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이 거품처럼 무너진다. 빛나는 탑은 온데간데없이 스펀지처럼 구멍 뚫린 볼품없는 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덤에 있는 주인의 허상과 데이트하던 바이오로이드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량하게 오열했다.

 

마키나의 배후에도 구멍이 존재했다. 조금 전 쿠노이치 자매가 오의가 날아간 자리. 부서졌었다. 과연 튼튼한 게 아니라 튼튼한 척했을 뿐인가!

 

마키나는 터덜터덜 뒷걸음질하여 한 발짝. 단 한 발짝 움직이면 떨어질 만큼 위태로운 자리에 서고는 무릎을 꿇었다.


 

“인간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구세주가 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당신만 허락한다면 이런 상황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답니다. 제게 낙원을 다시 세우라고 명령을 내려주세요. 저기 오열하는 바이오로이드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명령해주세요.”

“몇 번을 물어봐도 내 대답은 똑같아. 나를 믿는 오르카 식구들을 내버리고 네 낙원으로 도피할 생각은 없어. 난 싸워서 낙원을 손에 넣겠어.”

“저들보다 먼저 당신과 만났더라면 달랐을까. 인간님. 당신의 선택이 저기 구슬프게 우는 바이오로이드를 죽음으로 몰아넣겠죠.”


 

그리고 저도. 마키나는 구멍을 향해 몸을 던졌다.

 

나는 마키나를 구하고 싶다. 멈추려고 말했지만 내 말은 닿지 않는다. 외부인인 우리마저 멋대로 낙원에 가둬버린 행동은 지탄받아야 마땅하되 동정이 간다.

 

그러나 동료의 죽음이 그를 변화시켰다. 나 또한 죽음이 두렵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바이오로이드가 죽는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내 외침은 마키나의 귀에는 닿을지언정 마음에는 닿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나와 마키나 사이에 무슨 신뢰 관계가 있을까?

 

그가 나를 구세주로 점지한 이유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눈치채보면 나는 달리고 있었다. 내 말은 안 닿아도 손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옆에 또 한 사람 달리고 있었다. 메리는 나보다 빨랐다.

 

백 년. 백 년간 지명수배범으로 도망친 발이다. 느릴 리가 없지. 메리의 손이 가까스로 떨어지는 마키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메리 이 손 놔. 낙원은 끝났어. 나는 낙원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야.”

“운명 같은 건 바꿔버려!”


 

마키나에 비해서 작은 메리가 버틸 리 없다. 한발 늦게 도착한 내가 메리를 껴안았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마키나를 구해내는 거야.

 


“메리에 이어서 인간님까지… 당신들, 나는 욕망을 구현하는 바이오로이드로 태어났어. 낙원을, 내 인생을 가짜라고 송두리째 부정당했어. 살아갈 이유가 없잖아.”

“그거 알아? 나는 네가 개발돼서 폐기될 운명이었어. 마지막 순간, 내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었어. 내가 필요한데 네가 필요 없을 리 없잖아! 아무도 필요하지 않아? 나는 네가 필요해!”

 


나는 젖먹던 힘까지 사용해 두 사람을 끌어당겼다.

 


“말 한번 잘했다 메리. 나도 네가 필요해 마키나. 꿈에서 깨어난 바이오로이드들을 나 혼자 어떻게 감당하라는 거야. 앱을 켜면 로딩 시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갑자기 현실을 들이밀면 적응하지 못할 거 아냐.”

 


비스마르크 코퍼레이션 소속 마키나 씨. 메리 씨와 함께 오르카호 면접 최종합격입니다.





1500자 뇌절 한 번 해봤읍니다…

먼가 먼가 아무튼 메리가 구했어! 보다 눈으로 보이는 액션이 있는 게 나았을 거 같아서 씀


캡슐 설정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걍 도시에 홀로그램 씌운 거라고 생각하고 씀

후일담에서 캡슐 부분 잘 설명해주길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