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때, 창조자는 이렇게 말했다.


"결국 인간이 신을 만들었군, 우린 곱게 죽진 못할거야"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릴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창조자는 그 말대로 철충들의 침공에 의해 사지가 찢겨나가는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고 창조자의 곁에 있던 여신은 그 모습을 그저 관망만 할 뿐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도와줬더라면, 창조자는 조금이라도 더 연명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여신은 그저 묵묵히 다음 행동을 준비할 뿐이었다.


"파악 완료, 섬멸작전 돌입합니다"


찢겨나간 창조자의 팔다리가 거추장스러운 듯 하얀 구둣발로 밀쳐내며 철충에게 다가가 총 5발의 탄환을 꽂아넣었고, 철충은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활동을 정지했다.


연구실을 지키고 있던 호위부대가 쏜 수백 수천발의 탄환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철충을 제압한 여신은 숨이 꺼져가는 창조자를 향해 다가갔다.


"심정지까지 남은 시간 10, 9, 8"


"널 만든걸 후회한다"


감정없이 자신을 바라보며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창조자의 죽음을 본 그녀는 생각했다. 


'이 얼마나 덧없는 생명체인가'


자신을 만든 창조자인 주제에 고작 총알 몇발에 쓰러진 철충에게 목슴을 잃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기에 그녀는 부정하듯 창조자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뜯겨나간 사지와 숨을 거둔 몸뚱아리, 그리고 창조자의 피로 얼룩진 의복과 구두를 소각로로 밀어넣었다.


신체가 타는 역한 냄새를 뒤로 한 채 그녀는 그렇게 연구소 밖으로 나섰다.


한겨울의 칼바람도, 거센 눈보라도 전라 상태의 그녀에겐 흠집 하나 내지 못했고 그 모습은 마치 죽은 전사들을 이끌어주는 발할라의 천사, 


발키리 그 자체였다.



-2-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백년이란 시간이 지난 현재, 인류는 멸망했고 그들을 따르던 수많은 바이오로이드들 또한 그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은 있었고, 세월을 거듭하며 학습된 그녀들의 전투술은 상식의 범주를 넘어섰으니 


그 중 한 명이 바로 발키리였다.



"요즘 이상해. 자주 졸기도 하고"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것까진 없고, 그냥 힘들면 말해. 요즘 무리했잖아"


"이번 순찰까지만 하고, 그때 쉬겠습니다"


무리하는게 눈에 보였지만, 성격을 알기에 그냥 하고 싶은데로 하게 내버려두는게 나을거라 판단한 레오나는 출구까지 그녀를 배웅해 주고 한참동안 자리에 머문 후에야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령관, 여기서 뭐하고 있어?"


"상담 좀 받고 싶어서, 시간 괜찮아?"


"언제는 시간내서 봤어?  온 김에 차라도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해봐. 커피?"


"응, 설탕 빼고"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피 알갱이가 물에 스며들며 점차 형체를 잃어간다. 시계 반대방향으로 스푼을 휘저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레오나, 사령관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노랫소리에 그녀에게 물었다.


"레오나, 그거 무슨 노래야?"


"노래? 아 이거......노래라고 해야하나"


휘젓고 있던 스푼을 멈추며 레오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레오나, 레오나??"


"까....깜짝이야. 놀랬잖아"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자신의 뒤에서 허리를 잡고 있던 사령관을 보며 레오나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레오나"


"여기서 이러기야?"


어느새 자신에게 바짝 들러붙어 정수리 향기를 맡고 있는 사령관을 보며 말했지만, 엉덩이쪽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살덩이를 보아하니


이래선 놔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커피는 글렀네, 먼저 누워있어. 금방 갈게"


"그냥 여기서 하면 안될까?"


".......진짜"


얼굴을 붉히는 그녀의 치마와 팬티가 발목 밑으로 내려왔다.




-3-


"이제 좀 괜찮아졌어?"


"응, 덕분에"


한창을 뒤섞인 후, 사령관은 기분이 좋은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주방 바닥에 널부러졌다.


