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부탁할게요... 제 몸이 멀쩡해졌을 때, 그 때 다시 찾아주실 수 있나요

...당신이 제게 실망하는 걸 본다면, 전 망가져 버릴거에요....

그, 그렇게까지 하신다면... 제게 남은 시간을 당신께 전부 드릴게요. 고마워요.]


서약의 반지를 내민 사령관에게 레이시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실험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줄 수 없는 몸이었기에,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령관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는 레이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완전히 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사코 거부하는 레이시의 왼손 약지에 사령관이 반지를 끼워줬으니까.


서약을 했다지만 레이시는 사령관을 독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유일무이한 남성이었기 때문에, 인류의 씨앗을 뿌릴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레이시는 서약과 무관하게 여인들을 거느려도 괜찮다고 했다.


사령관은 그걸 받아들이고 다양한 여인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양보하지 않고 레이시에게 약속했다.

레이시가 원하는 날에는 그 무엇도 제치고 레이시에게 가겠다고.


둘의 사랑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같았다.

사령관이 다른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고 레이시는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자신은 사랑하는 이의 욕망을 풀어줄 수 없을까.


레이시의 눈물을 보고 사령관 역시 눈물을 흘렸다.

어째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계속 지켜줄 수 없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 하나를 들어줄 수 없을까.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오르카 호에는 많은 인원이 탑승했다.

그 중에는 정말 뛰어난 기술을 가진 능력자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조종당하던 마왕도 있었다.



"오빠, 마침내 완성했어. 최면장치."

사악하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닥터의 말에 사령관이 공포에 질렸다.

하지만 닥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봐줄게. 대신 얌전히 비밀의 방으로 가."

닥터의 말에 의문을 표한 사령관이었지만,

닥터는 "로리콘으로 만들어줄까?"라는 말로 사령관을 떠나보냈다.


허겁지겁 도망치는 자신의 오빠를 보며 닥터가 쓰게 웃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렸다.

"오빠가 사랑할 상대는 따로 있으니까."



닥터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와서 사령관은 숨을 골랐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비밀의 방에 도착한 사령관이 문을 열자

그곳에는...



"오셨어요, 여보."

힘겨운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 레이시가 침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의 연구복이 아닌 투명해서 속살이 살짝 비치는 야한 란제리를 입고

마치 그를 유혹하는 것처럼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괜찮냐고 묻는 사령관에게 레이시가 말했다.


닥터의 도움으로 머리의 장치 일부를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그녀의 생명과 직결되었기에 뺄 수 없었고,

대신 통증을 없애기 위해 연구의 성과를, 그 남은 부분에 넣었다고.


사령관은 그제서야 닥터가 완성했다는 것이 최면장치가 아님을 알았다.

눈물을 흘리는 사령관에게 레이시도 행복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제 약속대로... 제 남은 시간 모두를... 바칠게요."


사령관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혹시나 아프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그의 손을,

자신의 부드러운 손으로 잡은 레이시가 자신의 뺨으로 이끌었다.


"이것이 고통없이 느낄 수 있는 당신의 손... 당신의 온기... 그리고..."

레이시가 사령관을 향해 다가가 살며시 입술을 훔치고 말했다.

"이것이 당신과 키스하는 느낌이네요... 정말, 정말 행복해요..."


사령관은 배시시 웃는 레이시를 꽉 껴안았다.

그리고 눈을 감는 레이시를 보고 자신도 눈을 감으며 키스했다.

입술과 입술이 마주치는 부드러운 키스, 그리고 혀와 혀가 오가는 진한 키스.


그들이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한없이 짧은 순간이 지나고,

입술 사이에서 얇고 투명한 실이 늘어지며 떨어졌다.

레이시는 살짝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지만, 곧 옆의 쿠션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이젠 괜찮으니까... 이게 끝이라곤 안하시겠죠, 당신?"

그 쿠션에 적힌 YES라는 단어를 본 사령관이 사자와 같이 덮쳐들고

오랜 시간 사랑했고, 상처받았던 남녀의 길고 긴 신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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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레이시 뿔 남은걸 이상하게 생각하길래 반대로 생각해봤음

생각해보면 원본 레이시한테 있던 손잡이 같은건 사라졌으니까

저기에 분명 레이시의 통증을 가라앉히는 뭔가 있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뿔->뽀끄루의 뿔?->닥터의 연구! 순서로 이어지더라

원랜 그런 설정이 아닐까 라는 글을 적으려 했는데 애호하는 창작물이 없길래

그냥 창작물로 만들기로 했음


노잼글 봐줘서 감사합니다