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기는 제 2의 생명이다!  라는 말을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철충과의 전쟁이 한참인 지금 오르카 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은 모두 자신의 무기를 소중히 했다.


그리고 그것은 오르카 최고의 미친년으로 통하는 리제라 해도 다를 바 없었다.


출격 1시간 전, 자신의 해충 구제용 가위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을 깨달은 리제는 

그것을 찾으려 전 오르카 호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쾅]


“다프네? 여기 있던 내 가위 못 봤어?”


"꺅? 언니?!"


다프네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방문을 부수고 들어온 리제를 바라보았다.

핏발선 리제의 눈이 마구 번뜩이며 다프네의 방 안을 흝고 있었다.


“가위..가위! 못본거야? 어서 해충들을 썰어버려야 하는데!”


리제의 정신상태는 평소에도 불안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보였다. 

분노한 리제에게 압도되어 벌벌 떨던 다프네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없어..? 어딜 간거야! 설마..이 해충이!!”


초조한듯 잘근잘근 손톱을 씹던 리제가 무언가를 떠올린듯 고개를 확 쳐들었다.

그래, 그녀를 이렇게까지 골탕먹일 바이오로이드는 오르카 호에 몇 없었다.

그중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 리제의 눈에 살기가 떠올랐다.


“죽일거야!! 비겁한 해충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거칠게 방문을 닫은 리제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다프네는 아연한 표정으로 부숴저 덜렁거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2




리리스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씩씩거리는 리제를 바라보았다. 

통보는 커녕 인사도 하지 않고 들이닥친 리제는 ‘어디있는거야?’ ‘없어!’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방 안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없어! 없다고!”


“뭐야? 이 스토커, 주인님은 당연히 여기 없지! 대체 왜 컴패니언 숙소에서 주인님을 찾는거야?”


갑작스러운 리제의 습격에 리리스는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리제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리리스의 속옷 서랍 속까지 뒤지던 리제의 고개가 팩 들렸다. 


“흥,주인님이 아니라 가위를 찾는거야! 이 해충! 그걸 숨길만한 건 너밖에 없어!”


“뭐?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네 너덜너덜한 가위를 가져다 어디에 쓰겠다는 건데?”


“네 더러운 속을 내가 어떻게 알아! 이 해충이!!!”


이쯤 되니 리리스도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쉬는 날 아침부터 찾아와 난동을 피우질 않나, 

멀쩡한 바이오로이드를 도둑으로 몰지 않나…


“하? 더러운 속?”


리리스는 눈앞의 불청객을 날려버리기 위해 허리춤에서 블랙 맘바를 뽑아들었다.

그것을 본 리제 역시 '해보자는거지?' 라는 표정으로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잡히는 것은 없었다.


“칫..이 해충이!!”


헛손질을 하게 된 리제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리리스는 문득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나참, 주말 아침부터 이 바보랑 뭘 하는 짓이람. 저래선 쏠 수도 없잖아?’


리리스는 리제가 잘 볼 수 있도록 양손을 쭉 뻗어 그녀의 총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 모습을 본 리제가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쳤다.


“하아, 잘들어, 스토커? 네 무기는 여기 없어, 내가 가져갈 이유도 없고, 

네 잘난 측두엽을 조금만 굴리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텐데?”


리리스의 비아냥을 들은 리제는 발끈하려다 주변을 둘러보고는 침묵했다.

잘 정돈되어 있던 리리스의 방은 그녀로 인해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흥..네가 아니라고?”


“..그래, 이미 여러번 말한 거지만, 애초에 내가 그걸 가져갈 이유가 없다고!”


“그럼..어떤 해충이…?”


리리스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저 태도를 보면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문득 리제의 머릿속에 또 다른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요사스럽게 웃는 푸른 눈동자를 떠올린 리제의 날개가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야! 이건 다 정리하고 가야지!”


등 뒤로 따라붙는 리리스의 짜증을 무시한 채, 리제는 열린 문 밖으로 쏜살같이 날아가 버렸다.






3



“곧 주인의 식사를 준비할 시간인데, 여긴 무슨일로 오셨사옵니까?”


소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갑자기 들이닥쳐 주방을 뒤엎는 리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지휘 아래 깔끔하게 정리해둔 날붙이나 요리도구들이 바닥에 마구 뒤섞였다.