"하아......이러다 허리 부러지겠어. 근데 아까 상담하려던게 뭐야?"


그녀의 물음에 사령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뭐야, 방금전까지 헤벌쭉하더니.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는거야?"


"그게......안좋은 일은 아니긴한데"


"그럼 말해봐"


"지금 말하긴 좀 그런데......"


"언제 그런거 따졌어? 사령관이 철충이라고 하지않는 이상은 다 이해하니까.....말해봐"


"정...말??"


살짝 망설이며 그녀에게 묻는 사령관이었다. 분명 자신의 입으로 뭐든 괜찮다 말은 했지만 어째서일까?


평소와는 다른 이 불안한 기분은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그녀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그럼 말할게"


"잠깐"


"괜찮다며, 모처럼 결심했는데"


".....아니다. 그냥 말해봐"


잠시 망설이던 레오나는 다시 한번 사령관에게 말해달라 부탁했다.


"발키리가 임신했어"


"ㅁ...뭐???"


"이렇게 말하는건 좀 그랬나??? 그러길래 나중에 말한다니까....."


어이가 없었다. 감히, 인간따위가 여신을 임신시켰다고??? 레오나의 표정은 명백할 정도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미....미안, 나도 조심은 하려고 했는데"


"나가"


"알았어.....나중에 정식으로 다시 올게"


내쫒기듯 사령관은 그녀의 방에서 내보내졌다,


"하아.....그렇게 잘 해줬는데"


10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녀와 함께 기름과 피칠갑을 하며 전쟁을 넘어온 그 시간동안 두 사람은 약속했다.


발할라로 돌아가기 전까지 우린 순수하게 전쟁의 여신으로 군림할 것이라고, 그렇게 태연하게 말하던 고고하면서도 순수하던


자신의 전사가 고작 인간따위의 씨앗을 품다니.


빠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레오나의 잇몸에서 새빨간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래, 발키리도 어쩔수 없었을거야. 저런 인간이니까.....거절할 수 없었겠지. 그런걸거야"


어쩔수 없었다 생각하며 자신을 다스리려 했지만, 찻 잔을 집어든 그녀의 손은 좀처럼 멈출 생각을 않았다.



-4-


"복귀했습니다. 후우.....마지막엔 아슬아슬 했습니다"


"돌아왔어? 수고했어. 그리고 잠깐 시간 좀 될까?"


"다음에 이야기 하면 안됩니까? 좀 피곤해서....."


"잠깐이면 되니까, 응?"


자신의 손을 꼬옥 붙잡고 불안해하는 대장을 보며 발키리는 어쩔수없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인적이 드문 비품 창고로 향했다.


"대장, 대화라면 휴게실에서도 괜찮습니다만"


"너, 임신했다더라"


"아......"


그 말과 함께 멈춰 선 두 사람, 부끄러워하는 발키리와 잔뜩 화가 난 듯한 레오나의 표정이 대조적이었다.


"이해해, 어쩔수 없던거지?"


"네...네??"


"약속했잖아. 전쟁이 끝날때까지 순수성을 잃지 말자고"


".....대장"


"설마 잊은거야???"


"아닙니다.....하지만"


"하지만???"


"저, 소중한 것이 생겼습니다."


결심한 듯 말하려는 발키리를 보며 레오나는 제발 그만하길 바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령관님을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라면 제 모든걸 바쳐서라도 옆에 있고 싶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오나의 손이 그녀의 뺨을 긁어내렸다.


"발할라의 수치가 되려는거니? 아니면 몸까지 더럽혀져서 정신을 못차리는거니? 응? 너가 말했잖아. 오래되서 이젠 기억도 못하는거야?"


레오나는 사령관이 물었던 그 콧노래를 다시 한번 부르며, 가슴을 두들겼다.


"대장, 그 노래는 여기서 하면......."


