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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프레스76은 오르카에서 출발하여 드넓은 태평양 위를 넘어 옛 중국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있는 페도-라인의 개척지로 날아갔다. 바다 위 어선에서 고기를 잡던 페도-라인 개척지의 어부들은 성지의 사자가 날아온다며 소리쳤고 곧장 항구에 소식을 알렸다. 어부들에게 무전을 받은 해안 경비대들은 바로 지도부에 소식을 알렸고, 지도부는 사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익스프레스76은 페도-라인의 지도부가 있는 건물의 꼭대기에 내려앉았다. 지도부의 관리들이 모두 건물 옥상으로 나와 그녀에게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현재 개척지의 수장 역할을 맡고있는 중년의 남성이 걸어나와 그녀를 직접 맞이하였다. 지난 1000년간 이 대접을 계속 받아왔지만 몇 번을 마주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익스프레스76이었다.

 

“성지 오르카의 위대한 전령이시여, 이번에는 어떤 계시를 저희에게 내려주시려 하십니까?”

 

그녀는 온몸에 닭살이 돋으려고 하는 것을 어떻게든 참고 필사적으로 표정관리를 하였다. 그리고 품 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오르카에서 일반적인 문서를 보낼 때 사용하는 종이봉투였지만 거기에 찍힌 사령관의 도장을 본 페도-라인의 수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령관님의 지휘서신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확인하세요.”

 

페도-라인의 수장은 그 서신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오르카가 있는 방향을 향해 세 번 절을 하고 서신의 봉인을 뜯어냈다. 서신의 내용은 개척지 북쪽에 철충에게 감염된 괴상한 AGS 하나가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것을 무력화시켜서 오르카로 직접 끌고오라는 내용이었다. 서신의 내용을 다 읽었다고 판단한 익스프레스76은 수장에게 사령관의 말을 전해주었다.

 

“최대한 빨리 잡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개척지의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말이죠.”

 

“알겠사옵니다. 성지의 전령이시어.”

 

익스프레스76에게 절하는 수장을 따라 뒤에 있던 다른 관리들도 큰절을 했고 익스프레스76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씨발.... 이 병신같은 짓좀 안하면 안되나... 왜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에게 큰절을 받아야 하는거야!!’

 

대충 사령관의 명령을 전달한 그녀는 그 분위기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던 탓에 제트엔진을 가동시키고 빠르게 오르카를 향해 날아올랐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익스프레스76의 시야에는 아직도 건물 꼭대기에서 익스프레스76에게 큰절을 하고 있는 관리들이 보였다. 

 

“아 제발....그냥 무전으로 연락하면 안될까요? 아르망씨? 부담돼서 죽겠다고요!!”

 

그녀는 제트엔진 출력을 최대로 하여 개척지 영공을 벗어났다. 

 

한편, 페도-라인의 지도부는 익스프레스76이 개척지로 찾아온 그날 전 개척지에 방송을 하여 공휴일로 지정하며, 광장에서 있을 대국민 담화에서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몇 시간 뒤, 광장에는 갑자기 휴일이 생겨버린 수많은 사람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이 운집하여 무슨 일인지 웅성거리고 있었다. 페도-라인의 수장은 모여든 군중들을 향해 마이크를 켜고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은 아주 기쁜 날입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이 봉투를 봐주십시오!! 성지 오르카의 계시가 담긴 봉투입니다! 우리 스틸라인 연합이 전 세계 개척지 최초로 기계 옥좌의 계시를 직접 받은 날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수장은 연설의 첫 마디와 함께 사령관의 직인이 찍힌 서신봉투를 카메라를 통해 군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오르카의 문장이 찍힌 그 봉투가 스크린에 비춰지는 순간 광장은 그것을 본 수 많은 사람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의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구원자께서 계시를 내리셨다!!!!”

 

“살아생전에 기계옥좌의 계시를 받는 것을 보다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광장에 모인 수많은 인간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은 연합 수장이 손에 든 아르망의 친서를 바라보며 성역 오르카에 대한 기도를 올리고 그 은총이 닿았음을 기뻐하며 환호했다. 심지어 기절해서 실려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친서의 낭독이 끝나고 수장의 연설이 이어졌다.

