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뱀장님, 진급 할때의 기분이란 어떤검니까?"


"...너 지금 시비거는거냐?"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하려던 이프리트는 갑작스러운 브라우니의 질문에 식욕이 뚝 떨어졌다.


"절대! 그런게 아님다. 저도 곧 진급하지 안슴까. 이제 저도 작대기가 두개가 달리고, 곧 후임이 들어오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전역날이..."


"야, 내 전역날도 아직 멀었다. 꿈 깨. 전역은 무슨... 전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괜히 쓸데없는 말 걸지 말고 경계나 잘 서. 빨리먹을테니까."


"옙!"





이곳은 전장의 포진지


적이 침투할 가능성이 적은 경로에, 그나마도 침투로로 삼을만한 곳은 이미 아군이 점령한 이 진지를 두 대원이 지키고 있었다.


눈코 뜰세 없이 흘러가던 전황은 어느덧 잔적 소탕으로 변하였고, 쉼 없이 포탄을 쏟아내던 박격포는 이미 차갑게 식어있는 상황.


아무래도, 잔적소탕이 길어질것 같자 이프리트는 이 짬을 이용해 아까 못한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명은 경계를 서고 있어야 했으니, 당연히 짬순으로 그녀가 먼저 먹는것이지만.



"에휴... 이놈의 전투식량... 다른거라도 더 가져올걸 그랬나"


"에, 그래도 지금 드시는건 꽤 괜찮은 녀석 아님까?"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몇끼 더 먹어야 할것 같으니까 말이야. 야, 지금 몇분이냐?"


"4시 54분임다."


"에휴... 너도 5시 되면 밥 먹어. 내가 준비해놨으니까 그냥 뜯어서 먹기만 하면 돼."


"에? 그래도 됨까? 한명은 지키고 있어야..."


"이래서 짬찌는... 이런 구석진 포진지에 누가 찾아온다고 그래?

그리고, 너 편하라고 먹으라는게 아니라, 조명탄 준비해야 하니까 먹으라는거야.

아무래도, 이번 작전은 좀 길게 갈거같다. 에휴..."



이프리트는 전투식량에 든 에너지바를 갈무리 하면서 생각했다.


조명탄 깔꺼면 다 쏘고 갔으면 좋겠는데

저거 박스 다시 포장하고 채우고 창고 넣는거 귀찮은데







...


"어우, 산이라 그런가... 해지니까 쌀쌀하지말임다."


"...내가 그래서 발열팩 잘 가지고 있으라고 했잖아."


"우우... 이렇게 빨리 식을줄은 몰랐슴다..."


"초코바라도 까 먹으면서 몸 좀 덥혀놔. 괜히 상황터졌다가 손이라도 떨면 손가락 아작난..."



삐리리리리릭!


말하기 무섭게, 진지 내에 준비해 놓은 통신장비에서, 두 사람을 급하게 호출하는 신호가 울려왔다.



"에이 썅, 이놈의 주둥아리가 문제지... 통신보안 토끼굴 델타입니..."

"당소 파우더 브라보, 화력지원 요청, 탄종 HEAT, 브라보 호텔 6-3-5-8-0-2  2-3-2-9-6-7"

"HEAT탄 브라보호텔 635802 232967 양호. 야! 탄 꺼내와!


"어, 어떤거 꺼내면 되겠슴까?"

"귀먹었냐 이새끼야! HEAT탄! 보라색!!!"


이프리트는 수화기를 내려치듯 떨어트리고선 곧바로 포의 조준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늘어져있는 그녀였지만, 수화기 너머의 총성과 폭음이 그녀의 전우들이 꽤나 다급한 상황임을 알려주었기에, 언제 그랬냐는듯 곧바로 포수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였다.


"이뱀장님!"


그러나 침착한 그녀와는 달리, 브라우니는 손을 떨며 간신히 탄박스를 내려놓는것이였다.

바보같은것... 탄박스를 누가 그렇게 쾅쾅 내려놓는거야.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들어! 지금부터 수화기 잡고, 저기서 하는 말 그대로 크게 소리쳐. 알겠어? 한쪽귀 잘 막고."


"예, 예!"


브라우니의 따귀를 때려가며 대답을 얻은 그녀는, 시뻘겋게 부은 브라우니의 뺨과 글썽이는 눈물을 보고서는 반드시 작전이 끝난다면 사과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급한 상황


미안한건 미안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


그때가 된다면, 미안하다는 사과만으론 끝나지 않으리라.



"쏜다!"



스르릉



가볍게 쏘아진 포탄이였지만, 잠시 뒤 산 너머에서 폭음과 진동이 터져나오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파우더 브라보로부터 토끼굴에! 효력사! 동일 좌표 화력지원 요청! 탄종 HE! 2발 사격 후 동일 좌표 조명탄 지원 요청!"


"에이 씨발! 포진지가 우리밖에 없어? 지들이 와서 탄 뜯으라 해 씨발!"



