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하라!”

 

 눈앞의 오크를 양손의 검으로 어깨죽지부터 다리까지 네 토막을 내며 외친다. 피로 물든 흑검을 털어내기 무섭게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쓰러진 동료에게 달려가 돕는다. 한 마리의 곰팡이가 흙으로 돌아간다.

 

현재 상황은 어떻지, 아포스톨?”

 

그린스킨들의 워보스가 타이탄 전초기지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저대로 둔다면 탈취는 시간문제입니다.”

 

 폭탄 스퀴그를 들고 돌진하던 그레친이 데르몬테의 발에 걷어차여 날아간다. 마지막 순간까지 스퀴그를 놓지 못한 그 가련한 생물은 정확히 자신을 괴롭히던 놉의 머리에 떨어졌다.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으니 행복한 그레친으로 분류해도 될 것이다.

 

영웅의 목은 아군과 적을 막론하고 언제나 블랙 템플러의 것이지. 내가 상대하겠다.”

 

저 워보스를 챔피언으로 선택하신 겁니까?”

 

 아포스톨이 살짝 망설이며 물어본다. 워보스 가칸트. 흉물스러운 그린스킨들의 최종병기를 닮은 이름답게, 오크들 중에서도 유독 거대하고 또 예측할 수 없는 자다. 수많은 형제들이 그의 무기에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제국의 영토가 그의 우악스러운 발에 짓밟혔다. 허나 누구보다 그 악명을 잘 알고 있을 데르몬테의 눈에 망설임이란 없었다.

 

좋습니다. 따라오십시오.”

 


검은 휴미! 비켜!”

 

그렇겐 못하겠는데. 너나 비켜-!”

 

 돌풍이 이는 것 같은 목소리에 카간트가 움찔한다. 잠시 멈춰있던 카간트가 씨익 웃는다. 그가 파워 클로를 휘두르자 주변의 오크들이 전부 물러서기 시작한다, 곧 데르몬테와 카간트를 위한 즉석 경기장이 마련되고, 둘은 일기토를 준비한다.

 

흐읍!”

 

 기합을 넣은 데르몬테가 돌진한다. 두 개의 흑검을 바로쥐고 갑옷으로 덮여있지 않은 부분을 공격하려는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다음 수를 생각하는 엠페러스 챔피언이었지만, 카간트의 행동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뭐하는 거냐?”

 

 카간트가 파워 클로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위협적인 갑옷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분홍색 거대한 발레복이 입혀진다. 곧이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워보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지금 뭐하는 거냐니까!”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춤을 추는 카간트의 모습에 데르몬테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오크 발레리나? 이런 농담을 형제들에게 쳤다간 당장 카오스 오염 의심을 받을 것이다. 한참 동안 춤을 추던 가간트가 갑자기 춤을 멈추고는 데르몬테를 바라보며 말한다.

 

늬 쥬의를 끈거다 이 뭥청한 휴미야.”

 

그게 무슨-”

 

 카간트가 버튼을 한 번 더 누르자 숨겨져 있던 워프-수류탄이 폭발하고, 이마테리움의 급류가 데르몬테를 덮쳤다.

 



 , 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인다. 땅에 머리를 처박은 채 잠시 얼어있던 검은 거인은 곧 일어서 자세를 잡고 주위를 파악한다.

 

황제 폐하 맙소사. 머리가 깨질 것 같군.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지?’

 

 어딘지도 모를 장소에 떨어졌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것이 이마테리움의 폭풍인데, 오크의 기술력까지 더해지니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일단 대기 구성 성분은 안전하고, 역겨운 외계인이나 반역자들의 낌새도 보이지 않으니, 데르몬테는 주변을 탐색하기로 했다.

 

이 문자는 분명 드레드노트에 안치된 선조님께서 알려주신 고대 테라의 문자인데. 아무래도 이곳은 잊혀진 암흑기의 식민지인 모양이야.”

 

 추후에 테크마린과 친분이 있는 이단심문관에게 선물하기 위해 눈에 띄는 기록물들과 기계를 닥치는 대로 모으던 데르몬테는, 인기척을 느끼고 몸을 숨겼다.

 

, 분명히 여기에서 뇌파가 잡혔는데. 그리폰? 뭐 찾은거 있어요?”

 

아니! 내가 반쯤 망가진 철충일거라고 말했잖아. 봐봐. 여기 시체도 있다고.”

 

이번에는 분명했다니까요. 심지어 닥터도 인정했는걸요? 거기다가 일주일 동안 끊기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고장난 철충일 가능성은 적죠.”

 

그리고, 사령관이 있는데 굳이 인간을 한명 더 찾아야겠어? 분란 조장하면 어떡해?”

