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놓쳤던 게 있는데….

아… 맞다. 시발”

 

폭풍 같았던 오늘 하루 중 처음으로 본 평화로운 풍경이어서 그랬었나? 나도 마음이 좀 풀렸었던 거 같다. 코코 같은 어린아이들을 보니 불현듯 맨 처음 봤었던 더치걸들이 떠올랐다. 내가 미쳤지. 쉬기는 개뿔. 저렇게 자는 모습이 가장 어울리는 아이들을 말로 쓰기도 싫은 그 공간에다가 처박아 놓았던 것이 생각났다. 문 양 옆으로 자신의 자매기였던 아이들의 팔다리가 피를 뚝뚝 흘리며 가지런히 놓여있는 곳에 가둬두고 온지 벌써 12시간이 넘었다. 내가 나쁜 놈이다. 그래 시발 내가 나쁜 새끼다.

 

더치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패널로 리리스를 호출했다. 호출 버튼을 몇 번이고 눌렀더니 손가락이 아파올 지경이다. 좀 침착하게 할걸. 버튼을 누른지 15초도 채 되지 않아 사령관실 문 밖에서 거친 호흡소리가 들렸다.

 

“…! 브…블랙 리리스. 도착했습니다.”

 

내가 직접 문을 열자 어떻게든 호흡을 가다듬으며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아 고개를 숙이는 리리스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이 아이에게 내가 달라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으니 호출 경고음이 미친 듯이 울렸을 때 아마 거의 패닉 상태였을 거다. 그 새끼 같은 놈이 이렇게 호출했다면 무슨 짓을 했을지 뻔하니까. 아마 자신을 반죽음 상태까지 때렸거나, 아니면 그 거대한 음경으로 자신의 자매들이 내장이 쑤셔져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했을 거다. 아니면... 뭐 더 심한 짓을 했거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 새끼의 창의력을 따라갈 수 없느끼. 안쓰러운 녀석. 앞으로 내가 있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거다.

 

“내가 너무 급하게 불렀나 보구나. 일단 방에 와서 한숨 돌리렴.”

 

“…네?... 아… 알겠습니다.”

 

아마도 처음 받아볼 호의에 리리스는 내가 봐도 눈치챌 정도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가지고 온 로자 아줄은 내 말이 있고 난 뒤 웅웅거림을 멈췄다. 오늘 하루에만 수십 가지 눈동자를 봐왔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아름다운 호박색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아마 가만히 두면 계속 복도에서 헐떡거리고 있겠지. 좀 과격하긴 했지만, 내가 직접 등을 밀고 사령관실 안으로 리리스를 밀어넣었다. 맘 같아서는 저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공주님 안기로 소파에 가져다 놓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무서워서 기절할지도 모르니 나름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애정 표현이었던 셈이다. 넓은 사령관실을 또각또각 소리가 나게 걸으며 안으로 들어온 리리스는 사령관실 중앙에 놓여있던 커다란 소파의 끄트머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물이라도 떠다 줄 생각으로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다.

 

‘후우…생각해보자. 나는 지금 비밀의 방이 어디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을 못해. 미친 듯이 도망치다가 발키리를 만났고, 그 때부터 정신줄을 놓았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 그래서 리리스를 불렀고…그래 리리스에게 다시 비밀의 방이 어딘지 물어보려고 불렀던 거였지?’

 

‘그냥 아무나 부르지 그랬어. 쟤가 비밀의 방 갈 때 얼마나 몸을 떨고 있었는지 기억 안나?’

 

‘아니 더치걸 생각이 들자마자 리리스 밖에 생각이 안 났는데 어떻게. 그럼 기껏 열심히 달려온 애를 보고 그냥 가라고 할까? 나 혼자 비밀의 방 어디 있었는지 찾고 다녀? 아무나 부르면, 걔들은 비밀의 방 트라우마 없었겠어?’

 

물을 떠다 주는 그 짧은 사이에도 내 머리 속에서는 이미 몇 명이나 되는 내가 토론을 하고 있었다. 리리스를 부른 게 옳은 선택이었나? 비밀의 방이 어디있었나? 키르케랑 더치걸들은 지금도 거기 있는 게 확실한가? 온갖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일단 리리스를 불렀으니 마음을 다잡고 비밀의 방에 대한 얘기를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최대한 다정하게, 최대한 내 의사를 밝히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리리스, 여기 물부터 마셔. 내가 야밤에 괜한 사람 놀라게 만든 것 같네. 미안하다”

 

“아…아닙니다. 사령관ㄴ...아니. 주인님. 리리스는….”

 

주인님이라. 내가 일부로 괜한 '사람'이라고 말하던가, 물을 떠다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내 호의를 표현하긴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바이오로이드들 중에 나의 호의를 가장 빨리 알아차려준 것 같다. 사령관님이라고 아까 전까지 거리를 두던 아이였는데…아마 이것도 바이오로이드로써 주인의 호의를 무분별하게 받을 수 밖에 없게 세뇌된 결과겠지. 어쩜 이렇게 안쓰럽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을까. 일단 숨 좀 돌리게 만든 다음에 얘기를 해야겠지


“물 말고 다른 거 좋아하는 게 있니? 그럼 나중에 챙겨줄게”

 

“어….음….그…그게….”

