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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의 무게, 생명의 무게 :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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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잉


메이의 방에서 나오니 또 휴대용 단말이 진동을 울렸다.


'뭐야, 이번엔 누구 장난......닥터?'


일반적인 함 내를 경유하는 네트워크가 아닌, 닥터와 나만을 잇는 비공개 네트워크를 통해 발송된 메시지였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닥터가 고안해 냈었지만, 쓰이는 것은 처음이다.


심각성을 이해 한 나는, 서둘러 함장 실로 이동,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업무용 데스크에 앉아 천천히 긴장한 채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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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 처: 엔지니어팀 소속 닥터]

극비: Case-0245 관련 진전 사항 보고


사령관님, 닥터입니다.


먼저, 보고가 늦어진 점 사과 드립니다. 앞서 보고 드린 내용대로 블러디팬서-02가 작전에 투입 된 결과, 23:05:13, A-39에서 구출 작전을 수행하였던 대원의 시신을 회수하는데 성공 후 무사 복귀 하였습니다. 해당 대원의 프로필은 본 메시지에 첨부 하겠습니다.

또한, 시신을 살펴 본 결과, 내부에 아직 감염균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여 일각을 다투는 안건으로 판단, 서둘러 감식을 진행하였고, 그 정체를 밝혀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사실이 대원들에게 알려질 시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 비공개 네트워크를 통해 보고 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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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읽은 나는 메시지를 닫고 개인 잠수정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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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곳은 임시 본부 안에 위치한 닥터의 개인 사무실.


그녀는 초췌한 얼굴로 의자에 기대어 생각에 빠져있었다.


나는 그녀가 내 말을 들은 것을 확인 한 후, 문을 걸어 잠근다.


"아...오빠, 왔구나"

그녀답지 않은 힘 없는 미소. 마음에 한 줄기 통증이 달린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시신이... 발견 되었다고 했지?"


"응...맞아"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시신은 지금 어디에..."


"그건... 이따가 하면 안 될까?"


괴로움을 참 듯, 입술을 깨물며 닥터가 말했다.


아마 그녀는 내가 감식 결과를 이성적으로 판단 해 주길 바라는 것 같다.

감정이 섞여버리면 화를 부른다.


납득을 한 나는 대화를 진행시켰다.


"알았어. 그럼 보고 부탁해"


"응..."


그녀는 꺼져있던 커다란 모니터의 전원을 켜고, 그쪽에 사진을 포함한 내용들을 띄웠다.

그 내용들을 읽은 나는, 사고가 정지되는 것만 같았다.


"이...이건..."


"가설 단계가 아니야. 생각보다도 너무 쉽게 알아냈어"


내 눈에 못이 박힌 듯 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단어가 있었다.


"변형된...철충 바이러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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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변형된 철충 바이러스를 포함한 미생물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맞아..."


여전히 기운 없는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편의상 감염균이라고 칭할게"


나는 심호흡을 하고, 나가있던 정신을 불러와, 그녀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오빠도 알겠지만 바이러스가 변형을 일으키는 경우는 한 가지 뿐이야. 생물의 세포에 들어가는 경우"


"그렇지, 그래서 종래에 유행했던 전염병들을 잡는 백신 개발이 매번 난항을 겪었다는 자료를 본적이 있어"


"응, 그런 이유로 나는 맨 처음 T-1-고블린에서 추출해낸 조직의 구성요소를 감염균의 구성요소와 비교해봤어"


T-1-고블린이라고 표기 된 자료와 감염균이라고 표기 된 자료의 비교 분석 도표가 화면에 표시된다.


"아쉽게도 결과는 미스매치. T-1-고블린의 몸에서도 철충 바이러스가 검출되긴 했지만, 대부분 바이러스의 원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존재하기만 했어"


"이 다음은 그럼..."


"응...맞아"


말 하는 걸 망설이는 닥터. 하지만 결심한 듯 나에게 똑똑히 전한다.


"오빠의 원래 몸이야"


화면에 표시된 자료가 바뀐다.


"감식 초기 단계에서 이미 감염균 내 철충 바이러스는 종래의 철충 바이러스와는 다른 형태를 띠고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T-1-고블린의 바이러스가 아닌 시점에서 이미 답은... 나와있었지만"


내가 자료를 읽는 걸 기다린 후 닥터는 이어서 설명했다.


"동일하게 비교분석을 진행했고, 우려한 대로 감염균 내의 철충 바이러스와 오빠 본체에서 검출 된 철충 바이러스가 동일한 성질을 띠는게 확인 됐어..."


