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 시리즈
1.https://arca.live/b/lastorigin/19010717 (레오나의 벌)


 “한동안, 내가 널 통제할 거야.”

 “언제까지요?”

 “네가 널 오롯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

 “왜 그래야 하나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자는 복종 또한 할 수 없기 때문이야.”



1.

 창고는 어두컴컴했다. 입구 가까이의 얕은 불만 켜놓으면 마치 짐승이 사는 동굴처럼 느껴졌다.


 낡은 먼지의 냄새, 차가운 공기의 냄새, 녹슨 쇠의 냄새. 안드바리는 이 삭막한 장소의 부속품인 것처럼 창고 벽에 등을 기대다시피 두고서 멍하니 이번에 들어오는 물자들을 바라봤다. 거대한 드론들이 물자를 컨테이너 채로 들고서 창고로 옮기는 모습은 마치 거인이 몸을 뒤척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들고 있는 태블릿을 두드려 이번에 새로 배속된 물품들을 기록했다. 눈은 침침하고 입은 바싹 말랐다. 거대한 창고에 바이오로이드라곤 안드바리 한명 뿐이었다.


 멍하니 수송 장면을 보다가 안드바리는 손톱을 입에 갖다 댔다. 열 개의 손가락 모두 끝이 너덜너덜했다. 그녀는 핥듯이 손톱 끝을 입술에 붙이고 잘근잘근 씹어댔다. 흐린 피맛이 혀를 적셨다.


 안드바리는 배가 너무 고프면 손톱을 뜯곤 했다. 그건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보급담당으로 임명되면서 생긴 하나의 습관이었다.


 어제 저녁에 사과 한 알을 먹은 후로 여즉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위액이 위를 쿡쿡 찌르는 감각을 참을 수 없어서 안드바리는 무릎을 꿇었다. 


 배가 고팠다. 배가 아팠다. 옆으로 손을 더듬어 커다란 2L 생수병이 잡히자 부둥켜안듯이 몸 쪽으로 당기고 뚜껑을 열어 입에 쑤셔 박았다. 미지근한 물이 목을 타고 위액을 묽혔다. 안드바리는 토하기 직전까지 물을 뱃속에 힘껏 집어넣었다. 거짓된 포만감이라도 없으면 이겨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구토감이 몰려올 만큼 배가 불러오자 이제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몸 상태는 최악이며 물을 마시는 것 정도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나 당장 발할라 보급 담당의 살인적인 업무량이 안드바리가 쉬이 고통에 몸부림치게 두지 않았다.


 안드바리는 새로 들어온 컨테이너를 열었다. 안에 있는 비품들이 손상은 없는지, 주문한 수량과 맞아 떨어지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예비 무기와 탄알, 탄창, 의복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다시 정리하기 시작하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수분은 부족하지 않았으나 뇌도 근육도 열량을 요구했다.


 하지만 저녁시간까진 아직 4시간은 남았다. 안드바리의 걸음이 두 번째 컨테이너를 향했다. 버튼을 눌러 컨테이너를 열고 안에 든 박스를 들고 옮기려다 몸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


 별로 땅에 부딪힌 무릎이나 턱이 아프진 않았지만 운이 나빴는지 경첩부가 돌부리라도 박은 건지 망가져 박스가 열렸다.


 “아…….”


 안드바리의 입에서 망연자실한 신음이 나왔다. 아가리를 벌린 박스에서 흘러나온 건 음식들이었다.


 초콜릿과 빵, 전투식량과 캔디, 파스타 통조림 같은 것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운 나쁘게 터진 봉투에서는 햄버거가 나왔다.


 안드바리는 홀린 것처럼 햄버거를 향해 걸어갔다. 입에서 침이 질질 새어나왔지만 눈치 챌 여유가 없었다. 그 외의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걷는 중에 통조림 캔을 밟고 넘어졌다. 안드바리는 네 발로 기어서 햄버거까지 갔다.


 투둑 입에서 침이 떨어졌다. 안드바리는 풀린 눈으로 햄버거 봉지를 들었다. 따뜻하긴 커녕 손보다도 차가웠지만 그런 건 안중에 있지도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이 천천히 햄버거를 입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규칙을 정하자.]