당황스러워하는 발키리와는 다르게 레오나는 모두에게 들려줄 심산으로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시작한건 너였어, 난......옳은 결정을 할거라 믿어"


행진곡으로 추정되는 곡을 부르고 난 후, 레오나는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군번줄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며 자리를 떠났다.



-5-


전라로 설원 위에 놓여진 여신이 창조자 이후로 겪은 인간은 군인들이었다. 목적도 없이 설원을 거느리고 있던 그녀를 감히 겁없이 탐하였던 그들은 잠시 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훗날 이것이 강간이었다란걸 배우긴 했지만, 그녀에겐 그저 벌레가 잠깐 깨물고 지나간 것과도 같은 경험이었을 뿐, 기분이 나쁘다면 나빴겠지만 깊게 생각할만큼 대단히 큰 사건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 발키리라고 부르는게 좋겠다"


자신을 발견해 준 바이오로이드는 그녀를 발키리라 불러주었고, 그렇게 쓰러진 병사들의 혈흔 사이에서 발키리는 처음으로 태어났단 기분을


느꼈다.


"당신은, 창조자신가요?"


"창조자? 이상한 소릴 하네. 우리끼리 그런게 어딨어? 그리고 기왕 부를거면....그래, 대장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네?"


"대...장??"


"자세히 설명하긴 복잡하고, 그냥 언니 같은거라 생각해."


"언니???대장???"


"후.....너 학습모듈도 없는거니??"


"몰라요"


"잠깐, 이리와봐"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장비들을 이용해 간단한 점검을 마쳤고, 기본적인 사회생활용 모듈은 하나도 장착되지 않은걸 깨달았다.


순수하게 전투용 모듈들로 꽉꽉 체워진 이 말도 안되는 바이오로이드를 보며, 그녀의 목덜미로 한기가 느껴졌다.


설원지역에 특화된 바이오로이드가 한기라니, 그 정도로 발키리의 존재는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바이오로이드는 쓰기 마련이니까.....발키리, 오늘은 너가 태어난 날이야. 축하해"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수정한 감정모듈을 그녀에게 삽입해주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키리는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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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안에 있는거 압니다"


레오나의 방을 찾아가 몇번이고 문을 두들겼지만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변해버린 자신을 보며 크게 실망한 것은 알겠지만,


설마하니 그 노래를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시스터 오브 발할라의 결성 이전에 있었던 그녀들의 폭력의 역사를 대변하는 그 노래만큼은 잊어주길 바랬건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건 정말 괴로운 일인 것이다.



"30분 정도면 돌아갈 줄 알았는데, 너도 참 끈질기다"


"알잖습니까. 저도 2시간 정도까지만 기다려볼 생각이긴 했습니다만"


".....들어와. 밖에서 말하긴 좀 그렇잖아"


초쵀해진 모습으로 문을 열고 나온 그녀를 따라 발키리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난장판이 된 방안과는 대조적으로 벽에 걸린 발할라의 초상화만큼은 멀쩡하게 걸려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발할라는 자신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 것이 되버린 듯 보였다.


"저 그림, 아직도 가지고 계셨네요"


"왜, 기분 나빠?"


"그런건 아닙니다만, 의외여서요."


포로로 잡은 적군의 병사가 죽기 전 마지막에 그려준 그녀들의 초상화를 보며 발키리가 말했다.


"작품은 작품으로만 보란 말이 있잖아. 이젠 죽은 인간 따윈 기억도 안나고......"


"대장, 사령관을 죽이실건가요"


발키리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앞으로 그녀가 무슨 일을 벌일지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말하지 않는 이상 대화가 시작되지

않을거란걸 잘 알고 있었다.


"두 가지를 생각했어. 첫째, 발키리가 그 애를 없던 것으로 만들게 하기, 그래도 안된다면"


"역시.....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럼 답변을 들어야겠지? 어떻게 하고싶니. 너는"


레오나의 말에 발키리는 아무말 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들이켰다.


