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키리. 작전 중 실종. 

레오나. 작전 중 실종. 

그것은 흔치않은 일이었다. 


"사령관. 작전에 앞서 발키리랑 정찰 좀 갔다올게." 

단 둘이서하는 정찰이라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거겠지. "안 위험하겠어?" 

"발키리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감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꺼림칙한것이 나오려던 재채기가 중간에 멈춘것처럼 답답하다. 

그래도 그 두명이라면 무리는 하지않겠지. 

오르카에서 냉철하기로는 원투펀치니까. 

잠수함에서 빠져나간 상륙용 보조잠수함이 시동을 걸고 힘차게 수면 위로 올라간다. 

"언니, 언제 익히셨어요?" 

"어려운것도 아닌데 뭘. 트리이아나였나, 걔한테 한수 배웠지. 요새는 뭘 배우는게 재밌더라고." 

둘만 있을때에 서로 언니동생으로 부르는것은 비밀이다. 

둘 다 부끄럼을 많이 타기 때문. 

"사령관이 이유를 알면 바보라고 놀리겠지만 이건 못참지. 안 그래?" 

발키리도 끄덕끄덕. 배시시 미소짓는다. 

"실바니안 패밀리 컬렉터라니." 

멸망 전의 유명 토끼 컬렉션이다.

토끼들이 사람처럼 꾸민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거환경도 갖춘, 그것도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된 그런 제품들이다. 

정보를 듣자마자 발키리와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저택에 대해 샅샅히 조사한 결과, ags조차 없는 비어있는 집이었고  위험요소는 전혀 없다는 것이 두 여자의 결론. 

그렇다면 굳이 지친 부하들을 이끌고 갈 필요는 없다. 

끼익 끽 끼익. 

짐승 비명소리도 같기도 한 쇠문움직이는 소리가 스산하게 퍼진다. 

저택에 들어서기 전 커다란 마당에는 잡초들이 무릎까지 자라있다. 권총과 소총을 들고 슥슥 앞을 헤쳐나가는 둘은 아직까지는 긴장어린 표정보다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다. 

툭. 

레오나의 권총 위로 빗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툭 투둑툭투두두. 

갑작스레 비가 쏟아진다. 

"언니 뛰죠." 

"그래." 

땅이 질퍽이기 전에 그녀들은 저택의 문앞에 다달랐다. 

"예상외야. 닥터 날씨가 틀릴때도 있네."

"그러게요." 

사자모양 손잡이가 달린 문을 민다. 

조그만 절그럭 소리와 함께 내부가 보인다. 

억수같이 쏟아내리는 비에 밝은 햇빛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얼핏 보이는 내부는 오래됬음에도 먼지가 잔뜩 끼인것빼고는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다. 

"입구부터 괜찮은걸 찾았네." 

"하아, 언니 이 손좀 보세요." 

우산을 쥔 토끼의 앙증맞은 손을 바라보며 광대가 솟아오른 발키리가 끌고 온 캐리어에 조심스레 물건을 담는다.

 입구에서부터 이것저것 담으니 금새 캐리어가 반쯤 찼다. "최고야. 동생 이리와봐." 

대답이 없다. 

"동생?" 

방금 전까지 뒤에서 물건을 담고있던 발키리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발키리!" 

대답은 없고 빗물이 창틀을 때리는 소리만 들린다. 

벽에 걸린 커다란 초상화의 초점이 흐릿하다. 

진정하자. 캐리어는 그대로야. 

먼지를 털어내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본다. 

시계의 분침이 5칸 지날때까지도 그녀는 기색조차 없다. 

허리춤에 찬 권총을 슬며시 꺼낸다. 

한손은 휴대용 라이트를 들고 x자로 교차해서 방을 빠져나온다. 

아무도없는 복도는 을씨년스런 바람만이 분다. 

이전에는 찬란하게 빛났을 샹들리에는 뿌옇게 뒤덮여있을뿐이다. 

'복도에 발자국같은건 없어. 방에 동생이 먼저 들어가고 뒤이어 내가 들어왔지.' 

그러고나서 발키리의 감탄과 함께 똑같이 물건을 회수했고, 방 안을 둘러보던 중 갑작스레 그녀가 사라졌다. 

온데간데없이. 

"후....." 

교차한 손목에 찬바람이 스친다. 

추위가 아닌 분위기에 싸늘해진 등으로 땀이 흐른다. 

발키리는 물론이고 총도 캐리어도 사라졌다. 

그녀가 발키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물건을 살펴보고 다시 말을 건것은 15초 내외. 

그 사이에 소리소문없이 연기처럼 사라지는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자각몽? 인지한대로 이뤄진다면 이미 깼을 꿈이다. 

끼익. 멀리 아주 멀리지만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린다. 

발키리를 제압할정도라면 정면에서 그녀가 용써봤자일터. 낡은 나뭇바닥에서 소리가 나지않게 조용히 움직여 구석에 있는 옷장 안으로 들어간다. 

아무 옷도 옷걸이도 없이 텅빈 옷장은 그녀가 들어가기에 딱맞는 크기. 

