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제목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 1~2에서 이어서 씀. 기존에 읽었던 사람은 -3-부터 읽으면 됨.



-1-

오늘도 어김없이 사령관실 앞에 쟁반이 놓여있었다. 누군가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들이 담긴 쟁반이었지만


그 정성이 무색하게 음식들은 온기를 잃었고 같이 놓아둔 과일들은 변색되어가고 있었다.



"사령관, 일주일째야. 그만하고 제발......"


사령관을 찾아온 레오나는 문 앞에 놓여진 음식들을 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혹시 내가 만든 요리라 그런거야? 그런거라면 소완에게 부탁해서 다시 가져올게. 내가 요리 솜씨가 좀 꽝이긴하잖아?"


베인 상처들로 얼룩진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발키리의 사망 이후, 사령관은 모든것을 포기한듯 그녀들과의 대화를 거절했다. 


라비아타를 비롯한 몇몇 바이오로이드들은 그의 건강을 염려해 강압적으로라도 그를 꺼내와야한다 주장했으나, 


사령관에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 만약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혹여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의 목슴을 걸겠다는


레오나의 말에 그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10일 정도는 버틸수 있을거라 판단하여 그녀에게 전적으로 사령관의 관리를 위임하였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의 상태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가끔씩 들려오는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만이 그의 생존을 알릴 뿐, 


그런 울음소리를 듣는 레오나 또한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아끼는 부관이면서 동시에 동생처럼 여기던 그녀를 잃은 상실감이 사령관보다 

덜하진 않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걸......."


사령관실 앞에서 멍하니 썩어가는 음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소린 하지마"


그녀의 진심이 통한건지, 아니면 단순히 사령관의 감정이 진정된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확히 8일째가 되는 날 사령관실의 문이 열리고


초쵀한 몰골의 사령관은 그녀가 깎아 온 반쯤 썩어가는 토끼모양의 사과를 입에 밀어넣었다.


"이렇게 맛있는걸 그냥 버릴뻔했네, 신경써줘서 고마워"


"사령관......."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울었다.





"일동, 묵념"


사령관이 복귀한 다음날, 우선적으로 발키리를 기리는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을 잠수정에서 지내던 그녀였기에 마지막만큼은


육지로 보내주고 싶단 의견을 수렴해 위험을 감수하고 오르카호는 긴 잠수를 마치고 간만에 뭍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볕이 잘 드는 이름 모를 어느 곳, 그녀가 묻혀야 할 장소가 준비되었다.


"사령관, 준비됐어"


더치걸은 덤덤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삽을 사령관에게 건내주었고, 각자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나씩


전하며 그녀의 관 위로 흙을 덮었다.


그녀의 관이 흙에 덮여 모습이 보이지 않을 즈음, 레오나는 그녀가 아끼던 모신나강을 들어 하늘을 향해 총 21발의 조총을 발사했다.


"이런거밖에 못해줘서 미안해"


사격을 마친 모신나강에 입을 맞춘 후 레오나는 떨리는 손으로 총구를 그녀의 무덤가에 꽂아주었다.



"시스터 오브 발할라 소속 T-8W 발키리 중령, 금일부로 전역을 명한......"


결국 터져나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총 옆으로 쓰러지며 레오나는 절규했다.


유난히도 비바람이 치던 21XX의 어느날, 오르카호엔 처음으로 영구결번이 생기게 되었다.





-2-


다시 이전과 같은 일상을 되찾을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사람 난 자리가 쉽사리 잊혀지진 않았다.


"발키리, 오늘 끝나고 뭐할...."


"사령관, 일과 끝나고 시간 괜찮아?"


"어....어 그래....괜찮지, 레오나....."


사령관이 당황할 것을 염려해 오히려 못들은 척 그를 맞춰주는 날이 계속 되었고, 이런 사령관에게 연민과 함께 자신이 죽었다면

이렇게까지 했을까란 생각이 레오나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당연히 그러겠지, 그럴거야'


애써 태연한척 속으로 생각했지만, 한번 머릿속에 자리잡은 불안감은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내일 주말이기도 하니까, 간만에 둘이서 한잔 어때?"


