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완이 사령관에게 뜻밖의 부탁을 받은것은 비 내리는 어느 오후의 티타임이였다.


"그러니까, 소첩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으시단 말씀이시옵니까?"

"으응, 그런거지. 역시, 힘들까? 다른 대원들의 식사 준비로도 힘들테니 말이야."



자스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사령관실에서, 소완은 잠시 오르카의 식당을 되짚어보았다.


자신이 되짚어보기에, 지금까지 사령관에게 대접한 요리에 문제는 없었다.

그는 늘 자신이 만든 식사를 깨끗하게 비워주었고 언제나 자신이 응당 해야했을 일에 환한 웃음과 함께 고마움을 표현해주었었다.


다른 대원들의 식사에도, 요즘은 어떠한 '계략'조차 시도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주인께서는 갑자기 이러한 요청을 하시는가.



"...혹여나 소첩의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이온지..."


"아니, 아니야... 다만..."

"다만...?"



주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주인이 그녀에겐 보여준적이 없는 색채를 띄고 있었다.

망설임, 설램, 부끄러움... 그리고 사랑...


분명 주인의 또다른 모습을 알아가는것은 기쁜 일일지언데, 소완의 마음 한켠에는 무거운 돌이 그녀의 마음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저기... 뭐라고 해야할까... 고마움?을 담아서 식사를 직접 대접하고 싶어서 말이야... 선물이랑 같이..."



그런 것이였나...



오르카의 주방장은 그녀의 주인이 좋았다.


처음에는 마냥 좋았다. 

그러나 주인의 주위에 있는 방해물들이 거슬렸기에, 그녀는 이윽고 주인과, 주인이 가족이라 여기는 것들에 손을 대고 말았다.


너무나도 소중했기에


이윽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그녀가, 다만 그녀의 진실된 마음만을 남긴채 떠나려던 순간 자신의 손을 붙잡아주었던 주인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바칠것을 맹세하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할수밖에 없었다.


"후후, 안될것이 있겠사옵니까. 분명... 분명 요리를 대접받은 그녀도 기뻐하겠지요."


"그렇다면 소완...?"


그녀는 비어버린 주인의 찻잔을 다시 채우며 귓가에 속삭였다.


"다만, 저도 주인께서 명하신 일을 처리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기에... 주방이 한가해지는... 예, 6시 즈음에 들러주시면 어떠신지요?"


"아, 정말 고마워 소완!"







...


오르카의 주방은 마치 바다와 같은 공간이다.


때로는 폭풍우 몰아치는 밤처럼 요란한가 하면, 주방을 지키던 사람들이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떠난다면 잔잔한 파도치는 해변가마냥 고요해지는것이다.


그랬어야할 시각에, 주방에서는 칼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예, 좋습니다. 능숙하시군요. 마늘은 최대한 잘게, 고추와 파와 양배추는 적당한 두께로 일정하게, 양파는 가지런히, 그리고 삼겹살은 한입 크기로 일정한 비계를 붙여가며 써는것이 핵심이옵니다."


평소같았다면 정복과 정모를 입고 있었을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채 식칼을 다루고 있었다.


그 뒤에선 소완이 자신이 주인이 손질하는 재료를 살피며 조리대에 올려둔 냄비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재료는 그만하면 괜찮습니다. 이제는 면을 삶으시지요. 먼저 소금과 후추를 조금 넣어주시는것이 좋습니다. 

소금은 두번 꼬집어서 넣어주시고... 후추는 이렇게 잡으신 뒤, 예, 이 상태로 검지 손가락으로 세번 톡 톡 톡 쳐주시면... 이제 면을 넣으실 차례입니다."


소완은 찬장에서 미리 준비해 둔 파스타 면을 꺼내 사령관에게 건내주었다.


"지금은 제가 미리 1인분씩 두묶음을 준비하였사옵니다만, 아무래도 직접 계량을 하는 방법을 알면 좋겠지요. 이런 보통 굵기의 면이라면 엄지와 검지로 병뚜껑 크기정도만큼 집으시면 될것이옵니다.