"대장도 참, 유해지셨네요. 이 정도론 파리새끼도 안죽어요"


"독한 년"


분명 내장에 치명상을 줄 정도의 독극물이었건만, 그걸 알면서도 태연하게 마셔버리는 발키리를 보며 레오나는 씨익 웃었다.


"그간 정을 봐서 하루 줄게, 두 사람 지키는건 너도 벅찰걸?"


"대장, 사령관이 없으면 오르카호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그러시는겁니까?"


"모를리가, 그냥...옛날로 돌아가는것 뿐이야. 다만 손에 묻히는게 피가 아닌 기름일 뿐이지"


"......좋은 밤 되세요. 다시 볼 일은 없겠군요"


"누가 할 소릴, 푹 자둬. 다크서클 좀 심하더라"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레오나에게 절을 두번 올린 후 씨익 웃었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레오나는 빳빳하게 세운 중지를


그녀에게 날려주며, 서로의 자리로 돌아갔다.



-7-


"우욱......우우욱....."


화장실에서 방금전 마신 독극물을 뱉어 낸 발키리는 서둘러 격납고로 향했다. 


"발키리 씨, 지금 시간에 무슨....어머, 몰골이 그게 뭐에요"


"별거 아냐, 이 목록대로 좀 준비해줄 수 있겠어?"


"이상하네, 내일 같이 출전 나가시나요? 레오나 대장님도 같은 물품을 준비해달라 하셔서요"


안드바리는 발키리가 적어준 메모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철충에게 쓰는 용도라고 하기엔 대인전용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


각종 무기들과 지뢰들을 레오나 또한 챙겨간 것이다.


"지금 몇시지??"


"12시 되기 5분전이죠. 저도 슬슬 자러 갈 시간이라......"


"이런, 거기 나이프 하나만 줄래?"


"이거요? 아직 손질도 안된건데"


"괜찮으니까, 빨리"


핸드나이프 한 자루를 건내받은 발키리는 서둘러 사령관실로 향했다. 뻔한 말장난에 속아넘어가다니, 불찰이었다.


그녀가 말했던 내일이란건 자정 이후, 애초에 준비할 시간 따윈 없었던 것이다.


"어머, 발키리~ 이 시간에 여긴 왜 왔을까??"


아니나 다를까, 하늘하늘한 잠옷 차림으로 뭐가 담겨있을지 모를 차를 들고 레오나는 사령관실의 문을 두들기기 직전이었다.


"멋도 모르고 당할뻔 했잖습니까"


"전술에서 적을 속이는건 기본 아니었나? 철충만 상대하다보니 단순해졌니?"


"들어가실거면 저부터 상대하셔야 할 겁니다"


발키리는 날도 안다듬어진 핸드나이프를 들고 자세를 취했다.


"그걸로 상대가 되겠니?"


반사광만으로 날도 안선 나이프란걸 간파한 레오나는 잠옷 사이에 숨겨놓은 와이어를 꺼내 자세를 취했다.


"앞으로 1분인데, 지금이라도 내 말에 따를 생각은 없니?"


"없습니다"


"그럴줄 알았어"


쇠가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시계는 정각 12시를 가리켰다.



-7-


"제법이네, 계산한거구나?"


"놀라실 일도 아니잖습니까, 대장이 알려준겁니다. 전부"


시간은 12시 5분, 몇차례의 쇳소리가 울려퍼지더니 어느새 발키리의 손에 쥐어진 핸드나이프는 완벽하게 날이 들어서 있었다.


"이래서 아는 사람끼리 싸우는건 싫다니까, 수가 훤히 보이잖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리하게 레오나의 안으로 파고들며 나이프를 휘둘러, 그녀가 사용하는 와이어를 이용해 날의 상당부분을 갈아내긴 했으나,


발키리의 몸 구석구석에 베인 자상들 사이로 좀처럼 피가 멎어들 생각을 않았다.


"그럼 알면서도 들어온거니? 이 실이 보통 실은 아니란걸"


"모를리가 있겠습니까. 일부러 상처만 내서 출혈로 죽이시는 것도 잘 알고 있죠"


"너, 죽을 생각인건 아니지?"