"괜찮겠어? 술 안좋아하는거 아니었어?"


"가끔은 마셔, 말을 안할뿐이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런 소릴 한건지, 레오나 또한 스스로에게 놀랄 따름이었다.


"그러면 방에서 기다릴게, 좀 있다 봐"


"금방 갈게, 오늘은 업무도 별로 없으니까.....특별히 먹고 싶은거라도 있어?"


"글쎄, 아 맞다! 전에 토끼모양으로 깎아준 사과 있잖아. 나 그게 먹고 싶어졌어"


"사령관이 좋다면야, 알았어"


가슴 한켠으론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지만, 사령관이 원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그녀였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일과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은 사령관실로 향하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걸까"


한 손엔 사령관이 부탁한 안주와 모처럼 갖춰입은 나이트드레스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어줬지만 마음속 그림자는


좀처럼 지워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사령관, 들어가도 될까?"


방문을 가볍게 노크하자 문이 열리고, 살짝 눈시울이 붉어진 그의 모습이 보였다. 애써 해맑은 척 하고 있었지만 침대맡에 엎어놓은 액자를 보아 방금전까지 그녀의 사진을 보고 울고 있던걸로 추측되었다.


"방이 이게 뭐야~ 조금은 치워뒀어야지"


"미안, 치우는게 익숙치 않아서"


"으휴, 남한테 의지하는건 좋지않아. 아무리 사령관이라도 가끔은 방청소 정도는 직접 해보는게 어때?"


"그렇게 할게"


레오나는 방을 정리한다는 빌미로 은근슬쩍 그의 침대맡에 둔 액자를 구석에 밀어놓았다. 


그녀를 잃은건 진심으로 슬펐으나, 사령관과 있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만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욕심도 어느정도는 섞여있는 행동이었다.


"레오나, 그쯤하고 이리 와"


"서두르긴...알았어"


어느새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령관을 보며 레오나는 치우던 것을 미뤄두고 자리에 앉았다.


"먼저 받아"


병을 들어 그녀의 잔을 체워주었고, 뒤이어 레오나가 사령관의 잔을 따라주었다.


"레오나는 맥주 같은거 안마실줄 알았는데"


"그렇게 보였어?"


"응, 와인 같은것만 마실줄 알았지"


"웃겨, 차라리 이슬만 먹고 산다그러지?"


"그정도까진 아니고"


시시껄렁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잔을 비워나가는 두 사람, 어느정도 취기가 오르자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이 맞닿았고


레오나의 눈을 보며 사령관이 말했다.


"잠깐 쉴까?"


"정말....쉬려는거야?"


"아니"


진한 술냄새와 함께 거친 콧소리가 레오나의 귓가를 스쳤다. 터질듯한 심장소리와 진한 땀냄새, 전부터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괜찮겠어??"


그 한마디에 사령관은 멈칫하며 그저 말없이 레오나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는 사령관,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어느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그 말만큼은 듣고 싶지않았기에 레오나는 그 작은 입술로 사령관의 입을


가로막았다.


"사령관, 사랑해"


".....나도"


확신 없는 남자와 미래를 바라는 여자는 그렇게 침대 위에서 서로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3-


오랜만이었다. 항상 텅 비어있었던 자신의 옆자리에 누군가가 잠들어있단 사실이 레오나에게 있어선 간만에 겪는 일이었다.

곤히 잠든 그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심장의 고동을 느껴본다. 


"잠시도 쉬질않네, 신기해라"


따뜻한 온기와 함께 일정간격으로 울리는 심장의 두근거림은 그간 불안하기만 했던 그녀에게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아, 그 아이는 이런걸 매번 느꼈던건가?"


이제는 인정해야했다. 발키리에게 가지고 있던 그 감정은 확실히 질투심이었다고....

그녀가 떠난 지금도 그 아이가 가졌던 이런 소소한 행복들을 떠올리며 비교 하고 있으니,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은 새벽 5시, 별다른 일정이 없는 주말이기에 레오나는 사령관의 품에 몸을 맡기며 다시 잠에 들었다.


