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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

1화 

2화

3화

4화

5화


버튼의 무게, 생명의 무게 :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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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잊혀져 마땅한 오랜 날의 기억.

하지만 잊혀질 리 없는 강렬한 기억.

나, 메이의 기억이다.



"...네?"


나는 듣는 귀를 의심했다. 

난 자조적이게도 이것이 정말 인간 같은 표현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못 들었나? 메이. 자네의 둠 브링어 부대가 적의 원군에 의해 포위당했다. 상당한 수라고 하지."


"...그 부분은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바이오로이드라면 방금 전 명령에서 말대답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이행했으리라.

나는 메이, 판단 할 수 있는 개체.


"이대로라면 우리의 둠 브링어 개체들이 적으로 돌아 서거나... 무용지물이 돼 버릴 거야"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 지역 일대를 너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사용하여 전소하라는 상부의 명령이다"


"그 부분도 확실히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의문을 품는 것은..."


"상부의 명령이다, 메이"


눈 앞의 인간은 말을 반복한다.

동시에 내 의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기도 했다. 알고 있다. 이들 인간에게 있어서 바이오로이드의 목숨 따위보다, 전세를 뒤집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 본다는 것 정도는.

지휘관으로서 설계되어 탄생한 나, 멸망의 메이 개체이기에 이런 상황도 예견은 하고 있었다. 애써, 그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각오를 다지고, 말했다.


"싫습니다"


"..."


눈 앞의 인간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메이라는 개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한 번 정한 일을 번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명석하고 이성적이며, 감정에 치우쳐지지 않는 합리적인 개체이기에, 역으로 인간들이 우리들의 판단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은 어떨까, 나도 이성적으로 이것이 말도 안되는 판단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감정적인 판단이다. 부하들을 내 손으로 해하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당연한 감정에서 비롯된 내 대답이다.


"그 판단의 근거를 들려주게"

‘능구렁이 같은 인간'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미 이 판단이 말도 안되며, 내 안의 감정이란 모순에 의해 생겨난 오류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 되묻는 것이다.


내 대답이 논리적일 수 없다는 걸 아는 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표정에선 당혹감 비슷한 감정도 묻어난다.

그 이유는 '멸망의 메이'라는 개체가 이런 안일한 판단을 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리라.


내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자, 그는 나를 일갈하며 재촉했다.

"메이, 일각을 다투는 긴급 사안이다. 놈들은 언제까지나 우리 판단을 기다려주지 않아"


어이가 없다. 지금 그 부대원들을 전부 죽이라는 사람 입에서 도저히 나올 말이 아니다.


머릿속에 부대원들의 얼굴이 가로질러 간다. 남아있는 이성이 눈물을 억제했지만, 내 마음은 비명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명예롭게 싸우다 명예롭게 전사하였다.

슬픔 이상으로 그들을 기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견딜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이길 수 없는 대군에 맞서 싸우다, 올 리도 없는 증원을 기다리다, 자신들의 상관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 어디에 명예 따위가 존재한단 말인가. 내가 아는 그들은 그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 좋은 바이오로이드들이 아니었다.


"핵탄두로 지역을 궤멸하게 되면 땅은 씻지 못 할 상처를 안게 됩니다. 상대 병력에 손실을 안겨주는 것 이상으로, 장기적인 극심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사료됩니다. 그러한 극약처방보다는, 장기전을 각오하더라도 다른 부대의 증원을 요청하여 부대원들의 구출을 우선시 하는 편이..."


"증원?"


그가 코웃음을 쳤다.


"메이, 상부가 그 정도의 계산도 하지 않은 채로...그래 네 표현을 빌리자면, 극약처방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 텐데"


그리고 알기 쉬운 조소가 담긴다.


"숨어있던 상대 병력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천세 일시의 기회다. 놈들이 어떤 카드를 숨기고 있을지 알 길이 없어. 지금 전세를 우리 쪽으로 가져오는 편이 앞으로 전략을 세울 방도가 훨씬 많아지겠지"


입가에 더러운 미소를 머금은 그는 말을 이었다.


"연합전쟁의 승기와 일개 바이오로이드들의 목숨... 이 정도만 말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지"


'일개...바이오로이드...!'

지금 이 시간에도, 대원들은 1분 1초를 벌기 위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으리라.

