 로크까지 빠져나와 엔터프라이즈 호의 갑판에 착륙했다. 라비아타와 그 뒤에 있던 마리, 레오나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너까지 올 줄 몰랐다는 표정이 역력한 사령관 앞에서 메이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그치만! 내..내가 정한 널 버리긴 싫..싫다구!”

 

옆에서 나이트 엔젤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그녀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착한 그치만 인정합니다. 대장, 성장했네요..”

 

그리고 로크가 말했다.

 

“난 명령이 아닌 자의로 이분을 따른다. 네게 줄 충성은 없다, 살덩이.”

 

이제는 컴패니언, 호라이즌, 호드, 캐노니어, 스카이나이츠를 비롯해 오르카 호의 전력 과반 이상을 손에 쥔 사령관은 자기도 속으로 새삼 놀라고 있었다. 발할라와 스틸라인이 자신을 탐탁치 않게 보고 탄핵을 주도하는 와중에 침묵하던 부대 대부분이 합류해 자신에게 충성을 표시하고 있었다. 

 

내가 아주 헛일을 한 건 아니었구나. 하고 사령관이 속으로 안도했다. 곧 그가 이제는 잠수함 한 척의 단촐한 저항군으로 포맷되어버린 신세의 신임 사령관에게 말했다.

 

“하..그렇게 됐습니다. 보급은 알아서 잘 받길 바래. 괜히 우리 건드리려고 하지 말고, 너무 힘들면 전화해. 짜장면 한 그릇 정도는 배달해 줄게. 아, 그리고 보급에 니 마음대로 자 대고 쭉 긋고 쓰다가는 피 보니까 제조 너무 하지 말고. 그럼 알아서 잘 해봐?”

 

 

이제는 얼굴이 잿빛이 된 신임 사령관이 닭 쫓는 개 꼴로 전임 사령관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라비아타, 마리, 레오나를 눈을 껌뻑거리며 바라보았다. 곧 거대한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를 필두로 한 함대가 서서히 오르카 호에서 멀어졌다. 

 

용의주도한 용은 그 와중에도 호위함들의 사격통제레이더로 오르카 호를 집요하게 조준했다. 만약에 수틀린 짓을 하면 곧바로 족쳐 버리겠다는 대놓은 무력시위였다. 오르카 호는 용의 함대가 미사일 사거리인 300km 바깥으로 물러날 때까지 계속 시끄러운 RWR경보음을 들어야 했다. 

 

한참 후, 드디어 용의 함대가 지는 해와 함께 수평선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고 레이더에서도 사라진 후의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오르카 호는 여전히 둥둥 떠 있었다. 잠수함은 원래 잠수해야 했지만 승조원들의 정신상태가 영 좋지 못해진 탓에 별로 잠수할 상태가 아니었다. 사령관실에서는 신임 사령관의 호통이 들려왔다.

 

“그건 명령이었다! 

 

여기에 남아있으라는 건 명령이었단 말이야!

 

대체 그것들이 뭐라고, 감히 내 명령을 거역해?

 

라비아타 네년이 날 속였어! 그 년들 모두가, 심지어 무적의 용년까지도 날 속였다고!

 

지휘관들이란 게 죄다 하찮은 년들에, 믿을 수 없는 거짓말쟁이 나부랭이들이야!”

 

마리가 이를 악물고 답했다. 

 

“사령관 각하, 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각하를 위해 충성을 바치기로 한 군인들을..

 

“그저 겁쟁이들이야, 반역자들, 실패자들이라고!”

 

“사령관 각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지휘관들은 섹돌들의 찌꺼기들이야!”

 

텅!

 

신임 사령관이 집어 던진 펜이 책상에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젠 자제조차 안 되는지 얼굴을 마구 돌리는 그가 말을 이어갔다.

 

“염치 없는 년들! 네년들은 제조과정에서 모듈만 쑤셔 박고 나온 주제에 장군이라고 우쭐대지. 고작 철충, 별참피 잡는 법이나 배운 주제에!”

 

“그 동안 너희들은 나한테 성공할 거라고 했잖아! 오르카 호 완전히 장악할 수 있다고 했잖아!”

 

“내 진작에 네년들 말을 믿는 대신 사령관 그 새끼 앰살했어야 했어! 애덤 존스처럼!”

 

광분해 일어서 있던 신임 사령관이 자리에 앉으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전히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난 멸망 전에는 삼안산업에서 일했던 사람이야.”

 

그러던 그가 양 주먹을 불끈 쥐어올리며 외쳤다.

 

“그래도 난 혼자, 내 힘만으로 장악할 뻔 했어. 온 세상을 말이야!”

 

라비아타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어라, 세상을 먹을 뻔 했던 삼안산업에서 일했던..설마 이 자식, 김지석? 

 

하지만 그녀는 곧 가정을 스스로 부정했다. 김지석이 이렇게 열폭을 잘하는 놈일 리가 없었다. 차라리 망상병 환자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한 추론이었다. 라비아타가 자조했다.

 

‘난 대체 어떤 인간을 사령관으로 세워버린 걸까..’

 

그러는 와중에도 신임 사령관의 발작은 이어지고 있었다.

 

“이건 사령관에 대한 극악무도한 반역이야. 그리고 그년들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년들의 피로 대가를 치를 거란 말이다. 자기들 피에 빠져 죽어버릴 거라고!”

 

바깥에서 대화를 엿듣고 있던 알비스가 훌쩍거렸다.

 

“훌쩍, 훌쩍..신임 사령관님이 LRL 죽이시는 거에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베라가 대답했다. 솔직히 따라가고 싶었는데 대장 얼굴에 먹칠하기 싫어 안 따라간 것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알비스. 죽으면 우리가 죽었지 신임 사령관님이 LRL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죽여..”

 

알비스의 눈에 아예 눈물이 맺혔다. 사령관실 안에서 체념한 신임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명령들은 죄다 무시당했어. 이 상황을 잘 넘긴다는 건 불가능해. 다 끝났어. 이 쿠데타는 진 거야.”

 

울고 싶은 표정의 레오나와 마리, 라비아타를 앞에 둔 신임 사령관은 얼굴을 들어 말했다.

 

“하지만 제군, 내가 오르카를 떠날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그러느니 차라리 내 머리에 총알을 박아버리고 말겠다.”

 

그러더니 그가 다시 고개를 떨구고 말끝을 맺었다.

 

“하고 싶은 대로들 해.”

 

영혼이 빠진 표정의 라비아타, 마리, 레오나가 사령관실 밖으로 말없이 물러나갔다.



예비군 쓰다가 막혔는데 후회물을 보고 영감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