말로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그녀였으나, 이내 고폭탄이 든 탄 박스에서 두발을 꺼낸 그녀는, 기분 좋은 리듬감으로 두발을 이내 쏘고서는 옆에 놓여진 조명탄을 집어들어 곧장 쏘고선 이내 타이머를 맞추는 것이였다.




이윽고 잠시 뒤, 해가 넘어갔던 그 산 너머로 화악 하고 강렬한 빛이 터져나왔다.



수십억개분의 촛불이 한번에 타오르며 태양에 견주는 빛을 내는 조명탄은, 채 1분을 견디지 못하며 사그라들고 말기에, 그녀는 또다른 조명탄을 들어올리며 브라우니에게 소리친것이였다.



"야! 뭐 말 나오는거 있으면 바로 말해!"


"예! 알겠슴... 에, 아까 거기서 화력지원 요청임다! 탄종 HE, 좌표는 브라보 호텔 6-3-5-8-0-4  2-3-2-9-6-6. 조명탄 지원도 계속 해달랍니다!"



"아 씨발 돌겠네 진짜!"


이프리트는 자신의 시계를 쳐다보았다. 

조명탄 쏘고 나서 몇초 뒤에 터졌었지? 5초? 7초?

포진지가 우리만 있... 씨발 조명탄 챙겨온데는 주변에 우리밖에 없었지.

아, 이거 계속 못쏠텐데... 식혀주며 쏴야 한다고...

물 뿌려야 하나? 이거 새삥인데?


재조준하는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사고를 거친 그녀는 귀를 틀어막고 쌓여있는 조명탄을 내려보며 간단한 결론을 냬렸다.



'아, 또 진술서 써야겠네 니미...'



얼마나 탄을 쏘아댔을까.


산 너머에서 시뻘건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여 조명탄의 간격이 넓어져도 크게 지장이 없을만한 무렵


어느덧 총성과 폭음은 멎어들고 시끄럽게 울리던 통신장비도 치직거리는 잡음만을 내뱉으며 주변이 고요해졌다.


이프리트는, 아까 챙겨두었던 에너지바를 꺼내 물었다.


21시 37분

저녁도 못먹은채, 정신없이 포를 쏴재꼈다.


"후아... 이제 끝난건가..."


"아으... 정말 죽는줄 알았슴다..."


다리에 힘이 풀린건지, 브라우니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했다.


"뭐 우리 부르는 내용은 없냐...?"


"에... 아무래도 전장 정리중인것 같슴다. 뭐 철충 하나가 포위를 뚫고 도망갔다는거 같은데... 잡았다는거 같기도 하고..."


"옘병... 잡았다는거야 뭐야? 확실하게 하란 말이야... 진짜, 진급 하고서도, 끅끅.. 이병나부랭이로 불리고 싶어? 킥킥..."


"쿠국... 이뱀이 매번 말씀하지 않으셧슴까. 윗분들은, 끅, 늘 어중간하다고... 깔깔!"


긴장이 풀린 그녀들은, 시덥잖은 농담에도 민감해진 감정을 쉽게 드러내며 웃었다.

지친 지금으로서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듯 말이다.


그 때, 아득한 곳에서 커다란 포효가 울렸다.


그 소리에, 두 사람은 이어가던 농담 따먹기를 멈추었다.

적막해진 포진지는, 방금까지의 모든것들이 거짓이라는 듯 고요해졌다


이내 통신장비가 지직 거리면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 포격...진지쪽 포격 예상..격대비...험'


이내 정신을 차린 이프리트는

그러나 방금 연산모듈을 혹사시키며 포수와 부포수의 임무를 모두 소화해낸 그녀는 전원이 나간 로봇마냥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윽고 공기를 울리는 포성이 들려오고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선에는

작게 타오르는 무언가가 강렬한 빛을 뿌리며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아, 좆됬구나.'

"이뱀장님!!!"


브라우니가 그녀를 감쌌다.


이윽고 커다란 충격과 굉음이 그녀의 머리를 강타했고


그녀의 의식은 깊은 어둠속으로 빠져들었다.







...









이프리트는 눈을 떴다.


"콜록콜록!"


격한 가슴의 통증을 내뱉으려는 듯한 심한 기침을 할수록 그녀의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졌다.


그와 동시에, 온몸을 얻어맞은듯한 통증과 살을 베는듯한 고통, 몸이 타오르는 고통과 무릎 언저리가 미친듯이 가려운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트! 이프리트! 정신이 들어?"


겨우 선명해졌건만, 눈물로 부옇게 흐려진 시야와 고통으로 마비된 청각을 다듬으며 이프리트는 고통을 진정시키며 겨우 고개를 돌렸다.

사령관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였다.


이내 그녀는, 자신의 시야의 1/3이 사라졌다는것을 깨달았다.

원근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의 왼쪽을 만져보았다.

