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보러가기


  나른하면서도 개운한 기분이 좋아 좀더 자려고 했던 아스널은 무심고 뒤척인 다리와 팔에 치이는 콘돔들과 휴지조각들이 거슬려 결국 밤새도록 치뤘던 거사의 흔적들을 정리하기 위해 침대에서 몰래 일어났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 곳곳엔 정액이 말라붙은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있는 그녀의 남편인 철붕을 두고 아스널은 침실을 나와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체위를 바꾸고 장소를바꿔가며 밤새도록 해댄 탓인지 침실 안은 뭔가 질척한 액체가 밟히거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편이 어제 마셨던 술냄새도 약간 섞인것같다. 밤새도록 흘린 땀과 정액, 침냄새가 섞이고 거기에다가 미세한 방향제 냄새.


  좀더 자도록 두고 나중에 환기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 아스널은 방안에 어질러져있는 옷가지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속옷, 바지, 셔츠, 치마, 양말, 부츠....어제의 코스프레 플레이 의상들과 철붕의 양복을 따로 구분해 세탁 바구니에 넣고 거실로 나가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아직 추운 겨울이라 거실로 나가자 한기가 몰려와 대충 앞치마를 걸치고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의 피곤함이 남아있던건지 정신없이 해대고 잠깐 졸았더니 해는 이미 중천을 가르키고 있었다. 수납장 안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꺼내 냄비에 물을 올리고 식은밥을 데워 양푼이에 나물과 고추장, 참기름을 넣고 뜨거워진 밥을 넣어 쓱쓱 비벼 식탁에 올리고 다 끓은 라면을 냄비 받침대에 올리자 브런치의 냄새를 맡은 철붕이 드로즈 한장만을 걸친채로 식탁에 앉았다.


  옆구리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식탁으로 느릿느릿 기어오는 철붕이 입은 드로즈는 아침발기가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빳빳하게 텐트를 친 철붕의 프링글스는 그 크기를 과시하듯 드로즈의 허벅지를 삐져나온것을 보며 아스널은 식욕다음으로 끓어오르려 하는 성욕을 잠시 뒤로 하고 아침인사를 겸하는 잔소리를 건냈다.


"이불 정리 했어?, 환기는 시켜놨고?"


  대답대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철붕을 두고 굳이 다시 침실로 들어가 확인을 하고 나온 아스널은 잘 정돈된 침실을 보며 만족한 표정으로 식탁으로 돌아와 브런치 식사를 재개했다.


"진순이야?"

"응"

"선넘네"

"누가 늦게 일어나래?"


  두사람다 바쁜 회사생활을 보내봤던 경력이 있던지라 인스턴트 라면을 즐겨먹었었지만 그중에서도 라면취향은 극단적으로 갈렸다. 그래서 매번 같이 장을 보러가면 매운맛 라면과 순한맛 라면을 두고 싸우기 일쑤였다. 결혼한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신혼부부였지만 두사람은 마음만큼은 이미 XX년차 부부였다.


  회사에서 엎치락 뒤치락 싸우다가 정이 들어 결혼까지 이어졌으니 못볼꼴까지 다 봤다고 해야할까. 이제와서 다소곳한 새댁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이미 회사에서 보여줬던 모습들이 있어 그러기도 곤란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니 이제와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진 아스널은 양푼이에 담긴 비빔밥을 좀더 그럴듯한 그릇에 옮겨담을까 생각했다. 자기 얼굴보다 큰 양푼이에 숟가락을 쑤셔박아 아무렇게나 비벼진 비빔밥을 먹어치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결혼생활에 대한 낭만이 깨질래야 깨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설거지거리를 만들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판단이 미스인건가 하며 얼마 남지 않은 비빔밥을 얼른 먹어치우고 식탁에서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양푼이 안으로 철붕의 숟가락이 들어왔다.


"비빔밥은 양푼이에 비벼먹는게 더 맛있어"

"....응"

"나물은 당신이 무친거야?"


