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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 외전


버튼의 무게, 생명의 무게 : 전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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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니-2054의 시신은 관습에 따라 화장 후 바다에 뿌려졌으며,

예외적으로 오르카호의 빈 방에 금속 골격을 항아리에 담아 안치시켰다.


이번 긴급 사태가 종료됨에 따라 그녀의 계급 특진도 이뤄질 것이다.


또한, 닥터의 보고 내용을 바탕으로 회의가 한 번 더 이뤄졌으며,

메이, 세이렌, 마리, 레오나, 칸 등의 일부 지휘관에게만 철충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렸다.


"철충이라니, 믿기지가 않는 군"


닥터의 보고 도중, 철충 바이러스의 존재가 드러나자 칸이 보인 반응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표정을 보건대, 칸과 감상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단 한 사람, 메이를 제외하고는.


"메이?"


"어어어어어어,응?"


걱정되어 그녀를 부르자 한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메이 정신차리라고. 뭐, 보고 내용이 어처구니 없는 건 동감하지만"


"...응"


칸의 쏘아붙이는 말에도 별 다른 대꾸도 못하는 메이. 마치 얼이 빠진 듯한 반응에 걱정만 더해진다.

마음 같아서는 쉬라고 하고 싶지만, 입장상 그러지도 못하고.


"닥터씨의 감식 결과대로라면, 일련의 사건은 사령관님의 신체가 연루되어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거군요"


"응, 오빠는 우리와 합류하기 이전의 기억이 말소 된 상태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 같지만 확률로써는 상당히 높아 보여"


"이 일은 우리 선에서 묻어두는 편이 낫겠어. 그럴 놈들이야 적겠지만 괜히 사령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길 수도 있겠군"


그러한 걱정 때문에 원래는 지휘관 클래스에게 알리는 것도 말리던 닥터였지만, 나의 판단으로 공표하게 되었다.


"맞아, 1급비밀로 취급될 거야. 누설했다가는 깜빵 보낼 거니까 각오하라고"


"야 닥터..."


단어선택과는 다르게 진지함이 묻어 나오는 어투로 그렇게 말하는 닥터.

주의를 주려고 하는데 마리가 끼어든다.


"이의는 없습니다... 그것보다 계속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닥터에게 재촉하듯 그렇게 말했다.


"아아, 그래 알았어"


닥터가 설명을 재개한다.


"감염균은 햇빛이나 생물의 살에서 영양분을 얻지 못하면 단시간에 죽고, 그대로 분해 되어버려. 여기까진 저번 보고 내용에도 간략하게 적혀있었고"


화면에 표시 된 자료 화면을 넘기는 그녀.


"현미경으로 움직임을 살펴 본 결과, 이놈들은 수천만에서 수억 개체가 집단을 이뤄서 행동해. 마치 멸망전의... 개미와도 같이 말이지"


화면에 표기된 텍스트를 가리키는 닥터.


"요는 번식력이야. 급속도로 분열해서 증식되는 형태로 수를 불려가면서, 감염 된 신체 내에서 바이러스들끼리 곧잘 내분이 일어나지. 이 내분에서 진 철충 바이러스는 외부로 배출되고, 그 과정에서 우연히 다른 생물의 체내에 침투가 가능해지면... 그 반복이야. 아마 다른 생물에 집착하는 거는 새로이 정착 할 장소를 찾기위한 거겠지"


"생명에 집착하는 이유랑도 연관이 있는 거야?"


"맞아, 기생충을 예로 드는 게 더 설명이 편할 것 같은데, 레오코클로리디움 파라독섬이라는 녀석이야"


참고자료가 메인 스크린에 표시된다.


"...이건?"

주위를 보니 다른 아이들도 표정을 흐리고 있다.

참고 자료로 띄워진 사진은 달팽이였는데, 두 눈이 몸통만큼이나 비대해진데다 기분나쁜 색감으로 알록달록 물들어 있어, 혐오감을 자극했다.


"달팽이의 몸에 기생해서 새에게 먹히도록 유도하는 기생충이야. 온 몸의 신경을 교란시켜 탁 트인 곳으로 가게끔 만든 다음, 달팽이 째로 먹혀서 최종적으로 새 뱃속으로 이동. 그 안에서 번식하는 녀석이지."


이 외에도 비슷한 류의 기생충은 많지만 사진은 생략할게- 라고 그녀가 말하자 다들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감염균이 감염체 신체의 온갖 신경이나 뇌를 장악하고, 조종하고 있다고 말하는 거야?"