 

라비아타 언니가 있으니 괜찮답니다~”

 

 그리폰이 성에 차지 않는 듯 입맛을 다시며 수색을 계속한다. 잔해를 뒤지고, 건물 안을 들어가보면서도 끊임없이 중얼대는 그리폰의 말을, 데르몬테는 초인적인 청각으로 모두 듣고 있었다.

 

인간님」 이라. 저들도 인간처럼 보이는데 말이야. 암흑기 시절 만들어진 배양 인간 정도 되는 모양이군. 나를 찾는 모양인데, 적대적인 것 같지는 않으니 사령관이라는 자를 한번 만나봐야겠어.’

 

 데르몬테가 두 자루의 흑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그리폰의 뒤로 다가간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다가 그림자로 겨우 뒤에 무언가가 있음을 깨달은 그리폰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기를 겨눈다.

 

어짜피 맞춰봤자 흠집이나 내겠지만 일단 진정하게.”

 

이이이이인간?”

 

,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일단은 인간이라고 해두지. 적어도 인류의 편에서 싸우는 것은 확실하니까.”

 

 그리폰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콘스탄챠도 그리폰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과 무기를 겨누지 않은 것. 콘스탄챠가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흑기사의 이름을 묻는다.

 

...인간님 맞으시죠?”

 

그래. 데르몬테라고 한다.”

 

저는 콘스탄챠라고 합니다. 혹시 소속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콘스탄챠가 소속을 묻자 데르몬테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빠르게, 그리고 엄중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인간이 아닌 반신에 가까웠다.

 

나는 아뎁투스 아스타르테스Adeptus Astartes 중 임페리얼 피스트의 세컨드 파운딩 챕터인 블랙 템플러의 엠페러스 챔피언, 데르몬테라고 한다.”

 

아뎁투스 아스타르테스? 임페리얼 피스트? 세컨드 파운딩? 블랙 템플러? 엠페러스 챔피언? 이게 전부 무슨 말이람. 적의는 없는 것 같은데.’

 

콘스탄챠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총성이 그리폰을 덮친다. 숨어있던 칙 스나이퍼가 가장 방어구가 빈약한 그녀부터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콘스탄챠가 급히 뒤를 돌아보지만, 이상하게도 핏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총알이 도착한 자리는 그리폰의 육체가 아닌, 거인의 검은 갑주였다.

 

콘스탄챠여.”

 

?!”

 

저들은 그대들의 적인가, 아니면 인류의 적인가?”

 

 눈으로 데르몬테의 흑검이 가리킨 곳을 쫓아 가보자 철충 한 무리가 닥쳐온다. 테스투도를 위시한 경장 보호기 5기를 중심으로, 다수의 칙들이 부대를 이루어 달려온다. 콘스탄챠와 그리폰의 화력만으로는 보호를 뚫을 수 없을뿐더러, 설령 보호기가 없다고 해도 적을 다 해치우기 전에 총알에 압도당해 죽을 것이다.

 

우리의... 적입니다.”

 

 침을 넘기며 콘스탄챠가 말한다. 대답을 들은 데르몬테는 두 자루의 흑검을 뽑아들고는 천천히 철충을 향해 걸어간다. 첫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 흑기사는 한 줄기 목소리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니, 인류의 적이로다.”

 

 검은 선이 어지러이 움직이며 철충들에게 들이닥친다. 테스투도가 간신히 방어를 시도해 보지만, 흑검 앞에서는 무른 두부나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군세의 중앙에 위치한 데르몬테를 향해 칙들이 난사를 시작한다. 연기와 총알이 날아오른다.

 

 자욱하게 피어오른 총알의 구름 중심에서 데르몬테는 태풍의 눈과 같았다. 날아드는 총알을 두 개의 검신으로 받아내고, 한 걸음 앞에서 베어내 두기의 적을 동시에 처치하고, 저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기계들을 칼에 꿰어 던져버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반신이었다.

 

 데르몬테가 모든 적을 쓰러트린 것은 바닥에 탄피가 작은 둔덕을 이룬 후의 일이었다. 금속의 바닥 위에서, 흑기사는 뜨겁게 달아오른 흑검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선 돌아갈 때까지는 이들과 합류해야겠군, 그리고 사령관이라는 자, 이렇게 강대한 적을 상대하면서도 병사들의 사기가 전혀 죽지 않았어. 만나볼 가치가 있는 이가 분명하다.’

 

 

 생각에 빠져있던 데르몬테가 고개를 든다. 주변에 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데르몬테는 헬맷을 벗고 땀을 식힌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콘스탄챠가 달려와 말을 건다,

 

...데르몬테님?”

 

, 마침 할 말이 있던 차였다. 콘스탄챠야, 너희의 집단에 합류해도 되겠느냐?”

 

, . 저도 그것을 물어보려 했는데, 잘됐네요. 오르카호는 모든 인간님께 열려있답니다. 안내해드릴테니 따라오세요.”

 


이번에는 연중을 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