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막막한 심정으로 눈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았다.

가끔씩 불어오는 선선한 바닷바람은 따가운 태양에 익은 이마를 차갑게 식혀줬고, 

수면 밑으로는 각양각색의 열대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절로 감탄이 나올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별로 감상할 맛이 나질 않는다.


"하아…."


"사령관…? 에밀리 때문이야?"


한숨을 푹 불어내자 안절부절해하던 에밀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어? 아냐아냐…"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불안해하는 에밀리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철충들이 점령한 광산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가장 고생했던 에밀리와 산책을 나온 것 까지는 좋았다.

늦봄의 날씨는 꽤나 따뜻했고, 

선선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제녹스에 걸터앉아 먹는 도시락의 맛을 더욱 좋게 만들었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맛있는 음식…

그건 완벽한 피크닉 그 자체였다.


"...분명 그랬는데 말이지."


나는 손에 들린 작은 유리병을 노려보았다.

이제는 텅 비어버린 병을 흔들자 희미하게 남아있던 과일향이 흘러나왔다.


"..아스널이 주는 음식은 앞으로 좀 더 조심해야 겠군..."


설마 사과주를 주스로 속였을 줄이야. 

단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것을 모두 에밀리에게 모두 양보했고, 

에밀리는 기뻐하며 병의 내용물을 모조리 비워 버렸다.

그리고 독한 과일주는 커녕 맥주조차 마셔보지 못한 에밀리가 쓰러져 5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망했네…"


나는 까치발을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뿐, 

오르카호는 커녕 낚싯배 비슷한 것 조차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멀리 떠내려 온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에밀리, 오르카 호로 돌아갈 수 있겠어?"


"음...잘 모르겠어..미안해 사령관…"


제녹스를 확인하던 에밀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제녹스에 오르카 호로 돌아가는 항로가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돌아갈 만큼 충분한 전력이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어쩌지…."


제녹스의 전력이 고갈되는 순간 나와 에밀리는 차가운 바다 아래로 가라 앉고 말겠지,

제녹스를 믿고 이대로 오르카 호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육지쪽으로 항로를 돌려, 오르카 호가 정박된 곳까지 걸어가야 할까?

고민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녹스의 전력은 착실히 줄어들고 있었다.


"..사령관, 저어기..육지가 보여…"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 에밀리가 내 옷자락을 잡고 흔들었다.

에밀리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아까는 보이지 않던 모래사장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아..어쩔수 없겠네..에밀리? 부탁할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던 나는 제녹스를 타고 희미하게 보이는 육지를 향해 항해하기 시작했다.







2



인간들이 모두 멸종한 2202년의 바닷가는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을 띄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위에는 주인 잃은 차나 파라솔 같은 것들이 이정표처럼 세워져 있었고, 

이제 막 저물어가는 태양이 그 모든 것들을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주변을 충분히 살핀 우리는 뭍으로 올라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다행히 철충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세월이 흐른 탓에 조금 상하긴 했지만, 도로도 잘 닦여 있어 걷기 불편하지도 않았다.


"…."


다만….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에밀리는 정말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불행히도 말주변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4시간 내내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더니 돌아버릴 것 같구만.'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는 에밀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몸을 움찔 떤 에밀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령관...이제 2시간만 더 걸으면 돼...."


"...응.."


그것 참 눈물나게 반가운 말이네, 4시간 걸은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앞으로 2시간 추가라… 


물론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한 신체 덕분에 육체적으로 지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는 것은 정신적인 피로를 불러왔다.


그렇다고 난생 처음으로 숙취와 두통에 시달리는 에밀리를 재촉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에밀리에게 시덥지 않은 대화를 거는 대신 라비아타와 콘스탄챠에게 

할 변명거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2시간 정도라 했지? 돌아가면 확실히 11시는 넘겠네.

저녁 늦게까지는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 그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일수도…


어떻게든 둘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걷고 있던 그때,


"..관!!사령관!!!!뒤!!"


답지 않게 다급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태양을 모두 덮을만큼 거대한 그림자를 본 내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런 망할..."


뒤틀린 채 양쪽으로 쭉 뻗은 손과 그 손에 들린 섬뜩한 낫,

뒤로 뻗은 두쌍의 날개가 저물어가는 태양을 가린 채 오만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어째서 저렇게 커다란게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크게 소리쳤다.


“에밀리!! 쏴버려!!”


“응!”


순식간에 달아오른 제녹스의 포신이 푸른 빛을 토해냈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에 얻어맞은 네스트가 끼이익하는 괴이한 소리를 내며 휘청거렸다.


