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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마리'가 교전을 벌인 흔적을 쫓다 보니, 여러 부대로 나뉘어 흩어진 걸 확인했다.


그 중 어디에 마리가 섞여있는 건지 모르겠으나, 일단 대규모 부대 쪽에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코코'라는 바이오로이드가 구조요청을 해왔다.


그 바이오로이드는 마리의 측근이라는 듯 하다.


"그 코코라는 바이오로이드는 지금 어디 있는데?"

"좌표로 보면, 헤파이스 철공소려나."

"철공소......"

"응. 부품을 잔뜩 끌어모을 수 있겠지."


해당 바이오로이드를 구해 마리의 소재를 알아보고, 겸사겸사 부품도 구한다면 1석 2조겠지.


"금발 년. 정찰 다녀와라."

"......있잖아. 이제 금발이 나 하나도 아닌데, 슬슬 인식명으로라도 불러주면 안 되는 거야?"

"항명하는 거냐?"

"칫, 알았다구."


팔에 근육만 더 붙었어도 한 손으로 들어 허공에 집어던졌을 텐데. 금발 년을 정찰 보낸 뒤, 근처에 연결체가 없는 걸 확인한 뒤 코코를 회수해오게 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이건 뭐냐?"

[아마도......프레데터?]


금발 년이 보내온 화면에는 온 몸에 나이트 칙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듯한 이상한 철충이 있었다.


그 모습을 인식한 순간, 갑자기 두통이 밀려온다. 바이오로이드 녀석들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일 수 없어, 미간에 힘을 빡 주는 걸로 버틴다. 그러자, 해당 철충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철충을 잡아먹고, 그걸로 자신의 몸을 재구성하는 괴물.

철충을 잡아먹는 배신자. 상처를 입으면 더욱 격렬하게 날뛰는 괴물.


'뭐, 뭐지!? 뭐냐, 이 기억은......! 이건, 이건 내 기억이 아니야......!'


애시당초 배신자라는 표현은 뭐냐. 마치 내가 철충의 하나인 것 같은 인식일 때 나오는 단어잖나.


"인간님?"

"......망할, 금발 년. 제대로 정찰하지 못해! 아까는 없었다면서!"


메이드 년이 의아해 하는 눈동자로 이쪽을 보아온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 금발 년에게 언성을 높인다.


[......미안. 변명의 여지가 없어.]

"멍청한 년! 폭격 말고는 아무런 쓸모도 없군. 다음부터 네게 정찰 따위는 맡기지 않아!"


머리의 지끈거림 탓에 집중력이 흐려지는데, 프레데터의 몸체 여기저기 상흔이 보인다.

그 불굴의 마리라는 녀석이 입힌 상처인가.


[이, 이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숨어!"


또다시, 내 것이 아닌 기억이 부상한다.

프레데터는 인간보다 철충을 더 싫어한다고.


[뿌리치는 게 더 빠르지 않아!?]

"추격해오지 않아! 닥치고 내 명령에 따라!"

[......알았어.]


금발 년을 필두로 현지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엄폐물 뒤로 은신하자, 프레데터는 조용히 멀어져 갔다.

아마 다른 철충들을 쫓으러 간 거겠지.


......젠장, 어떻게 된 거냐. 내 몸, 진짜 내 의체가 맞긴 한 건가?


[지나갔어.]

"그 코코란 년을 마저 찾아서 조용히 데려와."


통신을 끊고, 나는 메이드 년을 돌아보았다.


"거울 가져와."

"알겠습니다."


메이드 년이 즉각 손거울을 가져온다. 전신 거울이 아닌 게 조금 불만이지만 지금 당장 확인하는 게 급하다.


"......왜 그러시나요?"

"됐어. 아무것도 아니야."


달라진 건 없다. 피골이 상접했던 무렵과 달리, 조금 살이 찐 지금의 얼굴은 옛 얼굴과 똑같다.


'설마......겉과 달리, 내용물은 내 유전자를 가지고 만든 게 아닌 건가?'


세포 기억설 따위는 믿지 않는다.


행동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주는 부분은 오직 두뇌 뿐이다. 두뇌의 일부나 전체를 이식받았으면 모를까, 다른 신체 부위를 이식받는다고 해서 그 기증자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지금 이 몸의 뇌는, 혹시 내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인류는 멸망해 버렸고, 내 옛 육체 또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텐데. 어떻게 지금, 이 몸의 뇌를 비롯한 장기들이 내 것이라 증명하지?'


데이터를 비교하려 해도, 원본이 필요한 법인데. 그 원본이 지금 없다.