 그 때 안드바리의 뒤에서 레오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드바리는 벼락이 꽂히기라도 한 듯 몸을 부르르 떨곤 황급히 햄버거를 가랑이 사이에 숨겼다. 굶주림보다도 큰 공포가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창고엔 차가운 바람이 불었고, 그게 등을 훑자 땀이 식으며 한기가 몰아쳤다. 안드바리는 고장난 태엽처럼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입구엔 내리쬐는 햇빛뿐이었고 사람의 그림자도, 흔적도 없었다. 그래도 안드바리는 혹여나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드론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겁에 질린 눈으로 창고 전체와 입구를 계속해서 살펴봤지만 의심 갈 만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안드바리는 시선을 느꼈다. 창고의 서늘한 공기가 아닌 뜨뜻미지근한 무언가가 안드바리의 피부를 핥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속박감을 느꼈다. 갑갑하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안드바리는 자기 목에 손을 가져다 더듬었다. 이따금 무언가 목을 조이는 기분을 느끼곤 했고 그때마다 안드바리는 목을 만져보지만 그럴 때마다 늘 손가락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결국 안드바리는 속에 숨겨둔 햄버거를 꺼냈다. 고개는 햄버거를 향하다 창고 어느 곳의 허공을 바라보다가를 반복하더니 안드바리는 그것을 창고 구석의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있는 힘껏 달리기를 했을 때와 같은 피로감이 들이닥쳤다.


 안드바리는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손톱을 뜯었다. 옅게 묻은 햄버거의 냄새에 이가 강박스레 점점 손톱 안쪽을 향해 들어갔다.


 “아야!”


 안드바리가 비명을 질렀다. 손톱 살점이 뜯어져나갔다. 깜짝 놀라 손가락을 떼자 빨갛게 피부가 드러나 있었다.


 심박을 따라가는 통증을 무시하고 안드바리는 입에 들어간 손톱과 피부껍데기를 잘근잘근 씹었다. 배가 다시 고파왔다. 문득 레오나와의 첫만남이 주마등처럼 스쳐왔다.


 첫 만남. 그 때 레오나는 뭐라고 말했었나.


 [앞으로 내가 주는 것 외엔 그 어떤 것도 먹으면 안 돼.]


 그래. 레오나는 그런 말도 했었다. 레오나는 통제와 복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안드바리의 목을 어루만졌었다. 그러나 레오나가 하는 이야기는 안드바리에게는 너무 어려웠고, 그것이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첫날 안드바리는 부식으로 내려온 빵을 먹었다. 레오나는 아침도, 점심도 주지 않았으며 휴게실에 놓여 있는 빵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텅 빈 위의 속쓰림과 입안에 맴도는 침은 너무 괴로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저녁에 찾아온 레오나는 담담히 안드바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방에 가뒀다. 그리고 이틀간 열어주지 않았다. 업무의 공백에 대한 이야기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참회도 그녀는 전혀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안드바리는 닫힌 문 너머로 울며 악을 쓰다가 이내 탈진해버렸고 화장실의 수돗물을 마셔가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달이 두 번 지고 나서야 레오나는 방문을 열어줬다. 아침 해를 등지고 나타난 레오나는 안드바리를 눕히고 천천히 따뜻한 뱅쇼를 입에 넣어주고 빵을 뜯어주었다.


 그리고 다음에 안드바리가 LRL의 거듭된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초콜릿을 한 입 나눠 먹었을 때도 레오나는 안드바리에게 벌을 내렸다. 다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울며 비는 안드바리의 손을 무심히 붙잡고 방에 가두고 방치했다.


 위가 뜯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배 안에 작은 바늘들이 있어서 위벽이 움직일 때마다 난도질 당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 너무나 배가 고파서 안드바리는 자기 손톱과 입술을 뜯어 먹었다.


 사흘째 되던 날 레오나는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안드바리를 안아 일으키고 재료들을 꼼꼼히 다져 끓인 스튜를 떠먹여줬다. 문을 긁느라 피투성이가 된 손에는 직접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줬다.


 그때쯤부터 안드바리는 종종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조차 레오나의 시선을 느끼게 됐다.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던 레오나의 그 서늘한 감촉을 느끼곤 했다. 안드바리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레오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레오나는 모든 것을 통제했다. 안드바리의 수면 시간도, 식사도, 업무와 휴식까지 모든 것을 그녀의 손아귀에 쥐었다. 안드바리는 레오나의 허락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새 컨테이너를 가져오는 드론의 로터 소리가 안드바리를 상념에서 끄집어냈다. 배가 꼬르륵 소리를 냈다.


 “배고파…….”