“도망가자!”


에밀리 혼자서 저 괴물을 쓰러트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도망치는 것이 훨씬 생존 확률이 높을 것이라 생각한 나는, 

에밀리를 낚아채고 눈여겨 보고 있던 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빙고! 잭팟이네!”


덜렁거리는 성격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던 전 주인에게 감사하며, 

열쇠 구멍에 꽂혀 있던 키를 힘껏 돌렸다.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자동차가 배기음을 뿜으며 으르렁 거린다.

엑셀을 밟자, 모래사장에 파묻혀 있던 차가 튀어나가며 온몸이 덜컹거렸다.


“가자!!”


슬쩍 뒤를 돌아보자 네스트의 손 끝에 검은 가시가 맺히고 있었다.

저 가시에 찔리면 따끔한 것 정도로 끝나지는 않겠지.  


“에밀리!! 버스터 캐논을 부탁해!!”


“...응!”


조수석에 비스듬히 앉아 있던 에밀리가 침착하게 제녹스를 들고 네스트를 겨눴다.

아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에너지가 제녹스 끝에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제녹스의 충전 속도는 너무 느렸다.

나는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검은 가시를 보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에밀리! 꽉 잡아!!”


“...!!”


핸들을 확 꺾자, 아스팔트와 마찰을 일으킨 바퀴가 비명을 지르며 불꽃을 튀겼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반쯤 뒤집혔다. 

검은 가시가 간발의 차로 머리 위를 지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 엑셀을 밟아 네스트와 거리를 벌렸다.


“사령관…”


"응?"


난감해하는 에밀리의 표정을 보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방금의 충격 탓인지 몰라도, 제녹스의 포신에 맻혀있던 에너지가 사라져 있었다.


[끼이이이익!!]


"으아아악!!"


게다가 공격이 빗나간 것에 분노한 네스트의 입에 붉은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에밀리도 질세라 다시 제녹스를 충전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네스트가 훨씬 빨랐다.


체크메이트, 빠져나갈 구멍 따위는 없었다.

죽음을 직감한 나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해 비명을 지르며 핸들을 마구잡이로 꺾었다.


"...사령관은..내가 지켜…"


그러나 붉은 광선이 쏘아지기 직전, 

조수석에 박혀있던 검은 가시를 뽑아든 에밀리가 그것을 자신의 몸에 힘껏 꽂아넣었다.


콰직하고 살이 터져나가는 소리와 동시에 에밀리의 몸에서 푸른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주입된 에너지를 버티지 못한 제녹스가 비명을 지르며 그것을 토해냈다.


[쿠구구구]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푸른 에너지의 강이 네스트의 몸에 작렬했다. 

전에 없이 강력한 공격에 얻어맞은 네스트의 몸이 구운 오징어처럼 오그라들었다.


"사령관 한테...까불지..마.."


손바닥이 벗겨져 피가 나고 있는 와중에도 에밀리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로 강렬한 빛에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잠시 뒤 빛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에밀리의 몸이 풀썩 무너져 내렸다.


"에밀리!!"


"사령관… 이 정도는 괜찮아.."


내 비명소리에 슬쩍 눈을 뜬 에밀리가 시끄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휴, 놀래라, 그냥 지쳐 쓰러진 거였구나.


"에밀리...지켜줘서 고마워.."


괜히 멋쩍어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까지 남을 지킨다라...

나라면 엄두도 못냈을 일을 해낸 에밀리가 세삼 대단해 보였다.


"아냐 당연한거야...아스널 대장이 사령관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했어."


하지만 에밀리는 당연하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보니 '세상에 남은 마지막 인간' 이자 '사령관'인 내 직책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 내가 열심히 노력해야 이 아이들이 고통받지 않고,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겠지.


"...그래도, 고마워."


나는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엑셀을 밟았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저 먼 곳에 정박되어 있는 오르카호가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잠든 에밀리가 천천히 일어날수 있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깨웠다.


"어서 집에 가자, 에밀리."


"응..사령관."


집에 돌아온 것 같은 안정감을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자동차의 속도를 높였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달빛이 우리들의 집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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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이유



전에 쓴 글 문학으로 개추 많이 받은게 너무 고마워서 호다닥 단편 하나 더 써왔어.

부족한 글인데 재미있게 읽어주고 좋아해줘서 고마워.

라붕이들 주말 잘 보내.


쓴 글 모음 -

https://arca.live/b/lastorigin/20308059?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