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모네이드 오메가가 케스토스 히마스도 내버리고 도망치고 기괴한 철충이 ‘철의 왕자’를 데리고 사라진 후, 오르카 호는 철의 왕자의 유적을 떠나 일본 열도 근방을 항해하고 있었다. 

 

자원 수급 및 무기 수급을 위해서였다. 용의 함대가 합류하고 저항군의 규모가 커지며 요구하는 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탓에 요안나 아일랜드만으로는 저항군의 보급을 모두 책임질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규모의 플랜트들이 수복한 태평양 섬과 괌에 설치되는 중이었지만, 그것들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보급을 구하기 위한 방법이란 하나밖에 없었다. 옛 세계의 폐허를 수색하는 것이었다.

 

 

오르카 호의 사령관 집무실에서 사령관은 이번 탐색 계획서와 파견현황을 보면서 머리를 잡고 있었다. 이미 수 번의 탐색으로 요코스카, 구레, 마이즈루 등의 군항 폐허나 후쿠오카, 오사카 등 대도시의 폐허들을 수색하면서 상당한 자원을 획득했지만 아직 양이 부족한 탓이었다.

 

“일단 소도시들로도 부대를 파견하기는 했지만 얼마나 모아오냐가 관건인가..알파, 상황은 어때?”

 

옆에서 같이 문서작업을 하던 알파가 대답했다.

 

“부품은 어느 정도 수급이 된 것 같지만 역시 식량이 문제네요. 보존식품 보관소를 집중적으로 수색하라고 전달하겠습니다.”

 

“고마워.”

 

“별 말씀을요. 아, 좋은 소식도 있어요, 사령관.”

 

“뭔데?”

 

“기술팀이 요코스카에 방치되어 있던 구 미 7함대 소속 방공구축함 타이콘데로가와 게티스버그의 재가동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용 님이 좋아하시겠네요.”

 

“그건 정말 좋은 뉴스인걸.” 

 

사령관이 미소짓더니 조금 활력을 되찾은 얼굴로 다시 화면과 책상의 서류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을 끄는 문서파일이 하나 있었다. 수색대와 별도로 활동 중인 080이 수집한 덴세츠의 프로젝트 문서였다.

 

“아니메 컴 트루(Anime come true)프로젝트? 이 인간들 대체 얼마나 이상한 생각을 했던 거야?”

 

말로는 툴툴거리던 사령관은 그 문서를 열어 내용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문서를 죽 읽어 내려가던 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잠시 문서에서 눈을 뗀 알파가 의아한 얼굴로 사령관을 보자, 시선을 느낀 사령관이 황급히 표정을 정돈했다. 알파가 사령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사령관님?”

 

“덴세츠 프로젝트 문서를 봤는데 말야, 하아..이건 말로는 설명을 못 하겠네. 한번 볼래?”

 

알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 사령관이 해당 문서파일을 알파에게 넘겼다. 문서를 읽던 알파의 표정도 사령관과 마찬가지로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지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문서를 읽던 알파가 말했다.

 

“이러니..”

 

그리고 둘이 같이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망해도 쌌지.””

 

알파와 사령관이 마주보더니 피식 웃었다. 둘은 잠시 쉴 필요를 느꼈다. 사령관이 인터컴을 누르더니 주방으로 통신을 연결했다. 

 

“아우로라, 지금 바빠?”

 

“사령관? 아니, 지금은 괜찮아. 뭔가 간식거리라도 필요해?”

 

“응, 여기 달달한 거 6인분만 가져다 줄래? 음료수도 부탁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가지고 갈게!”

 

통신을 종료한 사령관이 집무실에서 조용히 경호임무를 서던 리리스에게 말했다.

 

“리리스, 잠깐 간식 같이 먹을래?”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는 리리스가 잽싸게 사령관실의 4인용 식탁에 앉았다. 그 행동을 본 사령관도 웃더니 의자에 앉았다. 알파도 책상에서 일어나더니 착석했다.

 

얼마 후, 아우로라가 호언장담한 대로 훌륭한 디저트들을 트레이에 한가득 담고 찾아왔다. 사령관이 개중 2인분을 따로 담아서 잠시 바깥으로 나갔다 돌아왔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사령관이 답했다.

 

“우리만 먹기는 미안하잖아. 바깥에 경비서는 펜리르랑 페로한테 교대로 먹으면서 업무 보라고 주고 왔지.”

 

곧 네 사람은 책상에 앉아 디저트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탈론페더의 카메라 문제라던가 알비스의 초코바 문제 등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던 중 아우로라가 식사 준비시간이 되었다며 나갔다. 사령관이 그제서야 아까 본 문서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리 멸망 전이라지만 말야. 그 인간들 미쳐도 도가 있는 거 아냐?”

 

“주인님, 뭔가 구세계 인간님들이 벌인 어처구니없는 짓을 보신 건가요?”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구세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바이오로이드로 만들어서 팔아먹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었지.”

 

“그것만이라면 평범한 것 아닌지..아.”

 

뭔가 깨달은 표정의 리리스에게 사령관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자기가 그 캐릭터인 줄 알고 믿고 있는 아이들에게 B구역이나 C구역스러운 짓을 하면서 가지고 놀라고 대놓은 광고가 나와 있더라구.”

