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은 작년처럼 매우 더운 날씨였습니다. 집에만 있었지만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차, 레오나 누나한테 혼나겠군. 이럴 땐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1주일 전에 10살이 된 저는 사촌 형과 소박하게 방 한 칸 딸린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촌 형이 자취하는 집에 제가 들어온 것인데, 책에서 이런 게 식객이라고 봤던 거 같습니다. 개인정보는 남에게 쉽게 가르쳐주면 안 된다고 배웠기에 가르쳐드리지 않을 예정입니다.


"야! 철남! 내가 옷 벗으면 막 놔두지 말고 빨래통에 넣으라고 했잖아!"


주방 쪽에서부터 쏘아붙이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를 막 혼내기 시작하는 이 사람이 바로 제 사촌 형입니다. 만난 지 이제 1달이 되어가지만, 형과의 삶은 적응이 잘 되질 않습니다.


"그치만 보육원에서는 선생님들이 치워주시던데?"


"자기가 벗은 옷은 자기가 치워야 하는 법이야. 이제 철들어야지."


"형은 휴대폰으로 여자애들이 가슴 드러내는 게임 하잖아!"


"너도 좋다면서 같이 봤잖아!"


형과 제가 서로 삿대질을 하며 싸우던 그때, 문을 두드리는 쿵쿵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돌아보니 레오나 누나의 화난 듯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다 좋은데, 아침부터 옆집에까지 들리도록 싸우면 어쩌자는 거야?"


레오나 누나의 말은 언제나 차가운 듯했습니다. 날이 선 듯한 어조에, 마치, 늦게 들어온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보다 더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특히 그랬습니다. 형과 제 얼굴은 금세 누그러지고 말았습니다.


"남아. 옷 벗으면 내가 제자리에 놔둬야 한다고 그랬잖아. 나 같은 사람과 어울리려면 그런 예의 정도는 지켜야 어엿한 남자가 되는 거야."


누나가 검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설명하는 선생님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다, 형 쪽으로 시선을 던지더니 맛없는 빵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미안한데. 한 5미터 안으로는 들어오지 말아 줄래?"


형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다 방으로 훅 들어가 버렸습니다. 레오나 누나는 오늘 저녁은 닭볶음탕이라며 제 손을 잡아주곤 누나 집으로 데려가 주었습니다.




형과 누나를 만난 것 또한 1달 전이었습니다. 이 세상엔 바이오로이드라는 것이 있었는데, 제 엄마와 레오나 누나 모두 바이오로이드였습니다. 저희 아빠는 그 바이오로이드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저를 두고 여행을 가셨다고 모두가 그랬습니다.


형을 만나기 전에는 보육원이라는 곳에서 잠시 지냈는데, 그곳에 있는 아이들 모두 부모님이 여행을 가셨다고 합니다. 형은 제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같이 살자고 약속하며 데려와 줬습니다.


레오나 누나는 예전에 유럽에서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자기 별명이 예전에 암사자인가, 암살자인가... 어쨌든 그랬다며 취한 상태로 형한테 업혀 왔을 때 그랬습니다. 제게는 특히나 자기가 엄청 잘나갔다면서, 자기 얼굴만큼 이쁜 사람 만나려면 좋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매번 강조합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보육교사가 된 건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아, 너희 형 뭐 하고 있어?"


형과 레오나 누나 집은 딱 바로 옆집이었습니다. 신발장에 있는 슬리퍼를 신고 조심스럽게 걸어가 문틈 사이로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형이 보였습니다. 화면에는 여러 사진이 붕붕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형이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본인 말로는 프리랜서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영락없는 백수인 게 분명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는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으니까요. 총총걸음으로 돌아가 누나 집 문손잡이에 매달리며 말했습니다.


"형은 지금 무슨 사진 가지고, 막..."


제가 손으로 이랬다저랬다 모양을 만드니 누나가 됐다며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맛있는 냄새가 솔솔 나고 있었습니다. 국자를 휘젓는 걸 보니 어쩌면 요리는 아까부터 돼 있던 모양입니다.


"형 배고프지 않을까? 우리 아까 라면 먹은 지 좀 됐는데."


"...가서 불러와."


"응? 뭐라고?"


"아니야. 됐어. 자기가 배고프면 공물이라도 바치면서 오지 않겠어? 우리 둘끼리 맛있게 먹자."


