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충의 군세는 어마어마했고, 

그것을 토벌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년? 십년? 그런 짧은 시간으로는 지구를 뒤덮은 철충들을 모두 지울수는 없었다.


철충들과의 전투는 지루하리만치 길게 늘어졌고. 

세상에 남은 단 하나뿐인 인간인 그의 육체는 늙고 병들기 전에 그를 걱정하는 바이오로이드들에 의해 새 것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천년이라는 긴 세월 또한 사령관을 제외한 인간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놈의 담배는 어째 이 나이가 되어도 끊을수가 없냐.”


오르카호의 갑판 위에 올라 먼 바다를 내다보던 사령관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들고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욱 하고 숨을 들이마시자 약간 씁쓸하고 텁텁한 연기가 입안에 차올랐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최근들어 잡생각이 많아진 그였다.


100살이 되었을 때도, 긴 전투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그는 묵묵히 싸우는 것을 계속했다.

200년이 지났다. 보통 인간의 수명의 2배를 살아온 그의 지혜는 늘어만 갔다.

500살, 이 즈음 해서 두번째 사춘기가 그에게 찾아왔다. 그가 정신적으로 몰려있던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LRL과 함께 진지한 용사놀이를 한다고 해도 바이오로이드들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1000살 이후 그는 더 이상 나이를 세지 않았다,

그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저 기약 없는 긴 전투, 쉼없이 몰려오는 적들, 그리고 흐르는 시간만이 있었을 뿐.



"..음?"



붉은 빛이 점멸하자 사령관은 생각을 멈추고 지휘 콘솔을 켰다. 

나이트 칙 4기와 둠이터 두엇, 

적을 확인한 그는 무성의하지만 능숙한 손놀림으로 콘솔을 조작해 스쿼드를 출격시켰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둠 이터를 처음 보았을때가 떠올랐다.


기억도 안나는 까마득한 예전, 그 거대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에 덜덜 떨었었지.

이젠 그냥 패기 좋은 커다란 샌드백일뿐이지만.


곧 포드가 열리고, 빛줄기와 함께 그가 선택한 스쿼드가 쏘아진다. 

지휘를 할 필요도 없이, 그가 선택한 스쿼드는 능숙하게 맡은 임무를 완수할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콘솔을 조작하는 사이 다 타버린 담배를 튕겼다.


제 역할을 다한 담배는 순식간에 빛을 잃고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가만히 서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것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는 그것이 부러워졌다.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쉬는 것, 그것은 항상 그가 염원하던 것이지만 절대 이룰수 없는 것이였다.

상념에 빠진 그의 눈에 검게 출렁이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차라리..이대로…


“사령관….?”


“아, 에밀리?”


그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사령관은 반사적으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전신에서 푸른 빛을 흘리고 있는 작은 소녀가 서 있었다. 몸에 난 상처가 괴로운듯, 그녀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사령관...다 싸우고 왔어."


에밀리는 무언가를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물론, 천년간 수많은 에밀리 개체를 대해온 사령관은 에밀리를 보자마자 그녀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너무 아파요 사령관님, 제발 저를 수복시켜주세요. 

라고 말하는 듯한 저 눈빛은 열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원이 너무나도 부족한 지금, 그는 에밀리의 바람을 들어줄수 없었다.

게다가 내일은 철충과의 큰 전투가 있는 날, 지금 에밀리를 수복시켜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수복 대신 다정하게 그녀를 안아주는 것을 선택했다.


"응, 에밀리, 수고했어."


인자한 목소리로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에밀리는 말없이 사령관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것으로 에밀리는 아픔을 참고, 내일까지 힘내 줄 것이다.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를 쓰다듬어주자 에밀리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잠시 뒤 에밀리가 온전히 잠든것을 확인한 사령관은 조용히 그녀를 안아들었다.


처음에는 죄책감에 어린 소녀를 출격시키는 것 조차 못하는 그였지만, 이제는 참 많이도 닳고 닳았다.


"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아무레도 좋다 ...라."


바이오로이드던 인간이던, 긴 시간 앞에서는 늙은 여우처럼 교활해지기 마련.

그는 세삼 자신이 늙었다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안아든 채 오르카 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어쩌면 그는 또 누군가를 상처입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사령관의 자리를 지킬것이다.

철충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또 다음에 쓸거 추천받음.

나이 많이 든 사령관은 저럴거 같아서 써봤어.

에밀리 넘 좋아해서 글 쓸 때마다 어거지로 어떻게든 꾸겨넣는것 같네.

중밀리로 영전 밀어서 미안하다...




https://arca.live/b/lastorigin/19618803 로 이어집니다.




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