잘바닥. 잘바닥. 잘바닥. 

질척거리는 것을 끌면서 무언가 움직인다. 

숨을 죽인채 쿵쿵뛰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소리가 한창 멀어져 사라지고나서 옷장을 열고나오니 벽에 걸린 그림의 초점이 선명해졌다. 

토끼인형들은 온데간데없고 밝은 조명과 고요한 바깥날씨 그리고 먼지한톨없는 방이 그녀를 맞이한다. 

"lrl처럼 망상에 빠진거려나." 

설명할수 없는 일이다. 

그녀의 사고범위 밖에 있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있다. "자, 여러분들 이 곳에 거주하고 있는것이" 

느끼한 인간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발할라의 대장, 레오나입니다!" 

문이 열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고풍스럽게 입고 나름대로 질서를 지키며 들어오는 이들이 레오나를 발견하더니 하나둘 감탄한다. 

"정말 레오나군요. 대단해요 미스터 토르프." 

가릴 수도 없이 툭, 튀어나온 배를 만지작거리며 느끼한 목소리의 그 인간이 싱긋 웃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다른 것들과 다르게 저 차가운 입가와 매도하는 눈매를 좀 보십시요.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맞아맞아. 살결도 야들야들해보이는게...." 

이곳 저곳에서 복장의 격식과는 동떨어진 일부는 추잡한.

그런 단어들이 툭툭 내뱉어진다. 

'돌겠네. 일단은 맞춰주자.' 

"피곤하니 다들 내 방에서 나가주겠어?" 

정말로 피곤하다. 

육체적으로 그다지 힘들진않지만 심적으로 너무 신경을 써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발키리도 이 곳에 끌려온걸까. 

그녀의 적당한 매도는 좋은 먹잇감이 되었는지, 일부 남성의 아랫도리가 불쑥 튀어나온것이 보인다. 

"자, 이 상등품의 품질을 떨어트리기전에 얼른 다음 방으로 갑시다! 아직 진귀한 것들이 많이 남았습니다." 

남자의 말에 입맛을 다시던 군중이 자리를 뜬다. 

'감시카메라는 없다. 아마 기록이 남으면 곤란한거겠지.' 

고소한 냄새가 난다. 

슬쩍 열어본 방문으로 아무도 없는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내밀어 둘러보니, 을씨년스러웠던 그 저택은 연회준비를 마친 채 수많은 하인들이 바삐 움직이고있다. 

방문을 완전히 닫지않고 잠시 방안으로 들어와 생각을 정리한다. 음식차를 끄는 가벼운 구두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지나가는 것은 바이오로이드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왜? 이런 큰 저택에서 굳이 사람을 고용하는것이지? 

밖을 살필 구실이 필요하다. 아직은 아는것이 너무 적다. 

"이봐." 

소리에 반응한 여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레오나는 오늘의 메인디쉬니까 몸단장을 하라고 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정돈되지않은 상태지? 그년을 아주 족쳐놔야겠어." 

혼잣말을 하며 다가오는 그녀는 제품을 만지듯 레오나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주름진 이마와 장식이 많은 시녀복을 보아하니 경력이 있는 이 곳의 중간직정도는 될 여자다. 

"화장실을 가고싶은데?" 

짝. 레오나의 뺨을 후려치는 여인 

"물건주제에 여전히 말버릇이 고약하구나. 언제까지 그러는지 보겠어. 따라와라." 

음식차를 끌며 앞서가는 여인의 뒤를 따른다. 

그녀가 나온 방과 같은 방들이 수십 수백개는 되는지 끝도 없이 복도가 길게 뻗어있다. 

저 방들마다 바이오로이드들이 갇혀있는건가? 

그렇다면 가까이에 발키리를 가둬놨을것이다. 

인간들이라면 분명 그런식으로 물건을 진열할테니. 

도르르르르르르. 

저택의 대강 구조는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 다 들어있다. 

단 둘이 오는만큼 나름대로 철저한 구상을 했고 문제는 상황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연회인것같긴한데...... 오르카호의 주방에 있던 요리전문 바이오로이드들이 하나도 보이지않는다. 소완도, 포티아도, 아우로라도. 

거기에 이 곳의 고용인은 모두 인간이다. 

다시 그 고소한 냄새가 난다. 

화장실 근처에서 더 진해진걸보니 근처가 주방인것도 기억해둔것과 동일하다. 

가까이에서 맡아보니 가죽이 타는 냄새와 비슷하다. 

"여기서 기다릴테니 얼른 처리해라." 

레오나는 말없이 한번 쏘아보고 화장실로 향했다. 

순백 그 자체로 말끔한 화장실이다. 

부를 과시하듯 보석들이 박혀있고 금덩어리로 된 조각상들도 몇개 놓여있다. 

청소용구함조차도 멋드러지게 차려놓은 것이 여간 사치스러운것이 아니다. 

덜컹. 슥슥. 몇가지 물건을 레오나가 조용히 치워낸다. 

"역시. 인간들 생각은 똑같다니까." 