사령관은 소완의 말을 듣고 자신의 손모양과 소완이 건네준 다발을 비교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갸우뚱 하며 그녀에게 묻는 것이였다.


"이거 너무 적지 않을까?"


"후후, 보기보다 양이 꽤 많사옵니다. 자, 그럼 면을 삶아보지요. 

지금은 물을 끓이기 위해 불을 강하게 해놓았으나, 면을 처음 넣을때는 중간 이하의 세기로 불을 줄이셔야 하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면 다발을 집은 그대로 물에 넣어 주신 다음... 천천히, 조금씩 냄비의 둘레를 따라 면을 펼쳐주면 되는것이옵니다. 자, 한번 해보시지요."


소완은 남은 하나의 면다발을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면다발을 묶은 실을 풀어낸 그는 소완이 보여주었던것처럼, 냄비의 둘레를 따라 면을 펼쳐놓았다.


이윽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소완은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들어 가볍게 냄비속을 저어주었고, 미처 잠기지 않았던 면의 윗부분까지 모두 끓는 물속에서 익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 상태로 9분정도 익히시면 되겠사옵니다."


"9분?! 파스타라는거, 생각보다 오래걸리는거였구나..."


"후후, 그러나 주인, 면요리는 면이 다가 아니옵니다. 그에 곁들일것을 준비하다보면, 9분이란 시간은 결코 긴것이 아니옵니다."


소완은 팬을 꺼내어 화구에 올렸다. 이윽고 화구의 불을 당긴 그녀는, 사령관의 손을 잡아 팬의 위로 이끈것였다.


"이 열기를 잘 기억해주시지요 주인. ... 예, 바로 이 거리의 이 열기입니다. 따뜻한 열기가 느껴지고 10을 세신 뒤... 예, 이제 손질했던 고기부터 넣으시는 것이옵니다."


소완의 인도에 따라 고기가 팬 위로 떨어지자, 기분 좋은 끓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완은 젓가락을 들어 팬에 떨어진 고기를 천천히 굴리기 시작했다.


"처음 고기를 넣고 난 뒤에, 어느정도 고기가 익어 기름이 베어나오기 전까지는 손을 쉬게두어서는 아니되옵니다. 

손을 게을리 하다가는 팬에 고기가 눌러붙게 될테니, 기름이 고기에서 녹아나올때까지 열심히 볶아주셔야하옵니다."


점점 팬이 기름으로 젖기 시작하자, 소완은 사령관이 아까전에 재료를 손질했던 도마를 들고 와 칼등으로로 파와 마늘과 고추를 긁어내어 팬으로 떨어트렸다.



"기름이 흘러나와 고기를 굴리지 않아도 눌러붙지 않게 된다면, 불을 약하게 하고 파와 마늘과 고추를 넣어 기름에 풍미를 더하는 것이옵니다.  

다진 마늘은 쉽게 타버려 요리를 쓴맛으로 망쳐버리곤 하니 마늘이 밝은 갈색으로 익을때까진, 손을 쉬게 하셔선 아니되옵니다."


잠시 뒤, 사령관이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며 재료를 볶고 있을 때, 마늘의 색이 조금 변하자 소완은 팬 위로 양배추와 양파를 뿌려주었다.


"그대로 불을 중간으로 올린 뒤에 계속해서 볶아주시면 되옵니다. 

이제 양배추와 양파를 넣었으니 여기서 물기가 나오며 마늘이 탈 걱정은 크게 덜었지요.

이젠 면을 건져낼 시간이옵니다."


"벌써?!"

사령관은 환풍구에 붙여둔 타이머를 보았다. 

동시에 타이머에서는 비프움이 울리며 사령관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었다.


소완은 집게로 능숙하게 면을 말아 팬 위로 올려주었다. 고작 세번의 집게질로 냄비속에 가득했던 면은 모두 팬 위로 옮겨졌다.