 스멀스멀 피가 배어 나오는 손가락을 눌러 지혈하면서 안드바리는 울었다.

 

 

 

 

 2. 

 그믐은 별빛마저 삼켰다. 안드바리는 불 꺼진 방에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원래라면 자야 할 시간이었지만 굶주림이 쉽사리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의 정당성을 피로하듯이 레오나는 안드바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벌을 내리지 않았다. 너무 배가 고파 잠이 들지 못하는 경우라든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침대에 누워 있지 않고 밖에 나간다든가 불을 켜고 책을 읽으려는 건 용서치 않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한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평소라면 어떻게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보려 했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짐을 옮기다 쏟아진 음식들, 오늘 점심 지나친 다른 사람들의 식사, 그 때 쥐었던 햄버거의 향까지 그 모든 감각들이 안드바리의 뇌를 유린했다.


 음식 생각에 위가 다시 쿡쿡 쑤셔왔다. 그녀의 오늘 식사는 밤 두 톨과 참치캔 하나가 다였다. 안드바리는 며칠 전부터 머리맡에 두기 시작한 제산제를 손을 더듬어가며 찾았다.


 “뭐야…….”


 찾는 건 빨랐지만 6개들이 약 포장에 남은 내용물은 하나도 없었다. 뒤늦게 안드바리는 어제 마지막 제산제를 먹으면서 새로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단 걸 기억해냈다. 의미는 없는 일이었다.


 물을 좀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허기가 위벽을 집요하게 긁어댔다. 안드바리는 누운 채로 고개만 살짝 들어 조심스럽게 커튼 너머 복도 쪽으로 난 창문을 쳐다봤다. 어둠이 모든 걸 가리고 있었다.


 안드바리는 잠깐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보일지 안 보일지 고민해보다가 소리를 죽이고 이불을 걷었다. 누가 듣기라도 할 것처럼 침대에서 내려 살금살금 까치발로 책상에 다가갔다.


 다시 한 번 창문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복도에 인기척은 없었다. 안드바리의 손이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서 서랍장을 열었다.


 왕사탕.


 봉지에 포장된 주먹 만한 왕사탕이 서랍 모서리에 있었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고요한 방에 파문을 일으켰다. 안드바리는 혹여 상처라도 날까 조심히 사탕을 들었다.


 며칠 전에 일하고 있던 안드바리에게 사령관이 몰래 쥐어준 이 사탕을 안드바리는 여즉 먹지 못하고 있었다. 먹으라고 준 것이었지만 너무 소중해서 절대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다짐도 잊게 만들 만큼 이 공복은 지난한 적이었다.


 안드바리의 가냘픈 손가락이 사탕 봉지의 끝부분을 만지작거리다 코에 갖다 댔다. 그러한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뇌는 사탕의 달콤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침이 계속해서 입을 적셨다. 배는 당장 사탕을 먹으라고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이 사탕을 까먹는다면 아주 잠시간이겠지만 그녀는 허기를 잊을 수 있을 것이었다. 허나 그것은 동시에 안드바리에게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짐을 의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사령관이 준 하나밖에 없는 선물이 아닌가.


 안드바리는 고생한다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사령관의 손길을 떠올렸다. 눈 녹은 봄날 같던 미소를 떠올렸다. 그 때 안드바리는 무심코 그 품에 안겨 울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결심을 굳히고 안드바리는 사탕을 다시 서랍 구석에 넣어 놨다. 서랍을 닫자 채울 방법이 없는 공허함이 엄습했다. 어떻게든 잊어보려 침대에 몸을 파묻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도 무기력함과 공복감은 떨쳐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욕구는 어둠을 도화지 삼아 폭발적으로 자신의 몸집을 불렸다.


 누군가 탐욕은 도화선과 같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 말대로였다. 음식에 대한 생각은 끊임없이 떠올랐고 따뜻한 스테이크나 절인 청어, 팬케이크 같은 기억들이 구체화돼 향도, 맛도, 모습도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에, 위액으로 가득찬 위는 비참함을 향신료처럼 뿌렸다. 동력원이 망가진 정신이 점점 어지러워졌다. 메스꺼움과 무기력함을 동시에 느끼며 안드바리는 마치 자기가 흔들다리에 누운 듯한 착각을 했다. 흔들림이 심해지다 이윽고 천장과 바닥이 한 차례 뒤집혔다가 돌아온 순간 안드바리의 안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안드바리가 다시 눈을 떴다. 이불을 걷고, 문으로 다가갔다. 눈동자가 창문 너머의 어둠을 응시했다. 오늘은 그믐이었다.


