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은 멸망 전


돈도 많고 잘생기고 친절하기까지 한


완벽한 리제의 주인님을 보고싶다


그 주인님의 수많은 건물 중 하나를 관리할 뿐


약해빠진 A급 바이오로이드 리제를 보고싶다


주인님은 늘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바쁘기 때문에


언제 주인님이 오는지 오매불망 기다리는 리제가 보고싶다


주인님이 기껏 자기 건물에 들르는 날이면


부끄러움과 명령 때문에 직접 나서지도 못하고


창문 닦는 척하면서 슬쩍 안을 들여다보는 리제를 보고싶다


여전히 잘생기고 상냥한 리제의 주인님과


그 옆에서 착 달라붙어 있는 쌍권총 해충을 보고싶다


그 상황에서 주인님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들이 나타나고


리제가 해충을 외치면서 달려들지만


순식간에 제압당해 무력화되는 리제를 보고싶다


그 사이 리리스가 재빨리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고


양산형 A과 주문제작 SS급의 능력 차이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울어버리는 리제가 보고 싶다


이 때 그 모습을 의아하게 여긴 주인님이 다가와


리제를 손수 일으켜 주고 옷도 새로사주고 


재밌는 아이라면서 데려다가 맛있는 저녁도 먹여주고


꿈 같은 달콤한 시간에 다시 일터로 돌아갈 때


등 뒤에서 주인님과 노닥거리는 쌍식칼 해충을 보고싶다


자기는 한 번도 입에 대보지 못한 고급 요리들을


쌍식칼 해충이 만들었고 또 주인님께 대접했고


자신은 비슷한 능력은커녕 그 맛에 헤롱헤롱하기나 하고


비참해하는 리제의 모습을 보고싶다


하루가 갈수록 리제는 우울함에 일도 잘 못하고


치료를 받았는데도 테러리스트한테 입은 상처는 쓰려오고


어느 날 일하던 중 쓰러지는 리제를 보고싶다


눈을 떴을 땐 주인님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길 보고 있고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를 짓는 리제를 보고싶다


주인님은 곁에서 시간을 보내다 곧 떠나고


멀어지는 구둣굽 사이로 전화소리가 들려오는데


리리스와 소완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낼 거라는 내용을


바이오로이드의 뛰어난 청력으로 듣고있는 리제를 보고싶다


아직 다 낫지도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전투용으로 개조한 가위를 챙기고 


소완의 방으로 달려가는 리제를 보고싶다


경호용인 리리스는 어쩔 수 없지만 가사용은 다르겠지


그리고 처참히 발린 리제의 모습을 보고싶다


약하고, 약하고, 또 약해서


결국 아무것도 못 하는 리제를 보고 싶다


뒤늦게 도착한 주인님이 자신의 보물을 해치려 했다는 것에


분노한 눈으로 리제를 내려다보는 걸 보고싶다


결국 주인님은 리리스와 소완과 함께 떠나고


의료용 다프네의 손에 의해 마취되어


분해기 속으로 들어가는 리제를 보고싶다


리제가 주인님과 함께 지내는 환상에 빠져 있는 동안


리제의 분리된 전투 모듈을 할짝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