꽉 쥐다 못해 손톱이 깊이 파고 든 손에서 피가 배여 나온다. 당장이라도 눈 앞의 놈을 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바뀌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분노의 감정이 상대에게 드러나지 않게, 억누르고 또 억누른다.


"이번 사안을 해결하면 너의 승진도 예정되어 있어. 지금 이상으로 전장에 투입되는 일도 줄어들 테지. 아끼는 부대원이라면, 같은 놈들을 또 붙여줄 수도 있어"


같은 놈들... 이제 헛웃음조차 나오질 않는다. 인간 놈들이 우리에게 향하는 가치판단이 어떤지 정돈 진작에 알고 있던 사실이다.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우리 기업이 소유하는 멸망의 메이는 너 말고도 있어. 단지 투입된 것이 너의 부대였기에, 너에게 말하는 것뿐이다"


스스로의 무력함을 느낀다. 신경이라도 써줬다는 건가. 구역질이 나온다.

나는 본인이 하는 행동이 그저 도망치는 행위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대답은 변함 없습니다. 전 누르지 않겠습니다"


대원들을 죽이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상냥함? 자비? 내가 한 선택과 가장 거리가 멀다.

나는 그저, 내 손으로 대원들을 죽이는 게 무섭고 싫었기에, 그 감정에 몸을 맡겨 다른 메이에게 선택을 떠넘겼을 뿐이다.


"상냥하군, 메이. 너의 그 점이 대원들과 거리를 좁혀 전반적인 전투 능률이 올랐던 점은 높이 평가 했었는데, 이런 결말을 맞이 할 줄이야"


내 독백을 비꼬듯 그렇게 말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건 전혀 내게 중요치 않았다. 불량개체로써 폐기 처분 된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형태가 어찌 됐던 대원들의 죽음을 방폐한 내게 어울리는 최후가 아닐까,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대기 중이던 바이오로이드가 내 양손을 구속하였다.

저항해봤자 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나는 얌전히 연행 되었다.


"흥, 블랙 리버 놈들의 결함품이"


방을 나가기 적전, 그런 비아냥이 등 뒤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이후 나는, 처분이 결정될 때까지 바이오로이드를 가두기 위한 특제 독방에서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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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 처분이 결정된 듯 문이 열렸다.


"기뻐해라, 바이오로이드. 너는 고급 개체로써 인류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눈앞의 인간은 뭐라 말하는 거지? 나는 어떤 연구에 종사 할 수 있게 만들어진 개체가 아니다.

저렇게 큰 소리를 칠 정도의 프로젝트에서 내가 할 수 있을만한 일은...

그렇게 생각하고 깨닫는다. 실험체인 건가.


정말 잘 고안해낸 답이라 생각한다.

여태껏 전례는 없었지만, 메이라는 개체는 어떤 상황이라도 개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적 불문율이 있다.

핵무기라는 위험한 무기를 다루기에, 엄중히 지켜져야 하는 사항인 모양이다.

명령 불이행이 가능한 개체이기에, 인간의 밤 시중을 들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또, 기억 소거를 진행해봐야, 동일한 개체는 결국 장기적으로 같은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 이미 존재하기에 의미가 없었다.

즉, 이렇게 지휘관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않게 된 멸망의 메이는 처리 곤란이라는 이야기다.

보통이라면 돌발행동 등의 위험성을 염두 하여 폐기처분일 텐데,


기업이라는 단체에 속한 족속들은, 나같이 비싼 개체가 의미 없이 소모되길 바라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좋던 나쁘던 지휘관 클래스의 고급 개체이기에, 일반적으론 연구의 실험체로 사용되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계산이 맞아떨어지겠지.


나는 얄궂게도 나의 대원들처럼, 가격표가 매겨진 채 처분이 결정 되었다.


정말 어울리는 결말이라며 자조했다.


명령을 받은 바이오로이드들이 나를 구속하고, 이송 준비를 한다.

나는 조금의 저항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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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전 된 로봇처럼 의지를 잃은 채로 가만히 이송 당하였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대원들의 얼굴이 차츰 떠오르며, 이윽고 나를 비난한다.

왜 구해주지 않았냐고.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됐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르면, 나는 차오르는 눈물에 엄습 당해 생각을 강제로 중지하기에 이른다.

망가져있구나, 나. 그렇게 자각한다.