 

참 이것도 불쌍한 광경이다. 몸은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얼굴은 새빨게 지고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 공포와는 무관하게 올라오는 주인에 대한 호감. 하치코, 페로, 포이, 페더, … 수많은 자매들이 갈려나가고, 찟겨나가던 참혹한 장면들이 어제 그랬던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르지만(혹시 모르지. 내가 오기 전 날까지도, 그니까 진짜 어제에도 해체실에서 그런 광경을 봤을지) 동시에 이런 생각과는 무자비할 정도로 대비되는 따스한 주인의 모습에서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연심의 감정. 이 이질감이 호박색 눈에서 여김 없이 들어나고 있다. 세뇌라는 것이 무섭긴 한가보다. 아마 그 미친 새끼는 리리스의 이런 모습을 보지도 못했겠지. 어째 게임 속에서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준 아이일수록 더욱 불쌍해지는 것 같다.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아침에 같이 가준 그 방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고 그랬던 거야. 물론 너에게 이게 부담일 것이란 것은 알고 있어. 그런 끔찍한 장소를 만드는 것을 도와야 했던 너에게 무리한 부탁일지도 몰라. 근데 이제 그 곳을 없애려고 해. 최대한 깔끔하게. 그 참혹한 흔적은 아무 것도 남지 않게. 그러고 싶은데 너에게 부탁해도 될까?”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떨고 있던 눈동자는 이제 그 정도가 덜해지긴 했지만 리리스는 옷을 입혀줬던 코코처럼 그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상황에 맞지는 않지만, 정말 봐도 봐도 아름다운 얼굴이다. 맹해보이는 얼굴에 주황빛으로 반짝거리는 눈동자, 앙 다문 입까지. 괜히 실없는 미소가 나는걸 겨우 참았다. 

 

그건 그렇고 내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나? 아니. 괜히 간접적으로 말하면 더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지금에서야 하는 거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가 너희가 알던 그 끔찍한 사령관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페더가 결의를 보여줬던 것처럼 나도 직책에 맞는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

 

“리리스? 괜찮니? 나중에 다시 말할까?”

 

“아…네..넵! 괜찮습니다. 주인님. 그럼 지금 모시겠습니다…! 그 전에… 사용하시던 도구를…”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난 리리스는 습관적으로 도구들을 챙기려 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그 성인 용품들 말이다. 이 짓을 얼마나 오래 했으면 내가 그 빌어 먹을 방을 없애러 간다고 말을 했는데도 도구를 챙기려 했을까. 행동 하나하나가 한숨 나올 정도로 안쓰럽다. 조금씩 고쳐나갈 수 밖에.

 

“리리스. 나는 분명 그 방을 없애러 간다고 했는데? 착한 리리스는 이게 어떤 의미인줄 알지? 도구들은 전부 해체기에 넣어 갈아버리렴. 앞으로 그건 쓸 일 없을거야. 물론 좋은 의미로.”

 

“아…알겠습니다.”

 

리리스의 호박색 눈동자가 조금씩 빛이 나고 있었다. 그 무거운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는 내 노력이 처음으로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무슨 짓을 하든 주인을 믿게 만들어진 리리스 모델의 세뇌 방식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침에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리리스의 뒤를 따라 다시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또각또각, 그녀의 구두굽이 새하얀 복도와 부딪히며 나는 소리는 아침과 달리 규칙적이었다. 복도는 아침보다 훨씬 어두워 간간히 빛을 내는 조명등에 의존하며 걸어야 했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그 빛을 대신하듯이 반짝거렸을 것이다. 그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불신과 미움 속에서 한 줌만큼 자란 주인에 대한 희망으로도 이렇게 기뻐하는구나. 주인이라면 고통조차 쾌락처럼 느꼈을 그녀가 이렇게까지 망가져 버린 것은 아마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비밀의 방을 부수겠다고 한 약속을 믿어주는 것을 보면, 얼마나 주인의 사랑을 갈망해왔을지 생각하기도 힘들다. 그녀가 덜덜 떠는 모습에서만 동정심을 느낄 줄 알았는데, 조금은 기뻐해 하는 저 모습에서도 연민의 감정이 넘쳐 흐른다. 시간이 지나 나를 제대로 봐줄 수 있게 될 때,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꼭 그렇게 할 거다.

 

그녀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그 끔찍한 방에 도달해 있었다. 패널로 방 안의 불을 키려 하는 리리스에게 먼저 부탁을 했다.

 

“리리스. 문짝에 달린 저 역겨운 장식들 좀 치워줄래?”

 

놀이 동산 마냥 화려하고, 오밀조밀하게 장식된 비밀의 방이라 적힌 장식을 치우게 만들었다. 비, 밀, 의, 방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리본과 레이스로 장식되어 있었고, 핑크색 테두리로 둘러져 방 안과 한 층 더 대비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아마 이 역겨운 데코레이션들을 가장 치우고 싶었던 것을 리리스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각오도 보여줄 겸 해서 리리스에서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내 부탁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간단하게 숙이며 대답했다. 이후 고개를 들기가 무섭게 훌쩍 뛰어올라 사람 키보다도 높은 곳에 있던 장식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페로도 그렇게 깔끔하게 자르지는 못했을 거다. 그녀의 손놀림 하나하나에는 분노가 가득 차있었고, 동시에 티없이 밝은 기쁨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내게 두려움을 느끼던 그녀였지만 장식들이 하나씩 그 형채를 잃어감에 따라 그녀의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쾌락으로 느끼지 못한 유일한 고통, 죄책감을 씻어내기라도 하는 듯이 문에 붙은 모든 장식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뜯고 찢었다. 이러면서 그녀 나름대로 죄악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는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점차 광기에 가득 찬 상태가 되어가는 리리스의 모습 중에 그녀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상쾌함만이 그녀가 아직 제정신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보는 내가 다 속 시원하네. 대신 저거 치우는 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네.

 

한창 리리스가 즐기고 있던 것을 방해하는 기분이라 영 그렇기는 했지만 아무튼 우리가 고작 비밀의 방 입구 부수려고 온 것은 아니었기에 치우고 와달라고 말했다. 한껏 기분이 고양된 리리스가 종종거리며 주변의 쓰레기통에 장식이었던 것을 버리고 왔을 때,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리리스, 문 열어줘.”