"단언은 못하지만, 그 가능성이 커. 감염체들이 죽여달라고 말 한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행동은 말이랑 상반되니까"


"사격에 민감하게 반응 했었지 아마"


"아무튼 저런 기생충과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서, 내가 세운 가설은 이거야"


그녀의 설명에 따라 텍스트를 읽어가던 나는 한 단어를 포착했다.


"공생이라고?"


"응, 감염된 신체 내에서 감염균끼리의 다툼이 어느 정도 안정화 되고, 집단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면, 신체와의 공존을 위해 생명 활동을 중지 시키지 않는 선에서 신체를 파먹는 거지. 즉, 공생관계를 이룩했다는 가설"


"확실히, 일리 있는 가설이군요"

마리가 자료를 유심히 바라보며 말을 흘린다.


"A-39 대원의 신체에서도 어느 정도 비슷한 징후가 보였어. 감염체는 아마 실험용으로 오리진 더스트의 성능을 재생 능력에 집중 시켰을 꺼야. 그래서 감염균에도 견딜 수 있었겠지만, A-39대원은 달랐어"


닥터가 개인용 단말의 자료를 메인 단말로 옮기며 말했다.


"감염체에게 그러했듯, 살과 주요 장기를 먹어 치운 철충 바이러스에 의해 A-39대원의 생명 활동은 정지하기에 이르렀고, 더 이상 재생이 되지 않자, 하나 하나의 바이러스가 자신의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내분이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걸 확인 가능했지"


전송이 완료 된 자료를 메인 단말에 띄운다.


"바리케이트 너머로 열선감지기를 이용해 감염체가 외부로 배출하고 있는 바이러스의 양을 추산해서 A-39대원에서 배출되고 있던 바이러스의 양과 비교 한 그래프야"


"...가설이 맞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군"

칸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뒤, 닥터에게 질문한다.


"감염체들에 의해 AGS가 오류를 일으킨 원인은 알아냈나?"


"그건...아직이야. 기간테스의 회로를 조사해봐도 일시적인 오류인지 문제가 전혀 없었어"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군. 문제가 없었다면 다른 AGS들도 투입 해볼 가치는 있겠어"

턱에 손을 대고 생각에 빠진듯 그렇게 추측하는 칸의 말을 닥터가 부정했다.


"우연의 일치는 아닐 거야. 보고서 뒷 부분에도 적어놨지만, 기간테스 조사 이후 나도 칸이랑 같은 생각으로 펍 헤드 세 기 정도를 투입 시켜봤는데 결과는 똑같았어"


"...AGS는 현재로썬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군"

일이 풀리지 않음에 미간을 찌푸리는 칸.


"응...아무튼, 좀 더 확실히 알려면 감염체를 생포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방호복 생명유지 장치 안전성 검사가 완료되는 대로 스쿼드를 꾸려서 내부 탐색 및 감염체를..."


"자세한 보고 감사합니다, 닥터.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마리가 단호한 어조로 뇌까린다.


"뭐...? 하지만 백신을..."


"상대가 철충에 연관 된 존재인 게 확실해진 겁니다. 대응 방법은 하나 뿐일겁니다"

그녀의 말에 메이가 날카롭게 반응한다.


"뭐어? 백수 년 살아서 노망난 건 알겠지만 헛소리 좀 작작해줄래?"


"메이씨...! 말을 고르세요"


"가만있어봐 세이렌, 감염균의 정체가 무엇이던 간에 감염체들이 피해자인 거에 변함은 없어. 그리고 감염균 조차 철충 바이러스를 포함하고 있다 뿐이지 완전 별개의 생물에 불과해. 닥터가 보고할 때 졸고있던 거 아니야?"


메이의 반박에도 마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요?"


"뭐야?"


"감염균은 감염체의 뇌와 신경을 장악하고 있을 것이다, 닥터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틀립니까?"

닥터에게 확인차 시선을 보내는 마리.

"...맞아"

그런 그녀에게 닥터가 긍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신경을 장악해서 멋대로 조종하는 특성..."

확신에 차 그렇게 말하는 마리.


"닥터가 나열 한 기생충이라는 놈들보다 우리에겐 더 친숙한 놈들이 있지 않습니까?"

메이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철충에 감염 된 AGS를 수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신경과 뇌의 일부분이 감염균으로 대체 된 그녀들을 구할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리고 메이의 이성의 끈이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다.


"말 같잖은 소리 집어치워! 그딴 섣부른 속단으로 감염체를 철충이랑 같은 선상에 두겠다고?"


"그럼 외에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닥터가 말 한대로 감염체 생포 후 조사를 진행해서 확실하게..."


"맞아 메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백신을...레오나?"