창 밖을 여유로이 바라 볼 기분도 아니라서, 나는 그저 앞에서 묵묵히 운전을 하는 바이오로이드를 보았다.

인간은 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제작 된 이후로 줄곧 나에게 명령을 내리며, 엮일 일이 많던 인간조차 마지막까지 얼굴을 비추는 일은 없었다.


예삿일이었다.


"내리십시오"


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여 내린다. 주변은 고급 진 차량들로 잔뜩 메워져 있었다. 

인류를 위한 프로젝트라고 했던가.

전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능한 사람들은 전부 이곳에 모여있겠지.


"..."


한 순간 나를 이송 한 바이오로이드에게서 시선을 느껴서 돌아보았지만, 내가 바라보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정면을 바라보고 나를 안내했다.




"예상보다 빨랐군"


"..."


먼저 정장을 입은 책임자 앞으로 안내된 나는, 그의 품평하는 듯한 시선을 받고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걱정하지말게. 편하게 지내주기만 하면 된다네"


내 상식선에선 말도 안되는 망언을 내뱉었다. 실험체로 끌려온 나보고 편하게 지내라고?


하지만 이윽고 깊이 생각하는 것을 관뒀다. 과정이 어떻든, 결말은 쉽게 상상이 갔기 때문이다.


그의 명령을 받은 바이오로이드가 다시 나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난 그저 그에 이끌려 갈 뿐이었다.




도착한 곳에 대한 첫 감상은, 조금 좁은 방. 안쪽에 문이 있는 걸 보면 화장실도 별개로 존재하고, 침대도 있는 여러모로 나에게 과분 할 정도의 방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부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일거수일투족이 보여지는 정도일까. 정면도 철창으로 뻥 뚫려있다.


역시 철창이 보이니까 내부의 인테리어가 무색 할 정도로 감옥처럼 보인다. 딱히 불평 할 생각도 들지 않아서 나는 안에 얌전히 수감 되었다.


"오~ 뭐야 이런 데에 사람이라니, 별일이네"


침대에 걸터앉아 안 좋은 생각을 떨쳐내려 하는데 그런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방에서 정면에 위치한 곳이다. 다시 보니 그곳도 철창으로 막혀있었다.


"...누구시죠"


사실 궁금하지 않았지만, 놔두면 혼자 계속 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은 인상의 목소리였기에 적당히 말한다.

재미없는 상대라는 걸 이해해주면, 그 이후론 말 거는 일도 없으리라.


"여자구나, 너도 실험체로 여기에 온 거야?"


초면부터 반말투성이다. 예의범절도 배우지 않은 건가. 

물론 나는 바이오로이드이기에 그런 배려는 필요 없겠지만, 아직 상대에게는 그 사실이 전해지지 않았을 텐데.

나는 스스로도 의외였지만, 조금 발끈했다. 남자라면 인간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저 인간에게 화가나 있던 것을 아무 관계 없는, 나랑 같은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 이 남자에게 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초면인데 제가 누구 인줄 아시고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시죠?"


내가 말해놓고도 어이없는 말이다. 그래 봤자 같은 갇힌 입장에 뭐가 대단하다고 이리 잘난 체를 해댈까 싶었다. 그냥 화풀이다.


"아~, 업무 상이 아니면 존댓말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하하"


내 가시 돋친 말을 기분 좋은 웃음소리로 받아 넘기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할게, 미안해"


살짝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사과하는 포즈라도 취한 걸까. 철창 앞까지 나오면 모습이 보일 텐데, 뭐하는짓일까.


"실은 지금, 조금 몸 상태가 좋지 못해서 말이야. 방금 연구소에 다녀온 직후거든, 좀 회복될 때까지 꼬박 하루는 걸릴 거야. 걸을 수 있게 되면 그 때 확실히 사과할게"


"그러면서도 반말이네"


"어? 너도 말 놓기로 한 거야?"


뭐가 재미있는지 킥킥 웃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드는 남자다. 무엇보다 처음 상대하는 타입이라 당황스럽다.


"그쪽이 계속 말을 놓아대는데 혼자 높이기도 민망하니까"


"응, 괜찮아. 오히려 좋아, 아무튼 친해지자는 의미도 있었으니까"


친해져서 어쩌려는 거지? 이곳에 있으면 피차 조만간 실험쥐 신세다.