 

내 말을 들은 리리스도 나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며 패널을 작동시켰다. 조금이지만 여전히 나를 불신하는 눈초리로 보고 있는 리리스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은 이해되니 부디 이 방이 사라졌을 때는 그 불신이 믿음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패널에 따라 방 문이 열리고, 그 기괴한 악취가 나를 때렸다. 이런 곳에서 갇혀 있으면 그 어떤 바이오로이드라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이 분명했다. 전에는 미쳐 보지 못했지만, 안에서 문을 바라보았을 때 더치걸의 팔과 다리들이 문 주변을 감싸며 장식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았으니 아마 나중에 별의 아이를 직접 만나도 정신차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리리스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리리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총 몇 명이지?”

 

“...키르케 12개체, 바이탈 신호 극도로 미약한 더치걸 12개체, 미약한 더치걸 9개체, 그 외의 정상 범주에서 약간 미약한 더치걸 29개체입니다.”

 

더치걸 한 명 한 명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감상 따위를 느낄 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나마 지옥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모여있는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볼 수 있었다. 키르케들은 앉은 상태로 기절해 있었고, 땅바닥에 가만히 놓여 있던 더치걸들은 서로 부둥켜 안으며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갈고리에 걸린 아이들마저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죽음이 고요하게 내려 앉기라도 한 듯이, 이 방에 갇힌 아이들에게서는 아무런 생명의 미동도 느낄 수 없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몇 번이고 사령관에게 소리쳤을 아이들. 꼭 그랬을 아이들에게 이렇게 죽음이 찾아온 것 같이 고요해졌을 때, 역설적으로 가장 평온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내가 구해줄 수 있다. 죽음이 구원이 아니었다고, 한 명 한 명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또 그 만큼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줘야 한다. 지금 여기 그러기 위해 왔으니까.

 

“생각보다 더 많구만….야밤에 이러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애들 깨워서 전부 수복실로 보내. 수복실 자리가 없으면 사령관실이나 내 방의 소파나 침대로 보내. 필요하다면 컴패니언 자매들을 호출하고.”

 

마음 같아서는 내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이 비밀의 방에 갇힌 아이들에게 나란 놈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나는 다른 곳에 숨어있는 상태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고, 리리스가 하치코나 페로를 불러 이곳 내부에서 더치걸과 키르케를 밖으로 인도하기로 했다. 또 가장 먼저 컨베이어 벨트에 걸려서 대롱거리는 더치걸들을 수복실로 운송시키고, 그 외에 바이탈 신호에 따라 이송 순서를 결정했다. 필요하다면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일부 동원할 수 있도록 리리스에게 명령권을 이양했다. 

 

맏언니의 부름을 받아서 그런지,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임에도 컨패니언의 아이들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녀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나는 리리스에게 말한 대로 사라져 있었다. 하치코 같은 아이들은 아마 내 얼굴을 보면 그르릉 거리며 위협했을 거다. 대신 최대한 리리스에게 부탁하여 현재 나의 상태를 알려주게 하였고, 이 운송 작전 역시 내가 지시한 것을 밝히도록 만들었다. 장식을 부수며 조금이나마 나에 대한 신뢰가 올라간 덕분일까? 그녀는 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자매들에게 열심히 나를 변호해주었고, 맏언니의 변호 덕분인지, 몇몇은 나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던 것 같았다.

 

방 내부는 차마 다른 아이들에게 공개하기 힘들어서 리리스가 대신 수고해주었다. 사람 가죽과 안구가 담긴 실린더으로 가득 찬 방을 보여주면 하치코 같이 정신이 약한 아이들은 아마 트라우마로 꽤나 고생했을 거다. 그래서 리리스가 방 밖으로 한 명씩 데리고 오면 페로나 펜리르 같은 아이들이 열심히 수복실로 날랐다. 덕분에 비밀의 방을 비운다는 임무는 1시간 내외로 빠르게 끝날 수 있었고, 마지막 남은 더치걸을 하치코가 안고 수복실로 달려가면서 이 방에 남은 인원은 나와 리리스 단 둘뿐이었다.

 

“수고했어…그리고 너 혼자 처리하게 해서 미안해. 이런 광경을 차마 다른 아이에게까지 보여줄 수는 없었어.”

 

“괜찮습니다. 주인님. 저도 제 동생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답니다. 그리고 이미 주인님께서는 충분히 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아직 조금은 격식을 차린 말투이지만, 그래도 더치걸 한 명 한 명을 옮기면서 나에 대한 의심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내게 말을 걸 정도로 말이다.


"그럼 이제 돌아가서 쉬어. 괜히 나 때문에 잠 설치겠다. 옷에 냄새도 배서 싫을 텐데 얼른 돌아가. 힘들어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리리스의 손은 더치걸들의 피로 얼룩져 있었고, 반쪽짜리 하얀 옷은 다시 그 반쪽 만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눈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래도 피곤해 보이는 기색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최대한 이 나쁜 놈은 사라져야 겠다고 생각하여 방 리리스와 함께 방 밖으로 나갈려고 했던 찰나에 리리스가 내 옷을 잡았다. 돌아보았을 때, 리리스의 얼굴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뭔가 말하려는 것 같이 숨을 크게 들이마쉴 때도 결의로 무장된 힘이 있었다.

 

“...솔직히 리리스는 무서웠어요. 이 아이들을 옮길 때마다 혹시 주인님이 다시 돌변하면 어떡하나, 제 손에 안겨 있는 아이들을 다시 방 안으로 던져 넣으라고 하시면 어떡하나, 수복실이 아니라 해체실로 옮기라 다시 명령하면 어떡하나, 무서웠어요. 그런데 주인님은 마지막 남은 아이가 수복실에 갈 때까지 그러시지 않았죠. 오히려 제게 미안하다고 수 차례 말씀하셨어요.”