“너! 이 해충! 히히..맞아..네가 가져간거야!!”


“..무엇을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제양이 찾는 건 여기 없는것 같사옵니다.”


더 이상 주방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고 볼 수 만은 없었던 소완은 정중하지만 강압적인 동작으로 리제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식간에 뽑아든 중식도에서 섬뜩한 빛이 뿌려졌다.


“칫...요리사 해충년...날 막다니, 네가 가져간 게 맞는거지?”


무기만 있었더라면, 그렇게 생각한 리제는 타는 듯한 눈빛으로 소완을 노려보았다.

소완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요기를 흘리며 그녀의 눈빛을 받아쳤다.


일촉즉발의 상황, 두 바이오로이드가 격돌하기 바로 직전, 

주방을 가득 채운 둘의 살기는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잠재워졌다.


“어? 리제? 여기서 뭐 하는거야?”


“힉..어..언니?”


갑작스럽게 들려온 아쿠아와 사령관의 목소리에 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았다.

사령관과 함께 나타난 아쿠아의 손에는 리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녀의 가위가 들려 있었다.


“..! 아쿠아!!”


리제는 날듯이 뛰어가 그것을 아쿠아의 손에서 낚아챘다. 

다행히도 그녀의 가위는 상한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아니, 그것은 되려 더 날카롭고, 예리해져 있었다. 


“왜..아쿠아 네가 이걸 가지고 있던 거야?”


리제는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우물쭈물거리는 아쿠아를 내려다 보았다.


매일 언니들보다 유명해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쿠아였지만,

리제가 아는 아쿠아는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착한 아이였다.


그러니 당연히 아쿠아가 리제의 가위를 가져갈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리제의 시선을 느낀 아쿠아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언니가 잘 때 살짝 강화하고 했는데..그런데...”


“강화..?”


쌩뚱맞은 단어에 리제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쿠아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렸다.


“매번..언니가 해충들보다 약하다고…분하다고 그래서...흑..흑..흐어엉…."


어린아이 특유의 앳된 목소리로 웅얼거리던 아쿠아는 결국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미안, 리제.. 아쿠아가 가위를 가져와서 강화해 달라고 부탁했었거든…”


사령관은 그렇게 말하며 난감한 표정으로 리제와 울고 있는 아쿠아를 바라보았다. 


그래, 태생적으로 리제는 그녀의 연적들보다 훨씬 약했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완의 재빠른 몸놀림을 따라갈 수 없었고, 

가위날을 날카롭게 벼려도 리리스의 푸른 방어막을 뜷을 수는 없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쿠아는 늘 그녀의 언니를 안타까워 했다. 

아쿠아 자신도 약한 정원사 바이오로이드였기 때문에 충분히 리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쿠아는 리제가 잠든 사이, 

몰래 그녀의 가위를 가져가 사령관에게 그것을 강화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었다.

이것이 리제의 가위가 사라진 사건의 전말이였다.


“아쿠아..”


아쿠아는 그녀의 언니들이 자신보다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아이였다. 


잠시나마 그런 아쿠아를 의심했던 것이 부끄러워진 리제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위를 바닥에 내려놓고 아쿠아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리제답지 않은 다정한 모습에 사방에서 당황한 숨소리가 세어나왔다.


“괜찮아..”


사실은 리제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힘으로는 리리스와 소완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아쿠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전투가 아니더라도 주인님의 사랑을 받을 방법은 많은걸.."


하지만 리제는 아쿠아와 달리 한번도 그 사실에 절망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손이 부르트도록 화관을 만들어 주인에게 전달하거나,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넣은 초콜릿을 만들어 주인에게 선물하며 그녀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것은 무기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 이었다.


"흐윽..리제 언니..미안해.."


약하고, 어렸던 아쿠아는 그 방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자신의 가위를 가져간 것이었겠지,

하지만 언젠가 이 아이의 마음이 자라면, 아쿠아도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리제는 그렇게 믿으며 히끅거리는 아쿠아의 등을 천천히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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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이유는 이거.



리제 그래도 언니인데 자기 동생한테는 조금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쓴 글이야.

부족한 글 읽어줘서 늘 고마워

라붕이들 행복한 불금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