 

옆에서 알파가 거들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덴세츠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세요?”

 

리리스가 잠시 머릿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둘, 지금 그 뭣 같은 문서를 보고 털어놓을 사람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어지간한 짓이었구나..알파 이 여자는 상관없지만, 주인님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건 기쁜 일이네.’

 

생각을 마친 리리스가 둘을 보고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짓을 했는데요?”

 

그 시선을 받은 알파와 사령관이 살짝 움찔하더니, 리리스의 배려를 알고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인구 부족으로 소멸한 소도시 하나를 통째로 사서 도시 이름까지 바꿔가며 게임필드로 개조한 다음, 부자들만을 위한 직접 참여하는 살육전 서비스를 제공했대.”

 

그건 리리스도 예상하지 못한 사이즈였다. 살짝 놀란 표정의 리리스에게 알파가 말했다.

 

“심지어 참여하는 부자들은 각자 컨셉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유서깊은 귀족, 쾌락살인마, 명예를 노리고 온 외국 귀족, 철부지 학생,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인데 꿈은 세계평화인 미치광이, 인조인간, 사디스트 신부..”

 

“사디스트 신부라, 제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자 신부는 멸망 전에 없었으니 사디스트 수녀라면 괜찮겠네. 그래도 나한테는 나쁜 리리스 안 할거지?”

 

“물론이죠.”

 

리리스가 샐쭉 웃었다. 그러던 중, 사령관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소도시들로 탐색을 보냈었는데. 알파, 혹시 탐색대가 나간 도시들 중 후유키(冬木)라는 도시가 있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령관.”

 

알파가 케스토스 히마스를 가동시키더니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네, 파견중인 병력이 있습니다.”

 

사령관의 표정이 잠시 착잡해졌다. 곧 그가 입을 열었다.

 

“거기 나간 애들한테 단촐하게 제사라도 지내고 오라고 해야겠네.”

 

사령관이 일어나 책상에 앉더니 콘솔을 켜 후유키 시에 파견된 탐사대와 통신을 연결하기 위해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의 통신창에 들어오는 요청이 있었다. 사령관은 그 요청이 온 장소를 보았다.

 

“여기 나간 애들 양반은 못되겠다.”

 

의아해하는 두 여자에게 사령관이 말했다.

 

“후유키 시로 나간 탐사대원들의 통신 요청이야. 같이 볼래?”

 

고개를 끄덕인 두 여자가 일어나 사령관의 양 옆에 시립했고, 사령관이 요청을 수락하고 통신을 연결했다. 화면에 시라유리의 얼굴이 보였다. 뭔가 뚱한 얼굴이었다. 사령관이 시라유리에게 물었다.

 

“시라유리, 탐색 중에 문제라도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덴세츠 지사 지하시설 배양탱크에서 완성되어 있던 바이오로이드 개체를 하나 구출했는데, 자기가 계속 인간님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계속 사령관님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막무가내인지라..”

 

뒤에서 젊은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화가 난 것 같았다. 

 

‘어지간한 성질이 아닌가 보군. 그렇다고 무력으로 제압하기는 꺼려지고..시라유리가 고생했겠네.’

 

생각을 끝낸 사령관이 시라유리에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고생이 많았겠네, 시라유리.”

 

“아뇨, 그 정도까지는..”

 

“그 바이오로이드와 말할 수 있게 해 줄래? 내가 진정시켜 볼게.”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시라유리가 고개를 공손하게 숙였다. 곧 화면은 한 여자의 모습을 비추었다. 

 

사령관은 그 바이오로이드를 보고 새삼 놀랐다. 기품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온 몸에 배어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풍만한 몸매를 감싼 검정색과 황색이 조화를 이룬 코트와 가슴께에 달린 붉은 프릴이라는 복장도 귀족스러웠지만, 기품있는 은발, 황안의 얼굴은 바이오로이드인 걸 몰랐다면 귀족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표정은 짐짓 고압적인 태도를 띄고 있었지만, 바이오로이드들을 수도 없이 본 사령관은 그게 그녀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여자가 말했다.

 

“당신이 이 디자인 베이비..아니, 여자들의 책임자입니까?”

 

“맞아. 그런데 나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사령관이 묻자 여자가 여전히 고압적인 태도를 연기하며 사령관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왜?”

 

“대체 어떻게 이곳으로 레이시프트해온 건가요? 당신, 설마 평행세계의 칼데아 출신?”

 

사령관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 바이오로이드, 자기가 특정 인물이라고 믿도록 덴세츠에 의해 프로그램된 게 확실했다. 그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여자는 생각보다 급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얼굴을 찡그리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는 모양이군요. 소개가 늦었습니다. 칼데아의 장, 올가마리 어스미레이트 아니무스피어라고 합니다.”

 

“..응, 반가워.”

 

사령관이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그 반응을 본 올가마리가 당황했다. 우물쭈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사령관이 물었다.

 

“그런데 칼데아란 게 뭐야?”


"..네?"


올가마리가 당황했다. 고압적인 모습이 벗겨져 나가자 굉장히 허당스러운 모습이었다.  



한그오 트럭을 보니 참을 수 없는 영감이 떠오름.

5편 예정중인데 길어질 수도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