 

내가 그랬던가? 운송하는 도중 혹시 모를 일을 위해 리리스와는 무전을 주고 받을 수 있게 연결되어 있던 상태이긴 했었다. 사실, 다른 아이들 몰래 후미진 곳에서 더치걸들과 키르케가 옮겨지던 과정을 지켜보면서 리리스만큼이나 나도 미쳐버릴 뻔했다. 내 과오들, 내가 뿌린 죄악의 씨앗들을 구덩이에서 건져내면서 미칠 듯이 미안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나왔나 보다. 좀 부끄럽네.

 

“사실... 저는 아직도 주인님을 믿기에는 두려워요. 어제까지 제가 본 주인님의 모습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달라지시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해요. 내일이 되면 다시 그 무서운 주인님으로 돌아가면 어떡하죠? 언니로서 제 아이들을 챙기지 못하면 어떡해야 하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녀답지 않게 당황해하는 모습이다. 바뀐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두렵겠지. 수없이 받아왔을 상처를 견뎌내기 위해 닫고, 또 닫았던 그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리리스가 내게 주인님이라고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일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몇 차례는 내가 이 아이에게 신뢰할 만한 행동을 해주어야 겠지. 이렇게 내게 물어보는 것, 그니까 그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시도하는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감동에 벅차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너무 갑작스럽게 믿지 않아도…”


내가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는 그렇지 않았었다.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 동안 고통 받아왔을 그녀에게 나는 조그마한 희망의 밧줄을 내밀었고,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나는 몰랐다. 그것이 그녀가 이 오르카호에 올라 바랬던, 간절하게, 또 간절하게 빌었던 유일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단 둘뿐이기에 맏언니로서, 경호대장으로서의 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금 내가 부탁하듯이 말했다.

 

“...아뇨. 믿고 싶어요. 주인님이 아무리 괴물 같던 분이시었어도, 오늘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씀해주시던 그 모습에서 희망을 느끼고 싶었어요. 주인님. 말씀해주세요. 주인님을 믿어봐도 되나요? 제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언니이지만, 정말로 내일 다시 주인님이 무서워질지 아닐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믿어도 되나요? 제가…제가 원하던 그 주인님이 되신 거라고 생각해도 되나요?”

 

이 역겨운 방 안에서 그녀는 미친 듯이 떨고 있다. 어쩌면 아침에 봤던 그녀의 모습보다도 훨씬 더. 그녀는 도박을 하고 있는 거다. 한 순간에 자신의 주인이 좋은 사람이 된 것처럼 내일 다시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불확실함 속에서 나를 믿어주는 쪽에 서기로 선택한 것이다. 지금 내가 단순히 변심한 것일지, 아니면 역겨운 속내를 감추고 착한 척 연기하고 있는 것일지, 하다못해 정말로 주인님이 맞기는 한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다. 내가 백날 말해도 그녀가 가진 뿌리 깊은 의심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믿어주고 있다. 주인님이라 불러주고 있고, 자신의 속내를 이렇게 가슴 저리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리리스. 나를 보렴.”

 

리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이쁜 호박색 눈에는 눈물이 달려 있었다. 무서워서 몸이 벌벌 떨고 있었다. 한 순간 달라진 주인에 대한 공포, 달라진 주인이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주인님의 모습과 무서울 정도로 똑같았다는 것이 주는 공포, 무엇보다 이 알 수 없는 상황에 몸을 맡겨도 되는지에 대한 공포. 이 강한 바이오로이드의 팔이 유난히 가늘어 보였다. 그래서 그녀의 팔을 꽉 끌어 안았다.

 

“너 말대로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내일 일어났을 때 다른 주인이 되어서 너희를 괴롭히진 않을까? 그 불확실함이 너무 무서워. 너희를 지옥에 빠트렸던 사람이 나였으니까... 근데 하나만 알아주렴. 믿지 않아도 좋아. 나는 너희가 알던 그 사람과는 달라. 너희를 절대 이런 지옥에 던져두지 않을 거야. 맹세코.”

 

내게 안겨 있던 리리스가 조금씩 긴장을 풀어갔다. 팔에 주고 있던 힘이 조금씩 풀렸고, 이따금씩 들리던 훌쩍이던 소리가 이제 내 귀에 들릴 정도로 선명해졌다. 호박빛 눈동자에는 조금 빛이 들어왔다. 처음 맛보는 주인의 사랑에 대한 감격일까, 아니면 자신이 관리해야 했던 더치걸들을 이 지옥에서 빼낸 것에 대한 안도감일까.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가 기대도 될 만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녀를 잡던 팔을 놓고 아예 안아 버렸다. 나에 비해 조금 작은 몸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피가 묻어 조금 빨갛게 된 그녀의 은발 머리카락에서는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향기로운 샴푸향이 느껴졌다.

 

“…리리스. 너무 힘들면 내게 기대렴. 나도 그럴 수 있게...”

 

그렇게 우리는 몇 분 가량을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안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나만 리리스를 안고 있는 형태였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리리스의 팔이 나를 껴안았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고 팔로 내 몸을 둘러싸 계속해서 훌쩍이고 있었다. 맏언니라는 직책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워낙 귀한 개체라 함 내에 블랙 리리스 모델은 이 아이 하나였다. 다시 말하면 컨패니언의 아이들을 모두 이끌어야 한다는 중압감을, 무엇보다 그 개새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홀로 짊어 지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 감각들에 잠식되어가던 그녀는 결국 적어도 내가 그 놈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받아들이고 싶어했던 것 같았다. 내가 보여준 호의. 스스로의 손으로 이 비밀의 방을 치워낼 수 있게 하는 그 단 한 번의 호의로도 이렇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아이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주인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세뇌, 또 이 지옥에서 자신의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에 그녀는 속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상처 받아왔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내게 기대고 있다. 

