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저씨, 내가 있잖아. 엄~청 비싼 몸인데말이야"


"또 그 소리니, 먼지 들어가니까 입 다물고 쎄멘에 물 좀 넣어봐"


"응....."


흰 머리에 고급져보이는 외형과는 다르게, 미장에 들어갈 시멘트에 바께스로 퍼온 물을 들이붓는다.


"에이씹, 아주 홍수가 났네. 몇번을 가르쳐줘도 그 모양이여!"


"세멘 가지고 너무하네! 더 넣으면 되잖아!"


"쎄멘 한포대가 얼만줄 알어? 됐으니까 거 삽 좀 주고 너는 저기 도라무통 있지? 거서 불이나 쬐고 있어"


"....미안"


"뭐라고?"


"아...아무것도 아냐. 커피 타놓을테니까 빨리 와"


내심 미안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를 한 후 부끄러워하며 불을 지핀 드럼통 쪽으로 쭈뼛쭈뼛 자리를 옮겼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의 훈계차원으로 공사판에 들어온지도 어언 5개월째, 처음엔 다들 다방아가씨 같은거겠거니

하고 추파를 던져대며 놀려대는 인부들 사이에서 곤란해하던 중 김씨를 만나 그의 밑에서 일을 배워가고 있었다.


본사에선 그녀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를 내린건 아니었지만 그냥 있기도 뻘쭘하고 무엇보다 가만히 있다가는 어중이 떠중이들에게

엄한 짓을 당할 것도 염려되어 김씨의 곁에 붙어 일을 배워나갔지만, 모듈의 문제인건지 아니면 태도의 문제인건지, 도무지 진전이 보이질 않았다.


"아가씨, 이름이 뭐라했재?"


"드라큐리난데요, 처음 보는 아저씬데 그쪽은 그쪽 일이나 신경 쓰시죠?"


"성깔 한번 직이네, 그라지말고 내 커피 한잔만 타주믄 안될까?"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마, 니 빠이오로이든지 먼지 기 아인가? 사람이 말을 하는데 어서....."


"그쯤하지?"


세멘 반죽을 마치고 돌아온 김씨는 그녀에게 헤코지하려는 신입을 보며 한마디 했다.


"아이, 오야 아잉교. 보소, 저 가시나 커피 좀 달라카니깨 따박따박 말대꾸하는기 버르장머리 좀 고쳐줘야캤는디요?"


"헛소리말고 가 세멘이나 퍼발라라. 니 그럴라고 불렀지, 내가 머 커피나 쳐마시라고 부른줄 아나?"


"너무한거 아잉교, 그런식으로 차별하는깁니까?"


"니 도라무 옆에서 한시간 정도 땡 친거 내가 모를줄 아나? 반장한테 말하기 전에 가가꼬 퍼뜩 세멘질이나 해라"


"씁....예에 갑니대이"


신입은 드라큐리나를 곁눈질 하던 중 김씨와 눈을 마주쳤고, 뻘쭘해하며 미장을 시작하러 갔다.


"봤지? 왠만하면 내 옆에서 떨어지지마라. 클난다"


"크...클나긴 누가....클난다고....나 엄청 비싼 몸이라...전투 기능도 있고...."


"그래 그래.....귀한 몸뚱아리라 똥도 캐비어로 나온다...."


"아저씨 진짜!!!"


저질농담을 던진 김씨의 등을 두들기며 그녀는 앙탈을 부렸다.



-2-


본래 목적은 엔터테인먼트용으로 만들어진 그녀였으나, 데뷔 직전 윗선에 자리를 마련하던 중 드라큐리나의 돌발행동에

계획이 무산, 그녀를 처분할 계획이었으나 개발비용과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교육의 일종으로 회사에서 진행중인 건설현장에 투입된

것이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이었다.


본래 목적은 막 나가는 인간들에게 던져져 개처럼 굴려진 후 고분고분해지게 만들어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5개월이 넘도록 그녀는

나름 성실하게 노가다판을 전진할 뿐이었다.


"슬슬 불러들이는게 어떠십니까"


그녀에 대한 보고를 마친 관리자가 입을 열자, 회장의 표정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깟 바이오로이드 하나 교육시키지 못해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다고 서있는거야. 접대 좀 시켰다고 사람을 무는 바이오로이드가

세상에 어딨어!"


"그....그건 이번에 실험중인 자기방어 모듈이 작동한거라"


"하여간 기술자놈들은 주둥이가 길어. 너희가 보여줘야 할건 결과물이라고 수백번도 넘게 말했을텐데?

 주둥이를 털고 싶다면 적어도 나랑 비슷한 위치에 온 다음에 털라고"


"죄송합니다"


".....제작비용이 얼마였지?"


"프로젝트 시작부터 제작까지 4년에, 제작비용은 100억 정도입니다"


"100억이라.....5개월에 인부단가가 20만이면.....웃기지도 않는군, 더는 안되겠어"


회장은 의자에 걸쳐놓은 코트를 걸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어딜 가시려는겁니까. 회장님"


"100억 찾으러 가야지, 자네도 따라와"


회장의 돌발행동에 그는 쩔쩔메며 서둘러 헬기를 준비시켰다.



