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사령관은 고민이다

철충과의 전투때문도 아닌 오르카호의 내부 문제 때문이다

오르카호는 철충과의 장기전으로 인해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태가 되었다

이대로는 일주일도 안되어 식량이 바닥나 오르카호의 인원들은 모두 아사할것이 분명했다

가까운 섬의 작물을 채취하여 간편식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오르카호에는 부담해야 할 입이 너무 많았다

각 대장들과 부관들은 보급이 떨어져 병사들의 사기가 이미 바닥이라고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각 부대의 병사들은 수없이 많은 전장을 지나 이 전쟁의 끝을 보고자 했다

지쳐버린 병사들과 이를 달래고자 하는 간부들

사령관은 고민에 빠졌다



1.

소완은 오르카호의 총괄 주방장겸 사령관의 메이드이다

그녀는 현란한 칼솜씨로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고 온갖 산해진미와 훌륭한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체득하고 있다

마침 좋은 식재료를 손에 얻은 소완은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띄고는 사령관을 위해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오늘은 어떤 요리로 사령관님을 즐겁게 할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2.

CS 페로는 컴패니언 소속의 경호 바이오로이드였다

그녀는 날렵한 움직임과 강철보다 단단한 클로로 경호대상을 지키고 적을 찢어 발긴다

철충과의 전투가 끝나고 사령관의 집무실에 들러 사령관의 따뜻한 손길을 받는것이 그녀의 보람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부드러운 사령관의 손길과 속삭이는 사령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 컴패니언 숙소에 도착한 페로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사령관의 손길을 되뇌었다

페로의 방과 가까운 주방에서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났고 최근 맡아보지 못한 맛있는 요리향에 취해 페로는 잠에들고 말았다


3.

성벽의 하치코는 컴패니언 소속의 경호 바이오로이드였다

주인님의 곁을 지키며 강력한 방패로 주인을 지키는 하치코는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물자가 떨어져 주린 배를 쥐고도 주인의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충직한 하치코는 언제나 사령관의 곁을 지켰다

철충과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이른 지금으로서는 별로 할일이 없지만서도 말이다

사령관의 명령으로 소완이 만든 음식을 병사들에게 나눠주는 임무를 받은 하치코는 주방으로 나섰다

소완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이 했고 하치코는 깊은 미소로 이에 회답했다


4.

아우로라는 주방의 보조 셰프이다

본디 파티셰로 태어난 아우로라는 메인 디쉬보다 코스의 마지막을 장식할 디저트를 담당하곤 했다

이미 멸망한 세상에서 아우로라가 활약할 곳은 소완의 밑에서 일하는것 뿐이었지만 말이다

소완의 밑에서 재료를 다듬고 소완이 바쁜틈을 메우는 것이 그녀의 업무의 전부였다

고되고 아린 나날들의 연속이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것에 그녀는 행복했다

그리고 새로운 재료를 받은 아우로라는 이내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한바탕 뒤집히는 속의 내용물을 게워내고 말았다


5.

리리스는 컴패니언의 리더이다

컴패니언은 사령관을 경호하며 때로는 다른 부대의 자매들을 도와 철충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컴패니언의 자매들은 맏언니인 리리스를 항상 따르곤했다

자매들은 힘들고 지친일이 있을때마다 그녀에게 달려가 따뜻한 품에 안기곤 했다

간부회의에서 그녀는 울부짖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철충과의 전투는 막바지에 이르렀고

모두 다같이 견디면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다

리리스는 사령관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리리스는 사령관에게 따졌다 리리스는 사령관을 사랑했다 리리스는 사령관이 증오스러웠다 리리스는 사령관이 미웠다 리리스는 사령관을 이해했다 리리스는 사령관을 이해할 수 없었다 리리스는 사령관을 죽일 수 없었다 리리스는 자매들을 지킬 수 없었다
리리스는 이윽고 사라졌다




6.

마리는 스틸라인의 대장이다

스틸라인은 오르카호 전투력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을정도로 인원 수가 많았다

사령관을 믿고 사령관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그녀는 사령관의 충직한 심복이었다

철충과의 전투로 지칠법도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전장의 선두에 서 병사들을 지휘했다

하지만 병사들의 사기는 나날이 떨어져 갔고 이는 전장에서의 결과로 나타났다

떨어져가는 물자와 특히 제대로된 식사를 제공받지 못한 병사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낙엽과 같은 몰골로 쓰러져갔다

겨울이 찾아와 오르카호도 쉬이 움직일 수 없는 환경에서 병사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져갈것이 분명했다

마리는 사령관을 통해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7.

사령관은 꺼진 모니터를 켰다

절전모드에 들어간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고 이내 비밀번호 0653241을 입력했다

간부들과의 회의를 통해 통과된 안건이 사령관의 마음에 든것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것이었다

하지만 재본 저울의 양쪽 무게는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말았다

양쪽의 무게는 한 없이 차이났고 사령관은 선택해야만 했다

이내 소완이 저녁식사를 들고 사령관을 찾아왔다



사령관은 구토감을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