 도어락을 여는 소리는 무서울 만큼 날카로워서 걱정스러웠지만 밖으로 나가자 허탈할 만큼 정적이었다.


 모든 복도엔 불이 꺼져 있었고, 같은 라인 제일 끝에 있는 레오나의 방도 마찬가지였다. 안드바리는 반대쪽으로 소리 없이 달려나가 아래층의 식량고로 갔다.


 카드를 인증하고 문을 열자 쌓아둔 음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드바리는 일단 보이는 대로 품에 집어넣었다. 바구니나 주머니 같은 걸 가져와야 했다는 후회도 잠시 들었지만 잠옷을 벗어 그 안에 담자 그럭저럭 쓸 만했다.


 다시 식량고의 문을 잠그고 원래 층으로 올라왔을 때도, 복도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레오나의 방에 불이 꺼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드바리는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허겁지겁 침대 위에 음식들을 풀어놓고 다시 잠옷을 입은 다음 자기 몸과 함께 이불로 덮어버렸다. 어떤 걸 가져왔는지 확인하는 건 그 다음이었다.


 안드바리는 이불 안을 더듬어 아무 거나 집히는 걸 하나 꺼내들었다. 바나나가 하나 나왔다. 창문 쪽을 한 번 쳐다보고 허둥지둥 껍질을 까서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달콤함이 혀와 입에 짜릿한 자극을 선사했다. 혈관으로 당이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바나나 껍질을 이불 안에 처박고 다음 음식을 꺼냈다. 이번엔 즉석 취식형 옥수수 스프가 나왔다. 안드바리는 버튼을 눌러 봉지를 데우고 이불 속에서 포장된 닭다리를 꺼내 봉지 안에 집어넣었다. 조금 지나면 스프도 닭다리도 데워질 것이다.


 안드바리는 목이 가려워 벅벅 긁었다. 조이는 듯한 갑갑함에 닳은 손톱으로 목을 벅벅 긁어댔다. 지금은 그보단 음식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열기를 뿜는 봉지를 머리맡에 밀어두고 또다시 꺼내든 건 햄치즈 샌드위치였다. 포장을 뜯자마자 절반을 한입에 구겨 넣었다. 꾸덕한 치즈향과 시큼한 소스, 햄의 짭짤함이 입에서 춤췄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킨 다음 두 번째 입에 모조리 털어넣고 부서진 빵부스러기까지 주워 먹었다. 


 그리고 다음은, 다음은 호두파이다.


 호두파이. 안드바리는 호두파이를 정말로 좋아했다. 위에 뿌린 메이플 시럽의 향, 견과류의 단아한 냄새, 단단한 틀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달콤함. 허겁지겁 씹다가 퍽퍽함이 목을 틀어막자 안드바리는 가져왔던 사과주스의 병을 따고 목구멍에 쑤셔 박았다. 한 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내쉬는 공기에 시큼한 사과향이 얼얼했다.


 행복했다. 그 외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데워둔 스프와 닭다리의 봉지를 뜯고 마시고, 먹고 뼈를 빨다가 미트볼을 꺼내 입에 묻혀가면서 들이마셨다. 중간에 꽉 찬 배가 조여 헛구역질을 하다가 꾹 눌러 참았다. 그녀는 아직도 배고팠기 때문에.


 먹고 또 먹었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이불 안을 더듬어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에 안드바리는 자기가 남긴 잔해들이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걸 보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안드바리의 눈앞에 현실이 닥쳐왔다. 이불에 묻은 흔적들도, 방에 밴 냄새도, 당장 처리해야 할 쓰레기들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대책을 생각하려고 한 순간이었다.


 딸깍, 불이 켜졌다. 누군가가 불을 켰다.


 안드바리는 목이 꽉 죄이는 느낌을 받았다. 공포가 뒤를 돌아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방의 불은 안에서만 켤 수 있었으므로 그 자는 안드바리가 음식을 싸들고 방에 들어온 시점에 이미 방안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침대에서 나오렴, 안드바리.”


 아아.


 레오나였다. 레오나가 거기 있었다. 레오나가 문 바로 옆에 서있었다. 안드바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침대에서 나와 레오나의 앞에 섰다.


