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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사령관실 앞에 쟁반이 놓여있었다.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들이 담긴 쟁반이었지만


그 정성이 무색하게 음식들은 온기를 잃었고 같이 놓아둔 과일들은 변색되어가고 있었다.



"사령관, 일주일째야. 그만하고 제발......"


사령관을 찾아온 레오나는 문 앞에 놓여진 음식들을 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혹시 내가 만든 요리라 그런거야? 그런거라면 소완에게 부탁해서 다시 가져올게. 내가 요리 솜씨가 좀 꽝이긴하잖아?"


베인 상처들로 얼룩진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발키리의 사망 이후, 사령관은 모든것을 포기한듯 그녀들과의 대화를 거절했다. 


라비아타를 비롯한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은 그의 건강을 염려해 강압적으로라도 그를 꺼내와야한다 주장했으나, 


사령관에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 만약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혹여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의 목슴을 걸겠다는


레오나의 말에 그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10일 정도는 버틸수 있을거라 판단하여 그녀에게 전적으로 사령관의 관리를 위임하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가끔씩 들려오는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만이 그의 생존을 알릴 뿐, 


그런 울음소리를 듣는 레오나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아끼는 부관이면서 동시에 동생처럼 여기던 그녀를 잃은 상실감이 사령관보다 

덜하진 않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걸......."


사령관실 앞에서 멍하니 썩어가는 음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소린 하지마"


그녀의 진심이 통한건지, 아니면 단순히 사령관의 감정이 진정된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확히 8일째가 되는 날 사령관실의 문이 열리고


초쵀한 몰골의 사령관은 그녀가 깎아 온 반쯤 썩어가는 토끼모양의 사과를 입에 밀어넣었다.


"이렇게 맛있는걸 그냥 버릴뻔했네, 신경써줘서 고마워"


"사령관......."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울었다.





"일동, 묵념"


사령관이 복귀한 다음날, 우선적으로 발키리를 기리는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을 잠수정에서 지내던 그녀였기에 마지막만큼은


육지로 보내주고 싶단 의견을 수렴해 위험을 감수하고 오르카호는 긴 잠수를 마치고 간만에 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볕이 잘 드는 이름 모를 어느 곳, 그녀가 묻혀야 할 장소가 준비되었다.


"사령관, 준비됐어"


더치걸은 덤덤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삽을 사령관에게 건내주었고, 각자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나씩


전하며 그녀의 관 위로 흙을 덮었다.


그녀의 관이 흙에 덮여 모습이 보이지 않을 즈음, 레오나는 그녀가 아끼던 모신나강을 들어 하늘을 향해 총 21발의 조총을 발사했다.


"이런거밖에 못해줘서 미안해"


사격을 마친 모신나강에 입을 맞춘 후 레오나는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그녀의 무덤가에 꽂아주었다.



"시스터 오브 발할라 소속 T-8W 발키리 중령, 금일부로 전역을 명한......"


결국 터져나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총 옆으로 쓰러지며 레오나는 절규했다.


유난히도 비바람이 치던 21XX의 어느날, 오르카호엔 처음으로 영구결번이 생기게 되었다.





-2-


다시 이전과 같은 일상을 되찾을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사람 난 자리가 쉽사리 잊혀지진 않았다.


"발키리, 오늘 끝나고 뭐할...."


"사령관, 일과 끝나고 시간 괜찮아?"


"어....어 그래....괜찮지, 레오나....."


사령관이 당황할 것을 염려해 오히려 못들은 척 그를 맞춰주는 날이 계속 되었고, 이런 사령관에게 연민과 함께 자신이 죽었다면

이렇게까지 했을까란 생각이 레오나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당연히 그러겠지, 그럴거야'


애써 태연한척 속으로 생각했지만, 한번 머릿속에 자리잡은 불안감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내일 주말이기도 하니까, 간만에 둘이서 한잔 어때?"


"괜찮겠어? 술 안좋아하는거 아니었어?"


"가끔은 마셔, 말을 안할뿐이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소릴 한건지, 레오나 또한 스스로에게 놀랄 따름이었다.


"그러면 방에서 기다릴게, 좀 있다 봐"


"금방 갈게, 오늘은 업무도 별로 없으니까.....특별히 먹고 싶은거라도 있어?"


"글쎄, 아 맞다! 전에 토끼모양으로 깎아준 사과 있잖아. 나 그게 먹고 싶어졌어"


"사령관이 좋다면야, 알았어"


가슴 한켠으론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지만, 사령관이 원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그녀였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일과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은 사령관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걸까"


한 손엔 사령관이 부탁한 안주와 모처럼 갖춰입은 나이트드레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어줬지만 마음속 그림자는


좀처럼 지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사령관, 들어가도 될까?"


방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문이 열리고,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그의 모습이 보였다. 애써 해맑은 척 하고 있었지만 침대맡에 엎어놓은 액자를 보아 방금전까지 그녀의 사진을 보고 울고 있던걸로 추측되었다.


"방이 이게 뭐야~ 조금은 치워뒀어야지"


"미안, 치우는게 익숙치 않아서"


"으휴, 남한테 의지하는건 좋지않아. 아무리 사령관이라도 가끔은 방청소 정도는 직접 해보는게 어때?"


"그렇게 할게"


레오나는 방을 정리한다는 빌미로 은근슬쩍 그의 침대맡에 둔 액자를 구석에 밀어놓았다. 


그녀를 잃은건 진심으로 슬펐으나, 사령관과 있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만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욕심도 어느정도는 섞여있는 행동이었다.


"레오나, 그쯤하고 이리 와"


"서두르긴...알았어"


어느새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령관을 보며 레오나는 치우던 것을 미뤄두고 자리에 앉았다.


"먼저 받아"


병을 들어 그녀의 잔을 체워주었고, 뒤이어 레오나가 사령관의 잔을 따라주었다.


"레오나는 맥주 같은거 안마실줄 알았는데"


"그렇게 보였어?"


"응, 와인 같은것만 마실줄 알았지"


"웃겨, 차라리 이슬만 먹고 산다그러지?"


"그정도까진 아니고"


시시껄렁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잔을 비워나가는 두 사람, 어느정도 취기가 오르자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이 맞닿았고


레오나의 눈을 보며 사령관이 말했다.


"잠깐 쉴까?"


"정말....쉬려는거야?"


"아니"


진한 술냄새와 함께 거친 콧소리가 레오나의 귓가를 스쳤다. 터질듯한 심장소리와 진한 땀냄새, 전부터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괜찮겠어??"


그 한마디에 사령관은 멈칫하며 그저 말없이 레오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는 사령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어느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그 말만큼은 듣고 싶지않았기에 레오나는 그 작은 입술로 사령관의 입을


가로막았다.


"사령관, 사랑해"


".....나도"


확신 없는 남자와 미래를 바라는 여자는 그렇게 침대 위에서 서로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쓸랬는데 시간이 늦어서 이어서 쓰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