본인의 말을 다른 누구도 아닌 레오나가 긍정한 것에 대해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메이.

마리도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마리, 너는 저번에 내 의견에 동의했잖아?"


"레오나 그건..."


"너 설마 저번에 했던 그 얘기 아직도..."


"아직도 가 아니야. 내 생각은 앞으로도 변함없어"


"응? 응? 뭐야 무슨 얘기야"


저번 회의의 회의록을 아직 확인하지 않았는지 닥터는 모르는 눈치다.

"저번 회의 때..."

그런 닥터에게 내가 귓속말로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예상대로 그다지 놀라지 않는 닥터.

그녀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메이, 감염체를 조사해서 백신을 확보하자는 것 까진 니 의견과 변함없어"


"말 장난 치지마!"


흥분을 가라앉히듯 숨을 몇 번이고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는 메이.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레오나에게 꽂힌다.


"저번에는 마리 때문에 그냥 듣고만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말해야겠어, 확실히 철충과 비교하면 우리 전력은 하잘것없는 수준인 건 맞아. 수단을 가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란 점도 어느 정도 동의해"


"그러면 문제될 건..."


"아니! 딱 잘라 말해서 윤리라는 단어를 들먹이기도 부끄러워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귀축스러운 계획이야"


"..."


지금까지 쭉 단말기만 쳐다보던 레오나가 처음으로 메이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녀의 시선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구출을 우선해야 한다는 둥 이상론을 읊는 건 나도 그만두겠어. 마리 말 대로 만약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녀석들을 적어도 편하게 해줘야겠다고도 생각해. 하지만"


레오나의 시선을 맞받아치며 메이가 뇌까렸다.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서 우리 목숨을 부지하는 거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해. 그렇게밖에 살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이 목숨 버리고 말아"


목숨을 버린다. 그 말에 레오나가 민감하게 반응한 듯 회의실 내 공기가 진동한다. 레오나가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것이 얼마만일까.


"메이"


"뭐...뭔데"


"방금 그 말, 사령관에게도 할 수 있어?"


"잠깐만 레오나?"

내가 당황해서 말을 건다. 메이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번 기회를 이용했으면 피할 수 있었을 위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전멸 위기가 닥쳤을 때, 사령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레오나 진정하고"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팔짱을 낀 그녀는 완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라고 무작정 감염체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야. 철충들이 기피하는 이유에 그녀들 본인이 필요 없다면 네가 말한 그 귀축스러운 계획도 조금은 인간미를 되찾겠지"


"...궤변이야. 결국 필요하다면 감염체들 본인마저 이용해먹겠다는 방향성 자체는 변함없잖아"


"어디까지나 인간성, 윤리, 정작 그 말을 만든 인간 놈들은 전혀 지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너희 모두가 더 중요해. 우리 부대원들이 중요하고. 사령관이 중요해. 그리고 중요한 걸 지키기 위해선, 선택을 해야 돼. 안타깝게도 철충과 함께 우리만 남겨진 이 세상은 우리가 입맛에 맞는 선택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냥하지 않아"


레오나의 눈이 슬픔. 아니, 분노에 물든다.

그 때의 아픔을 떠올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메이.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소중한 걸 잃어 본적이 없기 때문이야"


"...려"


"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메이가 무슨 말을 하였다. 레오나에게도 잘 들리지 않았는지 되묻는 그녀.


"틀려...! 잃어본 적이 없긴 누가!"


얼굴을 든 메이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선택? 그래 맞아! 선택 따위 지긋지긋해! 그 빌어먹을 선택에서 도망친 덕에 난 모든 걸 다 잃었었어!"


우리와 공유되지 않은 옛 기억. 메이의 눈에 비춰진 것은 그녀가 오르카호에 합류하기 전의 시간.

그녀의 눈은 레오나를 뜨겁게 노려보았지만, 레오나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 했다.


"인간 놈들이 비열하다고? 알아! 어디까지나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바이오로이드를 물건 취급 하면서 자기네들끼리도 백해무익한 전쟁이나 할 정도로 어리석은 놈들이야!"


그래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라며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우리는 그래선 안돼! 우리가 만들 세상은 그렇게 추악해선 안돼! 적어도 우리의 눈이 닿는, 손이 닿는 범위 내에선 그런 추악....한 행위가 있어선 안 된다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메이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리 레오나라도 그런 그녀에게 돌려줄 말을 찾지는 못했고,


회의는 그렇게 어수선함 속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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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어제 저녁에 올리기로 했었는데 죄송함다

술 취해서 골골대다 이제 일어나서 올림


다음 화도 이틀 뒤 저녁에 올릴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