-3-


"아저씨, 점심을 국밥으로 주는 현장은 없어?"


"갑자기 뭔 국밥 타령이야"


"내가 보니까 점심은 든든하게 먹어줘야 힘을 좀 쓸거 같거든? 근데 이거 봐봐, 툭하면 짜장면인데 이거 먹고

 힘이 나겠어?"


"드씨, 거 닥치고 밥이나 먹어!"


가만히 듣고 있던 현장노동자 복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복씨는 국밥 안땡겨?"


"국밥? 사주는거야??"


"더치페이 몰라? 각출해야지"


"쓰벌, 인심 한번 야박하네"


한그릇 얻어먹나 싶었지만 얄짤도 없었다. 복씨는 확김에 짜장면 한그릇을 입에 털어넣고는 커피를 마시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딱 먹고 현장 마무리하고 가는게 최고지, 여기서 살림 차릴라고?"


"말이 그렇다는거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짜장면을 흡입하고 있을 즈음, 다급하게 찾아온 현장감독관의 호출에 김씨와 드라큐리나가 사무실로 향했다.


"기....긱기기기김..김씨, 클났어"


"뭔데 난리요, 천천히 숨 좀 쉬고 말하시죠"


"회장님, 회장님이 온다잖아. 이 드라...."


"드라큐리나, 이름 정도는 알아둬야죠, 감독관님?"


"넌 꼴이 그게 뭐니? 이거 줄테니까 가서 좀 씻고 와. 그 처음에 입었던 옷 그건 잘 가지고 있고?"


"네 뭐...."


"작업복 벗고 그걸로 환복해. 회장님 1시간 뒤에 오신다니까 서둘러!"


회장이 방문한단 소식에 감독관은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그녀는 달랐다. 무엇때문에 오는건지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기에 머릿속에선 여러 생각이 오고 갔다.


"가자, 감독관님 체면도 있으니 빨리 준비해야지"


"아...아저씨"


"감독관님은 똥줄 그만 태우고 기다리쇼. 퍼뜩 올터이"


"김씨만 믿을게, 좀 부탁해"


김씨는 그녀의 손을 붙들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아저씨, 나...."


"그 사람, 보기 싫다고?"


"어떻게 알았어?"


"작업반장은 아무나 허는줄 알어? 그냥 턱 보면 아 저 시키는 똥 갈기러 간다더니 안마 받고 왔고, 저 시키는

 조만간 사고 치겠구나 싶으면 몸에 하자 하나 생기고 그러는거지. 공사판 20년이여, 귀신도 나는 못속여"


"....알면서도 데려온거야?"


"그럼"


"나.....그 사람 꼭 만나야해?"


"니가 그 사람을 안만나믄 어째되는지 알려줘야하겄니? 잘 들어라 사회생활이란건 말이다.....윗사람이 똥 보고 쵸콜렛이라고 하면

아 쵸콜렛이구나 하고 먹어야하는게 사회생활이여"


"그놈의 똥은....."


"인생이 똥 같아서 뭐 눈엔 뭐밖에 안보이는걸 으쩌냐"


김씨는 주머니에 넣어둔 백두산200을 꺼내 입에 물었다. 


"길빵 좀 하지말라니까"


"기다려봐, 폼 좀 잡아볼라는거니까"


한개비를 태우는데 10초남짓도 안되는 시간에 필터까지 들이마실 기세로 흡연을 마친 후 긴 한숨을 내쉬며 김씨가 콜록거렸다.


"내가 부끄러워서 어디다 말은 못했는데, 왕년엔 잘 나가던 완구가게 사장이었어"


"왕년에 거리지말라더니"


"거 좀 들어봐"


뒤이어 다시 한개피에 불을 붙이고 천천히 들이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근디, 아가 그...휩노스 병인지 머시기인지에 걸려가꼬 2금융권 3금융권에 이것저것 손도 많이 대다가 결국 도박까지 손을 댄겨"


"...그래서?"


"조금 호기심이 생기냐? 근데 이 첫끝발이 겁나게 좋았는지 크게 한탕 땡겼거든? 그래서 이 돈으로 병원비도 대고 빚도 다 갚겠거니 했는데

그...손맛을....어떻게 못하겠더라고.....지금 하면 2배로 따겠지....근데 그게 반토막이 나고.....또 다시 빚이 되고...."


"아저씨....."


"나가....딸 시체까지 팔아먹은 놈이여, 병 연군지 뭔지 좋은 목적에 쓴다고.....마지막에 들것에 실려가는데 시꺼멓던 딸 머리칼이

 허옇게 질려있더라고 잔뜩 겁에 질려서 표정은.......그 표정을 어떻게 있겠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반도 채 태우지 못하고, 김씨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거야, 기분 우울해지게"


"암만 봐도 그 회장인지 뭔지한테 넘기는게 딸 시체 팔아먹는거랑 같은 기분이여, 이거...많이는 안되고 여관비 정도는 될겨"


김씨는 주머니에 있는 지폐 몇장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고, 본인이 쓰고 있던 벙거지 모자를 그녀의 머리에 씌워주었다.


