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보기.

단편]사령관의 일지가 만들어지기까지.


하얀 제복과 높은 굽.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대장 레오나는 사령관에게 임무보고를 하기 위해 옷미무새를 다잡는다. ‘철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녀의 제복엔 누구도 흠을 잡을 수 없었지만 어느덧 버릇이 되버린 몸짓이었다.

“자. 확인해봐.”

 

사령관은 눈 앞의 패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여전히 별거없군. 트릭스터를 상대하기 위한 자원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발키리가 제출한 작전계획서에서 보고한 내용을 얼마간 상회하는 양이었지만 굳이 ‘여전히’라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붙이는 데서 사령관의 의중을 파악한 레오나는 풀릴 뻔 한 포커페이스를 다잡으며 불만을 표시한다.

“어떤 결과를 원했던 거야? 이 지역에서 나올 자원은 이게 다야.”

 

사령관은 여전히 패널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대답한다.

“그러니까 지휘 개체가 더 /노력/을 해야지. 3시간 후에 다시 탐사를 나간다. 명령이야.”

 

레오나의 불만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두 글자에 힘을 주는 사령관의 대답에 레오나는 체념한 듯 힘겹게 대답한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

 

이미 안정화된 지역에 정박한 오르카 호 위에 소복히 쌓이는 눈. 바깥은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이었지만 작전실에 불어오는 싸늘한 분위기는 겨울의 북풍과 견줄 법 했다. 현재 시간 17시 58분. 언제나 사령관의 업무의 마무리는 철혈의 레오나를 탐사 지역으로 보내는 것이었고, 레오나의 일과 또한 하루 두 번의 장기 탐사를 나가는 일이 전부였다.

 

사령관은 볼일 다 봤으면 나가라는 듯이 패널을 등지고 의자에 등을 기대 누웠고, 레오나는 입술을 깨물며 돌아선다. 레오나가 나간 후 부관 업무를 마무리하고 있는 마리는 사령관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그만둔다.

 

사령관실에서 이어지는 긴 복도를 지나 출격 포드쪽으로 가는 레오나는 복도에 삐딱하게 선 샌드걸을 바라본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가 배정받은 개인실은 출격 포드 바로 오른 쪽으로, 외풍과 가장 먼저 마주하면서 식당과 가장 멀리 있는 기피 장소였다. 사령관이 오기 전엔 구출한 바이오로이드들의 임시 숙소였던 곳으로, 사령관에 의해 재배정된 개인실 복도엔 싸늘한 외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밤중에 또 고물을 뒤지러 가는건가요 대장?”

 

“그래. 사령관의 명령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이래야 하나요? 저 스틸라인은 벌써 전공을 세우면서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니는데!”

 

“그만. 우리가 앵거 오브 호드와 전투했을 때 안드바리를 생각해.”

 

“그럼 저 주정뱅이 늑대년을 쏠까요? 아니면 건방지게 구출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사령관실을 들락날락대는 낙타년에게 폭탄이라도 먹이고 올까요? 옛 일은 옛 일이고 지금을 생각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복도에서 큰 소리가 나자 닫혀 있던 개인실의 문이 열린다. 짧은 정비시간에 전투복의 먼지를 제거하던 발키리가 튀어나온다.

“그만하세요. 샌드걸. 대장님께서도, 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마리 대장도 다 알고 있으십니다. 사령관님의 마음을 돌려놓을때까지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발키리의 십자 눈에선 피곤함과 함께 뜻 모를 설움이 보여 샌드걸은 맥이 풀렸다. 주저앉은 샌드걸은 처량한 눈으로 레오나를 바라보며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라비아타 통령은 인간이 발견되어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했어요. 실제로 그랬죠. 철충에게 공격다운 공격을 하면서 통쾌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다시 인간이 발견되기 전으로 돌아가야 하는거죠? 우리에겐 내일이 언제 올까요? 우리는 전쟁에서도 의미가 있나요?”

 

레오나는 샌드걸을 가볍게 감싸안는다.

 

“나는 매일 사령관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고 있어. 내 작전이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사령관은 어떤 결과를 원한걸까? 조금만 더 참아줘. 이 겨울이 지나고 나면 8년간 이어졌던 겨울이 끝난 것처럼 우리에게도 변화가 일어날 거니까.”

 

“그 8년이 끝나고도 우리가 좋아진 건 아니지않습니까...”

 

끝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복도는 샌드걸의 눈물로 얼룩지고, 방음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개인실에 울려퍼지는 오열은 그렘린과 베라의 눈물로 번져갔다. 야속하게도 승강기와 분리된 저 너머에는, 특히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에게 북풍보다 더한 혹한을 안긴 사령관의 작전실에는 눈물과 오열이 닿지 않았다.

 

지휘명령서 #81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개인실 배치도.


분량조절 실패로 2.2편에서 계속.


예전엔 굉장히 빨리 덱을 완성할 수 있었지만 늒네 사령관들에게 다소 애매했던 발할라 구성원들의 위상을 생각하면서 씀. 시오배 애호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