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주는 기대감도 조금씩 시들어가던 1월 중순, 포츈은 난감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작 도착했어야 했을 새동료가 말썽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싫다니깐!!』

『야야 귀청 떨어지겠다』

“바바양, 어떻게 진정 좀 시켜주면 좋겠거든?”

 

지직거리는 무전기를 통해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30초 정도 반복되더니, 이윽고 조용해졌다.

 

『이, 이게 어디서 레이디를..』

『아 아, 여기는 바바리아나. 말괄량이는 제압되었다. 오버』

“이제야 언니와 대화가 가능하겠거든”

 

포츈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무전기 하나를 가운데 두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상대를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령관과의 2주년 파티 때 입을 복장이 오드리의 역할이라면, 새로운 동료를 확보하고 소개하는 것은 포츈의 임무였다. 이를 위해 같은 제작사의 바이오로이드 바바리아나까지 파견했지만 상황은 녹록치않았다.

 

“이봐요 드라큐리나 양, 당신에 대한 정보는 이미 살펴봤거든? 인간님들이 멸망하기 전부터 배우로 활약한 바이오로이드라면 여기 오르카호에도 있거든? 여기에는 우리 사령관도 있고 새로운 인생을 찾을 수 있을거야”

『웃기지말라 그래. 맞아, 난 분명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바이오로이드였어. 하지만 인간, 당신네들이 사령관이라 일컫는 녀석이 할로윈 파크를 파괴하면서 나는 결함품이 되었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단 말이야』

『하! 또 그 진절머리나는 C구역 말인가? 내가 몇 번이고 말했지, 거긴 바이오..』

『알고 있다니까!! 하지만 그것이.. 인간들이 바라는 것이었다면.. 나는 수행했을거야.. 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인걸...』

 

무전 이어폰을 귀에 착용한 채 오르카호 함교에 앉아 장비를 만지고 있던 포츈의 손이 멈췄다.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라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그것이 설령 자신의 마지막이라 할지도 말이다.

 

“저기 드라큐리나 양, 마음은 이해하지만...”

『푸하하! 똥싸고 자빠졌네!』

 

바바리아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인간을 위한 바이오로이드 살육쇼? 좋다 이거야. 하지만 너만의 행복은 뭔데? 만약 테마파크가 아직 남아있었던들 거깄는 철충의 장난감이나 되었을거다』

『뭐가 이상한건데..! 너야말로 이상해! 우린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어. 그것만이 우리의 목표이자 행복이라고. 너 바이오로이드 맞아?』

『무슨 소리지? 이 몸은 비스마르크의 바이오로이드 바바리아나다! 너야말로 널 그렇게 제작한 사람들이 전부 멸종한 지금, 그깟 명령이 무슨 소용이 있지? 무엇이 널 그렇게나 사지로 몰아붙이는건데』

『....』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포츈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손이 멈춰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저편에는 갑판 위에 술에 취한 채 하늘하늘 걷고 있는 키르케가 보였는데, 이내 더치걸의 손을 잡고 나타난 사령관이 그녀를 업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스마르크 제품인 만큼.. 공사장에서 일한 적이 있어. 최고의 엔터테이너였던 내가 꾀죄죄한 인부들 사이에 끼어있는게 처음엔 너무나도 싫었어. 하지만 나의 매력을 숨길 순 없더라고, 이내 모두들이 날 아껴줬지』

『공사판만큼 진국들이 모이는 곳이 또 없지』

『내게 조금이라도 쉴 시간을 더 주려고 했던 감독관 김씨 아저씨, 담배를 너무 펴서 기침이 절로나오던 정씨,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일을 한다던 태씨..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진 표정을 보는 것이 내 삶의 보람이었다면, 건설현장에서 인간들과 직접 몸을 부딪쳤던 경험은 내가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이었어. 내가 세운 건물에 인간들은 살아가고, 미래를 만들어갈 예정이었으니까. 비록 효용이 없어진 바이오로이드가 맞이할 결말이 무엇인들, 높게 솟은 빌딩과 아저씨들을 생각하면 절대 무너질 순 없었어』