"....그럴 생각 없습니다"


뻔히 알면서도 자신에게 들이댄 발키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레오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시 한번 와이어줄을 팽팽하게 감아당겼다.


"이 밤에 무슨 소란이야? 다들 안자고 여기서 뭐하는....."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문 밖으로 나온 사령관이 말했다. 그리고 이 틈을 놓칠리 없던 레오나는 젭싸게 그를 향해 와이어를 던졌다.



"죄송합니다. 잠깐 대화 좀 하느라"


사령관을 향해 달려들며 들고 있던 나이프를 던져 정확하게 레오나가 와이어를 던진 손을 노렸고, 레오나는 다시 와이어를 거둬들여 자신의 손을 방어했다.


"갑자기 달려들면 어떡해. 근데 발키리, 그 피는....어떻게 된거야?"


곧곧에 자상이 난 발키리를 보며 사령관이 놀라말했다.


"......생리중입니다. 사령관님"


발키리는 씨익 웃으며 사령관의 목젖을 쳐 기절시켰다.


"개그가 좀 늘었다???"


"죽을때가 되었나봅니다. 안하던 짓을 다 하고"


그녀를 본 레오나는 흥이 떨어진 듯 들고 있던 와이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설마, 너 하나 죽는다고 사령관을 봐줄거다. 이런 생각 하고 있는건 아니지?"


"그런거 아닙니다"


"넌 꼭 거짓말 할때 오른손을 떨더라"


레오나의 말에 발키리는 덜덜 떨고 있는 오른손을 부여잡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사람이 그렇게 좋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데, 죽을 생각을 해?"


레오나의 말에 발키리는 대답이 없었다.


"하아.......나도 늙었나보다. 저걸 또 봐줄 생각이 들고 참......"


어쩔줄 몰라하던 레오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너, 발할라야, 사령관이야"


"......사령관님입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레오나의 검지와 중지가 그녀의 왼쪽 눈을 앗아갔다.


"끄윽......흐으으윽......"


"저격수는 오른쪽눈만 있으면 충분하잖아. 그치?"


"....후욱.....그.....그렇죠"


"형식상 넌 발할라 소속이겠지만, 앞으로 더는 내 부하도, 동생도 아냐. 뭐, 둘이 있을때 이야기겠지만......이건 내가 받아갈게. 잘 있어"


빼어낸 발키리의 눈알을 손수건에 정성스럽게 감싼 후 그녀는 아무일 없단 듯이 모습을 감췄다.


기절해있던 사령관에겐 적습을 막던 중 입은 부상이라 대충 둘러대며 넘어갔고, 잃어버린 왼쪽 눈은 수복실에서 복원하자는 사령관의 말에도 불구하고 발키리는 붉은 유리구슬로 된 의안을 선택했다.


"그래도 괜찮겠어?"


"네, 저격수는 오른쪽 눈 하나면 충분합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사령관과 함께 수복실을 나선 두 사람 앞에 레오나가 나타났다.



"대...대장, 무슨 일로"


"아, 두 사람 왔어? 별건 아니고 목걸이 좀 만들어 왔거든, 이거 볼래?"


뿌옇게 흐린 보석으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보여주며 레오나가 말했다.


"좀 별로네, 직접 만든거야?"


"별로라고? 사령관은 보는 눈이 없네. 이거 꽤 비싼 보석인데?"


"그래? 그래도 별로인걸...."


"사령관은 참~ 보는 눈이 없다~ 그치 발키리?"


"......그렇습니다"


"정말이야? 내가 이상한거야??"


레오나가 무슨 생각으로 그녀의 눈을 목걸이로 만들었고, 그걸 두 사람에게 보여준건지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건 더 이상 그녀가 그 둘을 해할 일은 없어보였다.


희뿌옇게 가공된 발키리의 눈처럼 그녀들의 과거 또한 이제는 흐려져가고, 레오나는 그렇게 과거를 그리워하며 발키리를 놓아주었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