 안드바리의 앞에 팔짱 끼고 있는 이 하얀 폭군은 자신의 군복을 완벽하게 차려 입은 상태였다. 언제고 어느 때고 변하지 않았다. 그 빳빳하고 한 점의 오물조차 묻지 않은 자태를 보고 있으면 자신의 누덕누덕 음식물이 묻은 잠옷은 더욱 추레하게 느껴졌다.


 레오나는 자신의 앞에 기립하고 선 안드바리를 보고도 잠시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눈빛이 점점 더 차가워져 가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레오나의 첫말은 그것이었다.


 “나는 네가 영리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눈이 잘못된 모양이야. 아니면 너무 영리해서니? 이렇게 날 기만하려고 한 건.”


 “기, 기만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안드바리가 말을 더듬으며 변명했다. 


 “아니면?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명령불복종도 중죄, 군용품 밀반출도 중죄, 당연히 장부조작도 하려고 했을 테니 그것도 중죄. 나는 분명 명령을 내렸는데 계속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나에 대한 모욕 외에 다른 해석이 있는 걸까?”


 “저는…….”


 무언가 말을 해보려 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안드바리가 우물쭈물하는 틈을 비집고 레오나가 말했다.


 “네가 뭘 잘못했는지는 아니?”


 “먹지 말라고 했는데…먹은 거랑…군용품을……몰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레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결과지. 네 잘못에 따른 결과. 네가 잘못한 건 너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거야. 그게 중요해.”


 그리고 천천히 안드바리에게 다가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이거든. 육체에 복종하고,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은 나에게 복종하지 않아. 그러지 못해. 가장 중요하고 고된 순간에 처했을 때 몸의 고통에 굴복해서 체계를 부수고 자매단의 발목을 붙잡아.”


 레오나의 손가락이 안드바리의 야윈 뺨을 어루만졌다. 창백하고 차가운 손은 뺨의 핏기를 앗아갔다.


 “안드바리, 잘 생각해보렴. 네가 부식을 몰래 먹던 순간도, 갇힌 방에서 울던 순간도, 오늘 밤 음식을 훔쳐와 먹던 순간도, 모두 넌 네 육체에 굴복한 거야. 그래선 안 돼. 네가 우위에 있어야지.


 말하면서도 레오나는 손수건을 꺼내 음식 찌꺼기로 더러워진 안드바리의 얼굴을 꼼꼼히 닦았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겁에 질린 안드바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안드바리는 낯선 미소를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너는 영리한 아이야. 하려고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그렇지? 너도 보여주고 싶지? 네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어깨를 움켜진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안드바리는 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네……. 제가…어떻게 하면 될까요?”


 “토하렴.”


 단호한 목소리가 귀에 속삭였다. 두려움에 뒤로 도망가려는 안드바리의 몸을 레오나의 손이 단단히 옭아매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다.


 “네……?”


 “모조리 토해내. 네가 했던 그 더럽고 비겁한 행위들을 내 눈앞에서 당장 되돌리는 거야. 네 스스로, 네 의지로 말이야. 그래야 넌 너 자신을 통제한다고 말할 수 있어.”


 난방이 되는 방임에도 안드바리는 극지방에 맨몸으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레오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은 얼음을 깎은 것 같이 투명하고 시려웠다. 아아, 그랬다. 레오나는 미소 짓던 그 순간마저도 이런 무감각하고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안드바리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몸을 벌벌 떨어가면서 안드바리는 화장실로 이동하려고 했다.


 “어딜 가니?”


 “화장실에……토하려면요…….”


 “나는 내 눈앞에서라고 했어.”


 레오나가 자신의 발치를 가리켰다. 깨끗하게 치워진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하, 하지만…….”


 레오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아까와 똑같은 금속 같은 눈동자로 내다볼 뿐이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이 자는 진심이다. 진심으로 안드바리가 자신의 바로 앞에서 벌을 받기를 요구하고 있다.


 “히끅.”


 겁에 질려 흉강이 떨렸다. 제멋대로 딸꾹질이 나왔다. 안드바리는 레오나의 앞에 주저앉아 몇 번을 머뭇거리다, 결국 부드러운 목젖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잘 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목젖 부근을 압박하며 배에 힘을 주자 위를 쥐어짜는 감각과 구역질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입으로 음식물이 범람했다. 안드바리가 쑤셔넣다시피 했던 수많은 음식물들이 위액, 침과 섞여 역순으로 바닥에 널부러졌다. 시큼한 냄새가 퍼졌음에도 레오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관망했다.