몽롱한 느낌에 눈을 뜨자, 회의실이 보이고 자신의 앞엔 발키리가 앉아있었다.


"발키리, 오랜만이네? 보고 싶었어"


그녀를 반기며 인사했지만 발키리는 말없이 웃기만 할뿐이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사령관이 회의실로 들어오고

두 사람은 레오나를 보며 웃더니 보란듯이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다.


"장난이...심하네, 왜 그러는거야. 자꾸 그러면 나 화낸다?"


그러자 보란 듯이 레오나의 어깨를 누르며 그 앞에서 발키리는 신음했고 사령관은 흥분한 듯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벗어나려했지만 어느새 레오나의 양팔과 다리는 구속되어있었고, 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눈을 감으려해도 감겨지지않는 이 고통스러운 상황에 속으로 절규하던 그때, 사령관의 목소리에 레오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레오나, 레오나. 괜찮아??"


"어....아니, 아 사령관이구나, 아니야....나 괜찮아...."


식은 땀을 흘려가며 신음하고 있던 그녀가 걱정되어 잠을 깨웠지만 깨어난 뒤에도 레오나는 두려운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사령관, 나 좀 안아줘"


"너답지 않네, 안좋은 꿈이라도 꾼거야?"


"응.....좋은 꿈이어야했는데, 아니더라"


따뜻한 그의 품에 몸을 기대어보아도, 왠지 모를 두려움과 초조함에 레오나는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사령관, 오늘 시간 괜찮지?"


"괜찮긴한데 왜?"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키스를 하며 침대에 눕히고 레오나는 사령관의 위로 올라탔다. 


"너무 급한거 아냐?"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저돌적인 모습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이건 이거나름대로 매력이라 생각해 그녀의 페이스에 맞춰주기로 했다.


"사령관, 내가 많이 사랑하는거 알지?"


"...알지"


"그래....그러면 된거야....사랑해"


무언가에 쫒기듯 사랑을 속삭이며 레오나는 오전내내  사령관의 품에 안겨 떠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4-


오늘도 레오나는 꿈을 꾼다. 항상 같은 레파토리에 같은 주연, 그리고 그 속에서 저항도 하지 못한채 괴로워하다 알람소리에

잠을 깨는 일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렇게는 안되겠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황에 더이상 혼자서 손 쓸 만한 방법이 없다 판단한 그녀는 닥터의 도움을 받아보기로 했다.


"발키리 언니가 계속해서 꿈에 나와 괴롭힌다는거지?"


"응...이유를 모르겠어"


"흐음.....아무래도 발키리 언니를 놓아주지 못하는건 언니쪽인거같은데"


"그게 무슨 뜻이야?"


"꿈이란게 결국은 꾸는 사람의 자의식이 작용하는건데...이런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발키리 언니가 사령관을 범하는걸 원하는건 사실은 언니가...."


"아니야, 그럴리가 없잖아"


믿기 힘든 말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령관이 발키리에게 안기는걸 내가 원하고 있다고?

평소에 그렇게 질투하던 그 행위를 본인이 바라고 있다니, 앞뒤가 맞질않았다.


"확인할 방법이 하나 있긴한데....."


"한번 말해봐"


"직접 발키리 언니가 되어보는거야, 근데....그런걸 사령관이 좋아할리가 없을텐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거같아, 못들은걸로 할게"


닥터와의 대화를 마친 레오나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찬장에 있던 차를 꺼낸 후 주전자에 물을 올리며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했다.


"내가 그런 짓을.....원하고 있다고?"


찻잔에 물을 따르며 몇번이고 생각해봤지만, 이해가 되질않았다. 하지만 그 날 밤에도 어김없이

같은 꿈에 시달려야만 했고, 결국 레오나는 닥터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5-


"그 아이 물건을 냅두자고 할땐 이런 식으로 쓰려던건 아니었는데...."

고이 간직하고 있던 발키리의 전투복과 일상복들을 꺼내며 레오나는 중얼거렸다. 체형 자체는 크게 다를게 없던

두 사람이었기에 별탈없이 그녀의 옷들을 하나씩 입어본 후 거울을 바라보았다.


"역시 촌스러워,패션센스는 꽝이었다니까......"


