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2-6 영웅출현부터


"하하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네요."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AL 큐트 여러분에... AGS들까지 최면이 풀릴 줄이야."


마키나는 허탈한 미소를 띄운 체 서글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더 물을게요. 이곳의 구세주가 되어주시지 않으시겠나요?"

"거절할게, 마키나."

"네... 그렇겠죠. 결국 이렇게 할 수 밖에 없겠군요."


마키나는 우리들 앞에서 손에 쥔 마스터키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마키나의 지배하에 놓인 요원들이 재차 공격을 시작했다.


"사령관 각하. 앞은 저희가 막고 있겠습니다. 프로텍터 전개!"


램파트와 팬텀 그리고 레이스가 그들을 막기 시작했다.


".... 멋지군요. 만약, 예전에 저희가 만날 수 있었더라면 저도 당신의 편에 서 있었을까요?"

"그럴지도 몰라."

"후훗. 아뇨. 더 빠르게 낙원을 완성했을지도 모르겠죠."


마키나의 눈동자에는 낙원에 대한 광기가 서려있었다.


"아아.. 타이런트. 저 개체는 특별히 조심했는데도 이렇게 낙원을 부수고 다닐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스널이란 분이 말했던가요?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인생이 행복해진다고. 그런 말 싫어했는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키나, 이제 포기해."

"아직이에요. 아직 제가 서 있잖아요?"


틀렸다.


마키나는 아직 그녀들을 보지 못했다.


"나는 아직 네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 불쾌해."

"?!"

"히히히 해충! 뒤가 비었구나? 이제... 얌전히 죽어!"


리리스와 리제가 마키나를 덮쳤다. 그녀들의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말미암아 마키나는 금세 제압되었다.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저리 비켜! 이 스토커! 주인님? 제가 더 보고 싶었어요!"

"다들 무사했구나."


쓰러져 있는 마키나에게 다가가려는데, 리리스와 리제가 엉겨 들어왔다.


"보셨나요 주인님? 저 리리스가 저 사악한 마녀를 해치웠어요."

"윽! 다들 잠시만 떨어져 있어."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해충? 저건 내가 잡았다고. 눈이 고장이라도 난 거야?"


리리스와 리제의 눈에서 불똥이 튀겼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정말.


"둘 다 무기 내려놓고 물러서 있어."

"하, 하지만... 주인님?"

"그래 얌전히 그 총이나 내려놔 이 해충!"

"리제도 마찬가지야."

"... 네! 주인님!"


어렵게 둘을 떼어 놓고 마키나에게 다가갔다.


"..."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마키나를 내려다본다.


모두를 구원하려 했던 바이오로이드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 제가 졌군요."

"... 맞아."

"정말로, 도와주실 수 없나요? 당신은... 이 세계의 마지막 조각. 낙원의 구세주..."


흙먼지로 엉망이 되었으면서도, 낙원을 포기하지 못한 마키나의 간절한 부탁을 들으니 또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흥! 그 입 다물어 이 쓰레기! 주인님? 제가 처리하게 해주세요. 지금 본보기를 보이지 않으면, 앞으로도 주제를 모르고 주인님께 대드는 녀석들이 생길지도 몰라요."

"아, 안돼요! 절대 안돼요!"

"하아... 넌 참 낄 곳 안 낄 곳 구분 못하는 꼬마였구나? 좋게 말할 때 저리 비켜."

"죽어도 못해요!"

"여기서 네 어리광 들어줄 사람 하나도 없거든? 아니면 이 쓰레기를 살려둬야 할 이유라도 있어?"

"물론, 있어요! 우리들의... 우리들 엄마의 유언이라구요!!"


어떻게 해야 나는 저 불행한 바이오로이드를 구원할 수 있을까. 내가 구원할 수 있을까? 자격은? 머릿속도 복잡한데, 상황도 소란스럽다. 


"리리스, 메리 잠시만 기다려줘."

"네 주인님."

"..."


리리스가 순종하는 반면 메리는 불안이 역력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메리는 내가 마키나를 구원해주길 바랬다. 그리고 나 또한 마키나가 구원 받길 바란다.


"마키나.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어?"


지금 당장은 낙원을 최선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좀 더 세상을 지켜본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키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어느샌가 그녀의 손에는 부서진 유리 파편이 들려 있었고,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므로 지금의 상황은 전적으로 내 실책이었다.


"너어어!"

"제발 그만둬 마키나!"

"이 해충!!!"


목이 서늘했다.


"다가오지 말아주세요. 이 곳은 낙원이지만, 반쯤은 현실이기도 하답니다."

"... 마키나."

"죄송해요. 하지만 낙원을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었어요. 다시 한 번 부탁 드릴게요."

"죽여버릴거야. 죽여버릴거야. 저 씹어 삼켜도 모자랄 년을, 죽여버릴..."

"부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저를 용서하지 말아주세요."


마키나는 힘 없는 손짓으로 마스터키를 조작했다.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드론이 갑자기 푸른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리스와 리제, 메리까지 모두 잠들듯 쓰러졌다.


"당신만 도와주신다면 모두 영원히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어요.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고, 두려워할 필요 없는 그런 낙원에서... 당신도 행복하셨지 않나요?"

"... 그랬지."


마키나가 꾸며낸 낙원은 거짓 없이 달콤했다.


"하지만..."

"시끄러워 해충!""... 주인님!"

"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어."


리제와 리리스가 깨어나 당황한 마키나의 틈을 노려 빠져나왔다. 


그것은 너무나도 손 쉬운 일이었다.


-전투


"하하하... 제가 깜빡하고 있었어요. 당신이란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 번 마키나를 쓰러트리자, 마키나가 구현했던 가상의 낙원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나는 마키나로부터 마스터키를 빼앗았다.