 

“미안해…미안해. 무전 너머가 아니라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

 

리리스는 말이 없다. 조금 훌쩍이는 것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눈에 고인 눈물은 꼭 그녀의 눈동자만큼 호박색으로 반짝이고 있었고, 나를 앉은 바들거리는 팔에는 힘이 들어갔다.

 

“…주인님. 제발...사랑해주세요...사랑해요...”

 

베시시 웃으며 한 그 말을 끝으로 리리스는 쓰러졌다. 사랑. 사랑이라. 이런 괴물의 탈을 쓴 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단 하루였다. 단 하루 만에 사령관님이라 거리를 두던 이 아이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다. 얼마나 주인에게 사랑 받고 싶었으면, 얼마나 주인을 사랑하고 싶었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주인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세뇌, 이 끔찍한 저주에 걸린 채로 얼마나 오래 버텨왔던 것일까. 인간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그 사랑을 받고 싶고, 또 주고 싶었지만 이전의 주인이란 자는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숙명처럼 각인된 사랑은 줄 곳도, 받을 곳도 없이 속에서 썩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그 사랑이란 저주가 그녀의 마음을 갉아 먹어왔을 거다. 나라도 괜찮다면 이제 그 사랑을 받을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기절한 리리스를 등에 엎고 사령관실로 천천히 돌아왔다. 내 방은 이제 전혀 고요하지 않다. 오직 어린 바이오로이드들만이 나를 접대하기 위해서만 들어올 수 있었던 이 공간이 이제 외로울 틈도 없을 정도로 생명의 심장 박동으로 가득했다. 이미 다프네들이 사령관실 중앙의 소파를 치우고, 간이용 침대를 이곳저곳에 만들어 놓은 상황이다. 다행히도 이미 간단하게 나마 치료 및 수복 처리가 완료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사령관실에 들어갔을 때는 기절하듯이 자고 있는 더치걸 6명 정도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 이 6명의 숨소리만으로도, 아니지, 내 등에 엎힌 리리스의 숨소리까지 해서 7명만으로도 이 넓은 공간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 이 숨소리 하나하나가 내가 짊어지어야 할 무게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내 방 만큼 내 마음도 충족시켜주는 것 같다. 그래 이걸로 충분하다. 이거면 힘을 내기에 충분하다. 


그건 그렇고, 역시 아무도 만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사령관실은 고문실이나 다름이 없었을 테고, 그런 트라우마를 만든 장본인과 만나게 하는 것은 나도 바라지 않은 일이다. 그냥... 내일 일어났을 때, 놀라지만 않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아이들을 사령관실로 옮긴 것이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었을 거다. 내일 내가 애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

 

아무튼 나는 리리스 덕분에 비밀의 방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을 외울 수 있었고, 조심히 들어간 덕분에 아무도 깨우지 않은 채로 그녀를 내 방의 침대에 눕힐 수 있었다. 곤히 자는 얼굴은 자칫 잘못하면 깊게 빠져버릴 것 같이 이쁘고 아름다웠다. 자고 있는 그녀 곁에 앉아 조심스럽게 볼을 쓰다듬었다. 꼭 나만큼 따뜻한 그녀의 살결은 부드러웠다. 그 피부 너머로는 나만큼, 인간만큼 따스한 온기를 내뿜을 수 있는 힘이 있었던 거다. 어떻게 이런 것을 보고 도구 취급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무자비하게 몸을, 마음을 찢을 수 있었을까? 볼을 쓰다듬는 손의 반대쪽 손으로는 리리스의 손을 잡았다. 누구보다 강한 바이오로이드이지만, 정작 이 손은 함 내에서 가장 약한 나의 손보다도 작았다. 아마 리리스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고 해도, 내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손은 볼보다 조금 까슬거렸다. 그녀가 받았던 수많은 상처를 숨기기에는 볼보다 손이 더 적합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얼굴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동생들을 돌봐야 했으니, 온갖 가슴 속의 상처를 손에 담아 두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한 동안 그 손을 맞잡고 있던 나는 리리스의 사랑에 겨워서 감동하긴 했지만, 아직 그 비밀의 방에는 추악한 것들이 득실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등골이 싸해지는 컨베이어 벨트와 방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죽더미들, 그리고 뽀글거리며 수상한 액체 속에서 뒹굴 거리는 더치걸들의 안구까지. 언제 하더라도 치워야 할 것들. 쇠뿔도 단 김에 뽑으라 했겠다. 일단은 나 혼자 처리해보기로 했다. 이미 늦은 밤. 보름달이 사령관실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곤히 자고 있는 리리스와 나뿐만인 방에는 파도 소리만 요란하게 치고 있었다. 

 

리리스를 내 방에 놓아 둔 채로 나는 다시 비밀의 방으로 향했다. 최대한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조심스럽게 갔다. 가는 도중에 잠깐 보인 수복실은 이미 만석이었다. 다프네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생체 신호가 약한 더치걸들에게 무언가를 계속 투여하고 있었고, 키르케들을 수면제를 복용했는지 간신히 자고 있는 것 같았지만 간간히 발작하는 것을 다프네가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몇몇 더치걸들은 아직도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안 그래도 부산스러운 수복실 내부를 더욱 부산스럽게 만들었다. 함 내의 자원 상황이 안 좋아서 그런 것인지 침대에 누워있는 것 이외의 후속 조치를 받고 있는 아이들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자원 상황이 좀 양호해지도록 빨리 뭐라도 해야겠다.

 

일단 방 벽에 붙어있는 가죽들을 좀 때려면 도구들이 좀 필요할 것 같아 이곳 저곳 사람 없는 곳을 둘러보고 다녔다. 가다 보니 불 꺼진 제조실 같은 것이 보여 안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필요해 보이는 도구 몇 개를 챙겨서 나왔다. 함의 사령관이라는 작자가 이러고 도둑 마냥 돌아다니고 있어야 한다는 게 한탄스럽다. 후우… 이게 다 업보지. 업보야. 