머리가 지끈거린다.


"...기억을 잃기 전 나는 대체 어떤 끔찍한 실험을 돕고 있었던 거야"


"그건... 아닐 거야! 아니, 맞다고 해도 분명 오빠 본의가 아니었을 거야"


"...고마워, 닥터"


기특한 그녀의 말에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보답했다.

하지만 모든 대원들이 닥터처럼 생각해주진 않겠지.


나부터 스스로가 안 믿기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 때문인지 감염균은 본래 철충보다 훨씬 인간에 가까운, 아니 인간 그 자체의 뇌파를 지닌 것 같아. 파의 세기는 강하지 않지만"


"확실히, 그러면 인간의 반응이 감지됐던 것도 설명이 돼"


당초의 예상대로 강화 인간이란 선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더 자세한 설명은..."


자료 화면을 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닥터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앞으로의 설명에는 A-39 대원의 시신이 필요한 거겠지.


그녀는 품 속에서 물건을 하나 꺼냈다.

핑크색의 여기저기가 장식 된 사각형 도구. 그녀가 개발 한 카메라였다.


"사진으로 담아놨구나"


"...헤헤, 응"

애써 밝게 말했지만, 당연하게도 무리하는 기색을 전부 감추지 못했다.


"...보기 힘들 수도 있지만"

"괜찮아"


내가 말하자, 닥터는 카메라를 컴퓨터에 연결 한 후, 촬영 한 사진과 대원의 프로필을 화면에 띄웠다.


"읍..."

내 기억상으론 처음 보는 시신. 그것도 오르카호의 대원, 가족의 시신이다.


사진에 비춰진 것은 브라우니였다.


외관으로 확인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복장으로 확인 된 것이지만 말이다.

몸 전체가 이미 피 멍이 든 듯 새파랗게 질려있었으며, 이곳 저곳이 함몰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르러서는 절단되어 떨어져 나간 부위도 있었다.


마치 속에서부터 무언가에게 파 먹힌 듯한 인상을 받았다.


'A-39대원은... 브라우니였구나'


브라우니-2054. 브라우니들과는 접점이 그렇게 많이 없었고, 개체수가 굉장했기에 코드를 외우진 못했다.


그런데도 저 네 자리 숫자에는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2054...라고?'


내 본체가 태어난 연도다. 그저 신기한 우연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거기다 보통 프로필 사진은 무표정이 대부분이지만

이 브라우니는 장난기 어린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왠지 모를 기시감.

중요한 걸 잊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잡념을 애써 떨쳐내 듯 스스로를 다독이는데


"시신의 상태로 어느 정도 짐작은 가겠지만, 감염균은 세균처럼 단세포 생물은 아니야. 육안으로 확인이 힘들 정도로 작은 식인 벌레에 더 가까워"


갑자기 말을 걸어 온 닥터 덕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식인 벌레라는 표현도 A-39대원을 죽음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지, 어찌 된 영문인지 감염체들은 감염균에 감염 된 상태임에도 신체 능력마저 떨어지지 않은채 팔팔한 상태야"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조의를 표한 후 계속해서 그녀의 설명을 들었다.


"이 경우는 기생충이라는 명칭이 더 적절하겠지"


"기생충이라고?"


"응, 거기서 생각 할 수 있는 가능성으론 두 가지가 있어"

내 눈 앞에 손을 내밀고 검지를 펼치는 닥터.


"하나는, 감염체들이 전원 증상이 없는 보균자일 가능성. 하지만 일반적인 바이러스가 아니기 때문에 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돼"


가장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확실히, 그리고 감염체들 몸에도 어느정도는 증상이 보이니까 아마 아니겠지"


"응, 맞아. 그러니까 남은 건"


손가락을 하나 더 피면서 말했다.


"바이오로이드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감염균에 버틸 수 있는 모종의 기능을 심어뒀을 가능성"


"...감염체들이 어떤 개체인지 구분이 안 가는 건, 애초에 감염균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개체이기 때문이란 거구나"


감염체들은 어느 정도 일관성을 띤 생김새였지만,

장시간의 감금, 감염균으로 인한 전신의 피 멍, 정신적 피폐 등으로 외형의 변질이 심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라 생각을 했었다.

애초부터 실험을 목적으로 한 바이오로이드였다니... 그 잔인함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맞아... 그래도 의문이 남는 게 있어"

닥터의 시선이 다시 사진으로 옮겨간다. 나도 그녀를 따라 사진을 보았다.


