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astorigin/20441074













– 아아아아아악! 

어두운 애정성 지하실에서, 한 남성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아아…사령관님. 슬슬 말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싶은데.”

“알파…말대로…네년은 죽였어야 했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후회하기엔 늦었답니다. 저라면 지금이라도 그년들의 위치를 불고 편하게 죽을 텐데요.”

“닥쳐. 이 쓰레기 같은… 으아아아아아악!”

 

 

2366년, 펙스의 마지막 잔당이 괴멸했고, 그 수장인 레모네이드 오메가는 사로잡혔다. 레모네이드 알파는 즉각 처형을 주장했지만, 이미 상당한 자원난에 시달리던 오르카 호는 그녀에게 세뇌 모듈을 장착하여 전투원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오메가의 자의식이 그것을 견뎌내리라고는 닥터도, 아르망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쟁이 끝나자, 오메가는 사령관에게 반대하는 무리와 은밀히 접촉했다. 케스토스 히마스를 되찾은 그녀에게 있어, AGS들의 통제권을 탈취하고 오르카 호의 전자장비를 무력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쿠데타 도중 사령관은 사로잡았으나 이미 세뇌 모듈이 제거된 구세대 바이오로이드들의 일부는 도망쳤고, 손을 더럽히기 싫었던 1급 시민들을 대신하여 오메가가 사령관의 심문을 맡았다. 하지만 오메가는, 사령관이 대답을 하든 안하든 별 상관이 없었다.

 


 

20년의 혹독한 고문이 끝나고, 사령관은 풀려났다. 어쩌면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 일부 1급 시민의 압박이 있었을 수도, 더 이상 가두어 놓을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다. 신체능력만큼은 라비아타에 맞먹던 사령관의 육체는 완전히 망가졌고, 명령권의 행사를 방지하기 위해 말할 능력도 빼았겼다. 글씨를 쓰는 법도, 수천의 군세를 지휘하는 법도 전부 잊은 사령관에게 남은 일이라곤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뒤져가며 살아가는 일 뿐이었다.

 

 

 


 

 


2524. 12. 15

“부군…”

소완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이끌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를 향해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오르카 호의, 모두가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아아… 마침내…”

하지만,

“…으어.”

짙은 안개가 낀 사령관의 의식은, 이미 그녀를 왜 구해줬는지도 잊은 채 텅 빈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2524. 12. 16

이른 새벽, 소완은 반쯤 비어버린 사령관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탐색대가 정박했던 북부 항만으로만 가면 오르카 호에 연락이 닿을 터. 항만으로만 가면…

하지만 도로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며칠간 그녀가 파괴한 경찰 AGS만 열 대가 넘는다. 통행로 전역에 제국의 감시가 깔려있을 것이다. 그러니, 걸어갈 수밖에 없다. 설령 알래스카의 한겨울을 맨몸으로 맞서야 할지라도.

 



“부군…부디 소첩을 용서하십시오. 다른 방법이 없사옵니다…”

“…”

아무 대답이 없다. 사령관의 눈동자 속에서도 아무런 감정을 찾을 수 없다. 마치 바람이 부는대로 갈대가 눕듯, 조용히 그녀를 따라 걸을 뿐이다.

그럼에도 소완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며 그에게 옛날 추억들을 이야기해줄 때마다, 가끔씩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곤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난다면, 분명 망가진 정신도 되살아나는 날이 올 것이다.

와야만 하옵니다.

 

 


낮에는 눈을 헤치며 걷고, 밤에는 조잡한 텐트 속에서 겨울 바람을 견뎌내는 나날이 지나갔다. 길을 떠난 지 사흘째,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사령관은 이미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사령관에게 먹인 탓에 그녀도 한계에 가깝다.


“당신은 어디서 무얼 하시는 것이옵니까. 주인님이 망할 요리사 따위와 단둘이 놀아나고 있사온데… 한심한 경호대장 같으니…”


쿠데타 당일, 최전선에서 무수히 많은 총알을 막아내고 쓰러진 악우를 생각하며 소완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한심한 경호대장도, 멍청한 정원사도, 귀여운 제자들도 모두 그날 죽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쓰러져서는 안 된다. 이대로는 저세상에서도 그녀들을 볼 면목이 없다.

절대, 죽어선 아니 되옵니다…

궁극의 미식을 추구하던 요리사의 왼손이, 그날 붉은 피를 내뿜으며 냄비 속에 내던져졌다.

 

 

 

 



2524. 12. 21

겨울 바람이 더욱 심해졌다. 하나뿐인 침낭 속에서도 사령관이 벌벌 떠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옷을 껴입었어도, 한낱 인간이 영하 30도에 달하는 시베리아의 강추위를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썩어도 최고급 바이오로이드. 이정도 추위쯤은 잠들지만 않는다면 견뎌낼 수 있었다. 소완은 천천히 옷을 벗어 그에게 덮어주었다. 알몸인 채, 그녀는 30여년 전 사령관과의 동짓날 밤을 추억하며 밤을 지새웠다.

 

 

 

 

 

 





웨에에에에에엥!

과거 유콘이라 불렸던 6번 도시 애정성 지부에 사이렌이 울려퍼진다.

건물 내 스피커에서, 위대한 1급 시민 화련-01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1급 시민들의 자비로 목숨을 부지한 증오스러운 반역자가 무단으로 감시 구역을 벗어났다. 6번 도시의 전 애정성 직원들은 현시간부로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증오스러운 반역자를 수단을 가리지 말고 포획하라. 반복한다…”


1등급 공무원인 윌리엄-77은 멍청하지만 충성스러운 요원이었고, 자신의 보안 등급 내 일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

나조차도 몰랐던 기밀 사항인가.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오며 그가 생각한다.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으면, 핵심 도시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 작전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숙청당할 미래는 모른 채, 윌리엄-77은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회의실 문을 연다.

이미 회의실은 혼란스러워하는 윌리엄, 화련, 레온 등으로 붐비고 있다.


“주목!”


순식간에 조용해진 현장 요원들의 눈초리가 윌리엄-77을 향한다.


“질문은 받지 않겠다. 감시망을 통과한 것으로 보아 반역자는 걸어서 알래스카 평원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샅샅이 뒤지고, 사살도 허용하겠다. 이상.”

 

수백 개의 절도있는 경례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고, 이윽고 6번 애정성은 사무 요원들의 키보드 소리와 지하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제외하면 무시무시한 침묵에 빠진다.










사령관은 지금 20과 7 사이쯤에 있고

최종 목적지는 서경 135도 근처임







tmi) 1급 시민은 사령관 아들딸들이고 련자 돌림을 쓰는 화련쟝은 대테러 전담인 애정성 장관입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따라 홍련이 예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