"이제부터가 중요하옵니다. 지금까지 주인께선 맛의 밑그림을 그려내신거지요. 이제는 요리에 색채를 입혀내는 단계이옵니다."


소완은 팬 위로 각종 양념을 더해주었다. 

간장 네큰술, 설탕 두큰술 반, 고추가루 두

한큰술, 그리고 검지로 후추통을 톡 두드려준 소완이 능숙하게 젓가락을 놀리고 면을 끓인 물을 숟가락으로 조금씩 둘러주자 신기하게도, 면은 예쁜 갈색빛을 띄어갔다.


"와, 정말 예뻐 소완..."


분명히 옅은 갈색을 띄는 면을 보고 하는 말임을 알고 있었으나, 내심 소완은 자신에게 해주는 말인것 같아 옅은 홍조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시간이 영원하다면...


안타깝게도 팬에서는 곧 물기가 어느정도 점성을 가지며 줄어들었고,

이제는 주인과 단 둘이 지내는 시간도 끝을 맞이할것이였다.


소완은 접시를 꺼내와, 젓가락으로 면을 말아 산처럼 예쁘게 접시 위로 내려놓고 그 위에 고기와 채소들을 마치 신부의 웨딩 드레스처럼 입체감 있게 기대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접시와 조리대에는 단 한방울의 소스조차 의도치않게 흘리는 일이 없었다는 것에, 사령관은 내심 소완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다시 한번 감탄한 것이였다.


"입이 맞으실지 모르겠사오나, 한번 들어보시지요."


"응, 고마워 소완. 잘먹을게."


소완에게 포크를 건네받은 그는 포크로 면을 세바퀴 돌린 다음 고기 한점과 양배추를 찍어 입 안으로 가져갔다.


"음...! 이거 정말 맛있는데? 부드러운 고기와 아삭한 양배추를 매콤하고 짭짤한 소스가 감싸면서도... 뭔가 미묘한 단맛이 뒤따라오면서... 계속 손이 가게되네."


"후후... 주인께서 만족하신다니, 소첩으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기쁨이옵니다."


"음, 그래도 이번엔 반 이상을 소완이 해줬으니까 말이야...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걸... 

혹시 내일도 도와줄 수 있을까? 내일은 내가 처음부터 다 해볼테니, 소완은 옆에서 틀린점만 가르쳐주면 돼."


소완은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던 음식을 잠시 내려놓았다.


잠시 잊고있던 무거운 돌이 짖누르는듯 했다.


그러나 자신은 주인의 기대하는 목소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비록 주인이 다른 계집을 위해 자신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긴 하나, 그동안 주인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런 비참함 따위,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는가.


"물론이옵니다 주인."


소완은 움직이지 않는 안면근육을 억지로 움직여 미소로 답하였다.







...

다음날 저녁에 그녀의 주인이 내놓은 요리는 전날 그녀가 내놓았던 것과는 같지만 조금 다른 음식이 되어 있었다.



재료는 최대한 예쁘게 손질하였으나


면은 푸석하게 뭉개질 정도로 익어버렸고 그 색은 전날 그녀가 보여주었던 옅은 갈색이 아닌, 나무껍질의 진한 갈색이였으며


마늘과 고추에는 새까맣게 탄 흔적이 간간히 보였고


채소는 모두 물러버린데다가


접시에 아슬아슬하게 담긴 요리는 소스가 바다마냥 흥건했고 조리대는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시간은 어제 요리가 내어졌던 그 시각을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이 요리는 명백히 실패한 것이였다.


그러나 소완은, 자신이 선보였던 요리의 모방이라곤 믿기지 않을 이것이 담긴 접시를 아무런 불평 없이, 옅은 미소를 띄며 비우고서는 눈치를 보는 사령관에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였다.




"...양 조절을 실패하셨사옵니다."


"응, 그렇지..."


"처음에 면을 너무 많이 넣으셨사옵니다.