자세를 취해보기도 하고, 뒷태를 감상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발키리, 나 왔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사령관이었다. 


"사....사령관, 여긴 무슨 일이야?"


이미 없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는 사령관과 떠나간 이의 옷을 입고 거울을 보는 레오나,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서로에게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게 저....가끔 생각날때마다 혹시나해서.....근데 레오나는 왜....거기서 그러고 있어?"


"뭐 좀 찾으러왔다가 생각나서.....한번 입어봤어"


"확실히 잘 맞네....잘 맞아"


놀라울 정도로 발키리와 흡사한 몸을 보며 사령관은 눈물을 글썽였다. 분명 다른 사람이었지만, 레오나에게서 보이는 발키리의

흔적은 그녀가 다시 살아돌아온것만 같은 착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사령관 미친 소리같긴한데.......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


"말해봐"


레오나는 잠시 망설이더니 스커트를 올리며 그에게 말했다.


"뒤에서.....해줄수있어?"


거울에는 정확하게 자신의 하반신이 보이고 있었고, 놀랍도록 발키리와 닮은 하체를 본인도 인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레오나......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는데 이건 아닌거같아"


"사령관도 그 아이가 그리운거잖아, 오늘은.....그 아이를 떠올려도 괜찮아"


어이없게도 사령관은 그 말에 쉽게 동의했고 발키리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레오나를 범하기 시작했다.


"발키리, 보고 싶어. 다시 안고 싶어"


"흣.....으흣...."


평소와는 다른 격한 몸부림과 함께 거울에 비치는 레오나의 모습은 평소 몰래 훔쳐보던 발키리의 모습과도 같았다.


"인정....안할수가 없네...."


레오나는 그제서야 본인을 쫒아다니던 악몽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악몽이 아닌 본인의 욕망이었다.




-6-


사령관과의 비상식적인 관계 이후, 레오나는 본인의 자랑이었던 금발을 적갈색으로 염색했다.

주변에선 죽은 이를 따라하는 그녀의 모습에 기분 나빠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름의 추모가 아닐까

해서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 날 이후로 레오나와 사령관의 관계는 뒤틀린 방향으로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어때, 그 애랑 닮았어?"


"나 못참겠어, 어떻게 그렇게 똑같을수가 있어?"


"뭐.....그 애랑 알고 지낸 시간이 적진 않았으니까"


그녀의 요구에 따라 사방에 거울이 설치된 방 한 가운데에 침대가 놓여져 있고, 익숙한 듯 레오나는 사령관을 향해 엉덩이를 내밀고 있었다.


"늘 말하지만, 사령관. 날 발키리라고 생각해도 괜찮아"


"응....."


관계가 시작되고 늘 그랬듯이 발키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떠들어대는 사령관과 그의 말은 신경도 안쓰이는 듯 거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본인이 당하는 모습을 감상중인 레오나였다.


서로 같은 감각과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이 행위 어디에도 그들이 찾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위와도 다름없는 이 행위가 끝날때마다 밀려오는 허탈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더는 이런 짓을 하지 않고선 살 수 없다는 것을....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아냐, 나야말로 도와줘서 고마워. 사령관"


겉치례뿐인 인삿말과 함께 사령관이 나가고, 레오나는 홀로 방에 남아 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역시, 얼굴도 좀 바꿔야겠어"


거울너머로 비추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레오나는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


-7-


"언니 미쳤어? 갑자기 성형이라니, 그것도 발키리 언니처럼 바꿔달라고?"


"맞아, 문제될거 있어?"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사령관이....."


"사령관은 오히려 좋아할걸?"


오히려 그래줬으면 좋겠다는 듯 레오나는 웃고 있었다.


"아냐, 언니....난 도저히 못할거같아. 미안해"


".....닥터, 다 바꿔달란것도 아니잖아. 여기 반쪽만, 발키리 느낌으로 바꾸면 된다니까?"


"그게 더 이상하잖아. 언니, 전에 내가 했던 말은 도움이 되는 차원에서 시도해보자는거였지. 이런 뜻으로 말한건 아니었어"


"하.....내가 괜찮다니까, 별꼴이네 진짜"


원하는대로 요구를 들어주질않자 레오나는 짜증을 내며 그녀의 연구실을 나왔다.