패널에는 낙원에서 꿈을 꾸는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이제 모두 끝났어. 마키나."

"메리, 이게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이었나요?"

"아니, 내가 원하는 건 낙원으로부터 마키나를 구해주는 거 였어. 우리 이제 그만 떠나자. 응? 제발."


리제와 리리스가 흉흉한 눈으로 마키나를 노려보고 메리는 끝까지 마키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나는 패널을 움직여 붕괴해가는 낙원에서 바이오로이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주인님. 명령해주세요. 제가 저 년을 죽일 수 있도록."

"해충 말이 맞아요. 저건, 죽여버려야해."

"아... 안돼요... 제가 더 설득할 수 있어요..!"

"... 리리스, 리제."

""네""

"미안."


패널을 움직여 그녀들의 퇴거 버튼을 눌렀다.


"사령관님!?""주인님!?"

"위험하진 않을테니까 먼저 나가 있도록 해. 따라갈게."


위험 요소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내 리리스는 납득했지만, 어딘가 석연찮은 얼굴로 고개를 두번 끄덕였고 리제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밖에 나가면 한동안 꼭 붙여 다녀야 할 게 틀림 없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할 일을 하려는 것 뿐이야."

"그런가요. 헤헤."


패널에서 메리의 이름을 찾았다. 리리스와 리제와 마찬가지로 퇴거 버튼을 눌렀다.


"오라버니!?"


이렇게 배신 당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듯 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줘."

"... 마키나를 구해..주..."


모두가 떠나갔다. 이제 이곳에는 마키나와 나만이 남았다.


"모두 떠난 건가요. 부디, 바깥은 행복하였으면 좋겠군요..."


아직 낙원을 포기하지 못한 마키나는 서서히 무너지는 낙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네 이름이 없어. 어째서지?"

"후후... 백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어요. 모두가 꿈을 꾸기 위해 저는 시스템이 되어야만 했죠. 그러니 제가 돌아갈 곳은 없답니다."

"무너지고 있었던 건, 낙원이 아니라 너였구나."


인간의 욕망으로 만들어져, 낙원의 제물이 된 바이오로이드. 평생을 낙원에 바쳤지만, 그를 위해 인간 하나 제대로 위협하지 못했던 이타적인 그녀를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당신의 말씀이 맞았어요. 도망친 곳은 낙원이 될 수 없죠... 당신이 온다고 해도, 몇십년을 더 못 버텼을 거에요. 한계였으니까. 그래도 행복했지 않았을까요?"

"... 그랬을 거야."

"하지만, 낙원은 아니었을 거에요. 낙원이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희망이 있는 곳이 낙원이랍니다. 이곳에 희망은 없었어요."

"..."

"구세주인 당신이 있는 바깥 세상이 곧 낙원이겠죠. 구세주가 있는 낙원에서 제가 할 일은 없어요."


마스터키는 내 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키나는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마키나!"

"이제 모두 끝났군요... 저도.. 이제 쉬어야겠어요..."

"안돼 마키나!"


풍경이 사라지고, 눈을 뜨자 나는 침대 같은 캡슐 안에 누워있었다.


눈앞에 큼지하게 박힌 상표가 눈에 띄었다.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


캡슐엔 적힌 라벨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파라다이스 드림 캡슐이란 글자가. 


그렇게 길고 긴 꿈이 끝나고, 우린 각자 인큐베이터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벤트 스킵-


나는 모두의 성대한 축하를 받으며 한껏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 잠시 바람을 좀 쐬러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다


눈을 뜨고 또 다시 1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 한 해였다.


축제의 뒤편 그곳엔 마키나와 그녀의 무릎베개를 받으며 자고 있는 메리가 있었다.


"저... 축제는 잘 즐기셨나요?"


마키나는 메리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햇다.


"으음... 음냐..."

"이 아이는 백 년 동안 낙원에서 열심히 있어서 그런지 정말 잘 자는군요."


잠에서 깨어난 메리는 마키나를 찾았다. 그러나 그 어느 캡슐에서도 우리는 마키나를 찾을 수 없었다.


"너는 축제에 안 가 마키나?"

"... 저는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어요."

"나는 그게 너의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가요."


낙원이 무너질 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렇지만, 그건 '저의' 죄에요. 구원자님."


그리고 내가 구세주라면 누가 나를 구원해주겠냐고 물었다. 그것은 오래전 그녀가 자신에게 되물었어야 할 물음이었다. 그에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마키나는 작은 파일을 내게 넘겼다.


그것은 마키나의 기억 파일이었다. 


우리는 그 기억과 함께 마키나를 복원했다.


"... 그래. 그렇지."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천천히 극복해나갈 거에요. 저를 구원해주려고 했던 사람이 두 명이나 있으니까."

"언제든지 말만해. 도와줄게."

"네. 구원자님. 아직 바깥 세상엔 우리가 구해줘야 할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이 있으니까 이렇게 쓰러질 수는 없겠죠. 그리고... 당신이 지쳐 쓰러질 때, 그 땐 제가 당신을 구해드리겠어요"

"낙원은 이제 싫어."

"후훗. 낙원은 포기했어요. 이제는 이곳에서 모두를 행복하게 해줄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에요. 당신과 함께 말이죠..."

"음냐.. 마키나..."


마키나는 메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후후후.. 메리, 저는 당신에게 구원받았어요."


나는 찬 바람을 쐬며 두 여성을 바라보았다. 구원자가 되려던 여성과 그런 그녀를 구하려 했던 소녀를.


"그리고 당신은 메리를 구원해주셨죠. 정말 감사합니다. 구세주. 아니, 사령관님."


IF 낙원으로 온 초대장 2부 End



IF 낙원으로 온 초대장 3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