어디에 남아 있기는 할런지도 모르겠고.


'정말로, 지금의 내가 『나』가 맡긴 한 건가?'


겉모습만 그럴싸하고, 내용물은 전혀 다른데, 내 기억만 뒤집어 씌워 나를 『나』라고 혼동하고 있을 뿐, 별개의 사람인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알 수 없는 철충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리 없다.


"......"

"인간님?"

"어이, 메이드 년. 혹시 이런 생각해 본 적 없나? 너 같은 양산형에게 『나』라는 개성이 있을까, 하고."

"네?"


바보 같은 생각인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의체에 의식을 옮긴다. 그런데 의식을 여러 육체에 동시에 옮길 수 있다면.

그 의체 하나하나가 자신을 『나』로 인식한다면.


내가 이 바이오로이드들과 다를 게 뭐지?


순수한 인간의 정의라는 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 거지?


옛날에는 고민해 본 적도 없던 것들이, 지금은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한다.


"......질문의 의도를 잘 모르겠지만, 제가 철충과의 교전 속에서 고꾸라져도. 언젠가, 또 다른 콘스탄챠 S2가 인간님을 곁에서 보필하겠죠."


그걸로 끝인가. 역시 멍청한 질문이었다. 질문을 던질 대상이 잘못되었어.

정신력이 약해진 건지, 이딴 실수를──.


"하지만, 제 기억은 온전히 저만의 것이에요. 그것만은 제 후속기에게 넘기지 않아요. 그리폰과 함께, 유이하게. 인간님을 최초로 발견해, 지금까지 보필해 온 콘스탄챠 S2는......오직 저 뿐이에요."


담담하게, 그러나 확신에 가득 찬 말.

예상 밖의 답변에 나는 얼이 빠졌다. 마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세게 내려친 것 같았다.


그런 내 정신을 다시 일깨운 건 똥개가 짖는 소리였다.


"아차, 미안. 보리도 함께였지. 미안미안. 보리도 함께야, 응."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흥......역시 내게 철학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군. 뭐가 테세우스의 배냐. 나는 나인 것으로 충분한데."

"인간님?"


내 기억에 다른 불순물이 섞여 있다 한들, 주를 이루는 건 『나』의 기억이다.

이 마음도, 인격도, 정신성도 전부 『나』다.


설령 이 육체가 내 것이 아니더라도.

불순물처럼 섞여든 기생충이 나일지라도.


지금 이 몸은 나의 것이다. 그러니 이건 내 몸이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양산형을 싫어한다. 적어도 이 배에 탑승해, 내 시야에 들어오는 한,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똑같은 얼굴이 둘 이상 있는 건 눈 뜨고 봐줄 수 없어."

"네, 그게 인간님의 바램이시라면."

"그러니까, 내게 있어 콘스탄챠 S2는 오직 너 하나 뿐이다. 네 후속기 따위는 필요없어. 네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


연필로 종이를 스윽 긋다가, 연필심이 부러지면 선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거기서 끊긴다.

하지만, 그동안 그어온 선이 사라지던가? 그렇지 않다.


"내 콘스탄챠는 네 녀석 하나 뿐이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야. 명심해 둬라. 지금 여기 있는 녀석들이 전부다. 그 후로 찾아오는 녀석들은 전부 회로와 오리진 더스트만 뽑아서 버릴 거야."

"제작 단가가 낮은 양산형이라도?"


임펫이 물어왔다.


"그래. 저 눈에 거슬리는 프레데터 놈을 죽여버린 뒤, 널 제외한 다른 임펫은 전부 폐기다. 진급 준비나 해, 임펫 상사(진)."

"......하핫, 평생 따라가겠어. 사령관 동지."


결론을 내리자, 모든 미혹이 사라졌다. 더 이상의 두통은 없다.

설령 다시 두통과 함께 내가 알 리 없는 지식이 떠오른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거다.


그 기억의 주인이 내 인격을 밀어내고 이 몸을 차지하지 못하는 이상.

그 지식과 기억마저 철저히 이용해 주지.


[인간! 코코를 찾았어!]

"빨리 데려와. 그 뒤, 프레데터를 쳐죽일 작전을 가다듬는다."

[어? 갑자기 왜 그리 적극적......?]

"이전의 실책을 만회하기 싫어? 내 기분 바뀌기 전에 빨리 돌아오기나 해라."

[지, 지금 바로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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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각오한 자는 행복하다는 거다!" 라는 내용

주인공 삽질할 시간도 아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