  눈앞의 남자가 이젠 물러터진 유부남이 되었다며 방심했던 탓일까, 오르카 컴퍼니에서 제일가는 프링글스라고 놀리다보니 수술실의 메스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한 철붕의 눈칫밥을 잊어버려 한방 먹었다며 속으로 자조하며 오늘따라 이 남자가 더더욱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생각이 든 그녀는 괜히 침대위에 있던 콘돔박스를 치워버렸나 후회했다.


"사과깎아줄까?"

"껍질은 다 깎아줘"


  신문을 읽다가, 영화채널에 눈요기 거리가 되는 액션영화를 틀어놓고 과일을 먹다가도 액션 배우가 미녀 여주인공과 배드신을 보이는 장면이 나오면 괜시리 채널을 돌리려는 철붕을 제지하고 여자의 신음소리가 최대로 들리도록 볼륨을 키워놓고 그대로 소파 옆 선반에 놓아둔 콘돔을 꺼내 소파에서 바로 섹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겸, 무료한 주말을 달래는 겸, 매일 가던 헬스장의 운동기구를 대신하여 아스널은 점심배가 꺼질때까지 철붕의 위에 올라타 그의 프링글스를 끝까지 집어넣고 사정을 재촉하는 격렬한 전투섹스가 아닌 담백하고 순한맛의 섹스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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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는 카페에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고급 아파트에 딸린 상가에는 갖가지 편의 시설이 존재했다. PC방, 카페, 사우나....온갖 편의시설이 들어선 그곳은 주말이 되면 오르카 컴퍼니의 사원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 앉아있는 카페는 주말이 되면 PC방으로 놀러간 남편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했다.


  오늘은 유달리 구면이 많은 날이다. 레오나와 마리, 아스널에다가 칸...그리고 용과 메이까지...어느새 오르카 컴퍼니의 화려한 과거를 장식했던 인물들이 전부 모여들었다. 지금 이 모습이 오르카 컴퍼니에서 재현되었다면 지나다니는 개미 조차도 숨을 죽이며 눈치를 봤을것다.


  "철붕씨는?"

"사우나에서 씻고 PC방에서 놀고있겠지....좀있다가 데리러갈 생각이야, 메이는 왜 졸고있어?"

"어제 남편이 재워주질 않았다나"


  자리에 모인 그녀들 모두가 얼굴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것을 보아하니 다들 비슷한 아침을 맞이했으리라 아스널은 짐작했다. 사랑을 받으면 변한다고 했던가, 예전에 그 날카로운 눈빛들은 어디가고 이젠 한껏 풀어진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야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때우는 모습이 전형적인 아줌마들의 모습이었다.


  "자 이거봐, 우리 남편들이 자주 하는 게임에 우리하고 닮은 애들이 있다니까?"

"어머...우리 남편은 인공영웅 하던데?...이거 나하고 닮았네?"

"그러니까!!, 이거 찾아보니까 코스프레 의상도 있던데 우리 저번에 계모임하고 남은돈 계산하니까 한벌씩 사면 딱맞다니까!"


  자리에 모인 그녀들은 자신들과 똑닮은 캐릭터들이 입고있는 코스프레 의상의 가격을 알아보느라 정신없었다. 아스널의 적극적인 주도아래 착착 준비되어가고 있는 계획은 코스프레 플레이에서 남편들의 만족스러운 밤자리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이거 효과가 좋던데, 한번 사보는게 어때?"

"...우리남편은 이거 없이도 절륜하거든?"

"쌀가마2개로 하루종일 스쿼드 하고도 체력이 넘치는 남편을 생각해보라니까"

"뭐...나쁘진 않네"

"마리랑 칸도 봐봐, 너희 남편 좀 부드러운면이 있잖아? 그 모습에서 나오는 야성적이고 격렬한 섹스...궁금하지?"

"...그렇군"

"나...난 그런것 관심없다 내 낭군님에게 이상한것을 먹이려 한다니..."