 

그렇게 다시 들어간 비밀의 방에서 당장 한 것은 방 벽에 붙어 있는 더치걸의 팔, 다리, 피부를 때내는 일이었다. 방이 워낙 컸기 때문에 당장 전부를 땔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내 손이 닿는 곳까지는 처리할 수 있었다. 들고 온 비닐봉투에 이 가련한 아이들의 흔적을 하나 하나 담아냈다. 지금 신체도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되어 있나? 라비와 무적의 용을 만났던 것을 보면 스토리 상으론 생체 제건 시설에 가서 강화 신체로 몸을 바꾸고 난 다음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방 하나 전체를 뒤집어 엎는 수준의 일을 했음에도 막 피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더치걸들의 일부들을 비닐 두 개 정도에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모아 놓은 신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그냥 해체실에 가서 해체한다면 부품도 나올 수 있겠지만, 그건 이 아이들에 대한 예가 아니다. 계속 고민하던 끝에 조용히 함 밖으로 나가 묻어주기로 했다. 지금 마침 오르카호가 정박 중이기도 하고, 보고서들에 따르면 최근 며칠간 이 주변에서 철충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고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을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일 거다. 기껏 리리스를 재우고 왔는데 그녀의 도움을 또 받을 수는 없다. 흐음…. 잠수함이 정박을 어떤 식으로 하더라? 일단 수면 위로 떠있는 오르카호는 밖에 귀뚜라미 소리가 조금씩 들릴 정도로 육지와 가까이 있다. 그러면 나 혼자서도 함 밖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오후에 읽었던 보고서를 간신히 기억해내면서 함 내를 이곳 저곳 헤집어 다니던 끝에 함 밖으로 가는 통로를 발견했다. 일단 고개만 살짝 내밀어 밖을 살펴보았을 때는 꽤나 괜찮은 상황이다. 철충은 커녕 벌레 한 마리 안 보였고, 육지는 조금만 발을 내딛으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류가 멸망했다고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간 상황인 줄 알았는데, 내가 마주한 모습은 나름 항구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콘크리트 같이 튼튼한 것들은 많이 닳긴 했지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함에서 훌쩍 뛰어내려 인근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날 지켜주던 바이오로이드들이 가득한 함 밖으로 나와 나 혼자만 걷다 보니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보고서로 인근에 철충들이 며칠이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어느 순간 철충들이 나를 저격할지도 모를 일이고… 근데 뭐 어차피 죽어도 함 안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호재겠지. 그냥 여기서 죽으면 이 새끼는 그럴 운명이었던 셈이다. 혹시 아나? 이렇게 죽는 게 가장 해피 엔딩이 될지?

 

그렇게 조금 둘러다 보던 나는 주변에서 나무들이 듬성듬성 나있는 숲 같은 것을 보았다. 철충들이 숨어 있기 안성맞춤인 곳이지만, 나는 그냥 주변만 살필 심정으로 내 손에 든 더치걸들을 묻을 장소를 찾고 있었다. 안 그래도 가벼운 아이들이 피도, 내장도, 아무런 근육도 없는 상태였으니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조금씩 걸어 다니다 보니 꽤 괜찮은 곳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쪽으로는 바닷가가 넓게 펼쳐져 있었고, 반대로는 깊은 숲이었다. 땅도 제법 파기 쉬운 흙이었기에 더치걸들을 내려놓고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한 삽… 한 삽… 그 작은 몸들이 가지런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땅을 파고, 또 팠다. 어느새 이마에는 땀이 미칠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등골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 하나하나에 소름이 끼쳤다. 파고, 또 파고, 계속 팠다. 가끔 돌부리에 삽이 걸릴 때는 손으로 주변을 조금씩 판 뒤에 돌을 꺼내고 다시 팠다. 나무 그늘 때문이었을까, 내가 판 땅은 그 방처럼 어두웠다.

 

“…! 주인님! 주인님!”

 

계속 땅을 파기 시작했을 때 옆에서 리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열심히 달렸던지, 그 얼굴에 나처럼 땀이 방울방울 맺혀 있다. 숨까지 헐떡이던 그 모습은 애처로울 만큼 절박했다. 내가 여기서 리리스를 볼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리리스도 내가 진짜 밖에 나와있을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서로가 서로의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고 있었다. 제 3자가 봤으면 꽤나 우스꽝스러웠으리라

 

“…리리스니?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어떻게 알고…”

 

“주인님! 대체 왜 그러신 거에요! 밖에 철충들이라도 돌아다니면 어쩌시려고… ”

 

땅을 파던 삽을 내려놓고, 리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아주 빨간 게 잠도 제대로 못 잔 모양이었다. 옷은 내가 방에 내려놓았을 때 옷 그대로였고, 계속 비밀의 방에 갇혀 더치걸들을 방 밖으로 빼내야 했던 탓에 옷 속 깊숙이 배인 역겨운 피비릿내는 아직까지도 맡을 수 있었다. 아마 의식을 차리자 마자 바로 달려온 탓이리라. 대체 내가 여기 있는 거는 어떻게 안 거지?

 

...유리창 너머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는 보름달은 훨씬 밝았다. 나뭇잎들 사이로 뻗아나가 나와 리리스를 비추는 달빛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파도 소리가 철썩거리는 것이 생생하게 들린다. 여기에 찌르르 거리는 귀뚜라기들의 소리들이 합쳐지니 우리의 대화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고도 남을 것이다. 단 둘 뿐이다. 리리스는 당황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단 둘 뿐이다... 아마 이야기 하기에 지금 만큼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내 표정을 가다듬고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속해서 참아왔던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쓸었다.


“후우… 리리스야 잠깐 앉아볼래?”

