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물도 쓰고싶었지만 좀더 색다르게 쓰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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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붕이가 들어간 식당은 저녁시간이 지나 제법 한산했다. 연초부터 쏟아지는 업무들을 감당하지 못해 이따금 혼자 간소하게 걸치고 싶은 남자 여섯이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테이블바에 모이더니 어느새 오르카 컴퍼니의 12기 입사동기가 모두 모였다.


  간단한 안부를 묻고 너도나도 할것없이 잔과 술병부터 들이밀고 안주를 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는게 어느새 시간이 깊어져 가고있었다.


'당장 집에 들어와!!! 용돈을 석기시대로 만들기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휴대폰을 못당하겠다는듯 휴대폰을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은채로 철영은 괜히 마른안주를 화풀이 하듯 질겅질겅대며 씹어댔다.


  "제수씨야?"

"집에 들어가면 술취한척 찐하게 안아주면 아무말 못할꺼야."


  까다롭고 기가세기로 유명했던 메이부장님을 어떻게 저렇게 구워삶을수 있었는지 철붕은 궁금했다. 괴롭히고 놀리다가도 어떨때는 잘대해주는 밀당에 고수였던 철영은 왕년엔 잘나가던 카사노바였다. 결국 세월과 결혼생활앞에선 보잘건없는 직장인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응, 그 건은 승인 받았으니 그대로 진행하라고 해. 그리고 펙스산업쪽 주식 상황도 계속 주시하도록 하고...파티마 대리한테 시장 수요 조사표 누락된 부분까지 마무리해서 다음주 월요일 까지 보내라고 해"


늦은시간까지 업무전화를 주고받고 있던 철식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철붕은 전화가 끝남과 동시에 농담과 걱정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그 시선을 의식한 철식은 피식 웃으며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예전의 너는 좀더 물렁했었는데, 철혈의 아내님이랑 살다보니까 좀 바뀌었나봐?"

"한지붕아래 살다보니까 나까지 옮아버린 모양이다 야"


경영전략 분석실에서 근무하던 철식은 상관인 레오나 부장에게 들볶이며 일을하다 어느새 눈이 맞아 결혼까지 골인한뒤 예전의 유우부단함과 흐물렁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도...어!...남자야...!어!....언제까지고...어!...허어어엉....마리마망...."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와이셔츠와 넥타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은 취기가 가득올라와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술에 약한것이 지금의 그의 처지를 만들었다는 생각은 아직도 못하고있는걸까, 철민은 혼자서 맥주 두병을 비우고 인사불성이 되어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몸집도 작고 키도 작은것이 툭 밀면 쓰러질것같았다.


  예전의 그들이었다면 그를 달래며 집으로 먼저 보냈겠지만 저러다가 또 멀쩡하게 일어나 집으로 어떻게 비틀거리며 가더라는 경험이 그를 조용히 내버려두게 만들었다.


  부서 회식때 술에 거하게 취해 필름이 끊겨 그대로 마리부장에게 보쌈당해 결혼에 골인한게 철민이었다. 평소에 마리부장이 자신을 뜨거운 시선으로 쳐다보던것을 그는 느끼지 못했다는 모양이다.


"응...응응. 오늘은 뭐했어?, 그랬구나...응, 이따가 들어갈꺼야..11시 전까진 들어갈께"


  칸주임과 결혼한 철훈은 그녀의 냉정하고 거침없는 일면뒤에 있는 따뜻한 마음에 반해 열렬하게 대쉬한 끝에 결혼에 골인한 케이스였다. 그나마 여기있는 넷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사람이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에 가장 가까운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하는 철붕이었다.


"집사람이 최근 너무 가볍게 입고다니는것같아..."

"....밖에서 그러고 다닐 사람이 아니었던거 같은데"

"아니...집안에서..."


  엘리트 출신이라는 이름답게 고속승진으로 전무이사인 용의 비서를 맡았던 그는 용과 결혼해 그녀의 퇴직후 차기 전무이사 후보에 오를정도로 연일 격정의 업무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때문에 용에게 소홀했던 기간이 길었었다.


  덕분에 강하게 어프로치 하는 용이 발벗고 나서 집안에서 매혹적이고 상스러운 의상과 란제리로 시도때도 없이 아무말도 없이 그를 유혹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밤마다 그녀의 소용한 어프로치를 당해내지 못하고 매일 쥐어짜인다나.


  그 단아하고 청아한 모습의 그녀가 그런 대담한 모습을 보일줄은 몰랐다. 사람일은 겪어봐야 아는것이라며 철붕은 이 다섯을 살짝 동정하기도 했다.


"새끼 은근슬쩍 우리가 이상하다는거 처럼 말하네?"

"세탁기 각보다가 실패했죠? 추하죠? 역겹죠?"

"오르카의 천하제일 프링글스 다죽었네 아 ㅋㅋ"

"ㄹㅇㅋㅋ"

"마리마망...맘마줘....응애..."


  점심시간에 몰래 간 사우나에서 마치 산삼을 보았다는듯이 심봤다를 외치던 동기들의 꼴사나운 외마디 환호를 아직까지 기억하는 그는 자신의 아내가 회사에서 남들몰래 철붕의 전화번호를 프링글스라 저장해놓고 다녔다는것을 다른직원들에게 들키지만 않았다면 좀더 정상적인 별명이나 이름으로 불렸을것이라고 내심 한탄했다.