즐비한 청소도구들과 약품이 들어있는 박스들을 모두 치우니 그 뒤로 환풍구가 보인다.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려면 트릭쇼를 좀 해둬야겠지. 치마와 속옷을 벗어서 다른 변기칸에 두고 무슨 일을 당한 것처럼 머리칼을 뽑아 흩뿌려둔다. 

손가락 끝을 컴뱃나이프로 베어내 피를 몇방울 떨어뜨리고 붕대로  지혈한다. 코트의 단추도 하나 뜯어내 무질서하게 두고 코트 안주머니에서 전투용 레깅스를 꺼내입는다. 

허전한 하체가 어색하긴하지만 이걸로 잠깐이라도 시선을 돌린다면 대성공이다. 

돌아가지않는 환풍구의 입구를 떼내고 자그만 점착폭탄을 붙인다. 자물쇠를 부시려고 준비해둔것인데, 우연찮게 도움이 된다. 

쓰잘데기없는 조언같았지만 고마워 스노우페더. 

레오나가 엉금엉금 기어서 지나가고 얼마있지않아 그 시녀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화장실에 들어오려던 순간 뿜! 청소용구함이 폭발하며 파편이 비산하고 그녀가 혼비백산 밖으로 빠져나간다. 

화염이 일지도않고 큰 폭발도 아니지만 그녀가 어찌 그런걸 구분하겠는가? 그저 쾅!하니 꺅!하고 그곳을 빠져나와서 보안팀을 호출할뿐이었다. 



검은색 레깅스에 코트라는 오묘한 복장을 입은 그녀가 고전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천장을 조용히 기어가고 있다. 

환풍구부터 저택 천장의 빈공간으로 이어지는 길은 그녀가 봤던 그대로다. 

쓸일이 절대없었기에 눈여겨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 스쳐가며 본것이 눈에 익어 쉽게 길을 찾는다. 

"이게 무슨일이야! 너 이년!" 

"아이고, 전 그저 화장실을 데려다줬을뿐입니다." 

벌벌떠는 시녀를 죽여버릴듯 노려보는 뚱땡이는 울그락불그락 달아올라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있다. 

그렇잖아도 단속이 심해서 사업확장을 못하고있는데 심혈을 기울여서 공수한 메인디쉬가 도망쳤다. 

얼마를 들여서 세뇌한 것인데 그걸 납치해가다니! 

"보안팀 싹 다 움직여. 저택에서 빠져나가기는 쉽지않을거다." 

아래가 시끄럽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검은 복장의 사내들이 온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난리를 피운다. 

"자, 귀빈여러분들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행사는 예정대로 진행예정이니 걱정마시고 지금부터 시작될 만찬을 즐겨주십시요." 

짝짝짝.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중앙 연회장에서부터 시끌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운 주방에서부터 음식을 담은 카트가 줄줄이 지나간다. 커다란 그릇에 담겨져있는것은 "!" 

설마했지만 예상대로다. 

신선한 식재료를 보듯 식욕이 돋은 사람들의 눈빛, 인간뿐인 고용인들, 생고기가 아닌 겉가죽부터 살점을 태우는 냄새. 비밀스러운 저택보안까지. 

"우욱" 큰 그릇에 담긴 적나라한 모습의 '요리'를 보며 구역질을 참는다. 자세히 볼것없이 얼핏 보기만해도 그 형태는...... 그녀와 발키리는 고급기종이다. 

아마 연회 마지막즈음에나 나올 생각이었겠지. 

상황 장소 모두 알았으니 이제 동생을 구할 시간이다. 

원래 있던 그녀 방쪽으로 가기 전 코트를 뒤집어입는다. 

이제 그녀는 검은색 일색이 되었다. 


푸쉬이이. "막내야, 이상한 소리가 난다? 확인해봐라." 

벌거벗은 발키리의 몸을 양념배인 헝겊으로 닦아준다. 

높으신분들의 취미는 알바 아니지만 이런 비싼 것들까지 배 속에 집어넣는다니. 

그녀의 몸이 반쯤 잠긴 욕조는 향신료들이 잔뜩 담겨있다. 

다섯이나되는 요리사들이 그녀의 몸에 달라붙었다. 

레오나라는 기종도 같이 준비하고 있어야할텐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것인지 일단 이쪽만 하고있으라는 것이 명령이다. 금새 준비는 다하고 헝겊으로 닦는 똑같은 일만해서 그런가 스르르 잠이 오는 기분. 

하얀 가스가 그의 발밑을 조금씩 채우고 앞에서 같이 일하던 톰이 풀썩 쓰러진다. 

어? 다른 이들도 차례로 털썩 쓰러지더니 이내 의식이 흐려지고 천장에서부터 검은 마스크를 쓴 인영이 나타난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요리사는 툭 고개를 떨궜다.

의도치않은 수확이다. 

주방에 소란을 일으키고 그 틈에 방들을 둘러보려했지만 우연찮게 발키리를 찾아냈다. 

물론 레오나가 아는 그 발키리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잠들어있는 요리사 여인 하나의 옷을 벗겨내서 그녀에게 입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