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안, 하늘 빛 머리칼의 소녀가 쭈구린 채 앉아있다. 붉은 눈은 그 불꽃을 잃고 재가 되어 사그라들었고, 하늘은 빛을 잃고 추락하여 땅에 내려 앉아있다. 온몸에 나있는 구타, 폭력의 흔적은 소녀를 절망으로 밀어붙인 듯 하였다.


부드러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린다. 소녀는 소리에 반응해 살짝 몸을 떨었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릴 때 마다 고통이 엄습해와 소녀를 괴롭힌다. 비명소리가 들리고, 핏자국이 눈앞을 붉게 물들이고, 살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새 발소리가 눈앞에 다가왔을 때, 소녀는 그저 공포에 떠는 것 밖에 할수있는게 없었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듯, 폭력과 실험의 고통이 떠오른다. 그림자가 움직여 소녀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머리채를 잡아 어디론가 끌고가려는 걸까, 이게 악몽이라면 언제 꿈에서 깰 수 있을까. 소녀는 다시 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 빨려들어간 꿈은 악몽이 아니었다. 접근하던 손은 천천히 소녀의 머리 위로 올라가 조금씩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다른 자극에 오히려 소녀는 온몸이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 자기소개좀 부탁해도 될까? “


얼어붙은 소녀를 녹인건 남자의 목소리였다. 정신을 차린 소녀는 멍한 눈에 초점을 잡고 천천히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앞의 남자는 싱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 ...티아멧입니다. “


짧고도 간단한 소개였다. 그마저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해 거의 들리지 않을 뻔 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 그래, 티아멧. 앞으로 너의 바이탈 사인 체크를 내가 담당하게 됐어. 잘해보자고. “


거짓말, 티아멧은 생각했다. 눈앞에 지어진 미소도, 잘해보자는 저 한마디도, 모두 거짓일 것이다. 실험을 실패하면, 저 거짓도 언젠가 드러나 폭력으로서 다가오겠지.


“ 뭐, 당장 믿어달라는건 아니지만 난 누군가에게 발길질하고 때리는 취미는 없어. 무슨 소린지 알겠지? “


티아멧의 생각을 꿰뚫는듯, 남자는 손을 뗀 뒤 조금 뒤로 물러나 말했다. 티아멧은 입을 꾹 다문 채 차디 찬 시선으로 보답할 뿐이였다.


“ 표정 좀 풀어, 사탕줄까? “


이번엔 조금 쓴 웃음을 짓고는 남자는 입에 막대사탕을 넣으면서 다른 한손으로 주머니에 있는 봉지사탕을 꺼내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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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멧은 숙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르카호에 합류한지 하루가 지났다. 위층 침대에는 미나가 코를골며 자고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5시.다시 드러눕기도, 일어나 무언가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대. 


아직 함선 내부 구조도 모르니까 산책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침대 옆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숙소 문을 열어 복도로 나섰다.


함선 수용인원이 많은만큼, 숙소의 복도도 길게 늘어져 있었다. 


‘ 소등시간대는 많이 어둡네... ‘


생각보다 더 어두워서 산책이 아니라 담력체험을 하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눈앞에 뭐가있는지 아예 안 보일 정도는 아니어서 산책에 의미가 있을것 같았다. 계속 걷기 시작하자 각 문에 붙어있는 부대이름이 눈에 띈다. 스카이 나이츠, 끝없는 스틸라인 숙소들을 지나고 나니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둠 브링어, 어째선지 빛이 새어나오는 앵거 오브 호드, 호라이즌, D 엔터테인먼트... 가 부대이름인가? 컴패니언, 시티가드, 배틀메이드 프로젝트, 등등등... 여러 부대이름을 구경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복도는 끝이나 로비로 이어져 있었다.


로비에 도착하자 “사령실” 이라고 되어있는 표시가 눈에 띄었다. 원래라면 잠겨있어 들어가지 못하겠지만, 왠지모르게 열려있는 문이 티아멧을 유혹한다. 그에따라 티아멧은 홀린 듯,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안쪽으로 들어가니 투명한 유리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아름답다. 첫 감상은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모든 생물의 근원지라고 불리우는 바다는 그 위용을 여러 물고기들과 생물로 뽐내고 있었다.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지, 새벽이지만 조금씩 태양빛이 들어와 사령실의 바닥을 비춘다.


“ 예쁘지? “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조용히 사령관이 말을 걸어왔다. 소스라치게 놀란 티아멧이 의자에 앉아있는 사령관을 발견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금의 정적이후, 티아멧은 다시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 네... 예쁘네요. “


그 한 마디에 사령관은 기분 좋은듯 웃으며 티아멧과 함께 나란히 경치를 구경했다. 


