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폐하.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집무실을 나서려는 내 앞을 막아선 아르망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단호했다. 내 뒤에 서 있는 리리스와 마리 또한 그 얼굴을 보진 못 하지만, 보나마나 아르망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


"주인님...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부디 냉정하게 판단해 주세요. 모든 인간님들이 철충과 증후군의 여파로 죽은 지 오래인 지금, 갑작스레 무기를 들고 나타난 저 남자.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각하. 경호대장의 말이 옳습니다. 저 자의 신원조차 확실히 확보되지 않은 지금, 섣불리 각하께서 그 앞에 모습을 보이시는 것만큼 위험한 판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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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희 분대가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무성한 수풀에 집어삼켜진 녹슨 자동차의 댓수와, 무너져가는 콘크리트 건물의 철근의 가닥을 하나씩 세어가며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저 앞에 정말로 브라우니를 꼭 빼닮은 네다섯 명의 소총수들을 볼 수 있었어. 아니, 한 명은 다르게 생겼구나. 키도 좀 더 작고, 정말 큼직한 기관총을 들고 있군...


아마 저 야시시한 바디수트는 분명 이 저항군의 제식 전투복이겠지. 좋은건지 나쁜건지 과거에서 온 나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마땅한 전술적 연유가 있을테지.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소총의 탄창을 빼고 약실을 비우고 있으려니 그 사수가 내게 쫑쫑 다가오더라고.

찰랑이는 적색의 장발을 자랑하는 그녀는 자신을 T-3 레프리콘 모델, 현재 이 저항군 소속의 해군 정찰분대를 이끌고 있는 분대장이라고 소개했어.


레프리콘은 이미 나와 동행한 브라우니를 통해 나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본대인 오르카 사령부 또한 이쪽과 접촉하길 희망중이라고 말하더군.


무엇이든간, 그녀는 파우치에서 전자기기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어. 척 보아도 뉴욕에서 보던 물건이랑 비슷하게 생긴 것이 말야. 일종의 증강 현실... 역시나.


영롱한 푸른빛의 홀로그램이 투사기를 둘러싼 우리 앞에 펼쳐지고, 나는 처음으로 이 세계 인류의 마지막 희망과 대면할 수 있었어. 나는.







라붕이들이 사령관이라면 신원 미상의 남자를 어떻게 조치할지 갑자기 궁금해졌어. 호위병력을 단단히 대동하고 오르카 밖에 나와 직접 찾아올지, 아니면 무장을 해제시키고 오르카로 데리고 올지, 끌고 올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