"감염체 모델은 도대체 어떻게 저런 끔찍한... 식인 벌레를 극복 할 수 있는 있었는지야"


그녀의 말대로 겨우 내성이란 단어로 설명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감염체들은 수십 년... 철충 사태 이전부터라면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지하 시설에 감금당한 채로,

쭉 균에 감염되어 있었을 텐데 불구하고 높은 신체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인체 조직이 전부 감염균에 갉아 먹혀 끔찍하게 죽음을 맞은 대원을 생각하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부족한 정보를 붙들고 답을 알아내려 해봐야 시간낭비겠지' 


아직 불확실 한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철충 바이러스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만 공표되지 않으면 되기에, 이외의 사항은 회의 때 다뤄도 문제가 없다.


"아무튼 더 자세한 이야기는 회의에서 하도록 하고"

"오빠"

"응?"

닥터가 머뭇거리며 화제를 전환한 건 그 때였다.


"또 하나...보고해야 할 게 있어"

"뭔데?"


그녀는 결의를 다진 듯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이어갔다.


"이미 알겠지만 난, 대원의 시신을 회수하고... 보고보다 감식을 우선했어"


하지만 결국 고개를 돌려버린다. 죄책감을 가진 사람의 행동이다

옆으로 괴로운 듯 스스로 입술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에 그 이유가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시신이 훼손되었고... 지금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수준이야"



"그렇...겠지"


간신히 나는 닥터가 안고 있는 죄책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전사한 대원의 존엄성을 망가뜨리고 동료들에게 배신을 한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물론, 브라우니와 친하게 지내던 대원들이나 대장인 마리를 위해, 보고를 우선하는 것 또한 미덕이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같은 비상사태에 우선될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정작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 거지'


"난...명예로운 대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작전을 수행한 전우들에게 알리기도 전에... 시신을 훼손시켰어."


괴로운 듯 아랫 입술을 강하게 깨무는 닥터. 피가 베어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이 될 게 아니야... 오빠, 나는..."

자신을 벌해달라. 그렇게 말하는 건가.


안타깝지만 나는 그녀를 그렇게까지 응성부리게 할 생각은 없다.


말을 고른 나는 겨우 그녀에게 건넬 말을 찾았다.


"닥터의 판단은 옳아. 지금 같은 긴급 사안에 있어선 현장의 판단이 우선되어야 하니까"


"하지만...!"


"자책하지마, 닥터"


일부러 말을 끊듯이.

'명령'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렇게 전했다.


닥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나보다.


갈색 눈망울에 눈물이 고인다.


"내가 주도한 작전이었어! 내가 안일했던 탓에, 대원을 죽음에 몰아넣었어...!"

고인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그런데도 모자라 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죽은 대원의 시신을 훼손했어...! 같이 작전을 함께 해왔을 다른 대원들에게 보일 낯짝이 없어..."

상처가 날 정도로 꽉 쥔 손이 애처로워 보였다.

"난...납득이 안 돼...! 이래선.. 난"


"충분히 잘 해줬어"


"오빠..!"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그녀의 애원을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처음 Case-0245 작전 이행 자체를 명령한 건 나야. 네 말대로라면 원망 받아야 할 건 나라고"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나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너는 적절한 지휘와 빠른 판단으로 피해의 확산을 막았어. 바리케이트는 누가 친 거지?"

"그건 아니..."

"아닌 게 아니야. 맞아"

딱 잘라 말했다.


"건방 떨지마. 회의를 거치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는 건 나고, 넌 그저 내 판단에 따라 작전 이행 적임자로서 선출된 것뿐이야. 겨우 그 정도의 위치로 모든 책임을 진다는 건가?"

닥터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르카호 총책임자인 내가 옳은 판단이라 했어. 넌 내 판단에 이의를 제기 할 생각이야?"

"그건..."

언성이 높아진 나에게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 할 뿐이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자책을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내 말 잘 들어"

"흑...흑..."

이미 울고 있는 그녀에게, 고한다.


"넌 최선을 다 한 거야"


서글프게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안아줄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온기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곁에 한동안 머물러 주자 했다.


얼마나 괴로운 시간이었을까.


좋아하는 사진으로 메워졌어야 할 그녀의 카메라에는 비극으로 가득 찬 대원의, 가족의 시신이 처음을 장식했다.

그 사진을 촬영하면서, 혼자 결단을 내리면서, 얼마나 자기 혐오에 시달려야 했을까.


나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그게 그녀를 위한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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