"여서 가장 먼데가 어데지.....암턴 그짝으로 가는 버스 타고, 왠만하면 사람들 많이 모여다니는 곳으로 이동혀. 그게 안전할거니께"


"아저씨,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안돼, 아저씨 죽을지도 몰라"


"걱정말고...빨리 가"


김씨는 그녀의 등을 떠밀며, 기어이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3-


"좀.....늦네?"


"네, 작업중이었다보니 아무래도 회장님 오신다고 해서 꽃단장 중인가봅니다"


"흐음.....하여간에 계집이란건 바이오로이드던 인간이던 똑같구만"


"마....맞습니다"


회장이 현장사무소에 도착한지 30분이 지났다. 1분에 1년 같이 느껴질 정도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경험을 하며

감독관은 두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저, 왔심다"


"어...어 그래 김씨! 준비하느라 수고했어. 드라....그 아가씨는 어디갔어?"


"그게, 오다가 사라졌심다"


"사라져???"


감독관의 물음에 김씨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아.....감독관, 30분이나 기다려줬는데 결과가 이게 뭐지?"


"회장님 이건 그...."


"내가 시간당 얼마를 벌어들이고 있는지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만....."


"시간당 100만달러, 한화로 10억원, 숨만 쉬어도 그 정도의 금액이 내 주머니에 꽂힌다고, 근데 30분?

 내 시간은 당신이 좀 사줘야겠어"


"죄송합니다.한번만 봐주십쇼"


"이 정도면 많이 봐준거야, 얼마나 봐주길 바라는건지 참....나가봐!"


김씨를 믿었던 감독관은 불행하게도 5억원이란 빚과 함께 사무소에서 내쫒겼다.


"그래, 당신.....이름이?"


"그냥 김씨라고 부르시죠, 편하게"


"그럼 김씨, 다시 한번 묻지. 그 애, 어디갔어?"


"말했잖심까, 도망갔다고. 회장님 보기 싫다고 막 울고불고 물어뜯으믄서 도망칬심다"


김씨는 손등에 난 물린 자국을 보여주며 회장에게 말했다.


"이상하군, 사람을 공격할 녀석은 아닐텐데?"


"지는 잘 모르겠고, 감독관님이 시키는대로 준비할려다 이래 된깁니다"


"당신, 내가 누군지는 아는거지?"


"알리가 있겠심까, 지같은 막장이"


"하! 재밌구만.....재밌어"


회장은 씨익 웃으며 그의 손등에 난 자국을 살펴보았다. 


"그래, 어디보자.....미등록 상태에.....오.....그래 품종은 삽살개....."


회장의 안경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며 김씨의 손을 스캔하며, 대략적인 경위를 조사하는 듯 보였다.


"김씨, 제안 하나 하지. 내가 원래 이런 짓은 안하는데.....그 아가씨 당장 내 앞에 데려오면 그 아이의 몸값 절반을

당신한테 주겠어"


"나....난....모른다고 했잖심까"


"50억, 부가세 없이 현금으로 전부"


"난.....모릅니다"


"하....김씨 이거 깡 좀 있어서 좋게 봐줄랬더니....말이 길어지겠구만?"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하십셔"


문이 닫히고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하나둘 안으로 들어왔다.



-엔딩-


"나쁜 아이는 누구냐!!!"


"꺄악!!"


왁자지껄한 음악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놀이기구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정신없이 울려퍼지는 이 곳은 D엔터 산하의 

테마파크다.


"메지컬, 오늘도 수고"


"메....메지컬"


그녀의 선배격인 백토는 사람들에게 풍선을 나눠주며, 드라큐리나를 보고 인사했다.


"하아.....이건 이거대로 지치네"


한창 아이들을 상대해주던 드라큐리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벤치에 앉아 벙거지 모자를 꺼내들었다.


김씨의 말대로 버스를 타고 최대한 멀리 벗어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D엔터테인먼트에 연락했다. 

비스마르크의 경쟁사이기에 분명 자신의 가치를 알고 그들은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그들과 접촉했고,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계획은 성공하게 되었다.


비록 외국으로 건너와 가명을 쓰며 살아가게 되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이상한 일을 시키진 않았기에 

마음의 짐은 하나 덜어버린 샘이다.


일에 어느정도 적응할 즈음 생체코드번호를 바꾸고 그녀가 있던 고국으로 돌아가, 김씨를 찾았으나 그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있었던 현장은 어느새 근사한 고층 빌딩으로 바뀌어있었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김씨를 알리가 만무했다.


근처 인력사무소를 뒤져보기도 하고, 김씨와 자주 가던 국밥집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거짓말처럼 김씨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다.


"...아저씨 보고싶네"


벙거지 모자를 꼬옥 손에 쥐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녀, 그리고 말없이 D엔터의 마스코트 인형이 그녀의 옆에 앉아 풍선 하나를 건내주었다.


"또 너야? 질리지도 않니?"


풍선을 건내받은 드라큐리나는 살짝 고인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마치 오랫동안 안 사람을 보는것처럼 탈 바가지를 쓴 일개알바생이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