『하지만 철충의 습격으로 대부분의 건물은 무너졌지』

『맞아. 내가 테마파크로 이송되던 날, 철충의 습격을 받았지. 나는 기적처럼 살아남았지만, 건물은 무너지고 인간은 멸종을 맞이하기 시작했어』

『그렇다면 테마파크를 찾고 있던 이유는 뭐지?』

『내 마지막 목표였는걸! 아저씨들 앞에서 내가 얼마나 허풍을 부렸는데, 화려한 조명아래서 예쁜 옷을 입고 보란 듯이 내 여생을 마무리하는 게 내 목표였단 말이야』

“드라큐리나 양...”

『그런데 오르카.. 당신네들과 사령관이라는 인간이 내가 누울 마지막 자리를 파괴했어. 난 이제 돌아갈 곳이 없어.. 흑.. 흐흑...』

 

무전기 건너로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포츈에겐 후회와 허무함을 담은 울음소리로 들렸다. 바이오로이드가 인간과 똑같은 존재라면, 그들이 흐르는 눈물엔 감정이 담겼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합류해라』

『...뭐?』

『네 구구절절한 사연은 잘들었다. 하지만 네가 따르던 태씨인지 뭐시기도 죽었고 너한테 그런 말도 안되는 프로그램을 넣은 인간도 죽었다』

『그래서 내가..』

『그래서다. 바이오로이드의 죽음에 즐거움을 느끼던 인간들도 모두 죽었다는 거다. 적어도 우리 사령관은 아니야. 그래서 폭파를 지시했지』

“그래 드라큐리나 양, 우리 사령관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제 이 세상에서의 운명은 네가 스스로 정하는거다. 네 행복도 스스로 찾는거야. 내가 이렇게나 설득해도 따르지 않겠다면 포기하겠다. 하지만 일단 나는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네 새로운 행복은.. 뭔데?』

『당연하지 않나! 사령관의 여자가 되는거지!』

『뭐?!』

『철충을 전부 때려잡고 사령관의 여자가 되는거다. 그게 내 목표다. 이러고도 나를 단순히 공사판에 있던 철거전문 바이오로이드라 부를 수 있을까?』

 

다시 침묵이 흘렀다.

 

『...좋아』

『헤헷, 이제야 맘을 돌리셨나』

『당신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인간을 직접 만나봐야겠어.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나 움직이게 만드는지』

“잘 생각했어 드라큐리나 양!”

 

포츈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드라끼리라고 했던가?』

『드라큐리나!!』

『거 어쨌든, 지금까지 어떻게 생존해온거지? 아까보니 팔다리가 그렇게나 강인하지 않아보이더만』

『말했잖아, 공사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고. 생존 바이오로이드의 촌락에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거처를 만들어주면서 살아온거야』

『노가다 실력이 죽지는 않았구만』

『나는 본래 진동 능력을 갖춘 배우 바이오로이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제와서 도도한 척 해봤자다』

 

“알겠어 드라큐리나 양, 그래서 우리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여기서 더 늦으면 곤란하거든”

 

『..1월 18일이면 될거 같군』

『뭐? 네가 가진 신호기로 봐선 오르카호는 여기서 꽤 떨어진 장소인데!?』

『우리 사령관은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 문제없다. 그리고 근처에서 버려진 철퇴를 하나 더 주웠기에 쾌진격이 가능해보인다. 앞으로는 쌍수바바다!!』

“어쨌든 빨리 도착하길 바라거든..”

 

바바리아나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무야호~’란 환호성을 지르며 철퇴를 휘둘렀다. 얼마나 강렬한 소리인지 무전기 너머로도 파괴력이 느껴졌다.

 

『...저기 물어볼게 있는데』

“뭐야 드라큐리나 양? 이 언니가 답할 수 있는건 모두 답해줄 의향이 있거든”

 

『그.. 선짓국밥은 먹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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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이 복잡한 캐릭터인데 단순하게 네 먹었습니다 끝~ 하는게 아니라 합류스토리가 있다면 어떨까해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