  의외로 그 팔둑만한 자신의 물건이 컴플렉스였던 그는 기적적으로 임자를 만나 이제는 품절남이 되었지만 그의 소문을 들은 오르카 컴퍼니의 여사원들 사이에선 공포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헤어진 그녀들과의 잠자리에서 끅끅대며 아파하고 눈물짓는 그녀들의 모습이 아직까지도 아른거리는 그는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까지도 결혼하지 못한 홀몸이었을 것이라며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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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와'

'곧 들어가, 피곤하면 먼저 자'

'ㅇㅋ 기다림'


  좀더 다른 집들처럼 살갑거나 닭살돋게 굴어주면 안되나, 하는 철붕이었지만 그녀의 성격에 그게 가능하겠나...하며 스스로 납득해버린 그는 자리에서 슬슬 일어날 준비를 했다. 아니, 이젠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일행들은 하나 둘 나타난 자신의 아내에게 잡혀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마리는 술에 취한 철민을 업고 집으로 가는가 싶더니 너무 취해서 안되겠다며 호텔로 들어가버렸고 철영은 추운 겨울날에 츄리닝에 스레빠 차림으로 그를 잡으러온 메이에게 귓볼을 잡아끌리며 사라졌다.


  와중에도 철영이 처음으로 선물했던 목도리와 귀도리를 두르고 온 메이와 그렇게 단촐하게 입고온 그녀를 보고 호들갑떨며 입고있던 코트를 걸쳐주는 그를 보아하니 결혼하고 시간이 흘렀음에도 두사람은 영락없는 신혼부부의 모습이었다.


  잡혀가는줄도 모르고 술기운에 헤실거리며 우리 마누라 우리 여보, 우리 애기라고 헤실거리는 철훈은 겨울 바람에 빨개진 것인지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해진 것인지 모를 칸이 몰고온 바이크에 묶여 사라졌다.


철식은 레오나가 차를 타고 마중와주었다. 차가 향하는 방향이 유턴을 하진 않는걸로 봐선 아마도 저들도 호텔로 직행이리라. 가볍게 레오나와 주고받은 인사에서 철붕은 놀랐다. 예전의 그녀의 포커페이스에서 느껴지던 한기는 온데간데 없고 생글생글 웃는 표정의 레오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차를타고 철현을 마중온 용은 큼지막한 SUV를 끌고와 산길로 향하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용에게 그런 취미가 있었을줄은 몰랐다. 철붕이에게 인사하고 철현과 눈이 마주친 용이 입고있던 모피코트 옷깃을 살짝 들추며 철현에게 속살을 보여주는 듯한 실루엣이 보인것같았지만 철붕은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 자신도 걸음을 옮겼다.


  아내의 권유...사실상 잠자리 에서의 체력이 딸려 금연을 시작한 철붕은 술만 들어가면 담배를 찾았다. 한갑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던 그였지만 카드결제 문자가 집사람 앞으로 가기 때문에 결국 들키고 잔소리를 들어먹게될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입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로 담배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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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었군, 그대를 기다리고있었다"

".......다녀왔어"


  철붕이가 집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여자가 익숙한 무기를 들고 익숙한 차림으로 그를 맞이했다.


자기전엔 게임을 꺼놔야겠다 생각한 그였다. 모바일 게임을 집에 와서 자동사냥을 돌려놨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캐릭터를 따라하는 모양이었다. 애시당초, 아내가 따라한 캐릭터가 그녀와 너무 닮아서 이 게임을 시작했던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보...그거 어디서 났어?"

"당신 이캐릭터 좋아하잖아, 그래서 따라해봤는데, 어때? 게임화면에 맨날 얘가 있더라? 나랑 닮아서 좋은거야?"

"잘어울리네, 여보"


  참아야한다. 그녀의 꾀임에 넘어가면 오늘밤과 주말인 내일 내내 의무방어전을 요구받을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홀라당 넘어가선  프링글스 안에 있는 과자가 원자단위로 부서질때까지 허리를 흔들게 될것이다.


  내가 원한 반응은 이런 미지근한 반응이 아닌데....라며 입맛을 다시는 그녀는 한가지 생각났다는듯 아랫배를 두들기며 말했다.


"여기에서 너희의 적들이 끊임없이 나와서 너희를 전부 죽일거다!"


상스럽다면 상스럽고 익살스럽다면 익살스럽다는 대사가 입에서 나오자 그는 일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난것같았다. 얼굴이 화끈해진것인걸까, 그의 다리사이에 있던 프링글스가 소금맛에서 화끈하게 매운 맛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일까.


"전력으로 중파시켜주마"


  3초 탈의를 마친 철붕은 설렘과 기대감이 찬 얼굴의 아스널을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교성과 교접음이 밤새도록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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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스널 좋아해서 주인공으로 했는데 다른애들도 써놓고 싶어서

철붕이 주변 동료직장인 컨셉으로 썼다.

철붕, 철영, 철식, 철민, 철훈, 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