“ 닥터랑 가끔씩 밤에 이야기를 같이하는데, 걔가 준 음료수를 너무 많이 마셨나봐. 잠이 도통 안오더라고. “


닥터랑 죽이 잘 맞는거면 어지간한 괴짜인 것 같다. 하긴, 바이오로이드를 끔찍히 아끼는 것 부터 괴짜인가. 내심 티아멧은 생각했다. 


“ 할게 없어서 여기서 바다구경 하고있는데, 너무예쁘더라. 오, 저기 하이라이트 오신다. “


사령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위치를 바라보자 곧, 거대한 고래가 함선위로 지나갔다. 압도당할 정도의 아름다움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 티아멧 “


멍하니 고래를 바라보고 있던 탓인지, 조금 느리게 티아멧이 반응했다. 


“ ... 네? “


“ 아니, 들어왔을때 내가 인사를 안한거 같아서 말이지. “


그러고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봉지사탕을 꺼내 티아멧의 손에 쥐어주었다.


“ 환영 선물이야, 앞으로 잘부탁해. “


사탕봉지에는 서투르게 펜으로 웃는 표정이 그려져있었다. 


풋, 하는 웃음 소리를 내며 티아멧은 사탕을 주머니에 넣으며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다. 바다가 보여준 아름다움의 여파였을까, 따스함에 조금 미소를 짓고 사령관과 함께 다시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This Future (we didn’t ex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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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믿을 수 없다. 


바이오로이드를 필요에 의해 ‘사용’ 하며 동등한 대우는 커녕 하등생물, 그아래로 취급하는 대우를 실험실에서 질리도록 겪어오며 얻은 하나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그 신념은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에 의해 전면으로 부정당하고 있다. 


“ 수고했어, 여기 사탕. “


“ ... 오늘은 칼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했는데 “


“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 다음에 잘하면 되는거지. “


티아멧의 노력에도 무색하게, 이번에도 출력을 더 키우라며 온갖 끔찍한 실험을 두눈으로 바라봤어야 했다. 


‘ 다음에 성공하지 못하면... ‘


티아멧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 다음에 벌어질 일들을 상상했다. 우선 제일먼저 지쳐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배 주위에 발길질을 당해 강제로 일으켜 세운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구역질이 난다. 그 다음엔 머리채가 잡혀 어디론가 끌려가 강제로 실험장면을 보게된다. 첫 번째 실험은 ‘ 바이오로이드의 전기충격 내성 ‘ 에 관한 실험이다. 말 그대로 한 바이오로이드에게 전기충격을 줘 버티는 강도를 올리는게 실험의 목적이다. 실험은 간단하다, 그저 죽을때까지 전기충격을 준다. 그러면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눈앞에 피와 잔혹한 광경에 다시금 구역질이 난다. 그 다음엔 새로운 바이오로이드가 들어와 갖가지 실험을 한다. 주로 강도와 관련된 테스트다. 칼에 찔리고, 베이거나 망치같은걸로 두들겨지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죽는걸 본다.


... 상상만 했는데도 다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죽는걸 막기 위해서라도 티아멧은 강해져야 했다.


“ 누가 아냐, 사탕먹으면 힘이나서 다음에 잘해질지. 적어도 난 그렇거든. “


남자가 입에 문 막대사탕을 콰드득 깨물며 말했다.  


“ ...별나신게 연구소에 있던 닥터 같네요. “


티아멧의 아무생각없이 내뱉은 말에 남자는 보고서를 적는것을 멈추고는 눈을 밝히며 티아멧에게 접근했다.


“ 진짜? 이 연구소에 닥터가 있다고? “


그런말은 안 했지만 그저 ‘닥터’ 라는 단어에 반응해 마음대로 해석한 것 같았다. 그것 말고도 조금 과하게 다가온 남자때문에 당황했지만 어쨌든 궁금해하는 남자에게 대답을 해주었다.


“ 있긴 있을거에요, 지난번에 지나가는걸 봤거든요 “


“ 와자뵷! 시발 마참내~ “


도대체 어디 지역에서 쓰는 모를 감탄사를 내뱉으며 남자는 전율하고 있었다.


“ 진짜 살면서 한번은 보고싶었거든, 그래서 블랙리버 연구소는 닥치는대로 들어가봤는데 도무지 없더라. “


남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보고서를 적으면서 한탄하기 시작했다.