맛있겠다! 슬리퍼를 훌러덩 벗으려다 레오나 누나의 눈빛이 보인 저는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레오나 누나는 식탁에 놓인 빈 수저를 치우고는 제 맞은편에 앉아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닭 다리를 세 개나 먹어서 그랬을까요. 어두우면 어디서나 잘 자버리는 저는 해가 져버리자마자 누나 집의 소파에서 자고 있다가 배가 아파 깨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상하리만큼 어둡다 싶었는데 거실이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켰습니다. 레오나 누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전의 기억을 곰곰이 떠올라보니 누나가 푹 쉬라며 이불을 덮어줬던 거 같기도 했습니다. 배가 아프니 이대로 화장실을 쓸까 했지만... 언젠가 레오나 누나가 숙녀의 집은 함부로 뒤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별수 없네. 이불을 정리한 저는 누나 집을 나서 그대로 형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레오나 누나의 말소리가 집에서부터 나왔습니다. 형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무슨 얘기지? 문 바로 앞에 바로 숨어 지켜보았습니다.




"·····이건 뭐 하는 뜻이야?"


"혹시, 눈이 어떻게 된 건 아니지?"


투덜거리는 형은 레오나 누나의 앞에서 비닐을 뜯었습니다. 아까 누나가 만들었던 닭볶음탕이었습니다.


"넌 진짜 그 입만 고치면 되는데."


"내 입이 뭐 어때서? 늘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잖아. 너야말로 라면 같은 거나 먹으니까 그리 말솜씨도 없는 거지."


"정말 입만 다물면 천사 같은데···"


형이 그런 말을 하자 레오나 누나는 입을 꾹 닫았습니다. 여기서는 누나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형의 시선은 닭볶음탕에 가 있었습니다.


"닭 다리 네 개네. 그래도 고마워. 매번 철남이 챙겨줘서... 솔직히 정말 혼자만 돌봐야 했으면 힘들었을 텐데."


"너 같은 남자에게 맡기면 되겠어? 너랑은 다르게 눈도 똘망똘망하고, 귀엽고, 보육원에서 공부도 제일 잘했는데. 망가지면 안 되잖아."


그러더니 형은 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제가 뭐라도 잘못이 있는 걸까요?


"은인한테 말이 너무하네. 정말."


"···고맙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


"됐어. 그 보육원 원장, 너 말고 다른 인간 선생님들에 아이들까지 추행하고 다녔다잖아. 나라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그게 말이 되냐면서 ··· 어쩌다 보니 일이 잘된 거뿐이야.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바이오로이드만 그랬다면 관심도 못 받았을 거고..."


"잘도 알아냈네. 온 적도 얼마 없으면서."


"...정말 어쩌다 보니 일 뿐이야. 인터넷에 올린 거 나라는 사실 진짜 비밀이야."


레오나 누나는 팔짱을 꼈습니다. 표정은 안 보이지만 한심한 표정 정도는 지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그 정도로 양심 없는 건 아니거든? 날 뭐로 보는 거야."


"... 실수 한 번"


"그래. 거기까지."


"...해서 소대원들과 함께 폐기될 뻔했다가 다행히 전투 모듈 반납으로 끝나고 여기에 와서 일하고 계시는..."


"저 컴퓨터, 좋은 거라 그랬지? 돈 더 보태서 새로 사는 게 좋겠네. 이왕 버릴 거 완벽하게 부숴서 버리는 게 낫겠어."


형과 누나는 다시 한번 옥신각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저렇게 싸웠는데 질리지도 않는 걸까요. 제가 어떻게 말하면 둘 다 그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그제야 문득 들었습니다.


"형, 나 일어났는데 화장..."


그때, 마우스를 잡고 싸우던 두 사람의 얼굴이 일제히 제 쪽으로 향해졌습니다. 또한 레오나 누나의 손가락이 왼쪽 버튼을 클릭했는지 딸깍 소리가 났습니다. 그제야 아까 형이 막 움직이던 것이 무엇인지 보였습니다.


컴퓨터에는 레오나 누나의 사진이 찍혀있었습니다. 원래도 이쁜 누나의 얼굴이었지만, 화면에는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더욱 이쁘게 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TV에서 보았던 연예인이나 잡지에 있는 모델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을 본 레오나 누나는 마우스를 내려놓더니 고개를 휙 돌리고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습니다. 형은 보여주면 안 되는 거라도 들킨 것처럼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상황에 무얼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저는 화장실에서 BJ 에키드나의 먹방을 보겠다며 형의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휴대폰을 빌려준 형은 잠시 쉬겠다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이 떠올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형이 레오나 누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한테 장난을 치는 건 상식이라고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데다가, 좋아하지 않으면 사진까지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레오나 누나가 저한테 잘해주자 저를 마구 혼내기도 했기까지 했으니.


그런데 레오나 누나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형은 못 봤던 것 같았지만, 누나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야, 쟨 진짜...!"


아무래도 일방(一方)은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레후 만화 보고 바이오로이드랑 인간이랑 즐겁게 살았다면 어떤 느낌일까? 같은 생각이 들어서 써봤음

솔직히 지금 너무 졸려서 이게 제대로 잘 적혔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있는 영상은 내가 좋아하는 밴드 노래인데 글 다 읽고 들으면 분위기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서 올려봤어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