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LRL..?”


티아멧은 드물게 난감한 표정으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LRL을 바라보았다.

LRL은 두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 채 양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있었다.


“에헴, 강철의 칼날을 가진 드래곤이여! 그대가 이 곳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이 진조에게 공물을 바쳐야 한다!”


티아멧은 항상 사령관이나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는 거리를 두려 노력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천친하게 다가오는 어린 아이에게까지 모질게 대하지 못했다.


“지금은 가진게 하나도 없는데…”


LRL의 말을 들은 티아멧은 무의식적으로 전투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예비용 단검과 수리검 몇개, 종이같은 잡동사니 뿐인 그녀의 주머니 속에서 LRL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힝..또 실패인 것이냐..”


LRL의 얼굴이 점점 실망으로 물드는 것을 본 티아멧은 흠칫하며 손을 더 깊이 쑤셔넣었다.

주머니 속을 몇번 더 더듬자 바스락거리는 비닐조각이 손에 잡혔다. 

그것이 무엇인지 떠올린 티아멧은 약간 밝아진 얼굴로 손 끝에 걸린 사탕을 꺼냈다.


“와! 사탕…..큼큼, 자, 암컷 드래곤이여! 이 드래곤 슬레이어에 당하고 싶지 않다면 당장 그 달콤한 것을 공물로 바치도록 하여라!”


LRL은 이젠 거의 눈에서 광선을 발사하고 있었다. 티아멧은 무의식적으로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것을 LRL의 손에 내려놓았다.


“와아! 역시 하루종일 이런 보람이 있었구나! 이 얼마만의 사탕인지..!”


LRL은 밝아진 얼굴로 티아멧이 건내준 - 반쯤은 강탈한 것에 가까운 - 사탕을 잡고 방방 뛰었다. 

그 모습을 보던 티아멧은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굳이 말하자면 아쉬움에 가까웠다. 


‘하지만..왜?’


티아멧은 본래 그리 간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실험실에만 있던 그녀가 단 것을 접할 기회가 없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던 그녀는 기본적으로 단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령관이 준 사탕이라고 해도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사령관이 준 사탕을 하나도 먹지 않고, 보관해 두기만 했었다.


그러니 LRL에게 이 탕을 줘버린다고 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저..이제 사탕을 줬으니까 비켜주지 않을래?”


티아멧은 이유모를 아쉬움을 억누르며 LRL을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붉은 도끼날이 그녀의 발걸음을 막았다.


“음, 그런 얼굴로 가면 이 고귀한 블라인드 프린세스가 면목이 없어지지 않는가!”


뒤를 돌아보자 LRL이 머쓱한 표정으로 티아멧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따져보면 LRL이 티아멧에게서 사탕을 강탈해간 셈이니 보통의 바이오로이드라면 밝은 표정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두 손을 꼼지락거리던 LRL은 씨익 웃으며 반으로 가른 사탕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있다! 에이미가 이런건 같이 먹어야 맛이 더 좋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티아멧은 엉겁결에 LRL이 내민 사탕을 받았다. 

손의 온기에 반쯤 녹은 사탕 반쪽이 진득하게 손에 달라붙어 티아멧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입에 넣고 핥았다. 

연한 딸기향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히히, 맛있지 않느냐!”


티아멧이 사탕을 입안에 넣은것을 확인한 LRL은 나머지 반쪽 사탕을 입안에 넣고 오르카 호 복도 저 편으로 사라졌다. 

티아멧은 약간 멍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2






티아멧은 침대에 걸터앉아 위 아래로 발을 까딱거렸다.

숙소로 걸어오는 동안 사탕은 모두 녹아 없어졌지만, 은은한 딸기향은 여전히 그녀의 입 안에 남아 있었다.


티아멧은 위 아래로 흔들던 발을 그대로 뻗어 발가락만으로 침대 밑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비닐 포장지에 쌓인 수많은 사탕들이 들어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전투를 마치고 오르카호로 돌아오면 늘상 받는 것들이었다.


티아멧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가장 투박한 포장지에 싸여있는 사탕을 꺼냈다. 


[티아멧, 정말 수고했어, 자, 더 좋은 걸 준비했어야 하는데...미안해]


언젠가, 그녀가 오르카호에 들어와 첫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던가. 

사령관은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은 얼굴로 자신에게 이 사탕을 건냈었지,

전투에 익숙한 그녀였지만, 쉼없이 몰려오는 철충들을 찢고 베고 가르는 작업은 굉장히 피곤한 것이었다. 


“이런 것, 필요 없어요.”


그래서 그녀는 별 생각 없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이 뱉은 말에 티아멧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아무리 관대한 사령관이라고 해도, 바이오로이드로서 인간이 준 것을 거절하다니 , 

순간적으로 티아멧의 머릿속에서 실험실에서 보았던 동료들의 끔찍한 모습이 지나갔다.

서서히 올라가는 사령관의 손을 본 티아멧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많이 피곤했나보네, 미안해. 티아멧... 어서 들어가서 쉬어.”


하지만 통증은 없었다. 눈을 뜨자 사령관은 되려 미안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뻗은 팔을 내리고 있었다. 

티아멧은 그런 사령관을 피해 도망치듯 숙소로 돌아갔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사령관은 티아멧이 전투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녀를 쓰다듬어주는 대신 사탕을 하나씩 건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그것을 침대 한 구석에 쑤셔박았다.

어째서인지 사탕을 입안에 넣으려고 할 때마다, 

자신 때문에 실험실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간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탕의 단 맛을 느낄 자격이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은 사령관이 사탕을 하나씩 내밀 때마다 흐려졌지만.

그녀는 겁쟁이였기에 끝내 사령관이 건내준 사탕을 입에 넣지는 못했다.


“아..”


하지만 티아멧은 오늘 처음으로 그 사탕의 달콤함을 알아버렸다.

티아멧은 숙소까지 걸어오며 옛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을 기억했다.
그것이 천진한 LRL 때문이었는지, 사탕의 단맛 때문 이었는지, 사탕을 줬던 사령관의 미소 때문 이었는지는 확실하진 않았지만,

어쨋던 그녀는 스스로 사탕의 껍질을 까서 그것을 손에 들었다. 


가끔은, 나도 이런 달콤함을 느껴도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티아멧은 조심스럽게 입 안에 사탕을 넣었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사탕은 아주 달았고,

지금 먹는 것도 그러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먹는 모든 사탕은 달기만 할 것이다.






















인증용 스크린샷


https://open.kakao.com/o/sypD1CSc







대회 다음주까지 인줄알고 천천히 쓰다가 

오늘까지인거 확인하고 좀 급하게 마무리한 감이 있어서 마음에 안들게 나옴..

그래도 대회 참여에 의의를 두고 슬쩍 출품해 봅니다.

못 쓰는 글도 맨날 읽어주는 라붕이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