"으음....뭔데? 뭔데? 왜 나만 빼놓고 이야기해!"


  그중에서도 아스널과 레오나의 대화가 독보적이었다. 꾸벅꾸벅 졸고있는 메이를 제외한 전원이 이 대화에 관심없는척 하면서도 가지고있던 휴대폰으로 자신과 똑 닮은 캐릭터를 검색해 의상을 둘러보거나 자양강장제를 검색했다.


"이번에 영양사 소완조리장이 철경씨하고 결혼하면서 퇴사했잖아...그리고 식품회사를 차렸는데 글쎄 이게 대박이 났다니까? 자양강장제가 어찌나 불티나게 팔리는지...따로 연락해서 비축분을 주문안하면 구하질 못한다니까??"

"소완 조리장의 소식은 들었소, 벌써 회사를 상장시킬 준비를 하고있다고 들었네만"


  레오나는 은퇴한 소완이 설립한 식품회사의 주력상품인 자양강장제를 샘플로 몇개정도 꺼내 그녀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밤자리 영상을 보여주는데, 자신의 여동생 발키리가 정액투성이가 되어 침대에 기진맥진해 널브러져있고 레오나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남편 철식에게 범해지고 있었다.


  "발키리네?, 너희 이제 완전히 합의한거야?"

"뭐 어쩌겠어, 발키리도 달링이 좋다는데 여동생을 쳐낼수가 있어야지"


  듣기로는 레오나와 철식, 발키리 이 셋사이에서 치정싸움이 있었다는데 결국 셋이서 같이 살기로 한 모양이었다. 소문인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소완이랑 내가 친하니까 특별히 알려주는거야...나랑 발키리를 떡실신 시키고도 멀쩡해서 달링꺼 밤새 달래주느라 나랑 발키리가 얼마나 애먹었는지 알아? 아직도 입술이 얼얼한것같아"


  영상속 발키리와 레오나는 틈만 나면 철식의 것에 얼굴을 묻고 애무하다가도 이따금 그를 도발하듯 서로 혀를 섞으며 그를 흘겨보았다. 체력이 딸리니 계속해서 원해오기를 종용하는듯한 애무를 하는 영상이 6시간 내내 이어졌으니 반정도는 그녀의 말을 믿어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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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랑 발키리 이야기...알고있었어?"

"둘이 같이 살기로 했던거?, 정말로 그렇게 하고있대?"


저녁식사후 철붕은 철식네를 떠들썩 하게 했던 치정극의 결말을 전해들었다. 아스널은 저녁준비후 간단하게 마실것을 준비하고 있었고 철붕은 거실에서 TV를 보며 잘준비를 하고 있었다.


  "뭐 어쩌겠어, 발키리씨가 그렇게 걔가 좋다고 레오나에게 울고불며 매달렸는데....레오나씨가 많이 참은걸지도 모르지"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꺼야?"


아뿔싸 하는 표정으로 아스널을 쳐다본 철붕은 그녀의 흥미진진한 표정뒤에 숨은 기대감에 어떻게 부흥해줘야 하나 일순간 망설였다.


"...당신이 세상에 두명일리가 없잖아?"

"뭐....좋아, 일단은 합격이야"

"....뭐가?"

"그건 그렇고 이거 마셔봐, 레오나한테서 얻은건데...자기전에 마셔두면 지방분해가 잘되게해주는 차라고 하나봐"

"어...어..."


  아스널의 거친 생각과, 철붕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그녀.


"오늘밤도 중파시켜 줄꺼지?"


펑퍼짐한 파자마를 찢고나올듯한 철붕의 프링글스를 보며 아스널은 콘돔박스를 열며 싱긋 웃었다.


그날밤 스마트 조이 캐슬에 접수된 층간소음 신고를 한것은 총 6세대 였고, 다음날 오르카 컴퍼니에는 6명의 결근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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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아타는 가장 아름다운 바이오로이드이며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