미지근한 붕대의 꺼끌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사령관이 무어라 말하고 있었으나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는 심호흡을 하기로 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서 고개를 들어올리는 그녀의 반쪽밖에 남지 않은 시선 끝에, 자신의 하반신을 덮고 있을 새하얀 이불이 한쪽 다리의 무릎 아래 부분으로는 푹 꺼져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우욱... 우웩..."


이프리트는 머리가 핑핑 돌았다. 


호흡이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고통이 온 몸을 갉아 먹는 가운데에 그녀는 문뜩 한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의 몸으로 나를 감싸던 브라우니의 모습



그녀는 겨우 입을 열고, 침을 질질 흘리며 사령관에게 물었다.

그녀 자신이 말하고 있을터인데, 어쩐지 자신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사령관이 알려주는 잔혹한 진실 만큼은

차라리 듣지 못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그녀의 뇌리를 파고드는 그 단어만큼은, 그녀는 정신을 잃기 전에 확실히 듣고야 만것이였다.




전사
















...


브라우니의 진급식이 진행되는 날의 바다는 잠잠했다.


그녀의 진급을 축하라도 하는 양, 햇살은 내리쬐고 잔잔한 파도만이 가볍게 오르카의 선체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사령관은, 브라우니가 찍힌 사진 앞까지 이프리트가 탄 휠체어를 손수 밀어주었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사진 앞에는 창백한 조화들이 놓여있었다.


사령관은 이프리트에게 훈장과 상병 계급장을 쥐어주었다.


이프리트는, 브라우니의 사진 앞에 훈장과 약장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휠체어 손잡이에 걸어둔 종이박스에서, 그녀가 평소 즐겨먹던 즉석식품을 몇개 꺼내어 늘어놓았다.


사령관은 두 주먹을 터질듯이 쥐고 있었다.


이프리트는 고개를 숙이고 브라우니의 사진을 향해 말했다.


"미안... 미안해... 미안..."


발키리는 천천히, 이프리트의 말을 뒤따르듯 하늘을 향해 세발의 공포탄을 쏘았다.






















...



"...이뱀장님? 점호 나가셔야지 말입니다?"


"어, 어?"


이프리트는 모포를 걷어차며 상반신을 들어올렸다. 


06시 45분


이병 브라우니가 꼴사납게 구겨지고 더러워진 전투복 차림으로 그녀를 깨웠다.

초라하게 작대기 하나만이 달려있는 계급장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너... 너..."


"이프리트 병장님도 참... 요즘 이병애들한테 기상콜같은거 시키시다가는 큰일납니다."


"에에? 저 그래도 곧 일병이지말임다!"


"...그게 포인트가 아니잖아!"


이프리트는 잠시 사고를 가다듬었다.


이윽고 자신의 턱선을 따라 묻은 물기를 알아채고선 상황을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개꿈이구나.'












...



몇일 뒤 이프리트와 이병 브라우니는 포진지에서 늦은 점심겸 이른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뱀장님, 진급할때는 대체 어떤 기분이 듭니까?"


이프리트는 브라우니의 질문에 -최근 부사관에 지원하라는 상관에 권유를 많이 받았기에- 짜증을 내며 답을 해주었다.


"너 나한테 시비거냐?"


"에이, 그런거 아님다. 다만 저도 이제 일병이지 안슴까? 이제 곧 후임도 들어오고..."


문득, 이프리트는 얼마전에 꾸었던 개꿈이 생각났다.

이내 그녀는, 헤집은 메모리속에 자신이 겪었던 그날의 감정을 풀어 브라우니에게 들려주었다.


브라우니는 이프리트의 말에 감동을 받으며 자신도 이프리트와 같은 선임이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맹세했다.




이내 상황은 종료되었고 

다음주, 진급식이 끝난 뒤, 이프리트는 일병 브라우니의 전투복에 일병 약장을 손수 바느질 해서 달아주었다.



레프리콘과 노움은 이프리트에게 무슨 바람이 불은건지, 훈장 하나 받아서 기분이 날아갈것 같아 그런것인지, 그게 아니면 이제 하사를 달테니 미리 애들한테 잘해주는것이냐며 놀려댔으나


이프리트는 그저 웃으며 대답할 뿐이였다.



"얘도 이제 일병이니까..."



이내 바느질을 마친 이프리트는, 수복실로 이동하여 작전 중 얻은 상처를 마저 수복받았다.


수복실에 먼저 와 있던 브라우니는, 침을 흘리며 뻗어 다프네를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이프리트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미소를 지으며 말할 뿐이였다.




새끼 일병 달았다고 벌써 빠져서는...
































아사나기 작가의 작품에 등장한 적 있는 모 게임의 캐릭터가 말한 대사가 있다.


배드엔딩은 필요없으니까



아사나기 작가는 그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그 캐릭터가 나온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에서의 여성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작품을 끝맺었다.


나도 그에 본받고자 한다.


아무튼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