겨우 그 정도의 유대를 가진 상대와 친해져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부하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나는 어차피 인간이라면 들리지 않겠지, 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


내가 침묵을 지켜도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질린 건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렇게 한동안 혼자 슬픔을 달래고 있자니, 남자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나는 오삼일이라고 해"


"이상한 이름이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주의하며 그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말이 바로 나왔다.

어쩌면 내심 말을 걸어주길 바랐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사실 본명은 아니야"


그러고선 키득키득 웃었다. 짜증난다.


"본명은, 어렸을 때 버렸어. 아무도 날 본명으로 불러주지 않았거든"


하지만 어느새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릴 때는 도련님, 아드님이라고 불렸고, 지금은 아버지한테도 그렇지만 오삼일이라고만 불려"


"부잣집 아드님이야?"


"조금 다르긴 한데~ 사실 이 기업 총수 아들이야"


"뭐...뭐라고?"


별도의 인계 작업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 내가 이송된 곳이 다른 기업 건물은 아닐 것이다.


내가 고용되어있던 기업의 총수... 그렇다면 이 남자는...


"하고 싶은 말은 알아. 그런데 딱히 아들로서 대접을 받느냐면 그것도 아니니까, 지금 이런데에 있는 시점에서 뻔하지만"


또 살짝 웃었지만, 쓴웃음 같았다.

아버지에 대해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실례겠지. 다른 질문을 하자.


"오삼일은 뭐야? 촌스러운 이름인데 가명이야?"


"오~ 나한테 관심이 좀 생겼나 봐? 막 물어오네?"


얼굴에 피가 오른다. 의표를 찔린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화가 나서 인정하고 싶지 않다.

놀린다는 자각은 있는지 사과하면서 말했다.


"미안미안, 오삼일은 말이야, 내 식별번호야"


실험체로서 말이야, 담담하게 그렇게 흘렸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동정 할 필요는 없어, 본명은 내가 버리기도 했고..."


그리고, 라며 그는 말을 이었다.


"내가 참여 한 프로젝트에서, 나만 살아남았어. 그러니까 식별번호래 봐야, 이제는 이름이나 다름없어"


혼란 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그의 말에 사고가 잘 따라가지 못한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있자 그는


"너무 암울한 이야기만 해버렸나, 무리해서 밝은 이야기를 하는 거 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안한 듯 그렇게 말했다.


"...들렸어?"


"...하하"


내가 울고 있던 게 들렸나 보다.

도저히 인간한테 들릴만한 거리는 아니었는데... 내가 슬퍼 보여서 저런 말을 꺼낸 건가.


"슬퍼하는 사람한테 저런 우중충한 이야기는 역효과잖아"


"뜬금없이 위로 투로 긍정적인 말을 늘어놓는 것 보단 낫잖아~ 보험 사기꾼이나 다단계처럼 보여서 오히려 경계 당한다고"


묘하게 현실성 있는 궤변이지만 실제로 조금 기분은 나아졌다. 마음이란 게 참 얄궂다.

고독감이 조금 중화된다.


"그 말이 더 사기꾼 같아"


"그런가?"


"어디 아픈 거야?"


나도 모르게 조금 걱정 투가 돼버린다.


"걱정도 해주고, 역시 이웃이 좋네~"


"..."


"알았어, 알았어"


조금 웃음소리가 들린다.


끼익,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몸을 뒤척였나 보다.


"아픈 건 크지 않고, 움직이기 조금 힘들긴 해"


"연구소에 다녀와서...라고 했었나"


"응, 그런 셈이지"


그렇게 대답한 그는, 조금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이따가 내 모습을 보면 이해하겠지만, 내 몸에 좀 특이한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들을 조금 채취한 다음 연구에 쓰는 것 같아"


"채취...라고?"


잘 와 닿지 않는다. 살을 뜯어낸다는 의미인가.


"괜찮아~ 금방 회복하거든"


"그건 다행이긴 한데..."


그것보다, 라며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너 바이오로이드지?"


"...알고 있었어?"


나도 모르게 적개심을 들어내며 묻는다. 

처음의 무례한 태도도 바이오로이드란 걸 알아서였나, 라며 피해의식이 나를 메운다.