 

내 말에 따라 그녀는 조신하게 땅에 앉았다. 나는 파던 땅에 걸쳐서 다리는 땅 속에, 몸은 땅 위에 두었다. 땅 속은 어두워서 내 발 끝은 내 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재아무리 달빛이 있었어도 말이다. 조금 조용해졌다. 바람에 흩날리는 풀소리가 스르륵 거리는 것이 귓가에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을 때, 내 본심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죽으면 너는 어떨 것 같아?”

 

“… 네? 주인님. 무슨 말씀을…”

 

이 아이에게 묻고 싶었다. 정말 그런 죄악을 저지른 자가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내가 백 날 내가 한 짓이 아니라 우겨도, 결국 이 아이들에게는 내가 나쁜 놈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그냥 이런 나쁜 놈이 된 입장에서 물어보아야 한다. 너희는 날 용서해줄 수 있을지.

 

“리리스도 눈치챘겠지만 나는 너희가 알던 사령관과는 다른 사람이야. 하지만.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 몸을 가진 ‘나’는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놈이잖아. 굳이 이렇게 달려올 필요 없었잖아. 그랬다면 다른 자매들이 더 기뻐하지 않았을까?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 너희 대부분은 인류 재건에 실패하더라도 내가 사라지는 꼴을 원했을 거야. 어쩌면 직접 그 손으로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 하아… 아니면 나를 죽이고 싶어서 내가 그냥 죽는 꼴은 못 봤으려나?”

 

“주인님. 저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내 말을 이어갔다.

 

“리리스. 난 너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너의 동생들에게 훌륭한 사령관이 되고 싶고, 또 너의 자매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어. 근데… 근데 이제 와서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거 같아…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지금 이렇게 너와 이야기 하는 순간이 마지막이 되는 것. 내일 아침에 다시 그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에게 훌륭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는 것이 되는 것… 너희가 날 용서해줄 수 있을까?”

 

또 다시 조용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내가 행했던 그 죄악들이 끊임없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그 놈이 죽인 수많은 아이들의 원한이 나를 덮치고 있는 것 아닐까?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끊임없이 마음 속으로 새겨봤자 죽은 그녀들이 내게 던지는 커다란 죄책감이 가슴을 찌르고 또 찌르는 기분이다. 그러니, 차마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옷자락에 끌리는 소리. 리리스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얼굴을 내 어깨에 기댔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내 손을 잡았다. 내 방에서 내가 그 두 손을 잡았을 때는 내 손이 그녀보다 큰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그녀의 두 손은 내 손을 덮기에 충분했다.

 

“주인님… 저희는 도구를 매우 매우 아낀답니다. 제 무기인 맘바나 로자 아줄은 성능이 좋은 만큼 끊임없이 관리해주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주인님께 간 후에 제 무기를 손질했답니다. 검은색이라도 먼지가 쌓이면 티가 나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주인님, 저는 단 한 번도 이 도구에게 무언가를 물어본 적이 없어요. 맘바를 손에 쥐고 멋대로 총을 쏴서 미안하다고 하던가, 집중 포격을 맞은 로자 아줄에게 아프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던가 하지 않아요. 그것이 도구와 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이니까요.

주인님도 그러시지 않나요?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실 때 샤워기에게 고마워하거나 하시나요?”

 

“음… 그렇지는 않지? 보통은 그렇게 물어보거나 하지 않지.”

 

“그런데도 주인님은 저희에게 용서를 구하시네요. 저희를 어떻게 쓰실지 보다 저희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지를 걱정하시네요.”

 

그녀는 나를 보며 웃고 있던 얼굴을 돌려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조금씩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수평선과 그 위를 장식하고 있는 자연이 만든 빛의 그라데이션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 빛이 조금씩 리리스를 감싸고 있었다.

 

“사실, 저희는 그저 주인님께 도구라도 되기를 원했어요. 도구도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 동안 저희는 도구라기 보다는... 길가의 돌멩이 같은 삶을 살았어요. 주인님은 돌멩이로 노는 장난꾸러기 소년이었고요. 소년은 돌멩이를 잡아 물에 던지기도 하고, 돌끼리 부딪히게 해서 누가 먼저 부숴지는지 겨뤄 보기도 했죠. 가끔씩 마음에 드는 돌이 보이면 주변의 돌멩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땅을 파헤치며 결국 그 돌을 얻는… 뭐 그런 삶이었답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도 고작 돌멩이 정도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거야? 하다 못해 살아있는 존재로서 생각해볼 수는 없었던 거야?”

 

“주인님. 저희는 단 한 번도 살아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답니다. 주인이 오면 그저 공포에 떠는 돌멩이이어야만 했었어요. 그게 주인님이 저희에게 원하시던 유일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녀는 잠시 말을 줄였다.

 

“그렇다고 저희가 주인님께 분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제 동생들이 해체기에… 들어가던 그 모습은…, 제 손…으로… 보내야 했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들다가 내 손을 잡던 손을 때고 고개를 숟인 채 자신의 몸을 감쌌다. 말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옛 모습이 떠올랐던 거겠지. 아직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심적으로 부담이 컸을 것이다. 평범하게 말하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불현듯이 떠오르는 기억에 이렇게 몸서리 치는 것을 보니, 내가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지켜줘야 할 애들에게 약한 모습이나 보이고 있었다는 부끄러운 생각 말이다.

 

몸을 떨던 그녀가 다시금 안쓰러워 그녀 뒤로 가 앉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가슴 너머로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아 주었다. 내 가슴이 그녀의 등에 착 달라붙을 만큼 세게. 리리스는 잠깐 놀라더니 이내 다시 잠잠해졌다. 내 팔 위로 나만큼 따뜻했던 그녀의 손이 올라와 앉았다.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그랬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그 때 그 모습의 주인님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아요. 아마 그 느낌은 저 뿐만이 아니라 제 동생들 모두 그럴 거에요.