 

“위대하신 첫 번째 신-인류이시자, 우리의 구원자께서 말씀하시길, 우리 스틸라인 연합의 용맹함을 높이 사는 바! 저 북쪽에서 다가오는 타락한 영혼을 잡아들여 그것을 구원의 길에 오르게 하라 하셨습니다! 우리 스틸라인 연합은 그 말씀을 충실히 따를 것이며 그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구원자에 대한 맹세에 따라, 그리고 기계옥좌에 권능에 따라, 저 타락한 존재에 대한 성전을 선포하는 바입니다 여러분!!!!”

 

수장은 피를 토할 기세로 연설을 하며 성전을 선포했다. 광장은 순식간에 성전에 찬동하는 군중들의 광기어린 목소리로 가득찼다.

 

“구원자를 위하여! 기계옥좌를 위하여! 성역 오르카를 위하여!”

 

연설과 축제가 끝난 다음 날, 페도-라인 행정부는 연합의 최정예 병력들과 함께 2개 군단 규모의 부대를 편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철충과의 마지막 전쟁 당시에 페도-라인의 전선을 굳건히 지켜주었던 옛 오르카의 AGS인 기간테스까지 동원하였다. 개척지 중앙의 거대한 격납고에 잠들어있던 기간테스는 코헤이 교단 사제들의 기도주문과 축성을 받으며 시스템 부팅을 시작했고 곧이어 격납고 바깥으로 나가 떠오른 태양을 마주했다.

 

출병식은 엄청나게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모든 병력들에게는 코헤이 교단 사제들에게 축성받은 성수가 뿌려졌다. 그리고 그 군단의 맨 뒤에서 기간테스가 지축을 울리며 걸어오자 열병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은 

 

“파괴의 거인이시여, 스틸라인의 수호자시여!! 이단에게 구원자의 심판을 내려주소서!!”

 

“오오... 위대하신 구원자시여, 스틸라인의 전사들에게 꺾이지 않는 용기와 강함을 주소서!!!”

 

라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수많은 시민들의 환호와 축복을 받으며 페도-라인의 북쪽 관문을 나선 원정군은 즉시 감염된 라인리터를 생포하기 위해 북쪽으로 진군했다. 

 

 

 

 

물론 저 모든 장면을 사령관은 지켜보고 있었다. 익스프레스76에게는 바디캠이 달려있었기 때문에 익스프레스76이 페도-라인에서 겪은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전부 옥좌실에 있는 스크린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편집을 할 수 없었던 스프리건 뉴스에는 페도-라인 원정군의 출병식까지 보도되고 있었다. 

 

“스틸라인 개척지에서 가장 전투경험이 많은 인간 사령관과 불굴의 마리 개체, 그리고 이들의 지휘를 받는 약 2만 여 명의 병력과 기간테스는 철충화된 라인리터를 제압하기 위하여 바이칼 호 인근지역으로 향했습니다. 지금까지 오르카 뉴스, 스프리건이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사령관의 음성장치에서는 기계음으로 이루어진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저....폐하...?”

 

[내가 멸망 전 사극들을 좀 많이 보긴 했지. 제로랑 카엔이 나오는 무로마치의 꽃인가 그것도 재밌게 봤고 말이다. 혹시 덴세츠 아이들의 자손들이 엔터테인먼트 회사라도 차린 것이니? 엄청나게 큰 회사인가보군. 저렇게 수 만 명의 배우들을 동원할뿐만 아니라 저렇게 커다란 세트장까지 가지고 있다니. 엄청나군. 현대적인 건물과 중세의 문화의 조화라니, 아주 신선한 조합이야. 누가 생각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대견해서 엉덩이를 때려주고싶군.]

 

“어... 폐하... 그러니까 그게...”

 

[저것도 분명히 사극이겠지. 묘하게 건물이나 사람들의 복식이 현대식 복장이지만, 멸망 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극이겠지. 그렇고 말고.]