"말했잖아, 실험체들 중에 나만 살아남았다고. 수백 명 실험에 투입돼서, 나 하나만 성공했는데, 지금 와서 새로이 인간을 데려온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이놈들 생각은 통 알 수가 없어서 확신은 없었지만, 이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세히 들은 건 아니지만, 지금 프로젝트는 바이오로이드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야. 얼핏 들었거든. 최근 연구소에서 소위 말하는 양산형 모델들이 자주 보이기도 하고"


"이제 내가 바이오로이드인 걸 알았으니 어쩔 건데?"


설명을 듣고도, 싸우자는 듯한 말이 입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는 내 말에 기분이 상하지도 않은 듯,


"응? 어쩌긴 뭘 어째. 바이오로이드던, 사람이던, 이웃이 생겨서 좋은데?"


아무런 표리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적어도 그의 목소리에서 악의나 조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이한 인간이네. 바이오로이드따위 전부 도구 취급하는 게 보통인데"


"전에도 그런 말 들은 적 있는데. 그립 구만~"


"진짜, 별난 인간"


차갑게 내뱉은 내용과는 달리, 아까보다 말에 친근감이 담겨있었다. 스스로 놀랐다.

그렇게까지 말하고, 그는 조금 피곤하다며 눈을 붙이겠다고 하였다. 난 적당히 퉁명스럽게 대답 한 다음 방 안을 둘러보았다.


마치 업무 차 묵은 적이 있는 비즈니스 호텔 같은 가구 구성이다.

푹신한 침대 옆에 놓인 서랍 위에는 밝기 조절이 가능한 테이블 램프가 있었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에 메모용지와 펜에, 호출용 전화기도 있었다.

그것 외에 특이한 점은 긴 시간 지루하지 말라는 배려인가 책장에 책이 잔뜩 있었고, 읽기 위한 소파도 마련돼 있었다. 처음 왔을 때도 느꼈지만, 철창만 빼면 상당한 귀빈 대우다. 고급 개체라는 점을 제외하면 실험용으로 사용될 뿐인 나한텐 과분하다 생각되는 요소뿐이다.

나는 일어서서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와 대화를 나눈 덕분에 조금 기운이 돌아온 것 같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침대 옆 서랍의 첫 번째 칸에는 매뉴얼이 들어있었다. 읽어보니 별 내용은 없고, 제공 된 생필품 등 소비용품은 담당부서로 연락하면 채워준다고 한다. 

외에도 샤워 등 철창 밖으로 나가야 될 용무가 있을 땐, 명령을 받은 바이오로이드 동행이라는 조건 하에 가능한 모양이다. 그것 외엔 건물 내 곳곳으로 연결되는 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속해있던 지휘관으로 있을 때 보다 대우가 훨씬 좋다.

조금 마음이 안정을 되찾고 나니, 이런 대우가 무서워졌다.

난 대체 어떤 용도로 쓰여지는 걸까. 각오와는 별개로, 막상 닥쳤을 때의 불안과 공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나에게 있는 가치라고는 고급 개체로써 튼튼한 몸과, 세뇌 받지 않은 정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정도인데.

마지막은 인간 입장에서 가치로 매기기도 애매하다.

'지금 생각해봐야 의미도 없지'

결국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나도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있었기에, 쉬기로 했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 포근하게 이불을 덮고 있자니 문득, 철창 너머의 그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뭐 어때, 라며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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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 있던 눈을 뜨니 흐릿한 시야가 점차 또렷해진다. 기억나지 않는 꿈 속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던 정신이 돌아오며, 쾌적한 잠자리를 느끼며 이곳이 평소 지내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얼마만의 숙면이지'

부대의 지휘관이라는 위치는 안락과 거리가 멀다. 인간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기업에 속한 바이오로이드로서 항상 초인적인 근면함이 요구되었기에, 마음 편하게 잔 날은 한 번씩 나의 멘탈케어를 위한 휴가를 내어줄 때를 제외하곤 없었다.

흩어져있던 사고가 재조립되는 기분을 느끼며, 예민하게 깨어있던 청각만이 청아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백색소음을 잡아낸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 누군가 책을 읽는 모양이다.


"무슨 책이야?"

다짜고짜 나는 그렇게 물었다.

"어? 일어났나 보네"

툭, 책을 덮는 소리.

"여기 적당히 꽂혀있는 소설로 시간 때우고 있었어. 워낙 지루해야 말이지"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 말하며 나는 책장에 눈을 돌린다. 교양이나 자기계발을 위한 책은 없었고,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책 위주로 많이 보였다. 문학 쪽은 읽을 시간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지식은 전무하지만.