 안드바리는 계속해서 토해냈다. 배도 목도 입안도 모두 다쳐 불타는 거 같았다. 호두 파편, 덜 씹힌 햄 조각, 곤죽이 되어버린 바나나까지 모조리 쏟아져 나오고 이윽고 소화가 되다 만 밤 조각들까지 나오자 그 후론 피 섞인 위액들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만.”


 그쯤에서 레오나의 제지가 입에서 뚝뚝 투명한 침과 위액을 흘리며 탈진해 고꾸라져있는 안드바리를 향했다. 그녀는 아까처럼 손수건을 꺼내 다가와 안드바리의 더럽혀진 입과,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과, 피와 침에 젖은 손가락을 닦았다.


 “좋아. 굉장히 나아졌어.”


 처음으로 보여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다.


 “하지만 부족해.”


 그리고 지독한 농담이기도 했다. 레오나는 안드바리를 일으키고 머릿속을 꿰뚫어보는 것처럼 눈동자를 응시했다.


 “너는 아직도 내게 숨기는 게 있어. 그렇지?”


 안드바리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사령관이 준 사탕이 떠올랐다. 말해야 할까? 숨겨야 할까?


 아니, 레오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감히 그녀를 속일 순 없을 것이다.


 “가져와.”


 그 말에 꼭두각시 인형처럼 안드바리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도무지 책상을 열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일말의 무언가가 그것을 강력하게 제지했기 때문이다.


 안드바리는 레오나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 안에 든 게 뭐라고 말해도 레오나는 그걸 짓밟아버릴 것이었다. 설령 그것이 안드바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든 간에.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렴.”


 그러나 이 작은 저항심은 레오나가 명령 앞엔 무력했다. 두려움이 머리에 총을 겨누자 결국 안드바리는 서랍을 열고 사탕을 꺼내왔다.


 안드바리의 작은 손에 놓인 하얀 사탕을 보고 레오나는 질문을 던졌다.


 “이게 뭐니?”


 “……사탕입니다.”


 긴 침묵 끝에 안드바리가 대답했으나 레오나는 즉각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저 이름일 뿐이야. 다시.”


 레오나의 지적에 안드바리는 고민을 시작했다. 어떤 대답이 레오나를 만족시켜줄지, 이 사탕을 지켜줄지 알 수 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간식입니다.”


 “네가 그저 한명의 어린이일 때만 유의미한 거지. 다시.”


 다른 의견을 제시했으나 레오나는 또 한번 순식간에 그것의 무의미함을 넌지시 지적했다. 또다른 하나의 가치가 사탕에게서 박탈되었다.


 “…….”


 안드바리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르카호의 소중한 식량입니다.”


 “그건 단순히 보편적 지위에 불과해. 다시.”


 이번에도 실패했다.


 “사령관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네 주관적인 가치에 불과한 거잖아. 다시.”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도 이어진 몇 번의 대답에도 레오나는 모두 반박하며 안드바리가 제창한 모든 가치를 벗겨버렸다.


 “…….”


 “…….”


 안드바리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생각하고 생각했으나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 사탕은 그저 하나의 덩어리로 격하되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레오나가 요구하는 부하에게 이 사탕이 가질 의미는 아무 것도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안드바리는 힘겹게, 레오나가 원했을 대답을 말했다.


 “……아무 것도……아닙니다.”


 “그래. 아무 것도 아닌가보구나.”


 반박하지 않았다는 건 그게 정답이란 뜻일 것이다. 레오나는 이번에야말로 다정한 미소를 짓고 안드바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건 쓰레기나 다름없어. 버려버리렴.”


 “……네…….”


 안드바리는 순순히 대답하고 사탕을 쥐고 쓰레기통으로 갔다. 사탕은 안드바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으므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손이 잘 펴지지 않았다. 눈이 뿌예졌다. 안드바리는 몸을 통제해 억지로 손을 펴 사탕을 쓰레기통에 떨어뜨렸다. 이제 안드바리에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문득 목이 갑갑해졌다. 묘하게 안드바리를 괴롭히던 그 갑갑함의 원인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목줄이었다.


 “수고했어, 안드바리. 발할라의 자매가 된 걸 환영한단다.”


 발할라의 주인에게로 이어지는, 새하얗고 질긴 목줄이었다.

-fin-


 굳세어라 안드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