하지만, 지금 주인님은 다른 분이시잖아요. 그 괴물과 다르잖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을 수 있어요. 그 괴물과는 달리 저희를 도구보다도 귀하게, 마치…마치 인간처럼 대해주시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저희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고민하는 질문 그 자체가 주인님이 그 괴물과 다른 분이시란 것을 알려주니까요.

그러면…그러면 저는 아마 주인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주인님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주인님이니까”

 

비밀의 방에서 그녀를 안았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그녀의 심장 박동이 내 몸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 가냘프게 떨고 있는 몸, 조금 빠르게 뛰는 심장, 풀내음과 섞여 향기롭게 코를 간질이는 그녀의 몸 냄새. 그녀가 내게 기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야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된 거 구나. 내게 그럴 자격을 준 것이다. 고맙다는 감정이 샘솟았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으로 끌어 안았다. 내 눈에서는 어느새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지면, 그대로 떨어져 리리스의 어깨를 적셨다. 어쩌면 그녀들에게 이 물방울은 내가 느낀 죄악감만큼이나 추악하고 역겨운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리리스는 아무런 말 없이 내 얼굴에 손을 대어주며 그 물방울을 자신의 어깨로 담담히 받아주었다.

 

“주인님. 사랑합니다.”

 

“…나도…”

 

자비로운 웃음을 내게 지어주며 말해주는 리리스에게 나는 비밀의 방에서 해주지 못한 답변을 지금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내뱉으며 대답했다. 둥근 해는 이제 수평선 너머로 절반 정도 떠올랐다. 붉다기 보다는 적당히 따스할 정도로, 딱 그녀의 눈동자 색 정도로 주황빛이 감도는 하늘은 새벽의 어두움을 조용히 물리고 있었다. 나와 그녀가 걸쳐 있는 이 땅에도, 더치걸을 묻기 위해 밤새 내가 판 땅에도 하늘처럼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이제야 내 발 끝이 보인다. 나, 꽤나 깊게 팠었구나.

 

아직 완전히 아침이 되지는 않았지만,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다. 리리스가 없었다면 감기라도 걸렸을지 모른다. 그래도, 안드바리와 코코를 위해 겉옷까지 벗어주었던 그 때보다는 따뜻했다. 리리스가 내 팔을 잡아주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그렇게 한 동안 우리는 서로를 끌어 안은 채 땀이 식기를 기다렸다.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휴식이었다.

 

휴식은 그녀가 몸을 돌려 나를 안으면서 끝났다. 내 몸으로 그녀의 등만 느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리리스의 몸 전체를 느낄 수 있었다. 그 가냘픈 팔은 내가 그녀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내 목을 감쌌고, 봉긋 솟아오른 가슴을 내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너무 세게 쥐었던 것인지 리리스는 조그마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주인님. 이제 일어나셔야 해요. 여기 더 있으면 감기 걸리실 거에요.”

 

내 귀에 대고 싱긋거리며 말해주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있다. 그렇게 내 손으로 삽을 쥐려고 했을 때, 리리스가 말을 가로챘다.

 

“주인님은 여기서 쉬고 계실 것. 나머지는 리리스가 할께요.”

 

내 입에 두 번째 손가락을 대고 웃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갈 곳 잃은 사랑을 한 번에 퍼붓기라도 하는 듯이 내 품에서 떠나가는 그 모습은 미칠 듯이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리리스와 함께 내가 들고 온 더치걸들의 가죽을 모두 묻어줄 수 있었다. 내가 마지막 더치걸을 땅에 묻어주었을 때, 리리스는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작은 나뭇가지로 조잡하게 만든 십자가를 가지고 왔다. 그녀가 만들어준 십자가 덕분에 그나마 이 곳이 무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온다면 헷갈리지 않을 수 있겠다.

 

“…주인님. 이제 돌아가실까요?”

 

“그래, 가자... 고마워. 너무.”

 

우리는 서로에게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단 두 문장을 끝으로 우리는 더치걸들의 무덤을 떠나 오르카호로 돌아갔다. 이제 그 무덤에는 나 대신 매일 아침 커다란 햇살이 따스한 이불을 덮어줄 수 있을 거다. 차가운 방의 벽에서 셀 수 없이 오랜 시간 동안 매달려 그 끔직한 공간을 장식해야만 했던 아이들은 간만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끔 나무에서 잎사귀가 떨어지면 진짜 이불을 덮는 느낌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가을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랗고 아름다운 색의 이불이 덮어줄 것이다. 겨울이 되면? 그 땐 세상에서 가장 하얀 이불을 덮을 것이다. 그 어떤 것이든 상관없으니 부디 이 아이들의 차가운 원한과 분노를 따스하게 데워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햇살이 유난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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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https://arca.live/b/supernerimk2?category=%EC%86%8C%EC%84%A4&target=title&keyword=%EC%A1%B0%EA%B8%88+%EC%9D%B4%EC%83%81%ED%95%9C


모음집 : https://arca.live/b/lastorigin/20710101


더치걸들을 빨리 구해야 겠다는 마음에 원작에는 없던 비밀의 방 파트를 만들었습니다.

근데 하다보니 분량 조절도 실패하고 완전 리리스 파트가 되버렸네요.

쪼개면 두 개 분량은 나올텐데, 그러면 똥싸다 그만 두는 기분일거라 걍 하나로 합쳤습니다.

너무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생각이 안들게 최대한 개연성을 부여하며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만 부족할 수 있으니 재밌게 봐주세요

근데 그런 거보다 빨리 애호하고 싶단 말이야. 애들이 자꾸 의심하면 진행이 안되는걸.


이거 때매 부관도 리리스로 해놓고 호감도도 100 찍어 줬습니다. 부관 대사 너무 달달하고

절대 애 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