'인간도 아닌 나한테 이런 걸 줘봤자 어떻게 즐기라는 건지'

바이오로이드 중에서는 나름 인간에 가까운 나라지만, 그것뿐이다.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기에, 이해 할 수 있을 리 없다.


"책 제목은 보자..."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나는 할 일도 없겠다 다시 한 번 잠을 청하려는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고양이?

"뭐야 그게, 무슨 장난이야?"


"화자가 고양이야. 고양이 시점에서 겪는 일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모양이야. 책에 관심이 없던 나도 알 정도니까 꽤 유명한 작품일걸?"


화자가 고양이라고...? 조금 흥미가 생겼다. 나는 소리가 안 들리게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서 책장을 다시 한 번 본다.

"솔직하지 못하네"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다. 들렸을 리는 없는데... 무슨 말이지?

"관심이 생겼으면 그렇다고 말하면 될 텐데"


"그그그그그,그런 거 아닌데?"

당황해서 말을 더듬어버렸다. 이래서야 관심 있다고 광고하는 것 밖에 안 된다.

"고양이, 좋아하나 봐?"


"아아, 아니라니까! 애초에 말이야! 너 사람 맞아? 바이오로이드한테도 잘 안 들릴 소리였는데!"


"소리?"

의문을 품은 소리. 뭐..뭐야...설마...


"푸...풋...흐하하하하하핫!"

호탕하게도 웃어 주신다. 수치심에 살짝 눈물이 맺히는 것 같다.

"풉...아...아니..흐흐...나는 갑자기 조용하길래 적당히 떠본 건 데~"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저 말투가 더 짜증난다.


"짜증나 말 걸지마"


"그렇구나~ 들키기 싫어서 일부러 소리 죽여서 확인하려 했구나~"


"....."


철창, 힘 주면 구부러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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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미안해"


"..."


"내가 심술 너무 부렸어~ 미안하다니까"


"..."


이불을 뒤집어 쓴 나를 상대로 계속 사과를 건 낸다. 방금 전까지 계속 놀려대 놓고 뻔뻔하기 그지없다.


"음~"


그러고는 갑자기 사과를 멈추더니 고민하는 듯한 소리를 흘린다. 진짜 뭐 하는 남자야?


"내가 방금 철창 너머로 그쪽 책장 봤는데, 거기엔 같은 책이 없더라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사실 벌써 눈치챘지만, 일부러 잡아 뗀다.


"이따가 샤워하러 갈 때 봐서 이 책 그쪽으로 넘길게. 어때?"


솔깃하다. 하지만 고집스러운 마음은 아직 덜 풀린 화를 풀고 싶어한다.


".....고양이 같은 거 좋아하지도 않고"


"그럼 안 줘도 돼?"


"...다른 책에 비해서는...시간 때우기에...나쁘지 않은..것 같기도 하고..."


"좋아, 거래 성립"

이번에도 웃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방금 전과 다르게 상냥한 듯한 웃음 소리였다.

그것보다... 철창 너머? 몸은 회복 한 건가? 그의 모습이 신경 쓰인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철창 쪽으로 간다.


"그새 숨은 거야?"

하지만 기대하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실컷 놀려대더니, 자기는 놀림 받기 싫은가 봐?"


반대편 철창 안에 보이는 침대가 조금 꿈틀댄다.


"괜찮아~ 나는 너랑 달라서 사람 외모로 놀리거나 안 해. 추남이어도 가볍게 웃는 정도로 봐줄게"

스스로 생각해도 유치한 발언이다. 벌써 장난기가 옮은 건가.

"후..."

가벼운, 마음을 가다듬는 듯한 한숨을 흘린 그는, 이불을 걷어내고 나한테 모습을 드러냈다.


"....."

내 반응이 그에게 상처가 될 지도 모른다는 것 조차 잊은 채,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별로 보기 좋진 않지?"

멋쩍은 듯 웃음을 띈 그의 몸은,



몸 구석구석이 거뭇거뭇한 기계의 형태를 띠고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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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재분이 드디어 끝났다

다음 화 부터는 아직 올린적 없는 부분임

계속 읽어주면 고맙겠음


다음 화는 이틀 뒤 저녁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