처음엔 옷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일탈은 어느새 말투, 성격, 걸음걸이까지 발키리와 닮아가고 있었고, 

이를 알고 있던 사령관은 그녀에게 이 관계를 그만두자 말하고 싶었지만 몸은 발키리의 흉네를 내고 있는

그녀를 원하는걸 잘 알고있었기에 그러질 못하고 있었다.


"사령관, 닥터한테 명령 좀 내려줄수 없어?"


"무슨 일인데"


"발키리처럼 성형해달라니깐 거절하잖아"


충격이었다. 그 정도까지 레오나가 빠져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사령관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녀는

발키리의 역할에 심각하게 빠져있던 것이다.


"레오나, 그만하자"


"사령관, 무슨 소릴 하는거야? 사령관이 그런 말하면 안되지. 그렇게 원하는 발키리가 여기 있잖아"


"넌 발키리가 아니잖아"


사령관의 말에 레오나는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래, 늘상 있는 일이었지.....자 사령관, 이거 보고 다시 생각해야지 응?"


유혹하듯 치마를 걷어올린 후 아무렇지도 않게 엉덩이를 흔들며 아양을 떠는 레오나에게선 더이상

이전의 기품따윈 찾아볼 수도 없었다.


"더러워, 너....진짜 아니다"


사령관은 역겨운 것을 본것처럼 표정을 찡그리며 자리를 피했다.


"하.....하하하하하.......남자는 믿으면 안된다더니......"


더 이상 그녀의 곁엔 사령관도, 동료도 남아있지않았다.


-완-


"내가 이 좋은걸 왜 모르고 있었을까?"


늦은 밤, 닥터의 연구실에 레오나가 나타났다. 


"언니,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봐. 이건 아니야"


"그러길래..좋게좋게 가자고 했잖아. 이 좋은걸 냅두고 있었네?"


한 손엔 오리진더스트, 한손엔 발키리의 유전자코드가 들어있는 유전자씨앗을 들고 레오나가 말했다.


"무슨 생각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오리진더스트는 마법의 약이 아냐"


"그거야, 보면 알겠지?"


의자에 묶인 닥터를 비웃으며 보란 듯이 유전자씨앗을 입에 넣은 후 레오나는 오리진더스트를 들이켰다.


"큭.....후우.....뭐가 이렇게 써?"


"아아.....미쳤어......어째서 이렇게 된거야, 언니"


안타까워하는 닥터와 다르게, 레오나는 곧바로 자신의 몸에 생기는 변화를 내부에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후웃.....그래...이게 발키리의 내장이구나.....느껴져.....흐윽....윽....."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느껴가며 레오나는 황홀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사령관이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단 생각도 잠시, 뒤이어 따라오는 격통은 버티기 힘들어보였다.


"끄으윽....응그윽.....아아악!!"


전신을 뒤틀며 생겨나는 세포들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기를 수차례, 더이상 사람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의

덩어리로 변해가며 또 다시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을때, 사람들이 알고 있던 레오나는 더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아아, 와줬구나. 발키리"


"대장, 여기가 어딘가요?"


"그런건 중요하지않잖니, 어서 사령관을 보러 가야지?"


"그렇군요. 저도 어서 뵈러가고싶네요"


발키리의 얼굴과 레오나의 얼굴이 하나에 붙은 기묘한 형태의 존재가 된 그녀는 마치 서로 다른 존재인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과연 그녀가 발키리를 다시 부활시킨 것인지 아니면 본인만의 환상인건지는 알 방법이 없었지만, 확실한건 그녀들은 만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 사실을 접한 사령관은 그녀를 격리시키기로 했고 가끔씩 상태를 살피러 격리실로 찾아갔다.


"사령관님, 왜 저희가 여기 있어야하는거죠?"


"사령관, 이제 셋이 함께 지낼수 있잖아. 왜 이러는거야?"


격리실 유리벽 너머로 애처롭게 말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사령관은 괴로워하며 오늘도 그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