그 탓에 어제와 같은 양의 양념으로는, 맛이 부족했겠지요.

거기다 너무 많이 넣어버린 면수로 인해, 눈 위에 눈이 내린것처럼 맛이 너무 옅어졌사옵니다.

그런 맛을 살려내기 위해, 자연스럽게 간장을 추가하였으나... 그 균형이 깨져버렸지요.

그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다보니 또 면수가 들어가게되고...


"그러다가 겨우 균형을 맞췄나 싶었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시간이 지나버린거지..."


그녀의 주인은 머리를 쥐어싸며 탁자에 엎드렸다.


"하아, 이래가지고선..."


주방장은 풀이 죽은 주인을 위로하였다.


"요리가 실패했다고 해서, 타인을 향한 주인의 노력이 부족한것은 아니옵니다. 

소첩, 주인께서 정성을 다하시는것을 지켜보았고 낯선 기술을 익히시기 위해 소첩에게 허리를 굽히시는것 또한 대단한 용기였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제발 그런 슬픈 한숨은 거두어 주시길.

소첩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고 해도

함께하는 이 시간만큼은 꿀보다 달콤했기에

그러니 제발 좌절하지만은 말아주시길.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더라도 주인의 행복은 소첩의 행복이기에...


"그러니 지금처럼만 노력해서 준비하신다면 분명, 상대방도 기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어주겠지요."


사령관은 자신을 격려하는 소완을 바라보더니 이내 반도 먹지 못한 자신의 접시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그래, 확실히... 웃어주는구나, 이런 형편없는 걸 요리라고 내놓아도..."



"...주인?"

소완은 놀란 표정으로, 주인의 눈를 바라보았다.


사령관은, 자신의 말실수를 알아챘으나 눈치가 빠른 소완을 오르카내의 몇몇 바보들과는 다르게 급조한 말로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이내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아... 저기 그게, 으... 소완은 매일 날 위해 수고를 마다않는데, 나는 소완에게 딱히 해주는게 없더라고...

그래서 반대로 내가 소완이 내게 늘 해주던걸 소완에게 해주면 어떨까 해서 말이야...

생각하다 보니 그게... 계속 소완만 떠오르더라고."


소완의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만약 이것이 나의 욕망이 보여주는 꿈이라면, 간언컨데 제발 깨지 말기를 바라며 소완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주인... 지금 하시는 말씀은..."



"음,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쉬운거 하나를 완벽하진 못해도, 그... 어느정도의 수준으로 소완에게 보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때를 노려서...라고 생각해서 노력했는데... 

역시 잘 안되네... 소완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느꼈어."



사령관은 벗어둔 정복 재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이윽고 그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물건의 정체는 군청빛의 작은 케이스였다.


사령관은 케이스를 마치 열어보라는듯 소완을 향해 살짝 밀어내었다.



소완이 격렬한 심장박동과 손떨림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천천히 열어낸 케이스 안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자그마한 반지 하나가 들어있었다.



소완은 고개를 들어 주인을 바라보았다.


주인은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시야가 흐릿해 확실하진 않았지만,  뺨이 붉은것 같았다.




"소완."


"...네."


"나와 결혼해줄래?"



소완은 그날, 자신이 꿈꿔왔던 지고의 맛과 극치의 쾌락을 동시에 발견했다.




























레오나가 제일 좋지만 소완도 좋아


근데 웨 맨날 소완이랑 레오나 혐성이라고 괴롭히는거야


너네 정말 나빳서


내가 그림재주는 없고 다만 미천한 글짓기로 노력햇으니까 얘네 좀 그만 개롭혀~~~




그리고 위에 적힌 레시피는 진짜로 일본 쉐프가 방송에서 동양식 파스타라고 알려준거야


먹을만 하고 내가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도 좀 써놨으니까 가끔은 부모님이랑 지인들에게 식사 대접 좀 해보렴


근데 나도 해먹은지 오래되서 간장 분량이 가물가물하다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