 

“사극이 아닌데요 폐하..”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하려는 사령관에게 아르망이 태클을 걸었다.

 

[저게 사극이 아니고 현실이라면 설명 좀 해봐 아르망. 도대체 지난 천 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어떻게 해야 오르카에서 내 자식들끼리 살 때보다 인류의 정신세계와 사회체계가 후퇴한 것이냐. 뭐? 익스프레스76이 위대한 전령? 성지의 전령이라고? 그리고 복실이는 또 뭐냐. 복실이가 파괴의 거인이라고? 그리고 저 아무짝에 쓸모없는 물은 왜 뿌리는 거냐? 저러다가 외피와 무기에 녹이라도 슬면 저놈들이 또 도색하는거냐? 그리고 나한테 기도한다고 해서 뭐 총알이 비껴나가기라도 하냐? 지금 철충화된 라인리터가 쏴대는 2연장 입자 집속포를 겨우 저런 기도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진짜 저놈들은 진심인거냐 아르망?????] 

 

“익스프레스76 개체는 제트엔진과 특수 경량화 합금 기술이 소실되어버린 오르카 바깥에서는 생산이 불가능해서 희귀 개체가 되어버렸고, 복실... 아니, 기간테스와 같은 고 등급, 거대 AGS 제작기술 역시 오랜 내전에 휩싸여서 전부 불타버렸거든요.”

 

[아자젤 맙소사.]

 

“익스프레스76 개체는 지금 오르카에 남아있는 1명, 지금 전령으로 활동하는 익스프레스 씨 혼자만 남아서 개척지에서는 거의 아자젤 씨 수준의 하늘의 사도로 여기고 있고요... 기간테스 역시 내전 당시에 각 개척지들의 최종병기로 마구잡이로 쓰인 끝에 모두 파괴되어서 페도-라인 개척지에 남은 개체를 마지막으로 생산이 중단되었어요.”

 

[그래, 뭐 AGS는 기술이 없어서 못 만든다고 치자. 그런데 익스프레스76은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저 정도 대접을 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 않니 아르망? 멸망 전에는 대량으로 생산되어서 택배업무를 맡던 아이였는데다가, 그 아이의 장비도 그렇게 고급 기술은 아니지 않니. 내가 엘라를 제조하려다가 익스프레스가 튀어나온 횟수만 해도 오르카의 브라우니 숫자를 훨씬 넘길 거다.]

 

“그런 생각도 기술이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폐하. 애초에 현 개척지들의 과학기술 수준은 지휘관급 바이오로이드 개체는 개척지의 전 기술을 끌어다가 만들어야 겨우 생산할 수 있는 수준이고, 비행기술도 소실되어서 다른 대륙도 날아서 못 간다고 하더라구요. 인간이 타고 날 수 있는 비행기도 못 만드는 수준이니, 지금 오르카에 있는 기동형 바이오로이드들은 아예 못 만든다고 보시면 되요.”

 

[이런 미친, 진짜 의식수준이 이제 막 고대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난 수준인거냐?]

 

“바이오로이드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다는 것 빼고는 문화적인 측면이나 의식적인 측면들 같은 경우에는 정말 그 정도 되겠네요. 폐하.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들도 자신들이 어떻게 이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브라우니나 폴른은 생산하고 있지만 그냥 천 년 전 개척시대부터 쭉 자동으로 돌아가던 제조시설....아니, '성소'에서 부품과 영양과 전력을 넣는 '의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거죠. 사실 그걸 다룬다는 것 자체가 기술이라는 것을 모른채로 말이죠. 그냥 오래전부터 이렇게 해왔으니까 그런거다... 당연한거다. 이렇게 말이죠. 계속 제조시설의 구조를 연구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그걸 하려고 했던 과학자들이 전부 내전으로 죽어나가서 그 노력은 전부 수포로 돌아간 상태고 현재는 포기한 상태에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정도로 개판이 날 수 있는지 모르겠구나 아르망.]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