“ 내가 안 그래 보이는데 머리로는 어디가서 안꿇리거든? 그래서 특이점에 도달할 수도 있는 닥터와 같이 일해보는게 소원이란 말이야


아니 근데 닥터가 있는지도 안 알려주고 어디서 어떻게 연구를 하고있는지도 안 알려주니까 뭘 어떻게 할 수 가 있어야지. 진짜 미쳐버리겠더라


아무튼 알려줘서 고맙다, 이거 내가 아끼는 막대사탕인데, 특별히 준다. “


남자는 속사포처럼 자신의 한탄을 마치고는 티아멧의 손을 잡아 반 강제로 사탕을 쥐어줬다. 티아멧은 그저 손에 쥐어진 사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보고서 적는것을 끝마치고 의자에 앉아 한 손으로 막대사탕을 집고는 콰드득 씹는 소리와 함께 막대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 도대체... “


“ 응? “


“ 도대체 저한테 왜 이렇게 해주시는거죠? 저에게 이런건 맞지 않아요. 이런 대우도, 이런 사탕도 전부! “


거짓은 누군가를 상처입힌다. 티아멧은 자기보호 본능으로, 상처입고 싶지 않아 눈앞의 거짓을 드러내 잔혹한 진실을 마주하고 싶었다.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티아멧은 떠올렸다. 실험실 너머 나를 바라보던 그 표정. 맞는다. 본능적으로 머리가 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시뮬레이션했다. 티아멧은 눈을 질끈 감고 다음에 벌어질일을 기다렸다. 


남자는 


사탕을 쥐어주던 그때처럼 다시 티아멧의 손을 잡아주었다.


“ 너가 누군데 이런게 맞지 않다고 하냐. 이렇게 바이탈 사인 체크도 하는 분이 뭐가 다르다고, 

스스로 갇혀 사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머리가 있으면 띵킹이란걸 좀 해봐라. “


남자는 티아멧의 이마를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 그러니까 그 사탕이나 먹으면서 생각이나 좀 해라, 난 간다. “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남자가 나가자, 티아멧은 말없이 손에 쥐어져있는 막대사탕의 비닐을 벗겨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넣자마자 입 안에 퍼지는 강렬한 달콤함에 조금 아찔했지만, 조금씩 흘러나오는 눈물이 그 달콤함을 덜어주는 듯 했다.


Upload Your Mind :: Download My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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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한달이나 지났네요. “


“ 뭘 그런걸 세고 그러냐. “


“ 제가 구원받은날 인걸요.”


“ 난 저 교회에 있는 아자젤님 마냥 누구 구원할 심보가 안된다~ “


티아멧은 실실 웃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달콤한 사탕을 받은날 이후로 티아멧의 실험은 성공적이였다. 개조가 잘 된 걸까, 무슨 이유인지는 티아멧 본인도 잘 몰랐지만, 자신이 구원받은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 아! 나 내일부터 닥터랑 연구실 같이쓴다! “


티아멧의 성능이 올라간 이유가 이 남자때문이라고 생각한건지, 연구소는 남자를 티아멧의 실험에 개입하는 정도를 점점 늘리더니, 결국에는 실험 전권을 남자에게 부여했다. 그리고 티아멧의 성능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자, 그 유능함을 인정받아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 정말요? 잘 됐네요. “


“ 하하하, 드디어 내 진가를 알아본거지, 내가 위쪽에다가 좀 많이 쪼아대긴 했지만. 


너 덕분이다. 진짜로, 나중에 내가 부자되면 평생 같이살자. “


티아멧은 진심으로 공감하고, 같이 떠들고 웃고있었다. 달콤한 거짓은 어느새 진실이 되어 티아멧에게 다가왔다. 


“ 그런데 어떻게 한달이 되도록 이름을 안 알려줘요?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애매하다구요. “


“ 이름? 알려줘? “


“ 원래 첫 만남 때 알려주는게 정상 아니에요? “


“ 음... 내일이 경사스러운 날이니까 내일 알려줄께 ”


“ 그게 뭐에요! “


“ 농담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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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날엔 아시다시피 철충들이 습격하고, 휩노스 병이 퍼졌죠. “


티아멧은 사령실 의자에 앉은 채 이야기를 끝마쳤다. 


“ 미친듯이 이름을 부르짖고, 찾아봐도, 시체조차 보이지 않더라구요. “ 


티아멧은 서글픈 눈으로 사령관이 쥐어준 봉지사탕을 바라보았다. 


“ 그래서 언젠가 시체라도 찾으면, 묘비에 이름은 적어야되니까 계속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요. “


이제는 적응될 줄 알았건만, 다시 차오르는 그리움에 티아멧은 고개를 들어 바다를 바라보았다. 


“ 난 멸망 전의 기억은 내 이름이 전분데, 나랑 비슷하네. “


티아멧이 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손을 바라보자, 손에는 봉지사탕 대신 막대사탕이 놓아져 있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령관을 바라보자, 북받혀 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 감정은, 눈물이 되어 밖으로 흘러나온다.


그리고 사령관은 그리운 미소를 보이며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Together forever, my lovely lovely Tia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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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작임


 설정오류, 맞춤법 등등 지적 환영.


노래듣다가 삘받아서 써봄. 제목이 앨범 이름이다. 당연히 바이오로이드는 아니고 heart of android 라고 검색해야 나옴.


쓰면서 표현하고 싶었던 노래를 그 문단? 맨 아래에 적음. EDM 비슷한건데 취향 맞으면 이거만큼 띵곡이 없다.


마지막으로 난 아직도 티아멧 없음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